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12-03
    ​​인생을 살다 보면 몇 번의 전기(轉機) 가 찾아온다고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출생과 죽음은 시작과 끝이니 논외로 하지요. 그 다음에는 대학 입학인가요? 첫 사랑? 결혼? 출산? 입사? 승진? 아니면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이런 것들이 먼저 일반적인 후보로 떠오르네요.외국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종종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He(She) will never be the same.’ 어떤 일이 있은 후, 주인공이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 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혹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는 얘기지요.신약의 주요 저자인 바울만 해도 원래 악명높은 기독교도 박해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한 박해 사업을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 예수를 만난 뒤 돌아서서 기독교의 세계화에 가장 중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오늘날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지요. 대학 졸업 후 IT 회사 아타리를 다니다가 인도 순례 여행을 다녀온 뒤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후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탄생했고, 업계는 물론 인류의 생활이 바뀌었습니다. 유명 인사들의 전기(傳記)를 보면 그런 류의 인생 전기(轉機)들을 숱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우리의 삶은 참으로 취약해서,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에 의해 늘 영향을 받습니다. 인생의 길도 깊이 계획했던 대로 가기보다는 뜻밖의 일들이 찾아와 방향을 정하고 이러저리 뒤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대개의 경우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습니다.어떤 때는 일상이 답답하거나 일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스스로 뭔가 전기를 마련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인생의 국면 전환일 수도 있고, 꼭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기분 전환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우리는 길고 짧은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2005년 봄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중남미 특파원으로 가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처음엔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기반도 없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남미에서는 '좌파 집권 도미노'에다 자원민족주의 바람이 불면서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국제부 기자였던 저는 그 쪽의 기사와 칼럼을 쓰다가 ‘현지 특파’라는 예상 밖의 ‘총탄’을 맞은 거였지요. 그렇습니다. 그 땐 난데없는 '총탄'인 줄 알았습니다.부랴부랴 수소문을 해보니 중남미의 중심은 브라질 상파울루라는 말을 듣게 됐고, 결국 그곳을 포스트로 삼아 출국 채비를 하게 됐습니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어를 쓴다는 것도 사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겪은 무용담은 아마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라겠지요. 중남미 대륙 14개국을 옆 동네처럼 드나든 기억이 아련합니다. 사실 그때 책 쓸 생각도 하고, 제목까지 생각해뒀었습니다. ‘또 다른 삶을 찾아서’였습니다. 지금은 맘 속에 묻어 두고 말았습니다만.암튼 저로서는 라틴아메리카라는 지구 반대편 대륙에서의 근무가 제 인생에서 중요한 전기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뒤로 인생이나 사회, 세계를 보는 제 눈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어떻게 바뀌었냐구요. 그 역시 책 한 권 감입니다. 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이번에 함께 읽게 된 책도 ‘인생의 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의 경우에는 급작스런 퇴직에 이은 이탈리아 여행입니다. 괴테의 발걸음을 따라간 형식을 취하기는 했습니다만, ‘나를 찾아 떠난 여행’으로 읽힙니다.여느 유럽 여행기들과는 달리, 저자의 마음 행로와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인문적 소재가 어우러져 색다른 읽기 체험을 선사합니다. 읽는 맛과 함께 생각의 여운을 주는 책입니다. 본문에 대한 리뷰나 해석은 앞서 보내드린 저자 인터뷰로 대신합니다.2014년도 한 달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참에 나만의 새로운 전기를 한번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지요. 필요하다면 또 한번 몸소 배낭을 꾸려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꼭 이탈리아일 필요는 없겠지요. 평소 출퇴근 길이 아닌 어느 낯선 길, 서울 근교의 가보지 않은 산이면 어떻겠습니까. 책 한 권이 그런 환기와 전기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면 북클럽으로서도 작지 않은 보람일 것입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손관승 지음|새녘|475쪽|1만9000원​
  • 2014-11-06
