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08-13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뜬 후 미국 IT업계의 풍경은 다소 쓸쓸해진 듯합니다. 그만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리더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애플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나마 그 빈 자리를 메우고 있는 사람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50) 아닌가 싶습니다.1990년대초 인터넷 서점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아마존은 오늘날 구글,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일류 인터넷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베조스는 잡스 이래 가장 주목 받는 혁신가이자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습니다.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으로 이해되던 것은 옛날 일입니다. 며칠 전만 해도 아마존이 무료 주문형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습니다. 또 그 며칠 앞에는 미국 국방부로부터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터 서비스가 보안 심사를 통과해 전군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게 됐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그 몇 주 전에는 베조스가 직접 TV에 출연해 드론(무인기)을 활용한 책 배송 서비스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말에는 그가 기울어가던 137년 전통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지요. 가히 아마존의 시대, 베조스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책 제목처럼 아마존은 ‘ 세상의 모든 것을 파는’ 회사가 될 기세입니다.그런 아마존이 국내 시장에 본격 상륙한다는 이야기가 최근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로 말하자면 아마존은 이미 국내에 진출해 있습니다. 기업들을 상대로 한 아마존 웹 서비스가 가동 중에 있고, 개인 차원에서는 아마존의 e북 단말기인 킨들을 사용하거나 아마존을 통해 물건을 사는 직구족들이 적지 않습니다.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국내에 번역돼 나온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는 시의적절한 ‘아마존 설명서’라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마존이나 베조스에 관해서 나온 책들 중에 단연 최신, 최상의 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저자는 현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논설위원으로 있는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동안 IT업계를 취재하면서 베조스와도 10여 차례 인터뷰하는 등 아마존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 동안 깊이 있게 관찰해온 적임자입니다. 이번 책을 쓰기 위해 아마존의 전현직 임직원과 300회 넘게 인터뷰를 하고 베조스와도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출간 후 전문가 서평들도 좋은 편입니다. (베조스의 아내인 작가 맥킨지가 아마존 독자 서평란에 별 한 개의 혹평을 남겨서 화제가 된 것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에 속합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사실 베조스는 그전까지 짙은 베일에 가려진 인물에 속했습니다. 자신의 회사 정보를 잘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스스로 언론 인터뷰를 극도로 꺼렸습니다. 이 책은 그런 ‘무지의 베일’을 한꺼풀 벗겨낸 작업이라고 하겠습니다.이전에 ‘원 클릭’(2012년 자음과모음 번역 출간)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긴 했지만 베조스의 극히 작은 한 단면만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에는 그만큼 이전에는 잘 몰랐던 아마존의 탄생 전후와 성장사, 베조스의 인물사에 관한 숨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단적으로 베조스의 생부 이야기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전모가 소개된 사실입니다.)1994년 뉴욕 월스트리트 고층 빌딩 40층에서 싹튼 구상이 20년이 지난 지금 9만 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초대형 글로벌 기업으로 구현되기까지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인터넷 혁명이 가져올 세상의 변화를 미리 꿰뚫어 보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운 후 초지일관 끈질기게 관철시켜 온 명석하고 집요한 한 사업가의 분투기라고도 하겠습니다.그 주인공인 베조스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수재로 일찍부터 촉망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첨단 수학 공식에 기반한 알고리즘과 컴퓨터를 이용해 투자하는 헤지펀드 회사에 다니던 20대 중반의 야심만만한 청년이었지요. 1994년 인터넷이 움트던 시기, 1년 사이 웹 활동이 2300배 가까이 폭증하는 것을 보고 평생의 사업을 꿈꿉니다. 그리고 과감히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창업에 나섭니다. 그 때 이미 ‘모든 것을 파는 가게’를 생각했습니다. ‘the everything store’는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합니다.그 첫 상품이 책이고, 발판이 온라인 서점이었습니다. 서른 살 나이에 고액 연봉의 안정된 회사를 그만두고 짐을 싸서 새 사업 기반을 찾아 무작정 서부로 출발합니다. 시애틀에 정착한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강 이름을 따서 회사이름을 짓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문을 받아 배송을 시작합니다. 사업 초기만 해도 주변에서는 의심의 눈길이 쏟아졌습니다. 어떤 이는 당시 대형서점인 반스앤드노블에 회사를 파는 게 좋을 거란 조언까지 합니다.운이 좋게도  창업 후 2년 동안은 불어닥친 ‘닷컴버블 광란’에 힘입어 고속성장을 구가합니다. 하지만 2000년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됩니다. 엔론 파산과 9·11 테러 여파까지 겹치면서 기업의 존립까지 흔들리게 됩니다.그래도 베조스는 “고객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회사는 무사할 것”이라며 우직하게 버팁니다. 동요하는 직원들에게 “인터넷에 무수한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이고 대부분은 망할 걸세. 겨우 살아남는 브랜드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네. 우리가 그중 하나가 될 거야”라고 독려합니다.창립 10주년인 2005년까지도 아마존은 불안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이베이의 시가 총액이 아마존의 세 배였고, 1년도 안 된 구글의 가치 평가액이 아마존의 네 배나 됐습니다. 