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08-13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청마 유치환 시인의 시 ‘행복’ 전문입니다. 여기 나오는 구절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그의 유고 서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청마가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에게 보낸 연서를 묶어낸 책입니다. 청마는 40대에 정운을 처음 만나 60세에 교통사고로 눈감을 때까지 5000여 통의 간절한 연서를 매일같이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도 통영에는 빨간 우체통과 나란히 그의 ‘행복’ 시비가 청마를 기억하는 관광 코스로 남아있습니다.이번 북클럽 선정 도서에는 피카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생전 약 5만여 점의 다양한 미술 작품을 남긴 왕성한 활동으로 유명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한결같이 꾸준히 그림을 그린 사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붓을 한동안 내려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 예술적 창의력이 폭발하곤 했다는 겁니다.살바도르 달리나 단테, 구스타프 클림트 같은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여인을 ‘뮤즈’라고도 하지요.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창의성과 로맨스의 상관관계를 두고 ‘피카소 효과’라고 부릅니다. 예술혼의 이면에는 ‘짝짓기를 위한 구애의 추억’이 깔려있다는 거지요. 청마도 애타는 연모의 정을 한 편의 아름다운 시에 담으면서 ‘행복하였네라’라고 썼습니다.누구나 바라고 꿈꾸는 행복,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행복에 관한 책들은 부지기수입니다. 지금도 인터넷서점에 들어가서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치면 목록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행복 전도사들’은 저마다 ‘묘수’를 가르치고 ‘비방’을 설파합니다.이번에 선정된 책도 행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느 책들과는 좀 다르게 접근합니다. 그래서 골랐습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말합니다.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가슴으로 호소하는 책들은 많지만, 냉정한 분석에 바탕을 둔 ‘차가운’ 책은 많지 않다.”물론, 자신의 책은 ‘차가운’ 책에 속한다는 얘기지요. 여기서 ‘냉정한 분석’이란, 사변적 추론이 아닌 과학적 실증을 말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요즘 한창 각광 받고 있는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입니다.다행히 북클럽은 지난번 추천도서로 현대 과학의 최신 흐름을 일별한 ‘다윈의 서재’를 함께 읽었습니다. 사전 준비 학습을 끝낸 셈입니다. 이번 책은 행복을 주제로 한 심화 독서로 봐도 좋겠습니다.저자는 행복에 대한 우리의 많은 직관들이 엉터리라는 ‘독설’로 말문을 엽니다. 행복해지려면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이런저런 값싼 처방을 내리기 전에 우선 진단부터 제대로 하자고 말합니다.저자에 따르면, 행복이란 애당초 생각이나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이자 감각에 속한 일입니다. 행복감 역시 다른 감각과 마찬가지로 뇌에서 인식되는 합성 경험일 뿐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이 독특한 경험이 언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출발점인 뇌과학으로 이끕니다. 저자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우리가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도 결국에는 행복하다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란 뇌가 인식하는 것이다. 뇌도 신체의 일부다. 따라서 뇌의 다양한 기제 역시 다른 신체들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뇌가 느끼는 쾌감인 행복감도 결국 생존과 번식에 기여하도록 설계된 유인책이자 신호 장치일 뿐이다.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진화 과정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도구’라고 말합니다. 또다른 국내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은 ‘오래된 연장통’(사이언스북스)이라고도 했지요.이들에 따르면, 쾌와 불쾌의 감정은 위험에서 보호하고 기회를 포착하도록 응원하는 ‘생존 신호등’입니다. 따라서 행복한 사람이란 결국 쾌감 신호가 자주 울리는 뇌를 가진 사람이 됩니다.이런 사실을 토대로 저자는 행복의 비결을 제시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남들이 알아주는 거대한 무언가를 좇기보다, 소소한 쾌감을 낳는 긍정적 경험을 자주 하라.”행복한 삶(happy life)과 가치있는 삶(good life)을 대비시킨 대목은 이 책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꾸짖습니다. 남들 보기에 고상한 명분에 눌려 진정한 행복을 양보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서, 이런 ‘기름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난 뒤 ‘행복의 살코기’로 남는 것은 주관적인 즐거움과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쾌락주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사실 쾌락주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정신적 계보는 고대 희랍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감각과 경험을 중시했던 일군의 사상가들은 쾌락은 선, 고통은 악이라고 봤지요. 이들은 쾌락을 삶의 궁극적 목적이자, 도덕적 선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키레네 학파는 지금 당장의 육체적 감각적 쾌락을 추구했습니다.