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08-30
     ‘아버지의 편지’라고 하면 나이 지긋하신 부모님의 인생 회고가 연상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암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40대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험한 세상을 아비 없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어린 세 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담은 자전적 기록입니다.다행히 그에게는 22년 동안 써내려온 일기가 있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기도 전, 장래의 자녀들을 생각하며 쓰기 시작한 기록이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온전한 모습을 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사연은 이제 멀리 태평양 건너 한국이라는 나라까지 와 닿았습니다.저자는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14세에 군사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군복을 입고 생활을 시작한 직업 군인입니다. 책의 목차와 메시지도 그가 일찍부터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았던 맥아더 장군의 연설문의 교훈을 따라 정리했습니다. 처절한 투병 과정은 물론, 성장과 연애, 결혼, 부부 생활, 일과 가족 사이의 균형 잡기, 종교와 신앙, 군에서의 갖가지 부침들을 열거해 가며 스스로 체득한 삶의 교훈을 전합니다.“사소한 일들이 큰 차이를 불러온다.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해내야 어렵고 복잡한 일도 더 잘 감당할 수 있다.”“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도전해야 할 필요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며, 원하지 않는 관점을 찾아야 하고, 틀릴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실제로 패배와 수치심을 겪어야 할 때도 있단다.”사실, 암과 같은 난치병 판정을 받은 환자의 시한부 투병기는 다분히 극적인 데가 있지만, 그렇게 드문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눈여겨 보게 된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저자가 남달리 일찍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게 된 동기입니다. 그는 열두 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할아버지의 옛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봐온 모습과는 사뭇 다른 할아버지의 다정다감한 면모를 편지 속에서 접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친가, 외가를 막론하고 조부모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이릅니다.저자는 20대 초반,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을 괴롭히느냐고. 할아버지는 “죄책감 때문”이라며 그저 울기만 하셨다고 합니다.저자가 20대 중반일 때는, 반신 마비로 17년을 휠체어에 앉은 채로 살아온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매일 살아갈 수 있게 버팀목이 돼주는 게 무엇인가요?" 그러자 할머니는 말없이 벽을 가리켰습니다. 거기엔 수많은 가족들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지요.저자의 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도 극히 일면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약하거나 지나치게 친근해 보이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 반면, 어머니는 늘 살갑게 자신을 대했던 것으로만 기억합니다.그리고 스스로 반문해 봅니다. '언젠가 내 손자들이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면 어떻게 하지?’그래서 일찍부터 시작한 것이 일기쓰기입다.. ‘지독할 만큼 솔직한 일기’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지독한지는 읽어 보시면 압니다. 훗날 손주들에게 직접 읽어줄 생각으로 시작했던 기록은 공교롭게도 아들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남기는 유고 자전이 되었습니다.“나의 탐색과 발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다. 배움도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고통과 괴로움은, 그것이 자초한 것이든 아니든  그저 너희 여정에 무례하게 끼어든 게 아니라, 여정의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구나.”이쯤에서 저의 사적인 이야기를 잠시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비교적 일찍 여의었습니다. 두 분 다 제가 20대 30대일 때 병상에서 작별을 고했습니다. 몇 년 앞서 어머니를 급작스레 보내드린 후, 아버지마저 간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맘 속으로 다짐한 게 있었습니다. ‘그전에 못다 들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자.’하지만 끝내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제 불찰이었습니다. 그때는 바쁜 생활을 탓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만큼 절실하지 못했던 거지요.뜻밖에도 얼마 전 사내 어느 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연로하신 부친이 병석에 계신데, 생전에 당신의 못다 한 인생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얘기였습니다.사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구들도 그렇습니다. 안다고 해도 피상적입니다. 서로 미처 들려주지 못한 사연이 얼마나 많(겠)습니까.지난번 북클럽에서 함께 읽은 성석제의 소설 ‘투명 인간’을 기억하시는지요. 거기에서는 작중 화자가 마이크를 옮겨가듯 인물이 바뀌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식구가 함께 일을 겪고도 서로 달리 이해하고 기억하는 모습들이 묘사됩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고부간의 시선은 어찌 그리 엇갈릴 수 있는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인문학을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 분은 이태수 인간환경미래연구원장입니다. 