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08-13
     다윗은 내 어릴 적 영웅이었다. 작은 조약돌로 거구의 골리앗을 단번에 물리친 양치기 소년. 그 이야기는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드라마였고, 읽을 때마다 내 머리 속에는 둘의 비대칭 대결의 장면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상상만 해도  경이로웠다. 교훈은 다분히 종교적인, 혹은 신앙에 관한 것이었다.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가장 낮은 자를 통해 세상의 강자도 응징한다는 신의 섭리, 같은 것 말이다.이 책은 제목에서도 앞세운 것처럼 그 때의 다윗과 골리앗의 결전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서두를 장식한다. 사실상 책의 전체를 통틀어 압권에 해당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치 007 영화가 시작될 때 다짜고짜 강렬하고도 아슬아슬한 전투 스릴러 씬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처럼, 저자 역시 수천년 전 전장에서 벌어진 저 극적인 대결의 장면으로 독자를 이끈다. 마치 성능 좋은 ENG 카메라가 부감 촬영 기법을 구사하듯 치밀하게 훑어내린다. 초저속 슬로 모션으로.때는 기원전 11세기 후반. 이스라엘 왕국과 크레타섬 출신의 블레셋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중아 세펠라의 한 계곡에서 맞닥뜨린다. 당시 전쟁의 프로토콜이 그랬듯, 양측의 대표 장수가 나서서 승부를 가린다. 블레셋에서는 골리앗. 청동 투구에 전신 갑옷을 두른 키 210센티미터의 전문 병사다. 반대편에 선 다윗. 참전한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주러 와 있던 베들레헴의 양치기 소년이다.알다시피 승부는 다윗의 완승으로 끝난다. 소년은 돌 하나를 가죽 투석 주머니에 넣고 적의 이마를 향해 날렸고, 적중한 거인은 쓰러져 기절한다. 다윗은 단숨에 달려가 적의 칼로 그의 목을 친다. 상황 끝. 어이없는 패배요, 대단한 승리였다. 그 뒤로 ‘다윗과 골리앗’이란 말은 기적적인 승리를 뜻하는 은유가 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기서부터 장면은 신화에서 다큐로 바뀐다.저자는 여느 사람들이 잘 몰랐던 학계의 연구 결과들을 풀어놓는다. 실은 골리앗이 말단비대증을 앓는 중보병이었고, 다윗은 잘 단련된 투석병이었다는 가설. 여기에 고대 전쟁사부터 현대 군사학을 아우르는 각종 이론과 분석까지 겹쳐진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결과, 저자가 내놓는 새로운 관전 평은 이렇다. 양자 대결의 구도는 겉보기와 달리 실은 ‘칼로 무장한 청동기 시대의 전사(골리앗)가 45구경 자동 권총을 가진 적(다윗)과 맞선 것과 마찬가지’였다.저자가 동원한 갖가지 고증에는 이견의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진위 여부보다(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놀라운 것은 그 밑에 깔린 치열한 상상력이다. 그런 고전적인 장면을 뒤집어 살펴보려 한 발상 말이다.저자는 두 가지 생각에서 이 세기의 대결에 ‘꽂혔다’고 말한다. 첫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은 이런 식의 일방적 우위가 지배하는 충돌 속에서 탄생한다. 누가 봐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결연히 맞서는 행동이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둘째, 하지만 우리는 이런 충돌과 승패의 메커니즘을 종종 잘못 읽고 잘못 해석한다. 골리앗을 천하무적으로 보이게 했던 강점이 실은 치명적인 약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이 책에는 다윗과 골리앗 같은 역설과 착시의 사례가 다양하게 소개된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서부터 범죄를 퇴치하는 형사정책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우리의 완고한 통념에 흠집을 낸다. 관통하는 정신은 ‘크고 강하고 유력해 보이는, 또한 당연시되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뒤집어 보기’다.지난 200년 동안 전쟁사를 봐도 그렇다.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 같은 대국의 승률이 실은 71.5%에 불과했다. 세 번 중 한 번꼴로 약소국이 이겼다. 더우기 약소국이 게릴라전으로 맞설 때는 약소국의 승률이 63.6%였다. 가까운 역사만 봐도 ‘약자’의 승리는 허다했다.1차대전 말 터키에 맞서 아랍의 반란을 이끌었던 T E 로렌스가 대표적이다. 정규전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 배두인족을 이끌고 대승을 거둔다. 이들에게는 전투 장비와 훈련과 기율에 있어서 열세였지만, 약자 특유의 기동성과 인내력, 지혜, 터키에 대한 지식, 무엇보다 불굴의 용기가 있었다.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대국을 차례로 물리쳤던 베트남의 게릴라전법이야 말할 것도 없다.물론 약자는 위태롭다. 구사하는 전략도 대개 어렵고 힘든 것들이다. 강자로서는 시도조차 꺼릴 것들이다. 하지만 약자의 필사적인 상황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약자의 절박한 입장은 강자의 구도를 과감히 벗어나게 하고, 대담한 시도를 감행하게 한다.전쟁은 특수한 상황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 반문이 나올 법하다. 저자는 전혀 다른 예를 줌인한다. 이번엔 예술이다. 다시 150년 전 프랑스로 독자들을 데려간다.1860년대 파리가 세계 예술과 교양의 중심이었던 시기, 그 한가운데에 살롱이 있었다. 유럽을 통틀어 모든 화가들이 선망하는 최고 최상의 예술 전람회였다. 전통적 질서의 대변자이기도 했다. 수상작들은 대개 프랑스의 역사나 신화의 장면을 거대한 스케일로, 하지만 세밀하게 재현해 낸 그림들이었다.하지만 그 중심에서 외진 곳에 춥고 가난한 한 무리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주류로부터는 홀대 받았지만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관심사는 거대한 서사가 아닌 소소한 일상과 풍경이었다.. 캔버스에는 붓질이 묻어났고 형체는 흐릿했다. 모범답안에서 벗어난 이들의 그림은 살롱에서 외면받거나 아래로 밀려나기 일쑤였다.하지만 아랑곳없었다. 그래서 자유로웠다. 자신들끼리 협동조합도 결성하고 독자적인 전시회도 열었다. ‘주류 따위의’ 여론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새로운 정체성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저 눈부신 ‘인상주의’ 화가들이다. 변두리 예술가들의 이름은 마네, 모네, 세잔이었다.저자는 “작은 연못의 큰 몰고기가 되는 것이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가 되는 것보다 더 나은 때와 장소가 있다”고 쓴다. 주변부의 아웃사이더라는 핸디캡이 장점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통계를 보더라도 아웃사이더들로부터 혁신가가 많이 나온다. 혁신가들의 특징은 개방성, 성실성과 더불어 비친화성으로 요약된다. 이들은 다수에 역행하는 일을 함으로써 사회적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성공한 기업가들 중에 난독증 경험자가 많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역경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어떤 것은 공식 학습 과정에서는 얻을 수 없다. 