반면 에피쿠로스 학파는 일시적 감각적 쾌락 대신 영원한 정신적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평정을 함께 누리는 이상적 쾌락주의를 주창했지요.이런 맥락에서 ‘행복의 기원’은 21세기판 쾌락주의를 위한 변론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의 기초 위에서 감정과 감각의 만족을 추구하는 인생관을 다시 한번 복권시키려 합니다. 그동안 목적론적 인생관이 무겁게 지배했던 행복 담론을 단번에 뒤집어 보도록 합니다.물론, 읽어 가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 의문이 고개를 들기도 합니다. 모든 생명 현상을 두고, 그저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끌어다 맞추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마치 기독교 신학이 모든 것을 신의 섭리로 설명하는 것처럼, 진화론 역시 지금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생존이라는 목적으로 해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가령 저자는 행복이 유전 인자에 크게 의존한다고 하면서 특히 외향성이 유리하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생존에 도움이 되는 외향성만 살아 남았어야 할 텐데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내향성이 건재한 이유는 뭘까요. 묻고 싶어집니다.저자가 “가장 본질적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고 말할 때는 인간이 누리는 다양한 열망과 만족의 층위를 너무 단순하게 좁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행복(쾌감)이라는 장치가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번성에 도움되는 행동을 진작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부터는 인간의 감성이라는 것이 생존이나 번성의 논리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길을 따라 진화해가는 것은 아닌지 반문도 해 봄직합니다. 목적론적 인생관이나 행복관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게 볼 것만은 아닙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대중 교양서로서 장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알기 쉽게 씌었다는 점입니다. 마치 강연을 받아쓴 것처럼 쉬운 구어체로 표현되었습니다. 적절한 비유와 유머가 읽는 즐거움을 더합니다. 나아가 행복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읽을거리에 값합니다.참고로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마음을 들여다 본 또다른 책으로는 ‘바른 마음’(웅진지식하우스)을 권해 드립니다. ‘행복의 기원’보다 한층 심도가 깊은 책입니다. 얼마 전 회원 여러분께 북리뷰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 책입니다. 꽤 두껍긴 하지만 완독의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모쪼록 이런 독서가 우리 마음의 수수께끼를 풀고, 타인의 마음이라는 블랙박스를 좀 더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끝으로, 청마의 사랑 이야기를 마저 들려 드리고 글을 맺겠습니다.해방 후 통영여중 국어 교사로 부임한 청마는 여기서 가사 과목을 가르치던 시조시인 이영도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청마는 서른 여덟 기혼이었고, 여덟 살 아래인 이영도는 이미 남편을 결핵으로 떠나보낸 처지였습니다. 둘의 사랑은 애타는 편지로만 이어진 플라토닉 러브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신은 1946년 첫 만남 후 1967년 청마가 교통사고로 숨지기 전까지 계속됐습니다. 이영도는 청마가 숨을 거둔 지 한 달 만에 그로부터 받은 연서를 모아 서간집을 냈습니다. 2만5000부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합니다. 이를 두고 문인들 사이에 청마를 팔아먹는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영도는 “내가 먼저 서간집을 내지 않으면 다른 여자들이 낼지 모르기 때문에 서둘러 낸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청마의 가장 소중한 사랑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확인 받고 싶었다는 거지요.그녀의 우려 섞인 예감은 현실이 됩니다. 얼마 후인 1970년 또다른 여인이 청마와 주고받은 연서를 묶은 서간집 ‘청마와 사색의 그림자들’을 냅니다. 둘이 연서를 주고받았던 5년의 기간은 청마가 이영도와 ‘플라토닉 러브’를 이어간 기간과도 겹칩니다.결국, 청마의 예술혼도 ‘피카소 효과’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됐건 그로서는 동시에 여러 겹의 사랑을 이어갔던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만큼 그는 더 행복했던 걸까요. 물음은 남습니다.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서은국 지음ㅣ21세기북스ㅣ206쪽ㅣ1만5000원​​
  • 2014-08-13
    작년 겨울 오로라 여행을 갔다온 적이 있습니다. 북위 62도 캐나다 옐로나이프라는 곳입니다. 휴가로 갔다가 그 장엄한 광경에 압도돼 돌아와서는 시키지도 않은  르포 기사까지 썼습니다. 혼자서만 담아두고 있기에는 가슴이 너무 벅찼습니다.저도 처음엔,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 극한 오지까지 찾아가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 밤하늘과 그 모든 것을 뒤덮는 빛의 향연을 대면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란  존재는 얼마나 미미한가, 하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는 얼마나 소중한 일원들인가. 돌아와서도, 최소한 몇 주 동안은 일상이 달리 보였습니다.한 나라만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위로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지요. 그래서 앎에는 원근법이 필요하다고 일찍이 니체는 말했던가요. 