지난주에 출간된 강연집 ‘나는 누구인가’에 수록된 글에서 그렇게 쉽게 풀어내는데 금방 수긍이 갔습니다.우리는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을 때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그게 이력서이고 히스토리 아니겠습니까. 국가나 민족, 인류만 히스토리를 가진 게 아니라 누구나 저만의 히스토리를 살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자서전은 꼭 영웅이나 위인들만 쓸 것은 아닐 듯 싶습니다.사실 조선시대만 해도 일반 평민들이 다양한 삶의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전문학 연구자인 허경진 연세대 교수가 편역해 최근 재출간한 ‘조선평민열전’을 보면 잘 나옵니다. 조선시대에 평민들의 부와 지식이 축적되면서, 자신들끼리 모여서 배우고 가르치는가 하면 시를 짓고 전기를 쓰는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그런 기록 문화에 관한 한 지금의 우리는 안타깝게도 선조들의 아름다운 전통을 많이 잃어버린 듯합니다.따지고 보면, 요즘 다시 불처럼 일고 있는 이순신 열풍도 충무공이 남긴 기록 덕분 아니겠습니까.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의 인기만 해도 작가의 상상과 문체에 힘입은 바 있겠지만, 충무공의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작가는 해석의 단서조차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기록의 힘입니다.더듬어 보니, 한때 우리 사회에도 자서전이 유행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대개 자신의 약점은 가리고 업적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분식(粉飾)의 도구로 쓰이곤 했습니다. 이청준은 197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자서전을 쓰십시다’에서 이렇게 탄식합니다.“그런 사람들은 불행히도 대부분이 자신들의 지난날을 정직한 참회나 부끄러운 과거를 부끄럽지 않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용기로써가 아니라, 또는 자신의 과오를 허심 탄회하고도 따뜻한 눈길로 되돌아볼 수 있는 애정으로써가 아니라 단순한 망각으로 그것을 넘어서려고 합니다. 과거사를 잊어버림으로써 그것을 이기려고 합니다.”이청준은 진정한 자서전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자서전이란 원래가 주장이기보다는 고백이요, 헌상이어야 했다. 나름대로의 뜻을 지니고 살아오면서 이룩해 온 것들을 이제는 이미 그의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삶의 결과로서 만인의 것으로 그 만인에게 바쳐지고, 그리하여 그 자신은 오히려 그 개인의 유한한 생애에서 해방되어 만인에 의한 만인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공교롭게도 ‘아버지의 편지’ 추천사는 불과 얼마 전에 작고한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쓴 것입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남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결말을 예감이라도 한 듯, 말머리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누구나 결국엔 행진의 끝에 이른다. 어떤 이들에게 그 길은 길고, 어떤 이들은 짧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정의 길이가 아니라 우리가 택한 걸음들이다.”윌리엄스는 63세 나이로 스스로 여정을 마감했습니다. ‘길이’ 대신에 선택한 그의 마지막 ‘걸음’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아직도 마음 아파합니다.검색을 해보니 이 책의 저자 마크 웨버 중령은 투병 끝에 2013년 6월 13일 세상을 떴다고 나옵니다. 그 얼마 전인 2013년 5월 22일자로 찍힌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한국에서 출간된 책을 하루 빨리 만나 보고 싶군요”라고 적었습니다. 지금쯤은 로빈 윌리엄스를 반갑게 맞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책 속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저자를 아꼈던 존 모리스 목사가 저자에게 책을 쓰라고 재촉하면서 들려주었다는 말입니다. 번역문을 조금 더 다듬어 봤습니다.“우리는 매일같이 전쟁과 살인 같은 좋지 않은 소식들로 폭격을 받습니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각자 맞닥뜨리는 온갖 어려움까지 더해지면, 우리 모두에게 영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별로 놀라울 게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가장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자신의 몫을 살아가는 동안, 결단력과 참을성과 용기를 발휘하면서 최선을 다해 눈앞의 삶을 대면합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과도 공유해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야말로 그런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해야 합니다."일기 같은 기록의 1차적인 목적은 자기 성찰에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남에게 읽힐 때는 그만 한 소통의 도구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읽으면서도 틈틈이 써야 하는 이유가 아닐지요.책과 더불어 기분 좋은 주말, 넉넉한 한가위 맞으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마크 웨버 지음|이주혜  옮김|김영사|328쪽|1만4800원 
  • 2014-08-16