이른바 보상 학습이다. 절박한 필요에서 배운 것은 손쉽게 습득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유명 시인과 작가 같은 창조적 인물들 중에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사례가 많은 것도 같은 이치다. 영국 총리 중 67%가 16세 이전에 한쪽 부모를 잃었다. 미국 대통령도 역대 44명 중 12명이 젊었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오해는 마시길.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에는 장애가 필수라거나 가난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싸구려 위로를 건네자는 게 아니라고 저자는 곳곳에서 분명히 한다. 단지 어떤 부족과 결핍이 절망의 이유가 될 수는 없을 뿐더러, 오히려 뜻밖의 강점이나 미덕을 낳기도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우리는 흔히 더 높은 명성과 더 많은 부를 누리고 더 강한 기관에 속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유무형의 이점이 우리의 선택과 시야, 운신의 반경을 오히려 제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다.또한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면 그만큼 좋은 교육을 받아 성공도 쉬울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역시 어느 정도까지만 사실이다. 모름지기 지속가능한 성공은 힘든 역경을 통해 얻어진다. 이미 성공한 집안의 자녀는 역경이 무언지 모르고 자라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부자들은 자녀에게 역경을 이기고 성취하는 데 필요한 인격과 덕성을 길러주는 데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는다.돈과 행복이 그러한 것처럼 양육과의 관계도 직선적인 비례가 아니다. 오히려 뒤집힌 U자형에 가깝다. 돈은 어느 지점까지 양육을 쉽게 해 주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면 오히려 어렵게 한다는 얘기다.범죄퇴치 같은 정책 구현이나 통치의 경우에도 힘의 우위만 믿고 나서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힘을 가진 사람은 늘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 이른바 정당성에 대한 염려다. 명령을 내리는 쪽은 사실은 명령을 받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의존하는 아주 취약한 구조에 놓여있음을 알아야 한다.이 책은 양날의 교훈을 품고 있다. 우선 다윗 같은 약자를 응원한다. 약자는 절대적으로 약한 것이 아니라 단지 외견상 강자와 다른 강점을 지녔을 뿐이다. 더욱이 약자는 가진 것의 무게에서 자유롭다. 잃을 게 적기 때문에 상대가 설정한 규칙조차 비웃을 자유가 있다.동시에 골리앗 같은 강자에게는 겸허함과 경각심을 일깨운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우리의 정의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문을 닫아버리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끝으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가치 중 수많은 것들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힘과 목적의식을 가진 양치기로부다 나온다”는 구절이 긴 여운을 남긴다.저자의 필력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던 터다. ‘1만 시간의 법칙’ ‘티핑 포인트’ ‘블링크’ 같은 시사 용어들이 모두 그의 전작에서 나왔다. 이번에도 어찌 보면 자칫 진부할 수도 있을 교훈을, 지난 과거 역사와 오늘날 현실 속의 다양한 사례들로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 스토리텔링의 구성력과 그것이 빚어내는 호소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명불허전이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말콤 글래드웰 지음|선대인 옮김|21세기북스|350쪽|1만7000원
  • 2014-08-13
    ​이번 주 북리뷰는 저자 인터뷰로 대신합니다. 북클럽과 더불어 함께 책을 읽는 사이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마침 책읽기라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고 답한 신간이 출간되어 이 주에 함께 읽을 책으로 선정해 보았습니다. 책읽기에 관한 한 내로라 하는 국내외 저자들의 이야기가 구슬처럼 엮여 있습니다. 책과는 별도로, 이런 책을 쓴 저자 자신의 책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들어 보았습니다. 저자는 사회학 교수 출신 전업 작가로서 글쓰기는 물론 다독가로도 이름이 나 있습니다. 모쪼록 또다른 읽을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1. 평소 어떤 책을 얼마나, 어떻게 찾아 읽나?하루에 10~12권 정도 읽는다. 주된 일과가 읽고 쓰기다. 오전에는 집에서 글을 쓰고 오후 3~6시 정도에 서초동 국립 중앙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 하루 10권 한도 내에서 빌려 볼 수 있어 그만큼 읽는다. 다 완독한다는 얘기는 아니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는다. 집에 와서 한두 권 더 읽으니까 합쳐서 12권 정도가 되겠다. 중앙 도서관이 참 잘 돼 있다. 3년 이내 신간들은 개가식으로 돼 있어 맘대로 뽑아 볼 수 있어 좋다.읽는 책의 종류는 다양하다. 아무래도 지금 집필 중이거나 준비 중인 책과 관련한 책들을 읽게 된다. 연속 간행물실에 비치된 각 분야 학술지와 잡지들도 챙겨 본다.과거엔 책을 직접 많이 샀지만, 요즘은 거의 안  산다. 집에 책이 넘치고 도서관에 도 있어서 살 필요를 많이 못 느낀다.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책들도 있고. 일일이 구입하기보다는 도서관을 많이 활용한다.책 선정의 기준이라면, 그때그때 좋아하고 관심 가는 책이 우선이다. 지금 쓰려고 하는 책의 아이템이 50개 정도 된다. 그 주제와 관련된 분야의 책을 중심으로 읽는다. 사회학과 파리 연작, 한국의 문화적 문법, 책에 관한 연작이 있다.최근에는 개인사를 사회사와 엮어서 이해하고자 하는 ‘사회 인간학’에 관한 내용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개인과 가족, 사회를 엮어 3대에 걸쳐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사회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사회 인간학 시리즈를 구상 중이다. 예술 분야 책도 하나 있고., 한국 사회과학의 반성도 있고. 그때그때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에 따라 읽어야 할 책들도 있다2. 개인 장서는 얼마나 되나? 얼마나 사고 두고 버리나?그동안 사들인 책으로 말하자면 4000~5000권 정도 된다. 2002년 파리에 갈 때 보관할 데가 없어서 외부 창고에 보관해 놓고 갈 정도였다. 2년 전 귀국한 후 집에 1000권 정도를 뽑아 두었다. 지금은 집에 1500권 정도 있다. 아직 e북보다는 종이책을 주로 본다.