    ‘삼중당 문고’를 아시는지요?지금은 아련한 추억의 단어가 됐습니다만, 한때 이 땅의 청춘들에게 지적 허기를 달래주던 ‘마음의 건빵’ 같은 것이었지요. 그때의 추억을 한 편의 시로 엮어낸 장정일의 ‘삼중당 문고’를 읽다 보면 ‘맞아 맞아 그랬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내친 김에 한번 읽어볼까요.열 다섯 살,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 문고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 간 삼중당 문고급우들이 신기해 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쉬는 시간에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 간 삼중당 문고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 문고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웠던 삼중당 문고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빠다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고시공부 때려 치우고 읽은 삼중당 문고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시영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박기영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 앉던 삼중당 문고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그러다 나 죽으면시커먼 뱃대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작가의 남다른 이력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누구나 이 비슷한 문고본의 추억이 하나쯤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사실 삼중당 문고보다는 박영문고나 을유문고, 삼성문화문고와 더 친했습니다. 대학 시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때도 서점에서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는 책들이었습니다. 웬만한 국내외 고전들은 다 그렇게 부담없는 가격과 형태로 나와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외서들의 경우 대개 일본어 문고본의 중역이 많았지요. 그런 책들이 국내에서는 전문 번역자들에 의해 제대로 번역돼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의 일입니다.어쨌거나 가격이나 크기나 분량 면에서 부담이 없어, 읽을거리에 늘 허기져 있던 시절, 학생들의 훌륭한 동반자였습니다.아시다시피, 문고본은 그것이 처음 유래한 서양에서는 ‘페이퍼백’이라고 불렸습니다. 천이나 가죽으로 입히고 묶은 양장본이 아니라 종이로 표지를 하고 접착제로 붙인 싸구려라는 뜻이었지요.이 책의 기원이 처음에는 기차와 관계가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대중 교통 수단으로 열차가 출현하면서, 장거리 여행의 좋은 여가거리로 문고본이 등장한 것이지요.기록을 보면, 19세기초 인쇄술이 발달하고 철도망이 확장되면서 저가 대량 출판과 유통이 가능해졌고, 그 부산물로 등장한 것이 페이퍼북이라고 돼 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에 철도 여행자들을 위해 팔리기 시작한 것이 저 유명한 펭귄북입니다. 1935년에 기존의 책을 줄여 만든 10종을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대히트를 쳤습니다. 그 뒤로 펭귄은 페이퍼백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초기에는 ‘싸구려 상품’을 판매상들이 꺼렸지만, 2만부씩 대량으로 팔려나가니까 관심이 폭발했고, 너도나도 문고본의 제작과 유통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1939년에는 신대륙 미국에도 불이 옮겨붙었습니다. 여기서는 맨처음 낸 출판사가 ‘포켓북’이라는 라벨로 선을 보였습니다. 주머니 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책이라는 얘기지요. 오늘날 포켓북이 페이퍼백과 동의어로 자리잡은 사연입니다.여기서도 처음에는 대형 출판사들이 “출판의 근간을 허문다”며 반발했다가, 문고본에 대한 대중 소비 시장이 확인되자, 아서 밀러, 존 스타인벡 같은 작가들의 작품도 문고판으로 냈습니다.2차 대전 이후에는 군대나 회사에서도 남녀들이 소일거리로 포켓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군용 지도 제작을 위해 개발된 4색 인쇄가 페이퍼백에 적용되면서 시각적으로도 좋아졌습니다. 그 뒤로 페이퍼백은 하드커버와는 별도의 시장을 형성하게 됐습니다.국내에 문고본이 첫선을 보인 것은 1909년이었습니다. 육당 최남선이 세운 출판사 신문관에서 ‘십전총서(十錢叢書)’를 처음 내놓았습니다. 단돈  10전(100전=1원)에 살 수 있는 책을 모아 출간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초기에 문고판이 ‘다임(dime, 10센트짜리 백동화) 소설’이라고도 불린 데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첫 권은 ‘걸늬버유람긔(葛利寶遊覽記)’였습니다. 아일랜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육당이 직접 번역한 책이었습니다. 가로 13센티미터 X 세로 18센티미터 크기에 모두 54쪽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13년에는 다시 한 권에 6전인 ‘육전소설문고’를 기획해, ‘홍길동젼’을 비롯한 20여 종을 출간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을유문고, 정음문고, 민중문고, 협동문고 등이 나오면서 일대 문고 붐이 일었습니다. 그 다음 1950년대말~1960년대 양문문고, 교양문고, 경지문고, 현대문고, 박영문고, 사상문고, 탐구신서 등이 나와서 두 번째 문고본 물결을 이뤘습니다.하지만 최고의 전성시대는 1970년대였습니다. 삼중당문고, 서문문고, 을유문고, 삼성문화문고 등 무려 30여 개 출판사가 문고본 시리즈로 경합을 했다고 합니다.당시 대학 교육이 확산되면서 지식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던 때였습니다. 이들의 독서 수요를 문고본이 상당 부분 해결해 주었습니다.하지만 1980년대 후반 들어 문고본은 시들해지기 시작합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과거 해외 저작물을 무단 사용하거나 기존의 창작물을 2차 가공해서 만들던 문고본들이 퇴출된 거지요.당시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서 소비자들도 크고 화려한 컬러판을 선호하게 됐습니다. 출판계도 단행본 시장이 커지고 고급화 바람에 불면서 이익률이 낮은 문고본에 연연하지 않게 됐습니다.문고본이 인기를 끌기 전에는 전집류가 한바탕 인기를 끌었던 기억도 아련합니다. 어릴 적 집안 벽 한 쪽을  가득 메웠던 각종 전집류를 기억합니다.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세계대백과사전 같은 것은 기본이었고, 가정요리대백과사전, 위인전집 같은 것들도 책장 한 쪽을 장식했습니다. 저희 집이 유독 그런 호사를 누렸다기보다 당시 웬만하면 집마다 그런 류의 전집류 한 질씩은 두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사철 집밖에 내놓은 짐 중에도 그런 책 꾸러미가 늘 눈에 띄었지요.그런 전집류 목록이 컬러로 프린트된 팸플릿을 들고서는 가가호호 방문하던 외판원들도 기억납니다. 늘 가격은 절반 이상 할인가에 장기할부가 가능했고, 그날 구매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지구본이나 현미경 같은 것을 덤으로 주곤 했지요. 아이들은 책보다 그런 부록에 더 혹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전집류는 그 무렵 내집 마련이 가능해진 신흥 중산층의 ‘지적 욕구 혹은 허영’을 자극한 것이기도 했습니다.