    여름도 막바지입니다. 휴가들은 잘 다녀오셨는지요. 책과 더불어 독서삼매경으로 무더위를 견디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저는 그 사이 휴가를 이용해 킬리만자로를 다녀왔습니다. 탄자니아에 있는 아프리카 최고봉 말입니다. 높이가 5895미터입니다. 정말이지 죽도록 고생한 끝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왔습니다. 언제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따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편도 20시간을 오가는 비행기와 여섯 밤을 지낸 산장 안에서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행 자투리 시간을 선용하기로는 독서만 한 게 없습니다. 이번에는 짐 무게도 최대한 줄여야 하기도 해서  e북 리더기를 배낭에 넣어 갔습니다. 교보에서 낸 SAM과 예스24에서 낸 크레마, 아마존의 킨들 3종을 다 들고 갔습니다.출발하기 전에 킬리만자로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찾은 책들을 미리 내려받아 갔습니다.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박범신의 장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꽃’, 김호경 등 산악인 3인이 함께 쓴 등반 체험기 ‘가슴 설레는 청춘, 킬리만자로에 있다’ 세 권입니다. 그리고 킨들에는 예전에 내려받아놓은 미국의 다재다능한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의 자서전 ‘Models of My Life’와 작가 알랭 드 보통의 ‘The News’(‘뉴스의 시대’로 국내 번역)를 가져가서 읽었습니다.무사히 등반을 마치고 귀국했더니 이미 여름 더위가 한풀 꺾여 있더군요. 가을의 문턱인 입추도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는 한기마저 느껴집니다.이런 차에 냉면 이야기를 다룬 책은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말 그대로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다시피한 냉면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거리를 거의 망라하고 있어, 한번쯤은 일독해 둘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예전에 북클럽 도서로 주영하 교수의  ‘식탁 위의 한국사’를 선정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 책에서도 냉면은 만두와 함께 별도의 독립된 장으로 소개됐지요. 하지만 다른 여러 음식들과 함께 다루다 보니 냉면에 대한 설명이 어느 정도 제한적이었습니다.반면 이번 책은 책 제목이 말해 주는 것처럼 냉면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습니다.사실 저는 냉면 맛을 늦게서야 안 축에 속합니다. 어릴 적 고향인 대구에서는 그리 즐겨 먹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에 온 후에도 광화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유명한 냉면집을 다닌 후에야 조금씩 그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을지면옥, 필동면옥, 남포면옥, 평양면옥, 오장동 함흥냉면집 등이 냉면 맛에 눈을 뜨게 해 준 곳들입니다.냉면집을 어렵게 취재한 기억도 나는군요.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회부에서 냉면 기사를 써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북한 평양의 옥류관이 처음으로 강남에 분점을 열게 된 일을 취재해야 했습니다. 현장에 갔더니  연세도 지긋한 이북 출신 어르신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더군요. 저도 테이블 한 귀퉁이에 앉아 한 그릇을 받아 먹었습니다.문제는 제 입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말 그대로 밍밍하고 슴슴하기만 한 것이 뭔가 빠진 듯했습니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어릴 적 먹던 맛”이라며 좋아들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고향 음식이라는 생각에 입맛을 속이는 건 아닌가’ 의심까지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조미료 맛에 길들여져 있던 저로서는 냉면의 참맛을 제대로 몰랐던 거지요. 이 책은 우리 민족이 유달리 국수를 좋아했다는 사실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합니다.“조선의 음식점에는 어느 곳을 보아도 국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국수를 좋아하는 국민으로 보인다… 어느 음식점이라도 음식점마다 한구석에 국수를 제조하는 장소가 있어서 밖에서 보인다.”1909년 일본인이 조선의 생활 풍경을 그린 책 ‘조선 만화’에 나오는 얘기입니다.흥미로운 점은, 지금은 흔하디 흔한 것이 밀이지만, 과거에는 극히 귀했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밀을 진(眞)가루라 부를 정도였다지요. 반면 메밀은 흔했습니다. 산간 지역의 척박한 땅에서도 거름 한 번 안 줘도 잘 자랐다지요.그리하여 초기 냉면은 ‘메밀로 만든 국수를 육수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었습니다.무엇보다 이처럼 소박해 보이는 냉면을 만드는 데도 과거에는 적지 않은 수고가 들어갔다는 사실에 눈길이 갑니다. 이 별미의 국수를 먹기 위해서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합심해야 했다지요. 옛말에 냉면은 할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남자 3대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는군요. 그 이유는 책에 소개된 제작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메밀에는 찰기가 없어, 뜨거운 물을 붓고 온몸에 힘을 실어 한 시간 정도 주물러야 반죽에 찰기가 생긴다. 이어 가마솥이 걸려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무 분틀을 솥 위에 올린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메밀 반죽을 분틀 안에 넣고 눌러야 한다.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장정 두세 명이 붙어 눌러야 겨우 한 올 한 올 메밀국수가 빠져나온다.”냉면이 서민의 음식으로 대중화한 과정도 퍽이나 재미있습니다. 1900년대에 와서라지요. 주역은 왕의 요리사였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대령숙수(궁중 음식 최고 책임자)인 안순환입니다.구한말 나라가 망하면서 실직자가 된 궁중 요리사를 데려다가 시중에 고급 요릿집을 차립니다. 저 유명했던 ‘명월관’입니다. 지금 세종로 동아일보사 자리였다고 합니다. 명월관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냉면이었다지요. “고종이 드시던 배동치미 냉면을 이제 명월관에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광고까지 내보냈다고 합니다.배동치미냉면이란 건 또 무엇이던가요. 단맛을 좋아하는 고종의 취향에 맞게 냉면 육수로 쓰는 동치미에 배를 많이 넣은 것이었습니다. 고명에도 편육 외에 수저로 얇게 뜬 배와 잣을 올렸다고 합니다.이 책을 보면 냉면이라는 음식 하나만 가지고도 당대의 사회경제문화의 변천사를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뜨끈뜨끈한 구둘장에서 차갑게 먹던 겨울 음식인 냉면이 여름 더위를 달래주는 별미로 확장된 계기는 냉장고와 제빙기의 발명이었습니다.