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6-14
    ​​얼마 전 런던에 본부를 둔 글로벌 금융회사인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2만명 이상을 감원한다고 했지요. 이유 중 하나가 브라질, 터키 같은 신흥시장에서의 실적 부진입니다.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세계 경제입니다. 브라질은 한때 브릭스(BRICs)의 일원이었습니다. 그것도 맨 앞에 있었습니다. 중국과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2014 올림픽과 2016 올림픽을 잇따라 유치하면서 기대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리우의 그리스도상이 로켓처럼 발진하는 장면이 이코노미스트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제목이 ‘이륙(Take off)’ 이었습니다.하지만 지금은 꼴이 말이 아닙니다. 걸출한 지도자 룰라의 뒤를 이은 여장부 호시프 대통령의 리더십은 내우외환에 갇힌 상태입니다. 그 이면에는 브라질 경제의 주축인 페트로브라스의 좌초라는 초대형 악재가 있습니다.오랜 정경 유착으로 인한 경영 부실이 화근이겠습니다만, 이 나라가 기대온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값 하락이 결정적이라 할 것입니다. 유가 하락에는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의 여파가 컸습니다. 셰일가스 붐 뒤에는 다시 미국의 기술 혁신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오일 파워로 미국의 외교정책까지 흔들었던 중동 산유국들은 이제 앞날을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그렇게 본다면 미국 경제의 부활 혹은 건재는 놀랄 만합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만 해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은 기정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됐습니다. 그 전에는 한때 대안으로 ‘유러피언 드림’이 고개 들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지금 미국 경제는 다시 자리를 가다듬고 있는 듯 보입니다. 불안 요인들이 여전히 많지만 예전같은 불안의 눈초리는 많이 가셨습니다.오히려 새로운 미국의 혁신 기업들이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습니다. 그 온상이자 근거지가 실리콘밸리입니다. 이곳의 기라성 같은 IT 기업들은 일련의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까지도 바꿔놓고 있습니다.우리의 일과 삶은 디지털 혁명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간 지 오래입니다. 어느 누구도 외면할래야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작년말 조선비즈 북클럽은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의 평전을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그에 못지 않은, 어떤 점에서는 능가하는 혁신 기업가로 주목받는 일론 머스크의 평전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각각 ‘블루 오리진’과 ‘스페이스 엑스’라는 우주항공 분야의 민간 기업을 야심차게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점도 있습니다.머스크는 그밖에도 전기자동차회사인 테슬라, 태양에너지사업인 솔라시티도 시작해 이미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나같이 도박에 가까운 고위험 사업이었습니다. 지금도 앞날을 확신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불굴의 기세로 각각의 사업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추진해 남들이 놀랄 만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본문을 읽다 보면 돈키호테가 따로 없습니다. 매 국면이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이상주의자의 모습 그것입니다.우리로서는 그 터무니없는 이상주의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입니다. 가장 냉혹한 기업가의 가슴이 가장 뜨거운 꿈으로 요동치고 있습니다.얼마 전 런던에서 인터뷰를 한 구글의 라즐라 복 인사총괄 부사장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기업의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사명(mission)이라고. 그것이 사람을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했습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조직이나 국가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오늘 이코노미스트를 보니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프랑스 수도 파리도 이제 ‘스타트업 시티’로 탈바꿈해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과거 버려졌던 변두리의 공단 지대가 새로운 디지털 허브로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도시 외곽에서 시작된 변화의 시동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예전의 파리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디지털 허브 NUMA에 걸린 배너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는군요. “Entrepreneurship is a state of mind”일론 머스크에 대해서는 그가 일련의 사업적 기록을 세우고 화제의 중심에 설 때마다 이런저런 책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공인한 평전은 이 책이 유일합니다. 블룸버그 전문기자인 애슐리 반스는 비교적 균형감있게 공과를 기록했습니다.여러가지 갈래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선 미국 신경제의 역동적인 흐름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어떻게 사업으로 발전하고 사람은 어떻게 모으고 자금은 어떻게 끌어오는지 실제 사례로 소개가 됩니다.