그걸 읽고 보고 자란 세대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문고본을 새로운 지식의 젖줄로 삼았던 셈입니다. 값싸고 간편하고 아담한 문고본이 이 땅의 지식의 대중화, 대중의 교양화에 큰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습니다.하지만 문고본은 1980년대 이후 퇴조의 길을 걸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몇몇 출판사들이 이런저런 문고본을 기획했습니다만 예전의 영화를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출판사 책세상의 번역물 시리즈인 ‘고전의 세계’가 86호를 기록했고, 국내 저자의 창작물로 구성된 ‘우리시대’ 총서가 126호까지 나온 상태입니다. 한때 프랑스 갈리마르의 ‘데쿠베르’ 시리즈를 번역해 들여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시공디스커버리 총서는 현재 139호를 기록 중입니다만, 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다른 문고본들도 다 200~300호의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중단하거나 끝 모를 휴지기에 들어간 상태입니다.디지털 시대, 책은 이제 다른 오락거리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처지가 됐습니다. 사람들의 주머니나 손 안에는 문고본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들어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책을 꺼내 읽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이나 게임을 즐깁니다.그래도 선진국들은 저마다 유서 깊은 대표 문고본이 건재합니다. 영국의 펭귄북스, 미국의 모던 라이브러리, 일본 이와나미, 프랑스 크세즈 같은 것들입니다. 크세즈는 4000권, 이와나미는 5000권에 이릅니다. 1867년 첫 권을 낸 독일의 레클람 문고는 1만호를 넘겼다고 합니다.거기에 비하면 ‘살림지식총서’ 500호 기록은 사실 어디에 내놓고 떠들기에는 좀 민망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달리 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도 기록을 쌓아나갈 단초를 마련했다는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특히나 국내 저자로만 꾸려온  것은 높이 살 만합니다. 물론,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수준은 각 권마다 기복이 있고 그것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도 다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다양한 분야에 걸친 주제들을 국내 필진으로 충당해온 점은 높이 살 만합니다. 이제는 일정 수준에 도달한 국내 지식 생산력의 반영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총서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내고 지금까지 끌어온 살림출판사의 심만수 대표’는 야심차게도 ‘세상의 모든 지식’을 표방합니다. 앞으로도 사명감을 가지고 700호, 1000호, 계속해서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림지식총서에 대한 설명은 함께 나눠드린 목록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북클럽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심만수 대표 인터뷰도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이번에 살림지식총서를 선별해 선정도서로 꾸려본 것은 그런 국내 출판사의 의지에 대한 지지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나온 책들 중에서 여러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들로 골라 묶고, 최신간인 ‘결혼’을 넣었습니다. 커피와 색채, 면에 관한 책들은 각각 필력 있는 전문가들이 관련 정보를 알차게 담아냈습니다.마지막 권 ‘결혼’의 경우, 경쾌한 글쓰기로 정평이 난 남정욱 작가가 집필했습니다. 미혼자나 기혼자 모두에게 유익하면서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될 것입니다. 출퇴근길을 오가며 단숨에 읽어내리셔도 좋고 여행길에 들고가서 읽기도 좋습니다. 다 읽고난 책을 주변에 선물하거나 돌려봐도 좋겠습니다.모쪼록 옛 시절을 떠올리며, 문고본의 재미에 다시 한번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색채의 상징 색채의 심리​|​박영수 지음 커피 이야기​|​김성윤 지음   면 이야기​|​김한송 지음 결혼|​​남정욱 지음 
  • 2014-10-20
    ​ 20세기초 유럽에 ‘로숨’이라는 이름의 대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해양생태학을 연구하려고 외딴 섬을 찾았다가 새로운 유기체를 합성해내는 방법을 발견합니다. 고심 끝에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만들기로 마음 먹습니다. 신의 일로 여겨졌던 것을 과학의 힘으로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싶었던 거지요.10년이란 긴 시간 끝에 마침내 ‘인공 인간’을 배양해내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체는 고작 사흘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그 뒤 로숨의 아들이 와서 그의 일을 이어받았습니다. 사업 감각이 뛰어난 아들은 ‘인조 인간’이 아주 유용한 노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그는 늙은 아버지를 연구실에 가둬버리고, 보다 단순화시킨 설계도를 가지고, 맡은 일에만 충실한 인조 인간을 만드는 데 드디어 성공합니다.이 ‘로봇’은 인간보다 육체적인 힘에서 훨씬 뛰어났습니다. 이해력도 놀라울 정도로 높았습니다. 이렇게 양산된 로봇은 세계 전역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이제 인류는 고통스런 노동에서 해방된 듯 싶었습니다. 힘들고 성가신 일은 로봇에게 맡기고 취미 생활이나 즐기고 자아 실현을 위해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각 나라는 로봇을 전쟁을 위한 병사로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장에서 로봇은 뛰어난, 하지만 무자비한 살인 병기였습니다. 다른 한편, 인간은 노동을 로봇에게 떠넘기고 점점 즐거움에만 탐닉하게 된 나머지, 출산마저 기피하게 됐습니다. 이제 웬만한 일은 로봇이 맡아 처리하면서 노동력이 남아 돌아, 어떤 인간은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 어떤 사람들은 노동에 혹사당하는 로봇의 처지를 동정해 ‘로봇권리동맹’까지 결성했습니다.여기에다, 양산된 로봇들 중에는 간혹 ‘발작’ 증세를 보이는 로봇도 생겨났습니다. 로봇이 스스로 손을 기계 안에 밀어넣거나 머리를 부수는 일이 생기자, 로숨의 연구진은 로봇에게 일정 정도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부여했습니다. 