인간을, 사회를 알겠다고 해서 인간만, 사회만 들여다 봤을 때는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한 쪽으로만 치우쳐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도 사회도 결국에는 더 넓은 자연과 세계의 일부로 봤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근대 과학혁명 이후의 깨달음이지요.이번 선정 도서는, 분야로 꼽자면 과학책입니다. 과학 도서라고 하면 얼마간의 거리감을 느끼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찌기 정재승 카이스트대 교수의 ‘과학 콘서트’ 같은 대중 교양서들이 분위기를 많이 바꿔놓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출판물 중에서 과학물은 소수 애호가들의 분야로 여겨지는 게 사실입니다.특히 우리의 지식이나 독서 문화는 인문학 전통이 강합니다. 오랜 유교 전통의 유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대 교육의 세례를 받은 후에도 문사철(文史哲) 전통, 특히 독일과 프랑스 같은 유럽 대륙의 사변적인 학풍이 생각을 지배한 데다, 80년대 이후 사회 변혁의 중심에 선 것도 인문사회학 계열의 식자층이었습니다.하지만 과학은 이제 분과 학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인문학, 심지어 예술조차 과학을 빼놓고 나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오늘날 과학에서 점점 더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국내에서 진화론은 아직도 수많은 오해와 편견의 장벽에 갇혀 있습니다. 기독교권에서는 무신론의 발원지로 보고 경계합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나란히 세우고, 둘 사이의 선택을 개인의 믿음이나 취향의 문제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계 지식계의 상황으로 보자면 오늘날 진화론은 다수, 주류 이론에 해당합니다. 정말 그러한지, 어찌해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이 책에도 소개되는 유명한 글로벌 출판 기획자 존 브록만은 “예술과 문학, 역사, 정치학 등 인문학의 전 분야가 이제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예술, 철학, 문학도 마음의 산물이고, 인간의 마음은 뇌의 산물이며, 인간의 뇌도 결국에는 유전체에 의해 조직되고 진화해온 까닭이라는 설명을 덧붙입니다.인간학만 해도 과거엔 단연코 철학의 분과 학문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영장류학자들이나 진화심리학자, 뇌과학자들이 인간 본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을 비롯한 모든 지적 노력이 오로지 과학으로 ‘환원’돼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인문학적 사유의 고유함이나 상상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취하는 입장은 ‘과학에 입각한 새로운 인문주의’입니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독자 여러분께서 읽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이 책의 부제가 ‘진화하는 지식의 최전선에 서다’입니다. 그동안 저자가 발표한 서평들을 추려 재가공했습니다. 서평이라고는 하지만 전문적인 비평이라기보다 명저를 골라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것에 가깝습니다. 소개된 책이나 저자들이 하나 같이 쟁쟁합니다. 학술적 깊이는 물론 글쓰기의 수준에서 대중적으로도 인정받은 책이며 학자들입니다.읽기도 좋습니다. 크게 3부로 나누어 그 아래 여러 단락으로 나누었습니다. 각각 독립돼 있기도 하고 연결성도 있어, 하나씩 관심 가는 것부터 차례로 읽어도 좋고, 한번에 읽어내려가도 좋습니다.혹여, 이 분야에 이미 식견이 두터운 분들로서는 좀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만 듯한 인상을 주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원저를 찾아 보시면 되겠습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책들을 친절하게 소개해 놓았습니다.그래도 이 책 한 권이면 현대 학문의 전위에서 활약하는 대가들이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느 지점에서 무슨 문제로 고민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만큼 우리의 인식의 폭과 깊이가 확장될 것임은 물론입니다.이 책은 내용 외에도 형식 면에서도 독특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방송 다큐멘터리 혹은 대담 형식을 취했습니다. 점잖은 학자 입장에서 보면 좀 경망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담긴 내용은 가볍지 않습니다. 농담처럼 넣은 한 마디도 모두가 출처와 근거가 있는 정보들입니다. 저자 말 마따나 ‘지적 여행을 위한 가이드북’이라 할 만합니다.저자는 이 시대의 새로운 교양은 과학이며, “우리의 교양이 좁은 의미의 인문학에서 벗어나 과학적 탐구까지를 포괄한 ‘인간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동의합니다. 또 집필의 목표가 “독자들이 그저 재밌게 책을 읽다가 어느새 지식의 깊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고 씁니다. 이 점에서도 꽤 성공한 듯 보입니다.본문 중에,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된 칼 세이건의 말이 나옵니다. 그의 명저 ‘코스모스’ 맨 앞,아내에게 바친 헌사지요.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 마음의 눈도 그런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을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장대익 지음ㅣ바다출판사ㅣ408쪽ㅣ1만4800원
  • 2014-08-13