최근에 산 책으로는 발작의 소설 ‘잃어버린 환상’을 들고 싶다. 서울대출판문화원에서 나온 것인데 번역이 참 잘 됐다.3.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좋은 것을 꼽는다면? 이유는?우연히 본 건데,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이 기억난다. 정현종 시인이 번역했다. 대시인 네루다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나이든 사람이 죽기 전에 생각해볼 수 있는 인간 보편적인 문제들을  질문하는 형식으로 풀어놨다. 시에 번호가 붙어있는데, 가령 31번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 /왜 나는 원치도 않으면서 움직이고 /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지?’평소에도 시를 즐겨 읽는다. 지적인 활동을 즐기지만 정서적인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집도 읽는다. 최근에는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의 ‘조용한 걸음으로’를 읽었다. 만년에 이르러 나오는대로 술술 써내려 가는, 자유로운 글쓰기와 책 읽기에 대해 쓰셨다. ‘나는 내 자신의 생애를 자서전을 쓰는 기분으로 돌아봐야 할 나이에 와있다’면서, 편안하게 쓴 책이다. 요즘은 원로들이 인생을 관조하며 쓴 글들이 와 닿는다. 나도 이미 60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내가 55년생이다. 내년에 육순이다.젊은 저자 중에는 김영하 소설을 본다. 최근에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다. 천정환의 ‘근대의 책읽기’와 ‘자살론’도 있다.예전의 저자들과 요즘 저자들간에는 차이가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차이랄까? 심오함과 약삭빠름이랄까. 예전엔 진지하고 장기적이고 깊이가 있고 근본적인 것을 추가했다면, 요즘은 금방 눈에 띄고 금방 이해 되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많아진 것 같다. 읽고 교양 있는 시민이 되는 데 도움을 주는 책들을 좋아한다.4. 최근에 가장 실망한 책이 있다면? 왜 그런가?모든 책들이 다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고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느 정도 골라서 읽기 때문에 어느 한 책이 유독 실망스러운 적은 없다.어떤 책이 더 좋고, 덜 좋으냐의 문제는 있을 수 있겠다. 실망하는 경우란 드문 것 같다.5.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면? 어떻게 영향 줬나?사회학자 입장에서 학문적으로 큰 영향을 준 책이 있고, 인생을 바라보는 데 영향을 준 책 두 가지가 있다. 학문적인 책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에밀 뒤르켕의 ‘자살론’ 같은 사회학 고전을 들 수 있다.대학 시절에 이규호 교수의 ‘말의 힘’, ‘앎과 삶’ 같은 책, 박영신 교수의 ‘현대사회의 구조와 이론’, 한완상 교수의 ‘민중사회학’, 김용섭 교수의 ‘조선후기사 농업 연구’도 기억 난다. 어린 시절에는 교과서 이외에 많이 읽지는 않았다.중고등학교 들어가서는 ‘한국 단편 문학 전집’ 을 즐겨 읽었다. 김동인, 염상섭 같은 식민시기 작가들 작품이 주는,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좋았다. 청소년기에 는 이런 어둡고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책이 영향을 줬다. 법정 스님의 책이나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같은 책도 있다. 이런 두 부류의 책들, 두 종류의 사상적 긴장 속에서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6. 지금 곁에 두고픈 책 다섯 권만 꼽는다면?시기별로 변하는 것 같다. 그때그때 집필하려는 주제와 관련된 책을 주로 보기 때문이다. (작업과 무관하게 친구처럼 두고 볼 책이라면?) 우선 성서를 들어야겠고. 세례를 받거나 입문한 건 아닌데 스스로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개신교회를 이따금 나간다. ‘어린 왕자’도 몇 년마다 한번씩 읽은 기억이 있다. 청소년기에 읽은 책은 버리고 싶지 않아서 지금도 갖고 있다.7. 죽고 난 후 무덤에 함께 묻히고 싶은 책이 있나? 왜 그 책인가?옛날 선비들은 자천 묘비명도 썼다는데,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책 중의 하나가 개인사와 가족사, 사회사를 엮은 것이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의 시대사를  아우른  책이고, 내가 평생에 걸쳐 쓰려고 하는 책이다. 무덤에 한 권의 책을 묻는다면 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8. 자신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준 저자가 있나?많아서 고르기가 힘들다. 그때그때 달라진다. 내가 좋아했던 책들의 저자라면 박이문 선생, 대학 시절 김현 선생을 들 수 있다. 김현의 ‘예술기행’,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 김붕구의 ‘불문학 산고’가 있다. 그러고 보니 불문학자들이 쓴 책이 영향을 준 것 같다. 김화영, 곽광수 같은 불문학자들 책을 많이 읽었다. 박두진 선생 시론도 읽었고. 정현종의 시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9. 나쁜 책도 있다고 보나? 어떤 책이 그런가?이번 책에서도 썼지만, 어떤 책이라고 해서 나쁜 책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더 좋은 책, 덜 좋은 책이 있다. ‘덜 좋은 책’으로는 사람을 기만하는 책 , 저자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은 책, 독자를 우롱하는 책, 저자와 독자 사이에 대화를 유발하는 게 아니라 군림하는 책, 저자가 스스로에게 빠져있는 책, 독자를 존중하지 않은 책, 이래라 저래라 독자를 가르치려 들면서 그저 실용적인 것만 알려주는 책, 정답을 가르쳐 주는 책을 들 수 있다.반대로 더 좋은 책으로는 대화할 수 있는 책, 생각을 유발하는 책, 저자와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책, 생각의 여지를 주는 책을 들 수 있다.10. 좋아하는 저자를 국내외에서 세 명씩만 꼽는다면?그때그때 따라 달라져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11. 참 좋은 저자라고 생각하는데 안 알려졌거나 과소 평가된 저자를 꼽는다면?안 알려진 작가는 모두 과소 평가됐다고 봐야지.(웃음) 모든 작가들은 자기 자신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자신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작가가 덜 알려진 작가에 비해 더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일 뿐이다.굳이 소개하고 싶은 저자라면 프랑스의 ‘디디에 에리봉’을 꼽고 싶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책으로는 ‘미셸 푸코 전기’가 있다. 아버지가 노동자 가족 출신으로, 동성애자인데 프랑스 중심부가 아닌 지방 출신 사람이었지만 파리 중심의 지식인이 된 사람이다.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 프랑스 역사를 연관시킨 책을 최근에도 내고 있다.12. 나를 질투하게 만들거나 좌절하게 만드는 저자가 있다면?다들 각자 잘 쓴다고 생각하니까. 