이처럼 로봇의 자극 반응 체계를 ‘약간’ 바꿔놓은 것이 급기야 자각 증세로 발전하고 맙니다. 결국 의식이 생긴 로봇 지도자를 필두로 인간에 대한 로봇의 대반란이 일어나 인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이 이야기는 1920년에 출간된 희곡의 줄거리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가 쓴 ‘R.U.R(Rossum’s Universal Robots)’이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2010)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돼 나와있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과 같은 뜻의 로봇이라는 단어가 맨처음 씌어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체코어로 ‘힘든 노동’ ‘고된 일’을 뜻하는 ‘robota’라는 단어가 바로 지금 로봇의 어원입니다.거의 100년 전 작품 속 이야기 치고는 꽤나 흥미로운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이 국내에서는 아동 도서로 분류돼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습니다만.) 학문적 탐구욕이 새로운 발명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산업적 필요에 의해 양산되어 세상에 유익과 더불어 파괴적인 변화를 낳고, 결국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져 위기(혹은 파국)에 봉착한다는 서사의 중심에 바로 로봇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우리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된 ‘기계의 반란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구도도 이미 이 작품이 예고했던 대로입니다.로봇에 대한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대체로 인간이나 동물 형상을 한 자동 기계라는 데에 이견이 없습니다. 이런 로봇에 대한 생각은 흥미롭게도 꽤나 오래 전부터 동서양 문명권에서 있어왔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는 물론 중국에도 인공 기계에 대한 묘사가 기록으로 전해져 옵니다. 기계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 끝에는 늘 인간을 닮은,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인조물(=로봇)이 떠올랐나 봅니다.사실 어린 시절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로봇입니다. 저만 해도 철인 28호부터 전자소년 아톰, 마징거Z, 로봇 태권V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악당을 물리치고 인류와 지구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존재가 로봇이었습니다. 그것과 더불어 선과 악을 구분했고 정의감을 키워갔던 것 같습니다. ‘스타워즈’나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를 보면서 로봇이 그저 백기사 같은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인류에게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 후 철이 더 들고 난 뒤의 일입니다.이러나저러나 갖가지 로봇의 무용담을 읽고 봐오면서도, 그런 것은 그저 공상과학소설에서나 가능한 것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리로는 얼마든지 상상해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아주 먼 미래의 일일 거라고만 여긴 거지요.하지만 언젠가부터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시각각 개발돼 나오는 하드웨어 장치들과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걷고 뛰는 로봇에,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팔, 무인기와 무인차, 각종 생체 인식 장치에 인공 장기, 인공 지능…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 혁신의 주기가 단축되는 속도입니다.우리 주머니 안에는 비록 초기 단계이긴 합니다만 이미 대단히 똑똑한 개인 비서가 들어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한 정보 검색만 해도 예전 같으면 누군가 도서관이나 자료실에 가서 일일이 뒤져보는 수고를 거쳤어야 할 일을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손 끝 터치 하나로 해결합니다.오늘 뉴욕타임스엔 이런 글이 실렸더군요. 자폐증이 있는 13세 소년이 아이폰의 자동응답 음성기능인 ‘시리(Siri)’를 ‘절친’으로 삼고 있다는 엄마의 체험기였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자신의 말을 상냥하게 받아주고 답하는 기계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얼마 전 국내에도 개봉된 영화 ‘그녀(Her)’에서는 실연한 남자 주인공이 인공지능 운영시스템의 가상인간 사만다에게 빠져드는 모습이 묘사된 적이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반려봇’의 등장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같은 사람과의 대면 관계에서는 서툰 인간이 디지털 인공지능과의 따뜻한 대화에서 위로 받는 상황이 터무니없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이번 선정 도서 ‘제 2의 기계 시대’는 이런  기계 기술의 변화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에 비슷한 주제를 다룬 어떤 책들보다 포괄적이고 균형이 잘 잡힌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초 처음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유력지의 주요 칼럼니스트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며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곤 했습니다.저자들은 인류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또한번 거대한 변화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진단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을 비롯한 후속 기술 덕분에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시기를 ‘제1차 기계 시대’라고 한다면, 이제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생산력 폭발이 일어나는 ‘제2차 기계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저자들은 이미 2011년 ‘기계와의 경쟁’(Race Against The Machine)에서 이런 변화의 징후를 포착해 책으로 써낸 바 있습니다. 