    이번 선정 도서는 30인과의 인터뷰를 묶은 책입니다. 하나같이 남다른 30인입니다. 그래서 ‘더 인터뷰’라고 이름 붙인 모양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들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입니다.책 표지에는 ‘세계를 뒤흔든 리더 30인’이라고 썼습니다만, 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시대에 뛰어난 통찰력을 보인 저자, 지식인, 혁신가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인물들의 육성을 한데 묶어 놓으니, 국내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단행본이 되었습니다.본래 조선일보의 주말 섹션인 위클리비즈을 통해 소개된 것들입니다. 이미 지면을 통해 나간 ‘구문’들이지만, 따로 모아두고 다시 펼쳐볼 만한 대목들이 적지 않습니다.가령 이런 대목입니다.“현대인이 뉴스에 얽매여 사는 것은 ‘정보의 오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략) 저는 3년 넘게 뉴스를 보지 않았어요. 뉴스 과잉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에 주입되는 정보의 양이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실제 결정의 질이 떨어진다는 연구도 발표됐지요.”이 책 두 번째 인터뷰에 등장하는 ‘스마트한 생각들’의 저자 롤프 도벨리의 말입니다.그의 말에 새삼 다시 주목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며칠 뒤였습니다. 사건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그 뒤에 전개된 여러 난맥상이 깊은 실망감에 피로감까지 더할 무렵이었습니다.그때 머리를 누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도벨리가 말한 ‘정보 과잉’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오보는 말할 것도 없고, 24시간 사방에서 쏟아지는 성급한 속보들이 언제부턴가 임계점을 넘어버린 듯했습니다.도벨리가 지금 한국의 상황을 예견하고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통찰력 있는 분석은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합니다.이 책에는 이처럼 번득이는 통찰들이 곳곳에 내장돼 있습니다. 읽는 사람마다, 시기마다 그 지점은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어떤 경지에 오르면 비슷한 깨달음에 이르는 탓인지, 몇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컴퓨터나 디지털보다 자연과 실물, 아날로그를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도 그 중 하나입니다.‘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대놓고 “컴퓨터는 엄청난 시간 낭비”라거나 “SNS나 스마트폰은 인간 관계의 발전에 좋지 않다”는 말까지 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평생 연구 성과를 토대로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댑니다. “뉴기니에서는 대화를 할 때 상대편의 완벽한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마주 앉은 사람보다 휴대폰에 더 신경쓰는 우리 일상을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일본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앳된 얼굴에도 불구하고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부터가 그렇습니다.“정리라는 작업을 통해 인생에서 정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하고 그만둬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게 된다”는 말을 읽다 보면 머리 속 한 구석이 정리되는 것도 같습니다.“현대인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것들에 둘러싸여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요. 자신을 두근거리게 하는 물건을 골라서 남김으로써,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진짜 인생은 정리를 한 뒤에 시작됩니다. 버림으로써 현재 삶을 더 즐길 수 있게 되는 거지요.”책에는 금방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도 있습니다. ‘당신의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의 저자 마이클 노튼은 ‘행복해지는 소비 습관 다섯 가지’를 꼽으면서 이렇게 조언합니다. “1주일에 한 번 ‘라테 마시는 날’을 정해보라. 평범해 보이는 라테 마시기가 특별한 경험으로 바뀐다. 매일 마실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묵직한 인생론도 나옵니다. 하워드 스티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웬만한 책 한 권 정도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그는 우리에게 “정해진 트랙을 도는 경주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경주마는 단순히 골인 지점만 보고 달린다. 반면 야생마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 피할 곳이 어딘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때로는 천천히 달리기도 한다.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만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춘다.”세계 최고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도미니크 바튼 회장의 말도 듣는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회사보다 높은 기준을 세워라.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 때 내 기준은 회사보다 훨씬 높다고 다짐하라.” “당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엄청 큰 야망을 가져라. 당신의 잠재력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당신이 하려는 일을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맞추려 하지 마라.”어렵게 성사된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에서도 보석같은 교훈들이 반짝입니다.기자가 묻습니다. “‘이웃집 토토로’나 ‘모노노케 히메’는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수십 번 반복해서 봤다는 사람도 있다.”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제 작품을 50번 보는 대신 나머지 49번은 다른 경험을 해야지요. 