냉장고는 1862년 영국에서 발명됐고, 제빙기는 1875년 독일인과 미국인 기술자들이 공동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이 1910~20년대에 국내에도 들어오면서 냉면은 연중 외식 메뉴로 자리잡습니다.​여기에 1932년 획기적인 사건이 더해집니다. 함경북도에서 철공업 기술자인 김규홍이 무쇠 제면 기계를 발명합니다. 이제 작은 식당에서도 적은 노동력으로도 쉽게 면을 뽑아낼 수 있게 된 거지요. 냉면집은 대중화의 고속도로로 진입합니다.냉면이 6.25 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 속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간 과정도 다분히 극적입니다. ​함흥냉면의 유래가 함경북도 함흥이 아니라 서울 오장동(혹은 강원도 속초)에 모여든 이북 출신 실향민들이었다는 사실, 부산이 자랑하는 밀면 역시 이북 출신 피난민이 생계를 위해 만들어 판 음식에서 출발했다는 사연 등이 그렇습니다.​이처럼 이 책 한 권에는 냉면에 얽힌 이야기들이 면다발처럼 쭉쭉 뽑혀져 나옵니다. 아마 그동안 북클럽이 선정한 도서 중에서 제일 수월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루룩, 한 입에 부드러운 면발을 삼키듯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냉면에 관한 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책 말미에 모아놓은 ‘팔도 냉면 유랑기’도 요긴해 보입니다. 여기에 나온 냉면집들을 기회 닿는 대로 찾아 다니며 맛 기행을 즐겨보는 것도 별미이겠습니다. 독서와 더불어 즐겁고 건강한 여름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백헌석·최혜림 지음|인물과사상사|275쪽|1만4000원
  • 2014-08-13
    “정말이지, 부의 분배는 경제학자나 사회학자, 사학자, 철학자들에게 맡겨두기엔 너무 중요한 이슈다. 모두의 이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토마 피케티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올 상반기 세계 지성계에 슈퍼스타로 급부상한 42세 프랑스 경제학자입니다. 19세기 칼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의 문제 의식과, 최신 빅데이터 분석을 결합시킨 문제작 ‘21세기 자본(The 21st Century Capital)’의 저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 지난 3월 미국에 번역되면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부분은 그의 책 서문의 일부입니다.이 책은 올 가을 국내에도 번역돼 나올 예정입니다. 그때쯤 저자 자신도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상륙과 더불어 국내에도 ‘21세기 자본’ 열풍이 불어닥칠지도 모르겠습니다.영문 번역본으로 696쪽이나 되는 학술서가 미국 아마존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정상을 차지하는가 하면 초판 매진 사태까지 빚은 것을 두고서는 해석이 분분합니다. 마치 국내에서 과거 마이클 샌델의 철학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초유의 판매고를 기록했을 때와 흡사한 양상입니다. 당시 국내에서 샌델 정의론 열풍을 두고 그만큼 정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이 높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21세기 자본’ 신드롬도 최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미국 내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합니다.사실 오늘날 양극화의 심화나 부의 불평등 문제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고 난 후부터 그것은 세계 보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여기에는 이런 문제를 낳은 기존 주류 경제학과 거기서 파생된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과 반성도 한몫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피케티의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좀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나는 ‘경제과학’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아주 오만한 듯한 인상을 주고, 경제학이 다른 사회 과학들보다 더 과학적인 지위에 올라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정치 경제학’이라는 표현을 나는 훨씬 더 선호한다. 다소 옛날식 표현으로 보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경제학을 여타 사회 과학을 구분하는 유일한 무언가를 표현해주기 때문이다.너무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을 이른바 과학적 방법론의 용어로 규정하려고 애써왔다. 실은 그런 방법들이란 수학모델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데 의존한다. 하지만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내용은 텅빈 것을 가리는 빌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오늘날 경제학자들은 통제된 실험에 기초한 경험적 방법론에 대한 열광으로만 가득하다. 물론 적절히만 사용된다면야 이런 방법들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중략) 이런 새로운 방법은 종종 역사를 무시하거나, 역사적 경험이 우리의 지식의 주요 원천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경제학이 현실에 쓸모가 있으려면 경제학자들은 무엇보다 방법론의 선택에 있어서 보다 실용적이 되도록 배워야 한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무엇이든 활용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럼으로써 다른 사회 과학 분과들과 보다 긴밀하게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피케티의 책 이야기를 길게 꺼낸 것은 그의 학문적 문제 의식이 이번 선정 도서의 저자 장하준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두 사람 모두 최소한 한 가지 점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경제 현실의 난맥상은 그런 현실을 이끌어온 주류 경제학에도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보다 구체적으로는, 지금까지 글로벌 경제의 이론과 현실을 장악해온 주류 경제학이 ‘순수 과학’과 ‘고도의 전문 지식’임을 앞세워 대중을 경제 현실에서 소외시켰다고 지적합니다. 특정 이론만을 유일무이한 진리의 담지자로 내세워 그것에 대한 의문과 시비를 원천 봉쇄했다는 말도 합니다.