당시 처음에는 98쪽 분량의 e북 형태로 출간됐던 것이 비상한 관심을 끌면서 이듬해 종이책으로도 나왔습니다. 저자들은 그 후 몇 년 사이에 가속도가 더해진 기술 융합의 추이에 깜짝 놀라 서둘러 추가 연구에 착수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입니다. 전작보다 논의의 범위가 훨씬 방대하고 깊이가 더해졌습니다.이 책의 장점은 최근 숨가쁘게 이어지는 기술 혁신의 단편적인 사실의 점들을 이어붙여 큰 그림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각 분야의 성과들이 전체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지금 그토록 폭발적인 기세로 혁신의 불꽃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주는 과실은 무엇이며, 드리우는 그늘은 무엇인지 직시하게 합니다.여느 센세이셔널한 책처럼 장미빛 전망에 함몰되거나 묵시론적 예언을 일삼지 않습니다. 혁신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성과들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개인과 국가, 세계 차원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개인들에게는 미래 유망 직종을 조언하는가 하면, 정부를 향해서는 일자리 잠식과 부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 대안으로 근로장려세 같은 방안을 내놓습니다.물론 이들의 진단과 제안에도 이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논쟁거리는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잠식 문제입니다. 낙관론자들은 산업혁명 이후에도 똑같은 우려가 있었지만 생산성이 올라가 파생 산업이 생기면서 일자리는 늘어났다고 말합니다. 단순 반복 작업은 기계에게 물려주고 인간은 그보다 지력을 이용한 고차원의 일로 옮겨갔다는 얘기지요. 사실 이 과정에서 국민교육과 실업수당 같은 근대 복지 제도의 기둥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만한 정책적 노력을 병행했기에 파국을 피할 수 있었던 거지요.지금도 낙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동화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사회 전체의 복리를 높일 것이며, 또다른 일자리도 더 많이 생겨날 거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자동화가 과거처럼 고용 증대로 이어질지도 의문이지만, 자동화에 따른 인력 재배치와 이를 위한 재교육 부담은 개인에게는 큰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사나 국가 차원에서 재교육을 지원한다고 해도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또한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생산성과 GDP 성장은 고용과 소득의 증대, 국민 전체의 생활수준 향상을 낳는 것으로 이해됐습니다만, 이제는 둘 사이가 절연(decoupling)됐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과연 디지털 혁신이 기대처럼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지, 그것이 고용 창출과 소득 향상을 낳게 될지, 인간과 기계의 협업이 조화롭게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승자독식 경제 구조로 인한 빈부 격차 심화는 또다른 책 한 권의 주제가 될 정도로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최근 방한했던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이 책을 ‘가장 재밌게 본 책(my favorite book)’이라고 말한 것도 기술 발달로 인한 불평등 심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저자들은 이 책으로 세계 전역에 디지털 경제의 혁명적 변화와 과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최근에는 그 후속 작업으로 새롭게 ‘디지털 경제의 이니셔티브 ’(http://mitsloan.mit.edu/ide/)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경제가 몰고 올 파괴적 변화를 어떻게 흡수하고 건설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이 문제는 이제 개인은 물론 회사나 국가, 글로벌 차원에서 다각도로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그런 생각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더없이 좋은 개괄서로 보입니다.다시 차페크의 희곡으로 돌아가 볼까요. 결말 부분에서 로봇들은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에 직면합니다. 로봇을 재생할 수 있는 설계도가 소실되면서 남은 로봇들조차 수년 내에 멸종될 위기에 처하고 만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로봇 중에서 ‘가슴이 뜨거운’ 남녀 커플이 손을 맞잡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신인류’의 탄생을 예고하고 막을 내린 거지요.‘제 2의 기계 시대’ 책 표지에는, 부제가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부디 다가오는 세상이 인간과 로봇의 공생이 실현되는 장이기를 바랍니다. 바야흐로, 예전엔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왔을 내용이 이제는 진지한 논픽션으로 출간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에릭 브린욜프슨·앤드루 맥아피 지음|이한음 옮김|청림출판|382쪽|1만5000원​
  • 2014-10-04
    한국은 대륙국가인가, 해양국가인가?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가 얼마 전 국내 언론 기고문을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사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운명은 참 애매합니다. 대륙이나 해양 어느 한쪽이라기보다 양대 세력이 교차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두 세력이 충돌하는 경험을 더 많이 했습니다.  지금의 남북 분단도 사실은 양대 세력의 교착 상태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아마도 만주 일대를 권역으로 누볐던 고구려 시대나, 중화를 세상의 중심으로 숭모했던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들은 대륙 쪽을 바라보며 세상을 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단 이후 우리는 미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해양 세력과 더불어 번영을 누려 왔습니다. 사람과 문물도 주로 바다를 오갔습니다. 