사내 고급 기술진을 비롯한 인력들이 구글로 빠져나갔습니다.하지만 시련기를 거치면서 아마존은 더욱 단단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꾸준히 노력한 끝에 아마존 웹 서비스를 선보입니다. 클라우딩 서비스를 통해 기업 컴퓨팅의 새 물결을 일궈 냅니다.e북 서비스인 킨들이 탄생하는 과정도 극적입니다. 여기에는 음악업계의 판도를 바꾼 애플의 아이튠스가 자극제로 작용했습니다. 아마존의 음악 영역을 애플이 아이튠스로 잠식해들어가자 베조스는 핵심 사업인 책까지 공략 당할까봐 겁이 났던 거지요.절박했던 베조스는 담당 직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의 임무는 여태껏 쌓아올린 사업을 죽이는 것일세. 종이책을 파는 모든 사람들을 실직자로 만들 것처럼 디지털 사업을 진행하게.” 담당팀은 그때부터 사람을 뽑고 기술을 익히고 제품 개발에 착수합니다. 베조스의 요구 수준은 높았습니다. 기술진은 곧잘 “그건 불가능합니다”라고 했고, 베조스는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내가 결정한다”며 밀어붙였습니다.아마존이 e북 시장을 창출하고 석권하면서 출판사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갔는지 설명해 놓은 대목은 국내 출판업계가 유심히 봐야 할 대목입니다.베조스는 e북 단말기를 개발하는 다른 한편으로 컨텐츠 확충에 박차를 가합니다. 킨들 라이브러리에 넣을 e북 10만권을 확보하기 위해 출판사들에게 디지털화를 회유 압박하는 과정은 섬뜩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단번에 전자책 산업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출판업계에 혁명이 일어났고 사람들의 독서 풍경이 바뀌었습니다.아마존의 독특한 회사 문화도 소개됩니다. 창업 당시 대형 할인점에서 60불을 주고 산 문짝으로 만든 책상은 지금도 중역들의 회의 테이블로 씁니다. 힘든 시절을 떠올리고 검약하자는 취지에서입니다. 회사 구내식당도 유료입니다. 비용을 줄여 최저 형태로 고객에게 돌려줄 방법을 찾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아마존에서는 파워포인트가 금물입니다. 6쪽짜리 문서에 서술형 산문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회의 때는 다같이 그것을 돌려 보며 조용히 앉아 15분 정도 읽고 토론합니다.회의 과정은 논쟁적이라고 소개됩니다. 서로가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진실이 튀어나온다는 발상입니다. 베조스는 사람들이 가급적 의견 일치에 순응하려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사회적 응집력’이라고 부르며 배격합니다. 오히려 부하 직원들이 논쟁하면서 ‘숫자를 무기 삼아’ 열정적으로 싸우기를 원합니다.베조스의 면면도 자세히 묘사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집중력과 지독한 경쟁심, 그리고 책에 대한 탐닉이 남달랐다고 하지요. 그의 독서 이야기는 책 곳곳에서 등장합니다.타고난 승부사 기질은 회사 경영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는 마치 ‘병든 가젤을 사냥하는 치타처럼’ 사업을 추진합니다. “지금 우위를 선점하는 기업이 나중에도 그것을 유지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것을 이용해 더 나은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논리로 회사를 내몰았습니다.그는 앞선 성공자의 교훈을 철저히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월마트 창업자인 샘 월트을 깊이 공부하고 계승했습니다. 월트의 신조인 검소함과 ‘즉각 실천’ 철학을 엮어 아마존 기업 문화를 짠 것이 대표적이지요. 코스트코의 경영자로부터는 저가 원칙을 배웁니다.그는 투자 감각도 남다릅니다. 그의 투자 기업 목록에는 SNS인 트위터와 온라인 택시 서비스인 우버, 뉴 미디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 워싱턴포스트, 로봇회사 리싱키 로보틱스가 올라 있습니다. 베조스 가족 재단을 통해 장학 사업도 펼칩니다.그의 블루 오리진과 롱 나우 시계 프로젝트는 그의 장기적 안목을 보여주는 색다른 사업입니다. 전자는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프로젝트이고, 후자는 1만 년이라는 시간을 측정하도록 디자인된 거대 시계 제작 프로젝트입니다.그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도 많습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기간 중역 회의 시간입니다. 고객 상담 전화의 대기 시간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베조스가 담당 임원에게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자 그는 “1분 이하”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베조스는 곧바로 스피커폰으로 아마존의 800번 안내 번호로 전화를 합니다. 4~5분이 지나서야 안내원이 연결됩니다. 베조스의 입에서 ‘무능한 거짓말쟁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그 임원은 10개월 뒤 사직서를 쓰게 됩니다.그래도 저자는 “간헐적 트라우마와 정신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에는 그 회사에서 일했던 때가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생산적인 때였다고 여기는 이가 많다”라고 씁니다.미국 기업들의 치열한 약육강식 경쟁의 현장도 고스란히 묘사됩니다. 이베이와 월마트 CEO가 차례로 베조스에게 인수를 제안했다가 물러가는 장면, 베조스가 코스트코 경영진을 찾아가 한 수 배우는 장면들은 미국 업계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아마존이 도서 판매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소매상들을 하나둘 쓰러뜨리고 대형 출판사들까지 굴복하게 만드는지도 나옵니다.저자는 ‘역사상 가장 수수께끼 같은 매력이 있는 이 회사의 진짜 쇼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베조스를 두고는 ‘선교사처럼 사명에 불타있으면서 용병처럼 가차없이 전진하는 기업가’라고 부릅니다.책을 읽다 보면 어떤 장면에서는 그 냉혹함 때문에 전율을 느끼게도 됩니다. 기업인들이나 업계 종사자들은 보고 배우거나 반면교사로 삼을 대목들이 많을 것입니다. 업무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분들도 오늘날 IT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일별할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번역은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서둘러 출간한 탓인지 문장의 연결이 그리 매끄럽지 않고, 오탈자가 여러 군데 눈에 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담고 있는 풍부한 내용을 생각하면 끝까지 완독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잡스는 2011년 55세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조스는 이제 50세입니다. 잡스 만큼만 산다고 해도 5년이 더 남았습니다. 그는 직접 우주로 비행할 꿈을 꾸며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벌이고 더 지대한 영향을 우리에게 미칠 것이 틀림없습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브래드 스톤 지음|야나 마키에이라 옮김|21세기북스|439쪽|1만8000원