작가들마다 자기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해서 말하기 어렵다.13. 책에는 고전, 명저, 대작, 역작이 있다고 썼다. 당신의 이번 책은 어디에 속한다고 할 텐가?책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라서 내 입으로 말하기는 곤란하다. 내 나름대로는 힘써서 쓴 책이니까 역작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14. 이번 책을 쓰게 된 계기나 구상, 집필 과정을 말해 달라.이 책에 앞서 나온 것을 포함해 책에 대한 연작을 3년 정도 구상했다. 계기라고 한다면, 한길사에서 나온 이광주 교수님의 ‘세상의 아름다운 책 한권’이던가,책에 대한 책인데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작은 사진과 함께 예쁘게 편집돼 나온 책을 보고 나도 그런 종류의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하면서 관련서들을 읽는데, 책의 역사가 단순히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책은 역사,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한다. 프랑스의 경우 책의 역사가 상당히 깊은데 읽다 보니 책이 융합 학문임을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연작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 결과  첫 권이 지난 봄 ‘책인시공’으로 나왔다. 가볍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반면 이번 책은 지난 책보다 좀 더 진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두 편 정도 더 쓰려고 한다. 다음 권은 책의 정치학, 책의 경제학이 되겠다. 이번 책이 독서론이라면 후속작은 책을 통한 사회론이 되겠다.15. 자신의 저서 중 대표작이라면? 왜 그 책인가?지금까지 10권 정도 썼는데, 대표작이라면 역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을 꼽고 싶다. 그해 출판문화 대상도 수상했고, 4쇄를 찍었다. 강연도 많이 했고 사회학계에서 토론도 많이 했다. 하지만 아직 내 생애의 대표작이 나왔다고는 할 수 없다. 모든 현역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책을 쓰는 것이다.16.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써줬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책읽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책을 씀으로써 교양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꼭 책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식이라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17. 내 평생에 꼭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사회 인간학’에 대한 연작을 쓸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 밖에 프랑스 예술 기행, ‘고통’에 관한 책도 있고, 한국인의 개인주의에 대한 책, 한국 사회과학의 반성에 관한 책도  있다.18.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와서 자신의 독서 생활에 변화가 있나?과거에 비해 알고 싶은 정보들을 빨리 입수할 수 있다. 사전이나 다른 참고도서를 통해 맥락을 만들어내거나 전체 체계를 잡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 결과 집필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 같다. 장점이다. 반면 범위가 넓어지는데 반해 깊이가 얕아지는 게 단점이다. 방대해지는데 깊이가 얕다. 정보 지식은 강화되는데 지혜로 가는 것은 적다. 실용적 정보만 난무한다.개인적으로는 e-book보다는 아무래도 종이책을 즐겨 읽게 된다. 나는 ‘끼어있는’ 세대지만 아날로그에 가깝다. 종이책만 해도 볼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e북도 꺼리지는 않는다. 글자 키워서 읽기도 좋고, 천권씩 갖고 다닐 수 있으니까 좋은 면이 있다. 지금은 아닌데 앞으로는 킨들을 이용할 생각이다.19. 책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책의 미래는 전체적으로 어둡다.  아마존의 e북 이름이 킨들인데, 책은 촛불과 같다. 역사 속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늘 소수였다. 역사를 보면 책을 읽는 소수에 의해 세상은 발전해 왔다. 책이야말로 문명의 전수와 발전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책의 역사는 무한하다.20.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다섯 문장으로 요약한다면?몇 문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나는 유목민, 노마드, 에타랑제, 아웃사이더, 경계 인,주변인, 사이 같은 메타포를 좋아한다. 어디에도 환원되지 않는 것 말이다.  언제라도 달라질 수 있다. 어디 한 군데 뿌리박기보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삶이었다.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 한다. 칼 만하임이 이야기한 ‘자유부동하는 지식인’처럼 살고 싶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정수복 지음|로도스|296쪽|1만5000원
  • 2014-08-13
     ​'남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인가' 지난달 캐나다 토론토는 이런 주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s). 일종의 토론 배틀이다. 주요 글로벌 이슈를 놓고 당대 최고의 논객들이 복식조를 이뤄 무대 위에서 공개 토론을 벌인다. 지켜보는 유료 방청객들이 토론 전후 전자투표로 지지를 표시해 승부를 가리는 식이다.이번에는 뉴욕타임스의 여성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와 화제작 ‘남자의 종말’의 저자 해나 로진 등을 포함한 쟁쟁한 네 명의 여성 논객들이 맞붙어 설전을 벌였다.결과는 토론 전 투표에서는 찬성 16%대 반대 84%였던 것이 토론 후에는 44%대 56%로 바뀌었다. ‘남성은 이제 한물 갔다’는 주장에 대해 처음에는 ‘설마’ 했던 생각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옮겨간 셈이다.이 책에는 이런 고백이 나온다. “나는 평생 남자인 척하며 살기가 참 힘들었어.” 한 문단 행사의 뒷풀이 자리에서였다고 한다. 환갑을 넘긴 원로 작가 한 분이 분위기가 편해지자 이렇게 말하더란다. 그 담담한 목소리에 저자는 불현듯 절절한 이해와 공감이 일었다고 쓴다. 속으로는 “저도 평생 여자인 척하면서 사는 게 힘들었어요”라고 답했단다.두 사람 다 동성애자로서 커밍아웃을 이야기한 게 아니었다. 저자만 해도 나름 다분히 여성적이다. ‘서른살 이후 한동안 생의 에너지 중 5% 정도를 일방적으로 접근하는 남자들을 처리하는 데 사용’했을 정도다.다만 자기 역시 “보수적인 남성 사회의 분노를 살까봐 내면에서 자기검열을” 해왔을 뿐이다. 저자 눈에는 남성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남자들은 여자에게 여자다움을 요구하는 만큼 스스로에게 ‘남자다움의 짐’을 부과하고 있는 듯 보인다. (중략) 그리하여 남자들은 스스로 규정해둔 ‘남자다움’의 가치들을 어깨에 얹은 채 낙타처럼 등이 변형되고 걸음이 느려지는 것처럼 보인다.”