반복해서 보는 49번의 시간에 무언가 잃고 있는 겁니다. 특히 어린이라면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할 기회를 놓치는 겁니다.”그는 “어린이가 여섯 살이 되기 전에는 TV도 보여주면 안 된다”는 말도 합니다. 현실과 TV 속의 것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라면서 말입니다.공교롭게도 트랜스포머 로봇의 원작자 가와모리 쇼지도 같은 말을 합니다. 이유는 좀 더 구체적입니다. “(일찍부터 TV를 보게 되면) 눈의 초점 거리가 짧아지고 실제 거리가 얼마인지 잘 모르게 된다. 공간감이 없으면, 전체적으로 여러 가지 요소의 관계에서 어떤 것이 진짜인지 잘 모르게 된다. 균형감이 중요하다.”요즘 인기 절정인 마블 영화 스튜디오의 케빈 파이기 CEO도 등장합니다. 현재 국내에 상영 중인 ‘캡틴 아메리카’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인기몰이의 비결을 들려줍니다. 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하는지, 왜 마블 영화의 영웅 캐릭터들은 ‘찌질한’ 면을 함께 갖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싹 풀립니다.유럽 최대 컨설팅 회사 롤랜드버거의 버커드 셴커 CEO는 요즘 새롭게 주목받는 ‘독일 모델’의 성공 비결을 들려 줍니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상인 문화지만, 독일 자본주의의 핵심은 장인 문화라는 정의에서부터 시작되는 그의 설명은 더없이 명쾌합니다.대화 중간중간의 촌철살인 발언들은 밑줄을 긋게 됩니다. 애니타 엘버스 하버드 경영대학원 종신교수는 “마케팅은 고객을 훈련하는 것”이라고 하고, 실리콘밸리의 살아있는 전설 벤처 캐피털리스트 마이클 모리츠 세쿼이아 캐피털 CEO는 “창업자들은 고장 난 세상의 문제를 고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대목이 대표적입니다.어수선한 시기, 마음을 가다듬기로는 독서만 한 것이 없습니다. 여기 자기 분야에서 숱한 고민과 노력 끝에 뚜렷한 성취를 이룬 30인과의 대화를 권합니다. 목차를 보고 관심 가는 대로, 눈길 닿는 대로 책장을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남은 일은 어느 한 구절이 나직히 말 걸어 올 때 사색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조선일보 위클리비즈팀 지음|21세기북스|348쪽|2만원
  • 2014-08-13
    조너선 하이트 지음|왕수민 옮김|웅진지식하우스|692쪽|2만9000원<2012년 3월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큰 화제가 됐던 책이 이번 주에 국내에 번역돼 나왔습니다. 미국 출간 당시 4월 21일자 조선일보 Book 1면에 해외 신간 서평으로 실렸던 북리뷰를 다시 소개합니다. 이 책이 금주의 북클럽 추천도서로 선정된 것은 아닙니다. 분량과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북리뷰를 읽어보시고 구입 여부를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주제에 관한 보다 심층적인 독서를 원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의로운 마음: 왜 착한 사람들이 정치와 종교로 갈라지나(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Jonathan Haidt|Pantheon Books|419쪽|28.95달러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피하라.”식탁 예절 수칙 1호다. 왜 이토록 중요한 문제가 정작 서로간에 갈등을 유발하는 불쏘시개로 의심받게 됐을까. 왜 정치·도덕·종교의 양축인 보수(Conservative)와 진보(Liberal)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걸까. 어느 사회나 골머리를 앓는 좌우파의 대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저자는 버지니아대 심리학 교수로 미 언론과 출판계에서 각광 받는 지식인이다. 뇌과학과 유전학, 사회심리학, 진화모델의 첨단 연구와 방대한 실험 결과를 끌어와 이번에 야심작을 써냈다. 지난달 영미권에서 출간된 후 좌우 언론·지식인 모두로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류의 자기 이해에 기념비적인 공헌’(뉴욕타임스북리뷰)이라거나, ‘정치·종교·인간 본성에 관한 우리의 사고와 대화 방식을 바꿀 만한 책’(미 공영라디오 NPR 북스)이라는 찬사가 줄잇고 있다.◇도덕성은 사회 접착제저자는 갈등의 뿌리부터 헤쳐 보인다. 왜 사람들은 매사에 옳고 그름을 따지나. 왜 자신(자기 집단)은 옳고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상대는 비이성적이고 구제불능이라 여길까. 의로움에 대한 자기확신은 진화 과정에서 길러진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그에 따르면, 도덕적 담론은 자기(집단) 행동을 상대에게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해 발달시켜온 일종의 사회적 설득술이다. 그 덕에 인류는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쌓을 수 있었다. 의협심은 본능적 혈연주의를 극복하고 더 큰 협력집단(공동체, 국가 등)을 만드는 접착제였다. 하지만 의로운 마음은 집단 내 꺼지지 않는 분쟁의 불씨이기도 하다. ◇보수-진보의 갈림길애당초 보수와 진보의 성향은 왜 생길까. 저자는 도덕(정치)적 취향도 식성이나 입맛 같은 것이라 말한다. 미각처럼 유전 요인과 성장 과정의 교육·체험에 의해 발달된다. 보수-진보를 가르는 유전 특성은 크게 두 가지다. 위협에 대한 민감성과 새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다.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이 호주인 1만3000명의 DNA를 분석했더니 보수 성향 사람은 세균감염 위협이나 갑작스러운 소음 같은 위험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면 진보는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고 모험성이 높았다. 이런 기본 성향은 나이가 들면서도 이어진다.유전 요인에 더해 성장 경로가 인생관을 구축한다. 사람의 정신은 스토리 프로세서다. 저마다 인생 스토리를 만든다. 진실 여부는 상관없다. 과거 사실을 단순화하고 선별 재구성한다. 미래 소망과도 연결시킨다. 그 속에 도덕적 기준이 녹아든다. 사회도 마찬가지. 공유하는 큰 이야기가 있다. 거기에는 시작(옛날 옛적에)과 중간(위협과 도전), 끝(해결)이 있다. 그 속에 일련의 덕과 부덕, 선과 악을 불어넣는다.보수와 진보 그룹은 이 이야기부터 서로 다르다. 