  • 2014-08-13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배부터 든든히 채워야 한다는 얘기지요. 예전 우리의 아침 인사가 “아침은 드셨습니까”였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 어르신들이 그러시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그땐 끼니를 떼우는 것이 큰일이었던 거지요.하지만 우리 사회도 어느새 많이 바뀐 듯합니다. 언젠가부터는 음식을 생존의 방편이라기보다는 삶의 즐거움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봅니다. 어떻게 ‘입에 풀칠이라도 하느냐’가 아니라 ‘기왕이면 무엇을 어떻게 잘 먹느냐’가 관심사가 된 거지요.몇 해 전 브라질로 한류 문화을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현지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는 왜 그리 맛있는 음식이 많이 등장하느냐는 겁니다. 선남선녀가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만나 뭔가 근사한 것을 먹는 장면, 아니면 집에서 식구들이 밥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태반이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가도 싶었습니다.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TV 채널만 돌려도 각종 요리나 맛집을 다룬 프로그램이 경쟁적으로 나옵니다. 아침부터 심야까지 시간대도 가리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식도락의 시대입니다.출판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음식이나 맛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음식을 인문학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책들도 곧잘 매대에 오릅니다. 북클럽이 작년말 추천 도서로 선정해 함께 읽은 주영하 교수의 ‘식탁 위의 한국사’도 그런 책 중 하나입니다. 지난달 저자를 북클럽 지식 콘서트의 연사로 초청해 직접 강연을 듣기도 했지요. 성황이었습니다.이번에 선정한 책도 음식 인문학에 관한 양서입니다. 제목에 벌써 ‘맛’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식탁 위의 한국사’처럼 먹고 마시는 음식에 얽힌 정치-경제-사회-문화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뚜렷한 자기만의 ‘진미’를 담고 있습니다.우선, 이 책은 어느 한 나라나 지역에 국한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동서양을 모두 아울렀습니다. 18세기라는 특정 시기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횡으로 조명한 거지요. 이 특별한 문명사의 전환기를 장식한 다양한 음식을 통해 인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이 속한 18세기학회는 주목할 만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 서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활약이 기대되는 학술 집단이라고 하겠습니다.다음으로, 이 책은 최근 이 분야에서 심심찮게 소개되는 외국 저자의 번역서가 아니라 국내 학자들의 역량을 모은 국내서라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일본인 학자 2명의 글을 제외한 21편이 모두 한국 학자들의 글입니다. 게다가 모두 인문학자들이어서 문장도 뛰어납니다. 책 읽기가 한결 수월하고 맛깔스럽습니다.또 이 책은 대학의 교수와 연구원들이 쓴 글을 묶어 낸 책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한 교양서에 부합합니다. 본래 인터넷에 연재했던 것을 묶어내는 과정에서 더해진 장점으로 보입니다.끝으로, 해당 분야 1급의 전문가들이 2차 자료가 아닌 1차 사료나 문헌을 토대로 정확한 사실이나 근거있는 이야기들을 기술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이런 류의 책들은 대개 기존의 책이나 2차 자료들을 짜깁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정확한 인용처가 소개됩니다. 잘못 알려진 통념까지 바로잡아 줍니다. 어디 가서도 자신있게 소개할 만한 내용들이라 하겠습니다.잠시 맛보기 삼아 내용을 짚어 볼까요.아, 그 전에 ‘왜 하필 18세기인가’라는 의문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18세기는 세계사에서도 유별납니다. 이 시기야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빈곤에서 풍요로 접어들던 변환기였습니다. 소수의 특수 계층만 누릴 수 있던 고급 음식이 대중화했고, 세계 각지의 음식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오가던 때가 바로 그때였습니다.이 때 인간의 오감 중에서도 저급하게 취급되던 미감이 문화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맛의 담론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금욕과 절제에서 벗어나 욕망을 추구하고 소비를 과시하기 시작한 거지요.저자들은 이 시기 각지에서 입맛을 사로잡았던 대표 음식들을 키워드 삼아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놓습니다.우리 음식의 장(醬)에 해당하는 서양의 버터를 다룬 첫 대목부터 흥미진진합니다. 유럽 중세는 금욕의 윤리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랬습니다. 사순절과 금요일이 되면 육식은 금물이었습니다. 덩달아 동물성 지방인 버터까지 금지됐지요. 하지만 식욕은 윤리의 족쇄 틈새를 비집고 들었습니다. 교황청은 버터를 사용할 수 있는 ‘예외’를 두었고, ‘면죄부’를 팔아 뒷돈을 챙겼습니다.반면, 그 무렵 조선 한양의 풍경은 한결 운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음력 3-4월 선비들은 한강에서 복어를 잡아 요리해 놓고 친구를 불러 함께 술 마시며 꽃구경을 벌이곤 했다지요. 청년 시절 마포에 살았던 이덕무는 봄만 되면 한강변에서 솥을 걸어놓고 복어국을 끓이는 풍경과 아이들이 복어 뱃가죽을 묶어 공을 차는 것을 감상했다고 적었습니다. 책에는 18세기 서울 명문가 사대부들이 벌이는 복국 찬반론도 소개됩니다.이번엔 그 즈음 영국의 상황을 볼까요. 당시 이 나라 서민들이 최고로 꼽던 일상의 ‘낙’은 진이었다는군요. 1페니, 그러니까 당시 작은 빵 한 덩어리 값이면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었고 2페니면 대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취한 사람들을 위해 2페니 정도만 내면 술에서 깰 땔까지 잠을 재워주는 방도 있었다지요. 여러 사람이 빽빽이 누워 자던 이런 방은 늘 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로 치면 찜질방이나 회사 근처 사우나 수면실을 연상시키는 장면에 웃음이 나옵니다.그 무렵 이탈리아 서민들의 주린 배를 달래주던 음식이 바로 파스타였습니다. 본래 반죽 덩어리라는 뜻에서 유래한 파스타가 지금 같은 형태를 갖게 된 게 18세기였습니다. 통일 국가 수립이 늦었던 이탈리아는 정치 단위로서보다는 음식 차원에서 먼저 나라의 정체성을 획득했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파스타는 오늘날 ‘이탈리아 대표 음식’으로 탄생했던 것이라고 책은 이야기합니다.근세 일본에서 조선의 쇠고기 환약이 만병통치약처럼 유통됐다는 사실도 진기합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쇠고기는 한동안 일본에서 ‘금단의 열매’였습니다. 1587년 종교적 이유로 금지된 후로, 메이지 유신 1년 전인 1867년에 다시 허용이 되기 전까지 쇠고기 식용은 공식적으로 금기였습니다. 근 300년 만에 족쇄가 풀린 것은 일본 정부의 근대화 정책과 더불어서였습니다. 앞선 서양 열강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쇠고기와 우유를 국민에게 권장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지요.