그사이 어느새 대륙은 우리 등 뒤의 그늘진 곳이 되었습니다.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대륙에 대한 향수 같은 게 있는 것도 같습니다. 좁은 노래방 침침한 조명 아래에서도 노브레인의 ‘말 달리자’를 부를 때는 가슴 한구석이 조금은 후련해지지 않습니까.대학 시절 학내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다함께 ‘광야에서’를 부르다가 ‘광활한 만주 벌판’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왠지 울컥하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던 기억도 납니다.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아무래도 대륙을 누비던 기마 민족의 피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약 1세기 전 영국의 지리학자 해퍼드 매킨더 경(卿)은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이론을 폈다고 합니다. 반면 미국의 해양 전략가인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은 대륙보다 바다를 지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지요.앞서 이야기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마이클 그린은 기고문에서 한국을 향해 이런 조언을 합니다. “국제 정치라는 험난한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려면, 한국은 자신이 해양 국가이자 대륙 국가인 반도 국가라는 데서 파생되는 지정학적 함의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은 지금 매킨더와 머핸, 이 둘의 지정학적 지혜를 모두 수용해야 할 때다.”꼭 거창한 지정학적 필요성에서뿐만은 아니더라도, 대륙에 대한 이해는 이제 세계화 시대를 맞아 문화적 감수성을 넓히고 보다 균형잡힌 역사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그러고 보면 최근 들어 유라시아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조선일보가 ‘원 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진행 중인 행사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작년 10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한 적이 있지요.이번에 함께 읽을 책도 ‘유라시아’라는 저 넓디 넓은 대륙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여기서 유라시아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인식의 지평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유라시아라는 말이 제게 주는 어감은 웅혼함입니다. 각각 별개의 문화권으로 구대륙을 형성해온 유럽과 아시아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거대한 무대가 눈앞에 열리는 것 같은 느낌 말입니다.책을 넘기다 보면 앞쪽에 두 페이지에 걸쳐 지도가 나옵니다. 저자의 여행 경로입니다. 맨 오른쪽 구석에 자그맣게 한반도가 보이고 망망대해 같은 대륙이 한 가운데에 펼쳐져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몽골과 우랄 산맥을 지나 터키를 거쳐 이란, 중국, 인도에 이르는 화살표를 따라 가다 보면 이 마흔 살 인문학도의 행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부터 듭니다.“지혜는 길에서 생겨나고, 길은 다리에서 생겨났다. 그렇게 다리에서 지혜가 생겨나고, 다리가 굵어질수록 머리가 커졌다. 길이 생기자 지혜가 통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지혜는 몸짓이었지만, 언어가 생긴 이후의 지혜란 바로 이야기였다.”저자는 그토록 먼 길을 나서,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끊어진 이야기를 잇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길이 끊어지면 이야기가 끊어지고, 이야기가 끊어지면 반(反)지혜가 생겨난다… 분단 반세기는 한반도가 유리시아 대륙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마저 잊히게 만들었다. 우리의 이야기 길은 끊어져 있다.”태고부터 유라시아 세계는 이야기로 이어져 있었건만, 우리는 어느새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양 지중해 일대의 서사를 소비하고 있다고, 저자는 안타까워 합니다.그래서 목표로 삼은 것이 유라시아 대륙의 도저한 서사의 물줄기를 ‘유라시아 신화 전집’으로 묶어 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 모두의 가슴에 광대한 유라시아 사람들이 친구로서 다가오도록 돕는 것이 내 야심의 전부”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 과업을 위한 여행의 기록이자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서막에 해당합니다.그러다 보니 여느 가벼운 여행기들과는 다릅니다. 마치 오지 탐험기에다 인문학 에세이를 한데 묶어 놓은 것 같습니다. 묵직합니다. 그만큼 다양한 밝기와 무게의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가령, 대륙 각지에 등장하는 ‘곰 숭배’의 기원을 이렇게 추론합니다.“타이가의 최강자는 곰이다. 곰은 연해주에서 우랄 산맥 너머 핀-우그르족의 땅, 그리고 베링 해 너머 북아메리카까지 변함없는 신화의 주인공이다… 인간은 그를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곰은 사냥의 대상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는 장치가 바로 곰 숭배 의식이다. 신화는 때로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대결과 모순을 무마하는 장치로 등장한다.”세계 각지의 신화에서 창조주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천해온 것은 이렇게 설명합니다.“인류가 지혜의 눈을 뜨던 시기, 태초의 신은 곧 어머니였다. 창조주는 어머니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러나 대체로 기원전 10세기 무렵이면 여신들은 대개 자리에서 밀려난다. 번쩍이는 금속 창과 번개로 무장한 변덕스럽고 호전적인 남자 신들 앞에서, 낳고 보듬고 키우는 일을 하던 여신들은 무력했다. 그래서 중국의 여와는 복희에게, 그리스의 헤라는 제우스에게, 인도의 두르가는 시바에게 시집가는 신세가 된다. 최고신의 자리는 아후라 마즈다, 여호와, 황제 등 남자 신들이 독차지했다.”그밖에, 신화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부자간 생사를 건 권력 다툼의 기록들이나, 바이칼 호수 인근 부랴트 사람들의 토끼 신화와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비교하는 대목들도 흥미롭습니다.