그래서 장하준은 주류 학자나 정책 담당자에게는 불편한 이름입니다. 일찌감치 ‘자유무역은 언제나 선’이며 ‘시장에 대한 규제는 악’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도그마를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이름의 해머로 무너뜨린 적이 있지요.여러 분야에 걸친 그의 ‘이단적인’ 주장은 일찌기 국내에서도 좌우 진영 모두로부터 공격을 당한 바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한 비판으로 우파와의 논쟁을 촉발하는가 하면,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좌파와의 충돌도 불사했지요.그의 학문적 입장에 대한 지지와는 별개로, 이제는 그를 빼놓고서는 국내외 경제의 여러 쟁점들을 논하기 어렵게 됐을 정도입니다. 요즘도 주요 현안이 제기되면 국내 언론은 경쟁적으로 그에게 마이크를 내밀고 기고문을 청합니다.전작들에 비하면 이번 책은 한층 가지런한 형식과 내용을 취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친절하게 잘 정리된 강의 노트 같습니다. 세계 경제사와 함께 경제학의 기본 개념과 이론,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학파들의 핵심 주장들을 정리해서 제시합니다. 저자 스스로 ‘보통 사람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라고 소개했는데, 약속에 대체로 부응합니다.경제학계의 다양한 학파를 설명하는 중에, 자신이 속한 개발주의 전통뿐만 아니라 신고전주의 같은 주류와 마르크시즘, 슘페터학파 같은 비주류 이론도 균형있게 설명을 첨부합니다.그가 내세우는 개발주의 혹은 절충적 입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문적 논쟁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현대 경제 입문서로서의 임무는 완수한 듯 보입니다. 장하준의 이전 책을 읽어보지 않은 분에게는 그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입문서가, 이미 읽어보신 분들에게는 현대 경제학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양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사실 경제학으로 이런저런 학술상을 받을 수는 있어도 대중적 인기를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동원하는 개념부터가 일반인에게는 낯설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장하준은 경제 이야기를 비전공자도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낼 줄 아는 드문 경제학자 중 한 명입니다. (물론 이 책에도 난이도가 높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괜히 경제학이겠습니까. 그런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합니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축약 독서법까지 안내합니다.)그의 학식과 재능은 경제학의 본산인 영국에서 더 알아줍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하고 거기서 오래 교수로 머물고 있습니다. 얼마 전 파이낸셜타임스가 낸 여름 휴가철 도서 추천 특집에서도 얼마 안 되는 명사 목록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는 걸 봤습니다.그의 장점은 무엇보다 이론적 경직성과는 거리가 먼 현실 감각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언제나 특정 시대 특정 국가의 구체적인 현안과 정책을 거명해 가며 논의를 이어가는 덕분에 주장이 공허하지가 않습니다. 이 책에서만 해도 “이론적으로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괜한 발목잡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꼬박꼬박 구체적인 증거를 대가며 부연 설명을 합니다.주류와의 일전을 불사하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 그치지 않습니다. 늘 정-반-합의 논리를 따릅니다. 한 이론의 전면적 전복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일면성과 한계를 짚어낸 후에는 적정한 효용가를 제시합니다.가령, 자유시장을 절대선으로 보는 입장을 반박하지만 시장의 효용 가치는 부정하지 않고, 세계화의 맹목성은 배격하지만 국제 무역의 중요성은 옹호하는 식입니다.언제나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상황이며, 그 상황에서 중요한 주체는 기업과 국가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수학과 물리학에 가까워진 경제학이 고전적 의미에서의 정치경제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라고 한다면 경제에 대한 정치의 복원이라고 하겠습니다.그 외에도 책 안에는 근대 이후의 세계 경제사와 오늘날 각국의 경제 현실과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최신 정보도 풍부합니다.“장하준의 손에 들어가면 경제학도 더 이상 건조한 학문이 아니다”(파이낸셜타임스)라거나 “장하준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최고의 비평가이지만 반(反)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옵서버)는 평은 온당해 보입니다.출판사가 부록으로 첨부한 ‘장하준의 Shall We’라는 제목의 미니북도 요긴해 보입니다. 저자와의 인터뷰, 칼럼, 사생활, 서재 같은 읽을거리를 추가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바야흐로 경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무성한 요즘,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로 기본 소양을 다져보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장하준 지음|부키|496쪽|1만6800원 
  • 2014-08-13