하지만 그전에도 일본인들이 쇠고기맛을 몰랐던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기록합니다. 이른바 ‘쇠고기 환약’이라는 이름으로 육포 형태로 판매가 됐던 거지요. 그 중에서도 ‘조선의 비방으로 만든 쇠고기 환약’이 가장 인기였다고 합니다. 중근세 일본에서만 해도 약은 대륙에서 건너온 것이 용하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라는군요.이밖에도 동서양의 갖가지 먹고 마실 것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이어집니다.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챕터 ‘창난 젓깍두기의 테루아’도 짧지만 눈여겨 볼 만한 글입니다. 섬세한 미식가로 유명했던 근대 시인 백석의 시에 기대어 프랑스 어원의 ‘테루아’를 ‘음식과 장소의 추억’으로 풀어내는 대목은 우리 인문학적 사유의 한 수준을 보여줍니다.달달한 곶감을 빼 먹듯, 이 책을 한 장 두 장 읽고 나면, 말 그대로 18세기 음식 문화사의 진수성찬을 즐기고 난 뒤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책을 덮고는 춘삼월 미나리향 가득한 복국집으로 향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맛있는 책과 더불어 행복한 봄 맞으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안대회 외 지음|문학동네|317쪽|1만8800원
  • 2014-08-13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 파리의 설계자가 누군지 아시는지요? 조르주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 남작(1809~1891)입니다. 우리로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입니다. 19세기 나폴레옹 3세는 황제가 되자마자 당시의 세련된 영국의 런던을 생각하며 대대적인 파리 재건에 나섭니다. 그가 1853년 파리 리모델링의 사령탑으로 앉힌 사람이 오스만입니다. 오스만은 처음으로 도시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체계적인 정비에 나섰던 선구자였던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의 파리 설계는 후대의 찬사를 받으며 근대 도시의 모범이 됩니다.그러면 600년 고도 서울의 설계자는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조선의 개국 공신 정도전입니다.  새 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새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고 도시 건설을 그에게 맡겼습니다.정도전은 함께 새 나라를 열고 기틀을 다졌던 왕의 명을 받들어 1394년 9월 초 보름 정도 한양에 머물면서 신도시를 설계합니다. 궁성을 지을 터를 정하고, 종묘와 사직, 궁궐, 관청, 시장, 도로에 이르기까지 대담한 설계도를 작성합니다.오늘날 서울의 중심 대로인 태평로와 종로의 골격이 이때 결정됩니다. 경복궁과 근정전 같은 건축물의 아름다운 이름도 정도전이 손수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사대문과 사소문, 그 안의 동네 이름도 다 그의 손에서 나왔구요. 무엇보다 당시 비범한 구상의 자취는 지금도 서울을 안온하게 둘러싸고 있는 한양 도성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때마침 조선비즈는 한양 도성 걷기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그런 절세의 정도전도 하지만, 역사의 격렬한 소용돌이 속에서 비운의 희생자가 되고 맙니다. 왕자의 난을 주도한 이방원(태종)에 의해 하룻밤새 처단된 후 만고역적으로 낙인 찍혔다가 사후 500년이 지난 1865년(고종 2년) 대원군에 와서야 복권됩니다. 그만한 비운의 사나이도 우리 역사에 드물다고 할 것입니다.정도전의 절친한 벗이자 한때의 동지였으면서 조선 개국의 갈림길에서 (그 역시 이방원 세력에 의해) 운명을 달리한 정몽주의 묘는 그 후에도 조선 왕조의 관심 아래 잘 보존돼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개국공신 정도전은 묫자리마저 잊힌 지 오래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그런 비운의 사나이, 정도전이 요즘 다시 일대 붐입니다. 최근에는 KBS  대하사극으로  제작돼 시청률 10%를 웃돈다고 합니다. 관련 서적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가장 최근에는 소설가 김탁환이 두 권짜리 책 ‘혁명’을 냈습니다. 정도전을 법, 제도, 종교, 국방, 도읍지, 조세, 교육에 이르는 새 세상의 전망과 방안을 두루 갖춘 혁명가로 조명합니다. 고려말부터 정몽주가 살해당하던 날까지 18일 동안 정도전을 비롯한 주역들의 내면과 외면을 특유의 미학적 문체로 묘사합니다.그보다 앞서 1월 초순에는 역사연구자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가 출간됐습니다. 이 책은 TV 사극팀의 요청에 따라 진행한 강연을 토대로 쓴 것입니다.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의 ‘광인 정도전’도 있습니다. 박 교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분배구조가 악화돼 가고 있는 오늘 정도전이라면 어떤 처방을 내릴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민본주의 혁명가로서 정도전을 다룹니다. 또 1998년에 첫 권이 나온 작가 임종일의 5권짜리 소설 ‘정도전’도 최근 3권짜리 축약본으로 재출간됐습니다.사실 이번에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북클럽의 선정도서로 최종 선정하게 된 계기는 민음사에서 나온 김탁환의 소설이 었습니다. 김탁환은 남은 평생의 과업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소설로 펴내겠다고 하면서 첫 출발로 정도전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유심히 봤습니다. 최근 북클럽 선정 도서의 목록을 감안할 때 지금쯤 역사소설을 한 편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하던 차였습니다.그때 마침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 복간돼 나왔습니다. 1997년에 처음 출간돼 정도전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일으킨 ‘원조’에 해당하는 책이지요. 17년 만에 재탄생돼 반갑기도 했습니다.일단 열거한 정도전 관련서들 중에서는 김탁환의 소설과 이 책이 경합 선상에 올려놓을 만했습니다. 좀 더 꼼꼼히 비교해서 읽어 봤습니다.김탁환의 소설은 무엇보다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 살 만합니다. 작가 특유의 문체는 김훈의 역사 소설들을 연상케 합니다. 작가 자신도 기존의 책들이 ‘혁명가(로서 정도전)의 일상에 관한 세밀한 묘사와 영혼에 대한 깊은 탐색이 부족했음’에 불만을 표시합니다. 하여 책은 인물들의 내면을 극진하게 파고 듭니다.하지만 그러다 보니 정도전이라는 역사적 실재에 대한 충실도에서 미진한 감이 있었습니다. 김탁환의 인물 해석과 심리 묘사가 어느 경지에 오른 것만은 분명해 보이고 평가할 만합니다만, 정작 역사적 인물 정도전의 행적은 묘연해진 것입니다. 내면의 고뇌를 고감도의 문체로 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대의 사실 관계는 친절하게 소개되지 않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이런 점들은 무엇보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이라는 장르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문제일 것입니다.반면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기본적인 역사적 사료에 충실하게 당대를 복원해 냅니다. 