진보의 스토리 구도는 영웅적인 해방 이야기다. 그 속에서 권위와 권력, 위계, 전통은 희생자들의 숭고한 열망을 해방시키기 위해 부서져야만 하는 족쇄다. 반면 보수의 스토리는 방어적 영웅주의다. 그림으로 치면 진보는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서 죄수들을 해방시키는 군중의 모습, 보수는 흰개미떼 공격으로부터 집을 지키고 고치는 가족에 가깝다. ◇결론부터, 이유는 다음에서로 간의 대화는 왜 어려운가. 도덕적 판단에는 직관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사후 정당화에 개입할 뿐이다. 도덕적 질문을 던진 후 사람들의 뇌를 보면, 결론은 순식간이고 그다음에 이유를 생각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니 ‘왜 저쪽은 이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걸까’ 탄식해 봐야 소용없다. 상대의 생각을 바꾸려면 이성의 주인인 도덕적 직관에 호소해야 한다.집단도 마찬가지다. 어떤 쟁점에 직면하면 저마다 ‘우리는 얼마나 옳은지, 저들은 얼마나 틀려먹었는지’ 사후 논리를 세우고 끼리끼리 공유하느라 바쁘다. 상대 쪽도 뭔가 중요한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는 선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은 눈에 안 들어온다. ‘의로운 마음’은 한데 묶기도(bind) 하지만 눈멀게도(blind) 한다. ◇진보는 ‘도덕적 편식자’저자는 인간의 도덕 감성을 6가지 미감을 가진 혀에 비유한다. 지구상의 모든 도덕률은 6가지 요소로 분류된다. 배려/위해(危害), 공정/속임수, 자유/억압, 충성/배반, 권위/전복, 신성함/타락이다. 보수는 6가지를 폭넓게 아우른다. 그에 비해 진보는 배려와 공정에 특히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입맛으로 치면 편식자다.진보는 상대편의 도덕적 입장에 대한 이해력에서도 보수보다 떨어진다. 저자는 직접 평가 웹사이트(Yourmorals. org)를 만들어 실험했다. 도덕적 질문을 주고 본인의 정치성향·대답과 함께 반대 성향 사람의 답도 예상하게 했다. 온건파나 보수파의 예측은 비교적 정확한 반면 진보적일수록 정확도가 낮았다.오답률이 가장 높은 경우는 진보파가 배려와 공정 문항에 대한 보수파의 답을 예상했을 때였다. ‘정의는 한 사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라는 명제를 보고 진보파는 ‘보수파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보수파의 동의율은 높았다.저자는 보수가 진보에 비해 도덕적 취향의 폭도 넓고 포용력도 낫다고 말한다. 그 결과 도덕적 메시지를 통한 유권자 끌기에서도 보수가 진보보다 유리하다는 것. 이쯤 되면 저자의 당파성에 의심이 갈 만도 하다.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진보주의자이며 자기 진영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를 건넬 뿐이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도 “나 같은 진보주의자에게 우파에 대한 환상을 깨도록 도와주는 매력적인 신간”이라고 했다.저자는 마태복음 7장의 구절을 인용한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우리의 ‘의로운 마음’이 자기만 옳다고 믿는 위선자를 낳을 수 있다고 자각할 때만 대화는 가능할 거란 결론이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미국 대신 한국이란 단어를 바꿔 넣고 읽어도 별로 어색하지가 않다. 전병근 기자 bkjeon@chosun.com
  • 2014-08-13
    ​“부끄럽게도, 사람이 하루에 8시간 내내 할 수 있는 것은 일밖에 없다. 8시간 동안 먹지도, 술을 마시지도 못한다. 8시간 동안 사랑을 나누지도 못한다. 8시간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일이다.”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의 말입니다. 작가 복거일은 얼마 전에 출간한  자전적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에서 포크너의 이 말을 인용하고는 한 줄 덧붙입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들볶고 다른 사람들도 비참하게 만든다.”일에 관한 한 부정적인 인상이 잔뜩 묻어나는 말입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인간을 완전히 뭉개버리고 파괴하고 싶다면 무시무시한 살인자라도 벌벌 떨 만한 가장 끔찍한 형벌을 내려라. 그것은 전혀 무익하고 의미 없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일이란, 구약 성서에서 신이 계율을 어긴 인간에게 ‘평생에 걸친 수고’를 벌로 내린 이래,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저주 같은 것이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 시대에는 일을 하고 안하고에 따라 신분의 높낮이가 결정되기도 했지요. 지금도 일과 휴식은 대칭어로 사용됩니다.하지만 최근 들어 일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그저 생계를 위한 방편이나 사회 지위로서보다는 자아 실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거지요.작년초에 출간된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쌤앤파커스 번역 출간) 같은 책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얻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자 로먼 크르즈나릭은 이 책에서 “천직에 대한 열망은 현대에 등장한 발명품”이라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마음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현대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직업을 행복이나 자아성취의 길로 이끄는 모험으로 여기게 됐다”고 씁니다. 그는 “두둑한 월급이나 안정성이라는 구시대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그럴듯한 직업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성취감의 시대’가 새롭게 시작됐다”고 했습니다.