남자들은 흔히 자신의 ‘역할’과 ‘자기 자신’을 혼동한다. “성인이 되면 남자는 자기가 하는 역할을 통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자기 역할을 정해놓고 그것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가 그의 정체성이 되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 그를 정의하는 언어가 된다.”저자 눈에는 그 역할을 해내고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고돼 보인다.그 과정에서 짓눌리는 것은 남자의 진정한 내면이다.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남자들이 정신과 병원을 찾는 경우는 두 가지다. 발기불능일 때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만큼 자기 심리나 내면에 관한 한 자기 확신이 강하다는 얘기다.저자는 오히려 남성의 그런 면이 자기 내면을 솔직히 들여다보기가 두려워서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일종의 ‘무오류의 신념’이다. 이런 남자들의 나르시시즘이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뿌리를 같이한다고 쓴다. 아담도 선악과의 죄를 이브의 권유 때문이었다며 미루지 않았던가.정신과 의사들은 말한다. 남성 상담자의 경우 “요즈음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주저하거나 불쾌해한다. 대신 “요즈음 하는 일은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남자들은 갑자기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높혀 이야기한다.남자 역시 실은 내면에서 많은 사랑을 갈구하고, 위로받고 싶어한다.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다. 하지만 감정적인 것 ‘따위’를 밖으로 표현하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자격지심에 오래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감정을 숨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법이라고 배운 결과다. 경쟁 사회에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전장에서 갑옷과 투구를 벗는 것쯤으로 생각한다.“그 결과 남자들은 언어나 눈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행동으로 표출한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거나, 지칠 때까지 운동장을 달리거나, 격렬하게 푸시업을 하거나, 잇몸에 피가 날 정도로 양치질을 한다. 일요 축구회나 동네 스포츠 모임, 등산 모임은 남자들이 감정을 표현하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의식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 남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서를 치유한다.”남자들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의 전달마저 사물을 통해서 하려 든다. 대중적인 연애 지침서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남자가 말을 걸기 쉽도록 물건들을 가지고 다녀라. 산책을 할 때는 애완견을, 거리를 걸을 때는 주간지를, 하다못해 옷깃에 눈에 띄는 장신구라도…”저자가 남성을 해부하는 인식의 기본틀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다. 남자의 유아기적 성향과 나르시시즘을 반복해서 문제삼는다. “남성 나르시시트들은 자신들이 첫번째 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지나친 우월감과 자부심을 느낀다.”그 결과  남성들은 웨이트리스가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지 모른다고 착각한다. 천하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아내에게 천재로 대접받기를 원했으면서, 실제로는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렸다고 전해진다.하지만 남자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남자다움이라는 강박의 최대 피해자가 바로 남자 자신이라는 사실. 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요모조모 일깨운다.과거엔 공동체가 남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해 주었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남자의 위치는 고민의 여지가 없이 분명했고 공고했다. 하지만 공동체가 해체된 현대 사회에서 남자들은 직장을 떠도는 도시 유목민이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하기도 어려워졌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알 수 없게 됐다.“그 결과, 많은 남자들이 중년이 되면 뒤늦게 취미 생활에 몰두한다. 고가의 오디오와 이미자 음악에 심취하거나 등산, 낚시에 몰두한다. 어떤 이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주말 답사 여행을 따라나선다.”  또 하나. 중년의 위기에서 열정을 다시 한번 불태우려 할 때 남자들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외도다.저자가 권하는 해법은 남자들이 그토록 외면해왔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동안 회피해온 감정 영역을 점검하고, 덜 발현된 인간성의 좋은 면을 알아차리고 개발해야 한다. 그것이 뒤늦게라도 성장하고 싶은 욕구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중략)삶이란 유아기의 욕망과 결핍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삶의 진정한 본질은 이타성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사실 우리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은 몇가지 되지 않는다. 가장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주부는 가족을 위해 요리와 청소를 한다. 그것을 억울하다고 느낀다면 여전히 ‘아기’ 상태라는 의미일 것이다.”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쓴다. ‘우리가 몰랐던 남성’의 저자 로즈 킹마를 인용한다. “남자가 이르고자 하는 내면의 감정에 도달하도록 안내해줄 사람은 여자밖에 없다. 오직 여자만이 부드러운 공감의 손길을 건넬 수 있다. 남자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자가 도와주어야 한다. 남성들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들어서야 하는 정신적 상태는 오직 여성들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괴테도 파우스트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영원이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이 싸울 때 둘 사이를 중재하는 이는 언제나 여자다.칼 구스타프 융은 일찌기 여성 속의 남성성을 ‘아니무스’로, 남성 속의 여성성을 ‘아니마’로 짚어냈다. 