문학성보다는 사실성을 앞세웠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건조하거나 딱딱하지도 않습니다. 초심자에게도 쉽게 권할 만한 수준에서 정보와 재미를 함께 갖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시사월간지 기자 출신의 저자가 구사하는 문체는 정치하고 간명해서 경쾌하게 읽힙니다. 전후좌우의  시대상이나 사회적 사실 관계까지 충실히 곁들어 놓고 있어, 책은 비단 정도전 개인에 대한 소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르는 과도기 우리 사회와 정치의 현실과 해외 동향과 외교 관계에 대한 이해도 돕습니다.책의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저자가 정도전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책은 일방적인 옹호나 편가름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오히려 역사의 격동 속에서 올바른 삶의 길을 추구했던 한 인간이 어떻게 운명을 맞고 개척하고 받아들였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역사에 대한 열린 태도를 보여줍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이 책에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했다는 최영,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지만 다소 우유부단했던 덕장 이성계, 당대 최고의 천재에 덕망까지 갖추었지만 비운에 간 정몽주, 이 모두를 능가하고 최후의 승자가 된 이방원 같은 이들도 충실하게 다뤄집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알던 인물들을 좀 더 속속들이 알게 되는 덤도 이 책에는 있습니다.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중원의 대국들과 벌여야 했던 ‘사대 외교’의 실상과 내막도 상세히 소개됩니다. 그런 암중에서 ‘새 나라’의 꿈을 모색하고 일정 정도는 구현했다가 미완의 자취만 남긴 혁명가 정도전이 양각화처럼 뚜렷하게 복원됩니다.그런 정도전을 두고 저자는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요약합니다.“지난 3년간 정도전은 나의 스승이자 선배이자 친구였다. 때로는 그가 품은 이상에 공감하며 가슴 뛰었고, 때로는 그의 눈물에 함께 가슴을 쳤으며, 때로는 그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한 권모술수에 실망하여 책장을 덮기도 했다.그러나 끝내 그를 위한 변명을 쓰기로 작정한 것은 몸을 사리지 않고 역사에 헌신한 그의 삶에서 진한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특권마저 불의가 정의를 대신해 가로챘던 불운의 시대에 태어나, 현실과의 싸움에서도 역사의 법정에서도 모두 패한 사람이 있다면, 후세에 누가 그의 진실을 알아줄 것인가. 이 책은 그렇게 잊힌 불우한 영웅, 정도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다.”과연 그러했던가. 저자의 안내를 따라 600년 전 그 격동의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떨까요.조유식 지음 |  휴머니스트 | 415쪽 | 1만9000원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 2014-08-13
     ​고대 희랍에 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천문학에 빠져 밤이면 머리 위의 별을 보고 걷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졌습니다. 이를 본 하녀가 깔깔 웃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조소했겠지요. ‘제 발 밑도 못 살피면서 먼 별을 보고 다니는 얼 빠진 사람…그러자 이 철학자는 본때를 보여주기로 합니다. 하늘의 별을 찬찬히 살펴본 후 마을에 있던 모든 착유기의 사용권을 얻어둡니다. 이듬해 올리브가 대풍이었습니다. 너도나도 기름을 짜서 팔려고 착유기를 찾았습니다. 이 철학자에게 떼돈이 굴러들어갔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봐, 철학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구.” 그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요. 일종의 선물투자라는 첨단 재테크를 일찌감치 선보인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탈레스 이야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라 불렀다는 철인이지요. 그는 젊은 시절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번 후에는 연구와 여행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여기 우리 앞에 또 한 명의 철학자가 있습니다. 실은 세계적인 투자의 큰손으로 더 유명합니다. 바로 며칠 전에도 그의 이름이 외신을 탔습니다. 지난해 6조원 가까운 수익을 올려 헤지펀드 왕좌에 복귀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의 퀀텀기부펀드는 지난해 무려 55억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수익률이 20%에 달했다지요.이쯤 하면 다들 아시겠지요. 바로 이 책 저자인 조지 소로스입니다. 그는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미리 내다보고 29%의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1930년 헝가리 태생입니다. 영국에서 대학을 나와 1956년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1973년 짐 로저스와 함께 ‘공격적인 투자’를 내세운 퀀텀펀드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지요. 1992년에는 100억달러에 이르는 파운드화 투매로 영국 정부를 굴복시키고, 환차익으로 2주 만에 10억달러 이상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환투기꾼’ ‘투자 사냥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합니다.하지만 그는 여느 부자와는 다릅니다. 통큰 기부와 글로벌 공익 활동에도 열성입니다. 지금까지 기부액이 80억달러에 이릅니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뒤를 잇는 성적입니다.어언 올해 84세입니다. 이 책은 2009년, 그러니까 그가 79세 때 모국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중부유럽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어낸 것입니다. 이 대학 역시 1991년 소련이 와해된 후 그가 세운 인문사회과학 국제대학원입니다.강연 형식이나 내용을 보면 꽤나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구축한 철학의 개요와 금융 세계에 대한 적용, 윤리 가치와 정치 권력에 대한 견해, 세계에 대한 전망과 처방 순으로 전개됩니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극적인 삶, 그보다 더 극적인 아버지의 인생 편력입니다. 부친은 나치 점령 하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고, 공산주의 소련 치하에서 갖은 부조리를 이겨낸 인물입니다. 1944년 소로스가 열 네살도 채 되지 않은 시절 독일 점령을 맞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던 때의 얘기, 러시아 혁명 와중에도 극적으로 살아남은 아버지의 인생유전은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 합니다.열일곱살 때 런던으로 탈출해 ‘(이 부조리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소년 소로스. 