몽골의 북두칠성 이야기를 하면서 “초원에서는 서로 돕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서로 돕는 이는 모두 영웅이며 빛을 내뿜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끌어내는가 하면, 사냥꾼 노인에게서 들은 무용담을 전할 때는 이런 가르침을 덧붙입니다.“초원과 삼림에서 인간과 짐승은 대립하지만 은원은 대물림되지 않는다. 어느 짧은 순간 이 광대한 공간에서 인간과 자연계의 강자들은 구체적인 적으로 대면하지만, 나머지 영겁의 시간 동안 이 공간은 은원을 녹이는 화해의 공간이다.”여행길 위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들과 사람들 사연,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신화와 단상들을 따라가다 보면, 책을 읽다가 고개 들어 생각에 잠기다가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쉬엄쉬엄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이면 아마도 유라시아 대륙이 성큼 가까이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가을로 향하는 10월, 이 곰 같이 우직한 인문학자의 걸음에 한번 동행해 보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공원국 지음 | 민음사 | 458쪽 | 1만 8000원
  • 2014-09-16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지 4년쯤 됐을까요, 국제부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부에는 순번제로 야근을 서게 돼있습니다. 밤 사이에 나오는 주요 외신 기사들을 처리하는 게 일이지요. 자정 너머 늦게까지 근무를 하고 있다 보면, 심심찮게 사외에서 걸려오는 별난 문의 전화를 받곤 했습니다.그럴 때면 대개 수화기 저편 화자의 혀는 이미 꼬부라져 있습니다.“여보세요. 기자 아저씨(혹은 가끔씩은 ‘양반’이라고 부를 때도 있습니다), 백두산 높이가 얼만가요?”“예? 여기 신문산데요.”“아, 기자 양반이 그것도 몰라? 백두산 높이가 얼마냐고?” “아,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저는 부랴부랴 책상 위 어딘가에서 세계백과사전 혹은 세계지리부도 책을 꺼내들고 산 높이를 확인하고는 답을 댑니다.(모른다고 홀대하거나 그냥 끊었다가는 밤새 시달릴 확률이 높습니다)“저, 2750미터입니다.”그러면 곧바로 저쪽에서 누구 들으란 듯이 소리칩니다. “거 봐, 2750이래잖아!”수화기 너머에서는 또다른 사람이 “그럴 리 없는데… 2744라니까”라며 구시렁대는 소리도 들립니다.밤늦게 술자리에서 말싸움이 붙은 취객들이 급기야 내기를 걸고 신문사에 심판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건 거지요.어떤 날은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수도가 어디냐’는 물음부터, 어떤 날은 ‘100미터 세계 신기록이 몇 초냐’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별별 문의 전화가 다 옵니다.그때만 해도 신문사가 ‘정확하고 믿을 만한 정보와 지식의 산실’이자, 언제라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창구로 여겨졌을 때의 일입니다.그 무렵 조선일보의 인기 연재물 중에는 ‘이규태 코너’라는 기명 칼럼이 있었습니다. 수십년 동안 쉬지 않고 연재되던 그 코너에는 전날 뉴스가 된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갖가지 정보가 소개되곤 했습니다. 그날 라디오 방송작가들은 다시 그걸 가지고 대본 원고를 쓰곤 했습니다.그 칼럼을 볼 때마다, 어떻게 그처럼 정보가 많이 담긴 글을 순발력있게 써낼 수 있는지 다들 신통해 했지요. 제가 전해 들은 바로는 필자인 이규태 당시 고문이 일찍부터 데이터베이스의 힘에 눈을 뜬 것이 비결이었습니다.그분은 일찍부터 자신만의 파일함을 만들어 한약방의 약장처럼 구축해 놓고 그때그때 필요한 자료들을 추려내 칼럼의 재료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 분이 유달리 박식하거나 기억력이 좋았다기보다는 틈틈이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고 색인을 잘 해 둔 결과라는 거지요.그때까지 국내에 있는 기자나 교수, 그외 지식정보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국에 나갔다 들어오면 외국 잡지나 원서를 사들고 들어오는 게 일이었습니다. 이른바 ‘장사 밑천’이었지요. 그걸 가지고 여기저기에 소개하거나 인용하면서 ‘유식’을 자랑하곤 했습니다.학생들은 교수님이 사들여 오는 원서를 차례로 복사해서 강독 교재로 삼곤 했지요. 인쇄소에서는 여분을 찍어 대학가 서점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걸 어느 변두리 헌 책방에서 발견해 구입한 학생은 횡재라도 한 듯 좋아했지요.이제는 그 모든 것이 아련한 옛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제 2의 두뇌’ 스마트 기기가 보급되면서 삽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는 이제 디지털화해 온라인에 올랐고 세계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것입니다.이제는 기자들도 인터넷 검색을 취재의 기본 도구로 삼습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이규태 코너류의 칼럼은 이제 웬만큼 순도높고 드문 내용이 아니고서는 주목조차 받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자칫하면 어디선가 날아드는 ‘오류 지적’의 뭇매를 맞기 십상입니다. 교수든 누구든 자기 수중의 텍스트 하나만 믿고 아는 체를 하다가는 큰코다치기 쉽습니다.이제 웬만한 지식과 정보는 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수도물처럼 누구나 접근해서 누릴 수 있는 공공재가 된 듯합니다. 그 접근의 열쇠인 스마트폰을 모두가 손안에 넣고 다니는 시대입니다.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의문 한 가지가 고개를 듭니다. 사방에 차고 넘치는 지식과 정보를 굳이 습득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같은 지적 풍요의 시대에 애써 책을 읽고 공부에 몰두해야 할 이유는 대체 무얼까요.이번 선정 도서 ‘생각의 시대’가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런 물음의 맥락에서입니다. 저자는 앞의 의문을 이어받아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인터넷과 SNS가 주도하는 정보 혁명이 지식의 생산과 전달 방법뿐 아니라 형태와 본질마저 바꿔놓고 있다. 우선 지식의 폭증을 초래했다. 2030년이 되면 지식이 3일마다 2배씩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누구도 자신의 시대가 도달하는 지식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저자는 오늘날 폭증하는 정보와 지식이 오히려 우리의 전망과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우려합니다.“또 온라인 네트워크로 인해 지식의 소재와 성격도 바뀌었다. 지식은 전문가의 머리나 도서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지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접속의 대상, 교육과 전수가 아닌 검색과 전송의 대상이 되었다.”