누구든지 내면에서 반대 성의 요소를 더 많이 의식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더 많이 통합된 사람이라고 했다.저자 역시 생활 속에서 여성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남성들과 있을 때 더 편안하다고 쓴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 역시 내면의 남성적 요소를 편안히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결론은 이렇다. “남자들은 이제 외부에서 여자를 찾아다니기보다 자기 내면에서 여성성을 찾아내야 한다. 남성다움의 가면 밑에 억압해둔 여성적 요소를 살려내 의식 속으로 통합해야 한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워지는 길이다.”존 그레이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래 남성성에 주목하는 책들은 국내외에서 간간이 나왔다. 이 책은 국내 중견 여성 작가의 눈으로 본 남성 정신분석이다.남성에 관한 책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남성을 보는 여성의 시각도 엿볼 수 있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할 때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 남편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저 따위 인간을 위해 밥상을 차려야 하다니…’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스스로 놀란다는 저자의 친구 이야기, 여자들이 물건값을 낮춰 말할 때는 20~30%가 아니라 거의 90% 가깝게 줄여 말한다는 사실 같은 저자의 귀띔은 남자들이 알아둘 필요가 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김형경 지음|창비|328쪽|1만3500원​
  • 2014-08-13
    ​ ​이 책의 원제는 ‘Finance and the Good Society(금융과 좋은 사회)’다. “이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을 억지로 갖다붙였다고 여기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의 첫 줄을 이렇게 시작한다.뜨끔했다. 내가 잠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어디 나뿐일까. 금융과 좋은 사회라니. 가당한 말인가.금융은 오늘날 미운털이, 그것도 단단히 박힌 단어다. 적어도 2007년 금융 위기 이후로는 그렇다. 월가를 점령한 시위대가 세계를 ‘99%대 1%’로 나눈 뒤로 금융은 비난받는 1%, 수세에 몰려 있다. 저자도 시인한다. “성장의 주춧돌인 금융 시스템이 재앙의 원흉으로 전락했다.” 사뭇 탄식조다.1997년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가 ‘만악의 근원’으로 불렸듯이, 오늘날 금융은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다. ‘금융 안에서 생겨나는 권력의 불균형’ 때문이다. 저자도 수긍한다.“정경 유착과 부의 편중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 일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것이 금융 위기를 초래한 일련의 사건들의 발단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심지어 “책임자를 감옥에 보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데도 동의한다.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질까. 그렇게 비난만 하고 응징만 하고 나면 ‘좋은 사회’는 찾아오는 것인가. 저자의 진짜 고민은 여기서 가지를 친다.“그 추악함 때문에 금융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폐기해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스스로 답한다. 금융 위기의 원인을 몇몇 이기적인 자들의 탐욕과 불법, 사기로만 돌리고 만다면 심각한 오류라고. 더 무엇이 있는가.저자는 금융 ‘시스템’의 개선이라고 말한다. 금융 위기는 인간의 사악함 때문만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구조적 부실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여기서부터 저자는 냉정한 현실론의 입장에서 금융공학의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본다.우선 금융에 대한 우리의 시야부터 넓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지금의 풍요를 안겨준 경제 발전의 역사야말로 우리가 금융 시스템에 기술적으로 적응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그에 따르면, 금융이란 애당초 그저 돈을 굴리고 돌리고 남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금융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finance의 어원이 라틴어 finis. 그 뜻은 본래 목표, 종료, 완성이었다.그러니까 금융이란 ‘목표한 것을 현실로 이뤄 나가는 과학’이다. 다시 말해 사람과 기업과 사회기관들이 꿈과 기획을 실현하고 목표를 구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노력을 통칭한다. 무릇 모든 일에는 자금이 필요하다. 학자금부터 결혼, 자녀 양육, 노후 대비까지. 국가 사업도 복지에도 다 재원이 따른다.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고삐 풀린’ 금융에 분노한 나머지 그 공과 덕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묻는다. 전후 유럽의 부흥도 신흥국의 고속성장도 다양한 금융 지원에 힘입은 것이었다. 전후 한국의 재건에도 일본에서 받은 차관이 요긴하게 쓰이지 않았던가.금융은 현대 사회의 근본 조건이기도 하다. 한때 산업의 시녀였던 금융은 이제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됐다. 오늘날 금융자본주의를 비난하는 이들도 결국에는 자신과 국가의 생계를 다양한 금융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저자는 ‘다른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논자들과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우리 안의 낭만적인 생각의 습관도 금융의 올바른 이해를 막는다. 흔히 은행가나 기업가나 CEO를 철학자나 예술가, 시인의 대척점에 둔다.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시인 월트 휘트먼이 대표작 ‘풀잎’을 1855년에 출판할 때였다. 그는 직접 인쇄업자를 설득하고, 서적 판매업자를 찾아다녀야 했다.‘은둔의 작가’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만 해도 월든 호숫가에서 은거하며 쓴 책으로 유명하지만, 생애 대부분 가족의 연필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그가 외딴 곳에서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었던 것도 가족 사업에서 나오는 수입 덕분이었다.예술가, 철학자, 시인, 혁명가들은 늘상 변혁의 꿈을 꾸지만 그것을 구현해야 할 현실의 기반은 오늘날 금융이다.창의적인 금융 시스템은 아이디어 차원의 구상을 제품과 서비스로 바꿔주고, 새로운 의료기법이나 제조업의 생산 기술을 향상시킨다. 사회의  공공복지에도 도움을 준다.