외톨이에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철학자가 되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각고의 노력으로 학업을 마친 후에도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뉴욕에서 트레이더로 자리잡게 됩니다.전후 런던정경대 시절 칼 포퍼를 은사로 맞은 것이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었습니다. 칼 포퍼라고 하면 국내에도 익숙한 이름입니다. 그의 주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386세대 필독서였지요. 당시 ‘좌경 사상’의 원류인 마르크스 헤겔 이론을 근저에서 비판한 책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권장하던 도서였습니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 이론을 여기서 굳이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소로스는 펀드 매니저가 된 후에도 철학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급기야 자신의 철학적 고민의 산물인 ‘재귀성(reflexivity)’ 개념을 금융 시장 분석에도 적용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먼 옛날 탈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철학자가 마음만 먹으면 돈까지 벌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지요.하지만 헤지펀드 매니저로 성공한 후, 쉰살 무렵 소로스는 ‘중년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합니다. ‘지극히 소모적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이 일이 과연 지속할 가치가 있는가. 깊이 고민했다지요. 그때 개인 자산이 4000만달러였다고 합니다. 숙고 끝에 재단을 세워 공익 사업에 나서기로 합니다. 1984년 헝가리에, 1986년 중국, 1987년 폴란드와 소련에 각각 재단을 설립합니다. 공산권 붕괴 후에는 재단들을 묶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실패한 철학자’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생각을 고쳐 먹습니다. 자신의 철학적 개념 틀 덕분에 금융위기를 예상할 수 있었고 위기가 닥쳤을 때도 대응할 수 있었다는 확신이 섰다는 거지요. 이제는 자신의 사고의 틀을 남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강연까지 나서게 됐다고 소개합니다.그가 말하는 사고의 틀이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입니다. 철학에서도 존재론(세상이 어떠한가) 이전에 논하는 것이 인식론(어떻게 알 수 있는가)이지요.소로스가 말하는 사상의 두 기둥은 오류성과 재귀성입니다. 오류성이란 쉽게 말해 인간의 인식은 일면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 안다고 자신하는 데서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지요. 재귀성은 일면적인 인식에서 비롯한 인간의 행동이 객관적인 상황에 다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재귀성의 쉬운 예로는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자기충족적 예언’을 들 수 있습니다. 가령 사재기가 일어날 걸로 예상하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하면 실제로 사재기가 닥치게 되는 식입니다. 금융 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은 왕왕 일어납니다.여기서 그의 사상을 상술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그는 잘 훈련된 철학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철학의 큰 흐름을 간단하게 몇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계몽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은 압권입니다. 근대 계몽주의가 우리 인식이 거울처럼 사물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믿는 오류를 범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 실체를 무시하는 더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 말입니다.자신의 오류성 이론을 현대 뇌과학과 연결시켜 풀어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지금도 지식의 전방에 촉수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사람의 인식이 그저 수동적인 인지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고 능동적인 ‘조작 기능’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통찰도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일찍 간파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사건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사건의 흐름은 다시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금융시장에  적용해 뚜렷한 투자 실적까지 내보였으니 경탄할 만한 일입니다.그런 철학적 기반이 도서관이나 연구실에서가 아니라 평생에 걸친 현실의 체험에서 구축된 것이라는 점에서 경외감마저 느껴집니다. 그는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종교에 헌신하듯이, 나는 현실의 객관적 측면에 헌신합니다. 완벽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을 믿지만, 나는 가혹한 현실을 믿게 되었습니다.”금융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모은 그가 시장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대목도 인상적입니다. 적어도 시장에 관한 한 자기 이익 추구의 논리에 따라 돈을 버는 데 대해 그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시장을 초도덕성의 장이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시장과 공공의 장은 엄격히 구분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시장에 참여할 때는 마땅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치에 참여할 때는 공익을 따라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완전경쟁에 가까운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결정은 사회 상황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이윤 동기는 기존 법 안에서는 절대적으로 합법적이지만, 입법 과정에서는 공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합니다.”그밖에도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과 나름의 해법을 읽다보면 마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너른 시야를 곁눈질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5년 전 그의 통찰이 지금 얼마나 들어맞는지 맞춰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물론 맞는 부분도 있고 빗나간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줄거리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금융 이야기가 어려우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읽어내려가시다가, 경제 이론이나 금융 시장을 다룬 두번째 장은 건너뛰어도 좋고, 나중에 읽어도 무방합니다. 