저자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은 더 이상 경쟁력이 못 된다”고 단언합니다.나아가 정보화 시대는 지식의 수명까지 단축시켰습니다.“대부분 분야에서 어제 유용했던 지식이 내일이면 벌써 쓰레기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학습을 통해 자신의 시대까지 누적된 지식을 습득해 그것에 의존하며 살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오늘날에는 누가 어떤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편적인 전망과 판단을 얻을 수 있으며 그에 합당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고력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저자는 급기야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생각의 시대다!”라고 씁니다.지식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은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인터넷으로 상시 검색할 수 있는 단순 정보로서의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함직합니다. 어쨌거나 핵심은 이제 ‘생산의 결과물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원천 능력 혹은 기술’로서의 사고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말입니다.독일에서 철학과 고전학을 공부한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싹튼 ‘생각의 도구들’입니다. 이름하여 은유(메타포라)와 원리(아르케), 문장(로고스), 수(아리스모스), 수사(레토리케),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이 생각의 도구들 덕분에 고대 그리스에서는 합리적인 지식, 창조적인 예술, 민주적인 사회제도를 꽃피울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것이 고대 로마로 이어졌고 서양 문명의 토대가 된 데 이어, 근대 이후에는 인류 보편 문명의 기둥으로 자리잡았습니다.그 동안 고대 그리스 문명 결과물인 철학과 문학 예술에 대해서는 많이들 이야기해왔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생각의 도구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게 사실입니다.최근 들어 뇌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사고 활동이나 과정에 대해서는 조금씩 비밀이 풀려가고 있습니다만(물론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묻혀있던 고대 그리스 사상가(thinker)들이 찾아내 개발했던 생각의 도구들을 다시 찾아 나섭니다. 일종의 인지고고학적 접근법입니다.‘일리아스’부터 ‘총, 균, 쇠’에 이르는 고금의 양서들을 적절히 인용하는 한편, 철학과 고전학, 문학은 물론 최신 뇌신경과학,인지과학, 심리학, 언어학, 교육학의 연구 성과까지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돋보입니다.대체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만 떠올려도 더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데, 저자는 ‘무한한 대상들 속에서 정신이 질서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우리가 생각의 도구들을 찾아내 익힌다는 것은 그동안 누적되어온 지식들을 패턴별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왜 인류는 보편적 사고를 추구했을까요? 보편성이야말로 자연을 이해해 조종하고, 인간을 설득해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호기심’ 내지 ‘경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해 조종하고 인간을 설득해 움직이게 하는 힘을 얻으려는 욕망에서 시작됐다는 거지요. 살아남고 번영하려는 실존적 욕망에서 학문과 종교도 시작됐다는 저자의 말에서 현대 진화생물학의 영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왜 하필 그 시기 그리스였던가. 보편성의 추구가 왜 동양에서는 종교와 도덕의 발달로 나타난 데 반해, 서양에서는 학문의 발달로 귀결되었던가.이 책에는 이런 묵직한 문명사적 물음들이 차례로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그 뒤에 따라붙는 저자의 풀이글을 읽어가다 보면 고전 인문학의 진미를 맛보게 됩니다.500쪽이 넘는 분량에다, 한 손에 들고 보기 어려운 책의 무게에 미리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정작 내용물은 재미있는 일화와 사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넘겨 읽어보면 좋을 것입니다.생각의 힘을 기르기 위한 학습법까지 제시됩니다. 사실 특별한 비책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은유를 학습하기 위한 시 읽기, 관찰력을 기르기 위한 그림 그리기와 필드 노트 작성, 이성적/반성적 사고를 위한 글 읽기/쓰기 같은 조언들은 교과서적인 말같습니다. 하지만 그리 쉽게 기각할 수 없는 처방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래로 중시돼온 전통적인 학습법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라는 주문 같습니다.4년 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으로 스마트기기 의존형 인간을 향해 경종을 울렸던 니콜라스 카는 얼마 전 ‘유리 감옥’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 책 마지막 장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물리적으로 가능한 것과 머리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긴장감은 기술을 개발하는 원동력 역할을 했고,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한 긴장감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능력 범위를 확대하고 자연을 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우리는 어느새 ‘머리 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손놓아버린 것은 아닌지, 그 힘을 다시 찾고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의 시대’와 더불어 한번 생각에 잠겨보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김용규 지음|살림|508쪽|1만6000원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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