    며칠 전 외신에서 재미있는 통계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가계 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본 세계 각국 순위였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이 12.2%로 전체 5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1975년만 해도 3분의 1이 넘던 수치가 절반도 넘게 내려온 겁니다. 외신도 한국의 ‘변신’을 소제목으로 뽑았더군요.총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 계수라고 하지요. 가난할수록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은 이것으로도 확연해집니다.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 우리 나라의 위상을 단군 이래 최고라고도 합니다. 불과 몇 세대 만에 우리는 많은 것을 거두고 이룬 것이 사실인 듯 싶습니다.우리의 산업화 과정에 비판적인 진보 논객 유시민도 새 저서 ‘나의 한국현대사’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분노와 자부심 같은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우리 현대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이번에 북클럽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소설을 골라봤습니다. 이 역시 우리의 현대사를 다룬 책입니다. 입담 좋은 국내 대표 중견 작가가  파란만장했던 격동기의 시대상을 마치 긴 담장의 벽화처럼 그려냈습니다.낙동강 유역 상산군의 만석꾼 삼대 독자 김용식씨로부터 시작되는 3~4대의 수난사가 눈앞에 장강(長江)처럼 굽이칩니다.일제 시대 서울로 유학 와서 경성제대 철학과를 다니던 김씨는 하루아침에 사상범으로 투옥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야반도주 끝에 태산준령 두메 산골로 식구를 이끌고 들어가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굽이굽이 잔가지를 뻗기 시작합니다.엇나간 아들 충현과 그 밑의 삼남삼녀 형제자매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대소사들이 일대 모자이크를 이룹니다.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얽히고 섥힌 사연들은 나팔꽃처럼 입을 벌려 저마다의 얘기를 들려줍니다.어떤 대목은 내 얘기 같고 어떤 대목은 우리 집안의 누구 얘기 같고, 또다른 대목은 내가 아는 어느 누구의 얘기 같습니다. 나머지 다른 것들도 다 내가 모른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입니다.그 속에 우리 반세기 현대사의 익숙한 크고작은 사건들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 대목 한 대목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작중 인물들은 “그때를 아십니까” “이 일을 기억하세요” 라고 묻는 것만 같습니다.일제 때 민족 모두가 국난을 겪었고, 6.25 때 전국민이 피난길에 올랐으며, 근대화를 맞아서는 대다수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했던 우리 아닙니까. 주인공 만수 집안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의 과거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아주 먼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아버지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진 이야기입니다.시종, 작가의 눈길은 우리 현대사에서 우뚝한 능선보다는 어두운 골로 향하고,  우리 사회의 빛나는 양지보다는 서글픈 음지에 가 닿습니다.우리가 그간 쌓아올린 성취는 눈물 겹도록 자긍할 만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돌아봐야 할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고 저자는 책을 통해 말하는 듯합니다.공교롭게도 이 책을 탈고한 후 터진 세월호 사건을 보며 썼다는 ‘작가의 말’은 짧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 이후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하나 더 눈여겨 볼 부분이 있습니다. 작중 인물들을 차례로 화자로 내세운 교차 진술 방식과 그것을 통해 보여주는 삶의 갈등과 역설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 각자가 본대로 겪은 대로 사건을 진술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정작 주인공인 만수만 빠져 있습니다만.)따라 읽다 보면, 같이 겪은 일을 두고도 서로가 얼마나 달리 이해하고 그 때문에 관계가 엇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서로의 독단이 오해를 낳고 오해가 상처를 낳고 상처가 적대로 이어지는 우리의 크고작은 인생살이를 작가는 돌아보게 합니다.책을 덮고 나니 소설 속 비운의 주인공 김만수가 왠지 프로야구 선수 이만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두 만수 모두 어리숙하면서도 우직한 이미지가 겹칩니다. 현역 시절 그가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면 관중석에서  ‘만수 바보’라는 합창이 터져나오곤 했지요. 그래도 좀체 화는 내지 않던 그가 아주 가끔은 헐크로 변했던 것을 기억합니다.그러고 보니 김수환 추기경의 별명도 ‘바보’였습니다. 생전 스스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평생 낮은 곳을 살핀 분이었으면서도, 스스로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며 바보라고 했다지요.추기경의 잠언을 묶어 낸 책 제목이 ‘바보가 바보들에게’ 였습니다. 둥근 원에 점, 선 몇 개로 눈 코 입을 그려넣은 자화상을 두고서는 그 밑에 제목을 ‘바보야’라고 써두기도 했습니다.그 전시회가 있던 날,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있는 그대로 인간으로서,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삶이 괜찮은 삶입니까.”추기경의 답은 이랬습니다. “그거야 누구나 아는 얘기 아닌가.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이웃과 화목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알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걸 실천하는 게 괜찮은 삶 아닌가.”소설 속 어리숙한 만수의 철학도 이 비슷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사람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괜찮은 사회’ 아닐까요. 북클럽이 함께 양서를 찾아 읽는 것도 그런 사회를 위해서라고 믿습니다.한여름 더위가 열기를 더해가는 요즘입니다. ‘투명인간’과 더불어 독서삼매경에 빠져보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성석제 지음ㅣ창비ㅣ370쪽ㅣ1만2000원
  • 2014-08-13