책 맨 뒤에 더해진 2013년 5월 14일자 신디케이트 인터뷰를 통해서는 최근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가 헤지펀드 매니저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과 국제 재단을 차려 사회공익 활동에 나섰다는 것이 이율배반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그런 그가 헤지펀드 규제에 찬성하고 금융 규제가 필요하다고 발언한다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의 철학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의문이 많이 풀렸습니다.요컨데, 이 책은 억만장자의 투자 지침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선정한 것도 아닙니다. 이 작은 책자는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서나 사업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만의 인간과 사회, 세계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줍니다. 왜 일찍부터 자기만의 삶의 체험에 입각한 철학적 사고와 장기적 관점의 계발이 중요한지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책은 작고 짧지만 두고두고 곱씹어볼 단단하고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각자가 인생 팔순 즈음에는 이런 회고록 하나쯤 남길 수 있을까요.책을 읽고 난 후에는 소로스가 만든 열린사회연구소(Open Society Insititute) 사이트를 한번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곳에는 강연 장면을 담은 동영상(http://www.opensocietyfoundations.org/multimedia/george-soros-open-society-financial-crisis-and-way-ahead)도 있습니다. 다섯 강좌가 스크립트와 함께 올라있음은 물론, 매 강의마다 1시간여 분량으로 진행한 세계 명문 대학들과의 질의응답도 들어있습니다.소로스는 ‘환투기꾼’이라는 험담을 뒤로 하고 지금은 자신이 지향하는 ‘열린 사회’를 위한 프로젝트에 말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연 중에도 ‘새로운 경제사상연구소(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에 10년간 5000만달러를 후원하기로 약속했음을 밝힙니다.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재력이나 힘을 가진 분, 재능 있는 분들이 사회를 더 살기 좋게 만드는 일에 나섰으면 합니다. 조선비즈 북클럽도 근저에는 우리 사회에서 지식과 양식과 의식을(물론 여기에 즐거움까지) 겸비한 많은 분들의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번에 부록으로 소로스와 퀀텀펀드를 함께 운용했던 짐 로저스의 자서전 ‘세계경제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하라’ 북리뷰를 첨부합니다. 마침 당대 최고의 투자자 두 사람의 책이 올해 나란히 출간된 것도 이채롭습니다. 두 거물의 인생과 철학을 비교해 봐도 좋겠습니다. 올초에 출간된 이 책은 지난 1월 첫째주 북클럽 선정 후보 도서이기도 합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조지 소로스 지음 | 이건 옮김 | 북돋움 | 170쪽 | 1만3000원
  • 2014-08-13
    ​이번 책의 선정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 설 연휴를 앞두고 도서 선정 시기가 다가왔을 때의 일입니다. 최종 후보 선상에 오른 책 중 하나는 ‘덩샤오핑 평전(Deng Xiaoping and the Transformation of China)’이었습니다.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교수의 역작을 민음사에서 번역했습니다.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책의 분량과 가격 부담이었습니다. 총 1113쪽에 정가 5만원입니다. 사실 책값보다는 여느 책 3권에 해당하는 두께의 부담이 각 회원님들께 어떻게 다가갈지가 더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좀 더 검토해 본 뒤 추후에 추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책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걸출한 리더 덩샤오핑 개인은 물론 현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더없이 좋은 종합적인 텍스트라고 여겨집니다.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북리뷰는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다음 순위에 오른 도서가 ‘리추얼’이었습니다. 이 책도 몇 가지 면에서 참 독특합니다. 우선 분량 면에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모두 451쪽입니다. 책에서 다루는 인물도 161명이나 됩니다. 하나같이 쟁쟁한 사람들입니다. 문학, 미술, 음악, 학술 등 각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가들입니다.하지만 ‘덩샤오핑 평전’에 비하면 읽는 부담은 한결 덜합니다. 소개된 각 인물마다 할애된 분량이 2~4장에 불과합니다.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순서에 상관없이 어디서부터든 펴들고 읽어도 무방합니다. 목차를 훑어보고 관심이 가는 인물이나 대목부터 읽고 싶은 부분을 골라 읽어도 좋게 돼 있습니다.이런 별난 형식과 내용을 취하게 된 것은 이 책의 뚜렷한 집필 동기 때문입니다. 책 날개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오전에는 집중력을 발휘하고, 오후에는 뉴욕타임스를 온라인으로 읽고 충동적으로 일을 하며 커피를 끓여 마시는 습관을 갖고 있던 ‘아침형 인간’ 메이슨 커리(저자)는 2007년 일요일 오후, 일상과 창조의 관계에 대한 질문들을 떠올렸다. ‘모두 똑같은 24시간을 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일까?’ ‘창조적인 소수의 사람들은 특별한 습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우리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주도적이고, 더 훈련된 것일까?’.”저자는 그 뒤로 ‘지난 400년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로 손꼽히는 인물들의 일과’를 조사하는 데 착수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습관(Daily Routine)’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7년 뒤 누적된 성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제목에서 말하는 ‘리추얼(ritual)’이라면 ‘의례’라는 뜻이지요. 책 내용을 보면 ‘반복된 일상의 습관’을 가리킵니다. 습관의 중요성으로 말하자면, 뉴욕타임스 기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찰스 두히그가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낸 적도 있지요. ‘습관의 힘’ 말입니다. 