사실, 아직도 실직과 구직난이 사회의 무거운 이슈가 돼어 있는 마당에, ‘의미있는 일자리’ 타령이란 배부르고 한가한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취업의 문을 통과한 대다수 직장인들조차 목전의 업무와 직장 생활을 앞에 두고 여러 갈래로 고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숱한 구직자들도 무작정 구직에 나서기보다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앞에 긴 줄을 섭니다. 모두가 삶에서 차지하는 일의 비중이 점점 커진 결과입니다.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아침에 눈 뜬 후부터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직장에서의 일이 우리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어찌 보면 직장 동료와 보내는 시간이 식구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더 깁니다. 그런데도 그 일이 성취감은커녕 별 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그만한 불행도 없을 것입니다.허핑턴포스트의 창업자인 여걸 아리아나 허핑턴이 신간 ‘제3의 성공’(김영사 번역 출간)에서 말하는 것도 우리 삶과 일터,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혁신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돈과 권력(영향력)’ 대신 ‘웰빙과 지혜, 경이로움, 베풂’  네 가지를 성공의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합니다.‘당근농장 이야기’라는 작은 책에 주목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지난번 북클럽 추천도서가 첨단의 글로벌 대기업인 아마존의 성장기를 다룬 것이었다면, 이번엔 국내 작은 기업의 경영자가 자신의 체험을 담은 책입니다.‘당근농장 이야기’라는 제목만 보면 풀무원 같은 식품회사나 농산물 회사를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교육서비스회사입니다.국내외 300여개 기업들에게 글로벌 경쟁력에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맞춤 서비스하는 ‘캐럿글로벌’이라는 이름의 기업이지요. 당근(캐럿)이라는 이름은 당근과 채찍에서 따왔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어떤 점에서는 아직 보잘 것 없는 회사입니다. IMF 외환 위기 막바지인 2000년 말에 창립해 13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직원 수도 120명 남짓합니다.  책 날개에도 “당근농장 이야기는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기업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라고 써놨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추천도서로 밀게 된 것은 ‘일’과 ‘일터’라는 화두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 우리 모두의 관심사로 떠오른 일과 삶, 직장 문화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거리를 제시하고 있지 않나 하는 판단에서입니다.이 회사는 그런 점에서 여러 가지로 인상적입니다. 우선 저자이자 경영자가 밝히는 경영 철학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존재 가치를 높이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와 매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른 바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요.일의 본질은 스스로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런 인간의 초(월적)동기에 있다고 봅니다. 자신이 말하는 ‘영성이 있는 일터’란 이런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좋은 기업이란 수준 높은 조직 문화와 의식 있는 구성원들의 조합이라고 씁니다.저자는 오늘날 새로운 경영 환경이야말로 영성이 있는 일터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업의 성공은 더이상 통제가 아닌 조직 구성원들의 지식과 창의성, 몰입과 같은 질적인 요인에 의해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라는 거지요.저자는 나아가 자신의 체험을 통해 기업 경영과 삶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확신했다고 합니다.그에게 직원이란 “단순히 회사의 도구적 존재가 아니라 회사와 일과 더불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의 주체”입니다. 회사는 “생존만을 위한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면서, “일이라는 매개를 통해 개인의 삶을 더욱 살찌우고 존재 가치를 실현하는 의식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그러기 위한 회사의 핵심 과제는 투명성과 소통입니다. 그는 “21세기 지식사회가 요구하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조직은 개방적이고 과감한 커뮤니케이션이 흐르는 조직”이라고 단언합니다.이 회사는 “개인의 인사 사항을 제외하고는 회사의 주요 마케팅 정보와 매출과 관련된 회계 정보, 업데이트되는 회사의 모든 콘텐츠, 각 부서의 주요 이슈와 업무 진행 현황까지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고 씁니다.(실제로 회사를 찾아가보니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더군요.) 덕분에 가장 빠른 시간에 최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지요.이 회사가 사원들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 중의 하나가 ‘독서 멘토링 데이’입니다. 매달 책 한 권을 정해서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입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발표를 하고 생각을 서로 교환합니다. 이미 110회를 넘겼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학습하는 조직 문화를 자연스럽게 구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책 읽기 자체보다 사내 소통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 좋다고 합니다.