두번째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의 초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남아공 이민계인 머스크는 어메리칸 드림의 전형입니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의 상당수가 이민자 출신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야심가들이 미국 경제에 매번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머스크의 인품이나 덕망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여러 면에서 잡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잡스도 생전에 그 양면적인 모습 때문에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뜨거운 연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가 생전에 출간한 전기는 지금도 관련업계에서는 회자됩니다. 머스크도 못지 않습니다.한 시대를 읽는 방법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을 읽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디지털 혁신의 파도가 거세지는 요즘, 그 물살의 중심에서 헤엄쳐가는 야심가의 끝나지 않은 여정을 한번 감상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애슐리 반스 지음 |안기순 옮김|김영사|584쪽|1만8000원​​
  • 2015-05-18
    ​그러고 보니, 전국노래자랑을 안 본 지 꽤 됐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방송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 역시 추억의 프로그램으로 기억합니다.오래 전, 그때는 지금처럼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지요. 일요일 낮 무료한 시간대에 TV를 켜면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인사말과 함께, 마치 동네를 찾아온 유랑극단처럼 경쾌한 반주에 맞춰 갖가지 노래와 장기를 보여주곤 했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무엇보다 생생한 것은 ‘땡!’ 혹은 ‘딩동댕동~’ 하는 실로폰 소리 판정과 함께 참가자의 희비가 엇갈리던 순간입니다. 그럴 때면 함께 보고 있던 식구들도 박장대소하거나, 아쉬움의 탄성을 발하곤 했지요. 언젠가는 시골에 사는 친척 아무개가 이 프로에 출연하니 꼭 보라는 이야기를 해왔던 것도 기억납니다.그 버라이어티의 무대를 한결같은 박자로 이끈 사회자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송해 선생(올해 89세인 이 분만큼은 이런 존칭을 써도 될 듯 싶습니다)입니다. 가설 무대 위의 악단과 더불어 프로그램의 붙박이 소품처럼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람이지요. 작달막한 체구에 구수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목소리로 경향 각지 별난 출연진의 튀고 나는 언행들을 척척 잘도 받아주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그런 관록의 주인공이, 이런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사실, 신간을 받아든 순간 제 눈길을 맨먼저 사로잡은 것도 표지에 실린 주인공의 흑백 사진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참을 들여다 봤습니다. 사진 속 눈동자에 제 시선이 붙들렸는데,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습니다. 둥근 안경테 너머 두 눈두덩에 묻힌 눈망울에 물기가 촉촉히 어려 있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책 앞 부분에서 이런 말을 꺼내더군요. 이 높은 정상 위에 선 화려한 ‘딴따라’의 저변에는 남 모를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다고 말입니다. 왜 그런가.그 긴 사연이 굽이굽이 강을 이룹니다.일제 시대 1927년 4월 황해도에서 7남매 중 막내아들로 출생.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 입학 후 ‘선전대’에 들어가 북한 전역을 돌며 사회주의 이념 전파에 봉사.6.25 전쟁 중에는 군예대원으로, 다시 통신병으로 복무.휴전 직후에는 악극단원으로 전국 유랑.1960년대 숱한 라디오, TV 방송에서 활약.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 진행 시작. (현재 27년째)201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수상.말 그대로 한국 현대사와 대중문화사의 산 증인이라 하겠습니다.지금은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연예인에,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넘치는 유명인사지만, 그래도 그는 한없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중요한 어떤 것을 잃어버렸고 그것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중요한 어떤 것’이란, 삶의 어느 순간 망연하게 생이별을 해야 했던 고향 땅과 어머니입니다. 젊은 시절 동족상잔을 맞아 1.4 후퇴 때, 엉겁결에 동네 청년들과 집을 나서며 어머니께 “잠시 또 피했다 오겠습니다” 한 것이 영영 작별 인사가 되고 말았다지요.아픔은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제대 후 두부 사업에 실패하고, 떠돌이 악극단 생활에 나섰다가는 생활고에 비관해 투신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또 연예인으로 입신을 한 후에도, 다 큰 아들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뜨는 횡액을 겪기도 했습니다.그가 저자와의 첫 만남에서 했다는 첫 말이 “생애 전체가 공포였다”는 대목이 빈말 같지 않습니다.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늘 성공의 마지막 정거장만 주목하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가 겪어 온 위기와 고통과 절망의 세월 없이 오늘날의 그는 없다.”저자가 인간 송해에게서 주목하는 것도 “그가 한국현대사와 더불어 늘 위태로운 길을 걸어오면서도, 인간으로서 숭고한 여러 가치들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잃기는커녕 그가 겪어 온 위기의 세월은 그를 더욱 웅숭깊은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눌러 씁니다.