    지금 제 손 안엔 조그마한 정육면체의 IT 기기가 있습니다. SK텔레콤이 얼마 전에 출시한 초소형 빔 프로젝터입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연결해서 흰 스크린에 쏘면 화면을 맘대로 키워서 볼 수 있습니다.빔 프로젝터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이 제품을 산 이유가 책 읽기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이책 이외에 디지털 기기로도 여러 가지를 읽습니다. 사무실에서는 데스크탑으로 신문이나 저널을 읽지만, 밖에서 이동 중이거나 심지어 집에 있을 때도 스마트폰으로 읽을거리를 소화할 때가 많습니다. 전자책도 스마트폰의 킨들앱으로 내려받아 읽곤 합니다.문제는 스마트폰의 경우 화면이 작다는 겁니다. 오래 보면 눈이 침침해져 옵니다. 킨들 같은 전용 리더가 그런 점에서는 한결 쾌적합니다. 하지만 지하철 안이나 어디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동안 주머니에서 꺼내 읽기로는 스마트폰만큼 편한 게 없습니다.가끔은 침대에 누워서도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벽이나 천정 위로 보고 싶은 화면이 뜨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생각을 하던 제게 미니 빔 프로젝터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바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해서 물건을 받자마자 시연해 봤습니다. 그럴 듯했습니다.대학 시절 책에 허기진 때가 있었습니다. 과외수업 아르바이트 대가로 월급을 받으면 맨 먼저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미리 봐뒀던 책을 한 아름 사오면 그냥 배가 부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사 모은 책이 어느새 하숙집 방의 벽을 한가득 채우곤 했지요.하지만 그런 책의 탐식과 남획 뒤에는 무시 못할 후유증이 따랐습니다. 바로 이사를 해야 할 때였습니다.  아마 자취 생활을 해 보신 분들은 한번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대학생 짐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책 짐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책장을 가득 메웠던 책들과 다락에 밀어 넣어뒀던 책까지 라면 박스에 싸서 나를라 치면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꾸역꾸역 지고 이고 해서 옮기다 보면 여기저기 유실되는 책도 적지 않았습니다.절정은 대학원을 마치고 군 입대를 위해 짐 정리를 하던 때였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시내로 옮겨 가는 게 아니라 복무지인 청주로 4년간 떠나 있을 터였던 지라, 따로 보관을 해둬야 할 상황이었지만 도무지 둘 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결국 결심을 했습니다. 이 참에 책을 모두 처분해 버리자!사실 그런 마음 한 구석에는 책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오랜 시간 대학에 다니면서도 인생과 세상에 대한 명료한 답은 얻지 못한 채 물음만 가득한 책들과 씨름해온 모습이 스스로 처량해 보이기도 했겠지요.결국 두어 박스만 누님네 집에 의탁하고 나머지는 다 팔아치웠습니다. 중고책 장사꾼은 정육점에서 쓰는 저울로 무게를 달아서 값을 쳐주더군요. 그제서야 마음 한 구석이 뜯겨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헌 책방을 뒤져가며 사 모었던 추억의 흔적마저 이제는 다 옛일이 되고 말았습니다.지금 제 책상 위에는 책받침 반만 한 전자기기가 놓여 있습니다. 전자책 전용 단말기 킨들입니다. 킨들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 연수를 갔을 때입니다. 그 무렵 킨들이 미국 시장에 나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워싱턴DC에는 정부나 로펌, 대학에서 일하는 식자층이 많았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다들 뭔가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 킨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사서 써 보니 신기했습니다. 알라딘의 마술램프처럼 손끝 터치로 두꺼운 책들이 불려나와 눈앞에서 열을 지었습니다. 맨 처음 든 생각이 바로, 대학 시절 두통거리였던 책 짐 걱정 따위는 이제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습니다.더욱이 킨들은 원클릭으로 책을 너무나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격도 당시엔 9.99불에 불과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했습니다. 그 뒤로는 아이폰의 킨들앱을 통해서도 신간들을 전자책으로 바로바로 내려받아 읽게 되었습니다.2009년 가을 귀국했을 무렵에만 해도 국내에는 아직 킨들도 아이폰도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국산 스마트폰들도 다양하게 출시돼 세계 시장에서 자웅을 겨루고 있습니다. 국산 전자책 단말기들도 아쉬운 대로 여러 종이 나와 경쟁을 하고 있지요. 불과 5년 사이의 일입니다.이번 선정 도서가 바로 전자책을 통해 본 책의 미래, 글 읽기과 쓰기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저자는 아마존 킨들 개발팀의 초기 멤버이자 주역입니다. ‘전자책 혁명의 최전선’에 섰던 기억을 바탕으로 e북 리더의 탄생 전후를 이야기하고 그 미래를 논합니다.저자는 스스로 기술 전문가인 동시에 인본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전자책의 힘을 믿는다고 합니다.마치 어느 한 쪽도 버릴 수 없는 두 애인을 양쪽에 둔 사내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킨들 개발의 주역답게 무게 중심은 전자책 쪽에 가 있습니다. 미래는 전자책이라고 말합니다.하지만 종이책의 고유한 특장 또한 저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자책의 미래가 종이책의 매력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담아내느냐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합니다.e북이 나은가, 종이책이 나은가. 이 질문은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아마존이라는 걸출한 유통업자 덕분에 전자책 시장이 일찍 자리를 잡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전 미국출판협회가 발표한 자료가 외신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종이책 판매는 하향세인데 반해 전자책은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인의 32%가 e리더를, 42%가 태블릿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e북 소비가 주로 이 두 가지 기기로 이뤄지는 걸 감안하면 전자책 독서 인구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여전히 전체 독서 인구의 절대 다수는 종이책을 읽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한 주 전쯤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e북 vs. 