결국 오늘날 금융이야말로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현실적인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많은 희망은 금융자본주의를 이루는 제도들의 계속된 발전에 달려 있다”고 쓴다.어떤 대목들은 자본가를 위한 변론서처럼 보인다. 은행가부터 파생상품 트레이더, 로비스트에 이르기까지 현대 금융의 주역들의 긍정적인 역할을 이야기하고 두둔할 때 그렇다.더우기 저자는 ‘파워 엘리트’의 존재와 ‘일정 정도 사회적 불평등’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입장에 선다. 무엇이든 일을 해나가려면 리더십이 필요하고, 전문가의 능력이 필수라는 이유에서다. 금융자본주의 역시 궁극적으로는 그런 ‘능력자들’에게 부와 권력을 가져다줄 것이다.하지만 저자는 현실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런 ‘능력자들’의 도덕적 이완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누구보다 신경 쓴다. ‘적절한 규제’의 필요성을 곳곳에서 이야기한다.불평등의 허용 한계에 대해서도 단호하다.  “미래에도 우리는 경제적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본 소유의 분산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다만 단서를 단다. “그 일은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 결과가 이익을 가져다주고 생산성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그러니까 지금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실리적인 방법은 부정이나 파괴가 아니라 개선과 활용에 있다는 입장이다. 불평등의 악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국가의 세제를 불평등에 연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저자로 말하자면 사회심리학을 경제학에 더한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석학이다. 일찌기 버블 형성과 붕괴, 서브프라임 사태 같은 굵직한 경제 현상을 예측해서 명성을 얻었다. 금융 위기를 행동경제학으로 분석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든가,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붕괴 조짐을 예측한 ‘이상 과열(Irrational Exuberance)’로 주목 받았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하면서 정점을 찍었다.이 책은 어떤 점에서 20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저작 ‘직업으로서의 학문(Science as a Vocation)’을 연상시킨다. 평생 ‘근대성’의 문제에 천착했던 베버는 학문의 절정기에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두 강연으로 연구 성과를 요약했다. 여기서 근대라는 인간의 조건이 무엇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지를 밝힌다. 비관적 상황에서 현실적인 희망을 얘기한다.쉴러의 이 책도 ‘직업으로서의 금융(Finance as a Vocation)’으로 읽힐 만하다. 25년 예일대 금융 강의가 온축된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을 밝힌다. 그 사색과 논의의 깊이가 얕지 않다. 방점은 한계보다 가능성에 가있다.모두가 금융을 비난하는 시대에 주저없이 그쪽 편을 든다는 점에서 그는 용기 있는 지식인이다.  그렇다고 마냥 장밋빛 전망을 그리는 것도 아니다. 미추(美醜)가 혼재하는 현실을 냉정하게 응시하면서도, 그저 부정하고 포기하지만 말고 함께 개선하고 건설하자고 권면한다. 사려 깊다.“우리가 절대로 완벽하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진리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금융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직업 안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이 시스템을 발전시켜서 우리에게 더 진실한 의미로 다가오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금융 시스템이 우리가 심사숙고해서 정한 좀 더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게 만들 수 있다.”얼마 전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요즘 유행하는 ‘디베이트 배틀’을 연 적이 있다. ‘월가 vs. 실리콘밸리’가 주제였다. 요즘 글로벌 인재들이 금융 분야 대신 IT 분야로 몰려가고 있는 현실을 진단하는 내용이었다.여기서 월가 편 논객으로 쉴러가 나선 것을 봤다. 그는 “도덕적 목적의식이 있는 인재들이 월가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약간의 이벤트성 자리여서 그가 조금은 과장되게 그런 주장을 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그는 더 없이 진지하고 절실했음을 알겠다.그토록 중차대한 금융의 영역을 ‘선의가 있고 재능있는’ 사람들은 외면하고, 대신 ‘부도덕하고 무능한’ 혹은 ‘부도덕하면서 영리하기까지 한’ 사람들에게만 방치한다면 그 불행한 결과는 다시 고스란히 ‘99%’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그는 그렇게 반문하고 있다.올해 노벨상 위원회가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지당했다. 위원회는 그의 학문적 기여를 높이 샀을 것이다. 나는 그가 이런 목소리를 책으로 담아 낸 것만으로도 한 표를 주고 싶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로버트 쉴러 지음|노지양ㆍ조윤정 옮김|RHK|456쪽|1만7000원
  • 2014-08-13
     “이제 내 나이 마흔둘. 별안간 시간이 빛의 속도로 흐르고, 지금 유행하는 음악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하고 이곳저곳 몸이 쑤시고 결린다. 그리고 스포츠카가 생겼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책 초반에 이런 고백이 나온다.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바로 저자가 염두에 뒀던 독자다. 중년이라는 심상치 않은 회색지대에 이미 들어왔거나 그 언저리에 와있는. (내가 그랬다.)‘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는 후속작으로 ‘결리니까 중년’이라는 가제를 얘기한 적도 있지만, 사실 중년의 느낌이란 그리 반갑지도 유쾌하지도 않다. 중년의 중은 ‘가운데(中)’가 아니라 ‘무거움(重)’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오죽하면 1960년대 히피들은 ‘빠르게 살고 젊어서 죽는 것’을 모토로 삼았을까.40대 초반의 ‘중년 신입’인 저자는 이 모든 ‘중년의 우울한 비관론’에 반기를 든다. 손에 든 병기는 최신의 ‘동물학적 자연사적 접근법’이다. 저자가 케임브리지대 임상수의과 해부학자라는 사실을 먼저 얘기해 두는 게 좋겠다. 인간 생태의 이모저모를 동물학적 시각에서 뜯어보고 책을 써서 일찌기 주목을 받어온 논픽션 작가다.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동물학의 시선으로 논할 수 있을까, 자존심이 상한다면 일찌감치 책을 덮는 게 좋다. 하지만 결국 저자도 인간이 얼마나 특별한 ‘종’인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인내심을 갖고 따라가 볼 것을 권한다.