오늘날 기업 경영의 최대 관심사가 사람인 것처럼, 이 책에서도 인재 선발과 육성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신입 기간 사원에 대한 훈련 목표도 회사의 인재상인 ‘자연성(自燃性) 인간성’에 둡니다. 스스로 불이 붙어 타오를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사원은 3개월 프로베이션 기간을 통과하면 회사가 제공하는 무한 성장의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 회사는 인사 정책의 투명성과 고용 안정성을 중시합니다. 압권은 이런 대목입니다.“다음 두 가지에 해당하면 당장 회사를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첫째, 회사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둘째 일을 통해 성장할 생각이 없다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고객과 동료들 그리고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게 된다. 성장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조직의 부속품처럼 한계 짓고,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 의욕이나 열정이 없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까지 기운 빠지게 한다.”여기서도 저자가 중시하는 것은 인간의 내적 동기입니다. “돈에 의해 자극되는 동기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동기 부여 시간이 짧고 자극이 사라지면 동기도 사라진다. 하지만 무언가를 향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기가 된다. 스스로 내부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저자의 경영 분권론도 독특합니다. 그는 “사업이 한 사람의 욕심과 투지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둔 것인 경영위원 제도입니다. 자신이 혼자 의사결정의 부담을 지지 않고, 창업 초기 뜻이 맞아 주주가 된 세 사람과 함께 집단지도 체제를 꾸려갑니다.  일종의 집단 지성 시스템입니다.조직을 단순화하고 중간 리더들을 집중 양성해 권한도 적극 위임합니다. 인트라넷을 도입해 회사 업무 현황을 전 사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한 것도 업무 효율을 위한 것입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될 경우 의사 결정은 빨라지고 직원들의 책임감도 커져 성장이 촉진된다는 거지요.사원들을 위한 라이프 코칭을 따로 둔 것도 CEO가 모든 것을 맡는 게 아니라, 전문가에게 역할을 맡긴다는 전략의 소산입니다.저자의 이런 경영 철학도 결국에는 그의 유년 시절에 뿌리가 닿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열 다섯 때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인간의 정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늘 나 자신과 세상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고 하지요.지금도 1년에 두 번 ‘생각 주간’을 두어, 몇 권의 책과 화두를 가지고 깊은 산이나 오지로 들어간다고 합니다.그밖에, 책에 소개된 사원들의 해외 배낭여행이나, 석학 초청 프로그램, 고객 초청 포럼 같은 다양한 장치들도 일관되게 저자의 성장 철학을 뒷받침하는 것들입니다.물론 이 회사의 여러 면면들이 ‘모범답안’이라거나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회사의 규모가 일정 정도를 넘어갈 때에도 이런 모델이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기업이 무슨 종교 집단이나 이념 결사체도 아닌데 의식이나 자기 성장에 대한 강조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공자님 말씀’ 같은 얘기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반론도 제기할 수 있겠지요.저도 몇 가지 의문을 품고 저자에게 연락한 후 직접 회사까지 찾아가 보았습니다. 정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 회사의 이모저모(특히 이들이 자랑하는 ‘당근농장’이라는 이름의 인트라넷)를 살펴보고 나니  많은 궁금증들이 풀렸습니다. 최소한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현실에 적용되고 구현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더군요. 이런저런 가능한 반론이나 의문점에  대해서도 저자 역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자 인터뷰는 별도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말하는 ‘영성이 있는 일터’론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용하면 이렇습니다.“성장에 대한 이슈는 이제 경영자의 ‘생존 철학’이자 조직구성원들의 공동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20~30년 전만 해도 업종을 불문하고 개인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이슈는 지금처럼  간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가 요구했던 조직의 성공 조건도 달랐습니다.하지만 우리가 이미 당면한 현실과 다가올 미래에는 조직이나 회사가 개인 삶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개인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사회에서 기업이 개인의 성장 욕구를 담보해내지 못한다면 절대로 발전은커녕 생존을 지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업종을 막론한 근본적인 환경의 변화를 말합니다.”이번 책은 기업이나 조직을 경영, 관리하거나 창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참고 사례가 될 것입니다. 또 경영이나 관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 독자의 경우에도 자신의 일과 삶과 관련해 한번 쯤 생각해 볼거리를 선사할 거라고 믿습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노상충 지음|끌리는책|253쪽|1만4000원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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