종이책’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도 있습니다. 이 기사에 소개된 조사 결과들을 종합해 내린 결론은 ‘우열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각각의 비교 우위가 있을 뿐, 읽는 사람 각자의 성향과 습관, 용도에 따라 선택할 문제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디지털 리딩만 하더라도 데스크탑으로 볼 것이냐, 태블릿이나 스마트폰 같은 작은 스크린으로 볼 것이냐, e북 전용 리더로 볼 것이냐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이 책의 저자도 말한 것처럼, 인류 역사의 중심에는 기술 발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책읽기도 어디까지나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경험이지요.점토판에서 파피루스로, 다시 종이책으로 옮겨 갔듯이, 결국에는 종이책도 서서히 전자책에게 자리를 물려줄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합니다. 종이책은 소수 매니아의 수집용이나 한정판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얘기지요.책의 재질이 바뀌면 사용 방식도 바뀔 것이고, 그에 기반한 독서 문화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500년도 더 된 종이책의 제작술은 이제 답보 상태에 이른 반면, 전자책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진화 양상은 IT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지금 우리의 예상을 훨씬 더 뛰어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저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활약했던 시대는 구술 문화 시대였습니다. 당시 교사들은 자신이 암기한 내용을 토대로 대화를 통해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 소크라테스에게 책은 오히려 사고의 방해물이었습니다. 구술 문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듣고 내면화하고 암기를 해야 비로소 제 것이 되는 것이라고 본 거지요. (요즘 디지털 기술과 더불어 음성의 저장과 보존, 전달이 수월해지면서 다시 ‘글의 시대’에서 ‘말의 시대’로 복귀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수많은 강연과 오디오북, 팟캐스트 같은 것들이 그 증거입니다.)하지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오날날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가르침을 글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크게 받드는 4대 종교의 가르침도 그렇게 해서 전수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15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인쇄 혁명 직후에도 부유한 독자들은 필경사가 손으로 직접 쓴 것이 아니면 감성이 부족하고 자연스럽지 않다면서 인쇄책을 폄하했다지요. (최근 국내에도 번역된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에 따르면, 그전까지 책은 그저 귀족을 위한 사치품이었고, 다섯 쪽을 만드는 데 20만원쯤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의 축적과 전수란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겠지요.)익숙하지 않은 신기술은 늘 처음엔 천덕꾸러기였습니다. 전자책은 어떨까요.디지털 세상은 이미 글 쓰기와 읽기, 출판과 소비의 모든 규칙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독서는 예로부터 개인적이고 고독한 행위였지만, 이제는 국경마저 넘나드는 사회적(Social) 행위로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디바이스와 온라인을 통해 상호연결된 덕분이지요.전자책은 현대인의 생활이 디지털화하면서 점점 더 다양한 형태로 존재감을 넓혀갈 것으로 보입니다.그렇다고 해서 종이책이 가진 매력이 쉽게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저자의 말마따나, 책은 단순한 문장의 모듬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는 아직도 한 권의 책을 전체적으로 보는 데 익숙합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3차원 세계를 처리하는 데 익숙한 것처럼, 독서도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감촉을 느낄 수 있을 때에 더 심층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경험적 사실입니다.저자는 결국 종이책 독서 경험이 주는 매력을 어떻게 보존하면서 디지털 책읽기의 경험을 재창조할 수 있느냐에 책의 미래가 달려다고 말합니다.그 승부는 콘텐츠 디자이너들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아티스트들, 그리고 인문주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이처럼 이 책에는 디지털 시대의 읽기와 쓰기, 컨텐츠의 생산과 소비와 관련해 생각해 볼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책의 제목은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라고 묻지만 저자는 굳이 책 속에서 ‘정답’을 제시하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읽을 필요도 없구요. 어떤 대목은 저자의 의견이 과해 보이기도 하고, 상호 충돌하는 대목도 있습니다.오히려 이 책의 미덕은 책에 관한 여러 물음을 떠올리고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읽고 소비했던 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으며, 앞으로는 어떤 가능성을 열어보일 수 있는가를 짚어줍니다.저자의 많은 이야기 중에 제가 가장 흔쾌히 동의하는 대목은 이것입니다. “독서가 변화할 것은 분명하지만, 절대로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나아가 “독서는 본래 한 인간과 한 권 책 사이에 이뤄지는 고독한 상호관계이며, 그 속에 사회적 요소를 가져오는 것이 독서 경험을 고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 주저 없이 한 표를 던집니다.그것이 바로 조선비즈 북클럽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제이슨 머코스키 지음ㅣ김유미 옮김ㅣ흐름출판ㅣ360쪽ㅣ1만7000원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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