우선 범위부터 분명히 하자. 저자가 말하는 중년이란 대략 40~60세를 말한다. 하지만 중년의 의미는 한갖 생물학적인 연령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가 볼 때 ‘중년’이란 인생의 아주 특별한 단락이자, 다른 어떤 생명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별난 존재양식이다. ‘특징적이고’ ‘갑작스럽게 찾아들고’ ‘고유한 특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중년의 3각 체제’라고 저자는 명명한다.이 모든 별스러움은 수백만년 인류가 거쳐온 진화의 특별한 산물이다. 오랜 세월 자연의 선택은 마흔 고개를 넘어가는 인간들을 독특한 생명체로 빚고 또 다듬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그러니까 현생 인류가 등장한 것은 200만년 전. 인간은 줄곧 수렵-채집 생활을 했다. 그러다 1만년 전쯤 농경생활이 시작됐다. 농사를 지으며 머물러 모여 살게 된 인류의 정착 생활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압도적인 시간, 전체의 99.5%는 수렵 채집 생활이었다. 따라서 중년의 진화론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이 선사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초기 인류가 먹을 것을 좇고 캐는 동안 중년인은 결코 ‘퇴물’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핵심 요소였다. 왜 그런가. 이것은 다시 인간의 유별난 두뇌 발달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뇌는 비슷한 덩치의 포유류가 갖고 있는 뇌의 5배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인간의 특징인 놀라운 지력이 여기에서 나온다.두뇌의 유연한 적응력과 막대한 용량, 집요한 학습욕 덕분에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포유류에서 지구상의 최강의 생명체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두뇌가 충분히 자라기까지는 오랫동안 타인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유아에서 청년으로 자라는 자녀의 성장기 동안 중년의 뒷바라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부양(扶養) 투자’의 필요성이 중년의 진화를 이끌어온 추동력이었다고 저자는 쓴다.수렵 채집 시대만 해도 인류는,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아주 특별한 기술, 가령 찾아내기, 파내기, 껍질 벗기기 같은 고급 기량을 통해서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진귀하고 다양한 음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기술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고도의 수완은 중년에 이르러서야 정점을 찍는다. 기운과 골질량과 민첩성에서는 청년기가 앞설지 몰라도,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 면에서는 중년이 월등하다.또 한가지. 많은 동물들의 경우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유전자에 들어 있지만 포유류, 특히 인간 같은 복잡한 동물은 비유전적인 방식으로 전수를 받는다. 이 정보와 지식의 세대간 전달 과정에서 중년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결국 인류의 최고 정보 제공자가 되기 위한 경험과 육체적 생명력을 적절히 결합한 계층이 바로 중년이었다.물론 중년에도 분명한 단점이 있다. 노화다. 모름지기 생명은 ‘발생’과 함께 시작해 ‘노화’와 더불어 끝이 난다. 중년은 그 두 힘이 충돌하는 특별한 단계다. ‘생명의 시계’와 ‘죽음의 시계’가 마주치는 시간대역이다.하지만 노화라는 것을 꼭 나쁘게만 봐야 할까, 저자는 반문한다. 노화가 그저 몸이 쇠퇴하는 과정이라면 우리로서도 그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심신에 고장이 날 때마다 수리를 하거나 갖가지 보양물로 쇠락의 속도를 늦추는 수밖에 없다.하지만 노화라는 것도 오랜 진화의 결과를 거쳐 살아남은 엄연한 생명 현상인 이상, 어떤 나름의 의미나 기능이 있는 건 아닐까. 이른바 ‘능동적’ ‘적극적’ 노화로 보는 발상이다.사실 중년의 여러 면은 청년기에 비해 뒤처진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같은 오감은 물론, 머리 회전도 이전보다 더 빠르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는 중년의 ‘머리’가 오히려 청년을 앞선다고 말한다. 감각이나 아이큐가 인지 능력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구술 능력과 공간 인식, 계산, 추리, 계획 수립 같은 인지 능력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능력에 있어서는 중년이 단연 우위다. 실험 결과를 보면 계산 능력은 대체로 40세 무렵에 정점을 찍고 구술 테스트는 60세쯤에서 최고조를 나타낸다. 대다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이 중년기까지도 계속 발달해간다고 믿는다. 많은 인지 능력들도 중년기에 와서야 만개한다.중년은 무엇보다 생각의 방식이 미숙한 청년기와는 다르다. 뇌단층 촬영사진을 보면 전전두엽의 활동이 청년보다 중년에 와서 더 활발하다. 뇌가 성숙해지면서 일처리 회로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나타낸다.  저자는 중년인들이 ‘경험’보다는 ‘관점’으로 젊은이들을 능가한다고 본다. 중년인은 나무만이 아니라 숲을 보는 일에 특히 능숙하다. 한발 물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사태를 살핀다.그리하여 중년기는 인지 능력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감정과 사고라는 인간의 위대한 두 영역이 드디어 적절한 균형을 이루게 되는 시기”라고 저자는 결론 내린다. 중년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생산적인 시기일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문화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시기다.그런 점에서 저자는 중년의 시기가 죽음을 향한 내리막길이 아니라, ‘사회적 정서적 육체적 성적 정신적으로 절정에 이른 평원’이라고 말한다. ‘중년 만만세’다.그밖에도, 중년이 되면 왜 뱃살이 늘까. 왜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까, 왜 점점 보수적이 될까, 여성의 폐경은 실제로 영향을 줄까, 평생 일부일처제는 진화의 최선일까 같은 숱한 중년기의 궁금증들을 책 곳곳에서 풀어놨다.요즘 유행하는 진화생물학에 대해 기본 이해나 관심이 있는 이라면 아주 흥미롭게 읽을 대목들이 많다. 반면 그런 이론이 낯설거나 거북한 독자는 책장이 잘 안 넘어갈 수도 있다.목차의 순서에 관계 없이 눈길 가는 소제목의 챕터부터 찾아 읽어 내려가는 것도 방법이겠다. 어쨌거나 책 제목마따나 중년을 다시 보게 된다. 그것도 이번엔 무한한 긍정의 눈으로.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데이비드 베인브리지 지음|이은주 옮김|청림출판|340쪽|1만6000원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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