지난해 10월 조선비즈 북클럽이 선정해 함께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지난번 선정 도서 ‘다윗과 골리앗’의 저자인 맬콤 글래드웰이 전작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1만 시간의 법칙’도 결국에는 남다른 습관의 중요성을 얘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은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1만 시간이라고 하면, 하루에 3시간꼴로 투입할 경우엔 10년, 5시간꼴이면 5년이 걸리는 시간입니다. 그만한 시간을 통해 반복 훈련을 했을 때에 비로소 ‘차이’를 만들어 내는 중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리추얼’에서는 단순히 산술적인 시간의 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확보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몇 가지를 볼까요.“마크 트웨인은 1874년 여름, ‘톰 소여의 모험’을 쓰기 시작했다. 일상은 단순했다. 푸짐한 아침 식사를 끝내면 서재에 가서, 저녁 식사가 있는 오후 5시까지 두문불출했다. 점심 식사는 걸렀다. 가족들은 서재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급한 볼일이 있으면 나팔을 불어 알렸다. 방해 받지 않고 오랜 시간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그날 쓴 글을 가족들에게 읽어주었다. 일요일이면 일을 하지 않고 가족과 휴식을 취했다.”“어니스트 헤밍웨이는 5시 30분이나 6시, 아침의 첫 햇살과 함께 어김없이 눈을 떴다.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타이프라이터와 나무 독서대가 포개져 놓인, 가슴 높이의 책꽂이를 마주 본 자세로 똑바로 서서 글을 썼다. 먼저 독서대에 비스듬히 놓인 얇고 부드러운 필기용 조이에 연필로 초고를 썼다.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면 독서대를 치우고 타이프라이터로 옮겨갔다. ‘자만하지 않으려고’ 그날 쓴 단어의 수를 기록해 두었다.”어떻게 보면 반복되는 ‘리추얼’을 고집하는 삶이란 참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 적 철학자 칸트의 유명한 일화를 듣고 혀를 찬 적이 있습니다. 그의 산책 시간에 맞춰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출 정도로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는 얘기 말입니다. 그때는 그 대철학자가 참 단조로운 삶을 살다 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나중에 그의 3대 이성 비판서(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를 읽고 나서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습니다. 그 가공할 지적 건축물에 압도되고 만 거지요. 그런 초인적인 업적을 위해 칸트는 자신의 삶을 그토록 엄격하게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갔던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이해가 됐습니다.이 책에서도 말합니다. 칸트도 본래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좋아했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으며, 싹싹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말입니다. 다만 그는 선천적인 골격 기형이어서 체질이 허약했다고 합니다. 결국 건강에 대한 걱정을 덜기 위해 “머리를 사용하는 대상과 삶의 방식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또 칸트 역시 마흔 살이 되기 전까지는 가끔 카드놀이에 빠져 자정이 돼서야 귀가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마흔 살을 넘긴 후에는 일상에서 자신만의 규칙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는 “인간의 성격(혹은 인격)은 마흔 살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믿었고, 성격의 중심에는 일단 한번 형성이 되고 나면 평생 따라야 하는 기본적인 삶의 규칙들이 있다고 믿었다”는 겁니다.문득 마거릿 대처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에서 소개된 이런 경구가 생각났습니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이 되며, 성격은 운명이 된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 비슷한 표현으로 “Thoughts lead on to purposes; purposes go forth inaction; actions form habits; habits decide character; and character fixes our destiny”라는 말이 있더군요. 미국 신학자 트라이언 에드워즈(1809~94)의 글입니다. 이 외에도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숱한 금언이 전해져 옵니다.“우리의 반복된 행동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탁월함이란 한번의 행동이 아니라 반복된 습관인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내가 보기에 인생의 나머지 후반은 전반 시절에 축적된 습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일 뿐이다.”(도스토예프스키)“(나쁜) 습관은 새로운 습관에 의해서만 극복이 가능하다”고 한 것은 ‘우신예찬’의 저자로 유명한 16세기 네델란드의 계몽주의 학자 에라스무스라지요. 그 만큼 습관이란 것은 그 누가 되었건 피할 도리는 없다고 합니다. 이미 몸에 밴 습관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의 문제만 남아있을 뿐이라는 거지요.일상의 습관이 어디 대단한 창조적 인물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이겠습니까. 우리 같은 범인들의 크고작은 성취 혹은 좌절도 실은 일상의 습관적 행동, 즉 저마다의 리추얼에서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이번 기회에, 책에 소개된 161명의 ‘리추얼’을 매뉴얼 삼아 나만의 멋진 일상의 습관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가다듬어 보는 것은 어떨지요.하나 더 부연하자면, 이 책에 소개된 대가들의 리추얼을 읽어내려 가다 보면 공통점이나 유사점이 눈에 띕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아침형이든 올빼미형이든, 자신에게 가장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시간대를 파악해 집중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독서와 산책을 중요한 리추얼로 삼은 이들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점입니다. 독서와 산책이 창조적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번 지지를 받는 대목입니다.  책읽기에 관한 한 북클럽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미 좋은 리추얼을 시작하셨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모쪼록 이번에도 즐겁고 유익한 독서가 되셨으면 합니다. 더 좋은 책을 함께 읽고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메이슨커리 지음 | 강주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451쪽 | 1만5000원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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