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산다면

마셜은 1959년 10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여든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다. 그의 참모부장이었던 톰 핸디 장군이 언젠가 그의 장례식 문제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마셜은 그의 말을 자른 다음 이렇게 답했다. "그 걱정은 할 필요 없네. 필요한 지시사항은 이미 다 남겨 놨으니까." 그가 죽은 후 그 지시사항이 공개됐다. 실로 놀라운 내용이었다. "간소하게 매장해 달라. 조국을 영예롭게 섬긴 평범한 미군 장교와 다름없이. 수선 떨지 말고. 거창한 의식 같은 것도 금지. 장례식은 짧게. 장례식 손님은 가족들만. 무엇보다도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도록." 마셜의 엄명에 따라 국장은 거행되지 않았다. 미 국회의사당 로툰다에 안치되지도 않았다. 그의 시신은 워싱턴 국립 대성당의 베들레헴 예배당에 안치되어 24시간 친지들이 조의를 표할 수 있도록 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가족과 몇몇 동료들, 그리고 그의 이발사 니콜라스 토탈로뿐이었다. 토탈로는 전쟁 중에 카이로, 테헤란, 포츠담에서 그의 머리를 깎았을 뿐만 아니라 후에는 펜타곤에서도 그의 이발을 전담했다. 마셜의 장례식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포트 마이어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일반 기도서의 표준 매장 절차에 따라 이뤄진 장례식이었다. /데이비드 브룩스, '인간의 품격' 5장 조지 캐틀렛 마셜 편 중에서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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