그 ‘웅숭깊음’의 일화들이 본문을 구석구석 장식합니다. 그 중 하나가 그가 언행일치로 보여주는 직업 정신입니다.“내 직업을 천직으로 아는 사람은 같은 무대에 백 번 나와도 백 번 긴장하며, 관객이 단 한 명이 있더라도, 만 명의 관객이 있다는 자세로 대한다… 관객들은 단 한 번도 동일하지 않다.”송해 선생은 ‘낙원동의 칸트’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녹화나 행사가 있는 때를 제외하고는 생활이 그렇게나 단순 소박하고 규칙적이어서입니다.“선생은 이런 정해진 패턴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유명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생활이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무대 위에서 그가 보여주는, 그의 나이를 무색케 만드는 폭발적인 에너지는 이 순수하도록 단순한 시간의 축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그의 곁을 밀착해 관찰한 저자의 해석입니다.오랜만에 읽게 되는, 사람 향기 물씬한 인물 평전입니다. 글도 잘 읽힙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송해의 개인사와 이 땅의 대중문화사를 잘 교직하는 한편, 자신이 겪은 주인공의 면면과 소감을 맛깔스럽게 교차시킵니다. 무엇보다, 거인 송해를 화려한 인기 연예인으로만 보기보다,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진 ‘외롭고 높고 쓸쓸한’ 영혼의 분투와 고독과 슬픔을 읽어낸 안목과 솜씨가 돋보입니다.어딘가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하는 선생도 그것을 듣는 나도 참 많이 울었다”고 쓴 대목이 있더군요. 읽는 저도 이따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본문 어느 한 문장에는 굵은 밑줄을 긋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입니다.“언젠가 우리 모두는 남루(襤褸)가 된 육신을 지상에 버리고 적멸(寂滅)의 숲으로 하나 둘 사라질 것이다. 빌건대, 그에게 그런 순간이 가능한 한 더디 오기를.”저 또한 같은 마음입니다. 또 하나. 부디 이런 평전이 많이 쓰이고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입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오민석 지음|스튜디오 본프리|351쪽|1만3800원 
  • 2015-04-22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우리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요즘 구설에 오른 충청도 화법에는 “내 마음 나도 몰러유”라는 표현도 있어 듣는 사람 속을 태운다지만, 정말이지 사람 마음만큼 알기 어려운 것도 없을 겁니다.사실 ‘마음’이라는 단어부터가 그렇습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도 그렇게 명료하지가 않다는 사실을, 이번 북리뷰를 쓰는 중에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우리는 답답해 하지만 정작 마음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정신? 영혼? 의식? 기분? 우선 이런 관련어들이 떠오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마음이라는 개념에 정확히 대응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찌 보면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이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국어사전을 한 번 찾아봤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운용하는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나옵니다. 네 가지 뜻이 있더군요.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잡는 공간이나 위치. 4.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가지는 관심.대단히 포괄적이지 않습니까? 개인의 성격부터 감정, 의지, 생각, 기억, 관심까지 뜻할 수 있다고 돼있지요. 이럴 때 제대로 된 우리말 어원 사전이라도 있어 말의 유래를 따져볼 수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봐도 마음의 어원에 대해서는 도무지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이번엔 한자어로 추적해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말로 마음을 뜻하는 한문은 심(心)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한문 시간에 배웠듯이, 이 글자는 사람의 심장(心臟)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상형문자에 해당합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우리의 마음이 머리가 아닌 가슴 한가운데 심장에 있다고 본 거지요. 제 추측으로는 옛날 사람이 볼 때 두뇌는 그저 딱딱한 ‘바가지’에 불과한 데 반해, 가슴은 콩닥콩닥 뛰거나 감정의 기복에 따라 벌렁벌렁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런 유추를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뭏든, 그래서 마음과 관련되는 한자말에는 모두 심(心)자가 들어갑니다. 심신, 본심, 변심, 결심, 심상 등등… 허다합니다.심지어 머리에서 나오는 듯한 생각마저도 예전에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본 모양입니다. 생각 ‘사(思)’와 생각 ‘상(想)’이라는 글자만 봐도 그렇습니다. 본래 思에서 心(마음 심)의 위에 있는 田(밭 전)은 囟(정수리 신)이 변한 글자라고 합니다. 무릇 생각이란 심장에서 정수리를 통해 밖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이라고 본 거지요. 또 想(생각 상)의 경우는 서로(相)의 마음을 생각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요컨데 고대 중국 사람들은 ‘마음의 작용’이 바로 생각이라고 여겼던 듯합니다. 유학의 다른 말이 심학(心學)이기도 합니다.마음의 뜻에 대한 의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이번 선정 도서의 제목이 ‘마음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영어 원제목은 ‘The Future of the Mind’입니다. 영어의 mind를 마음으로 번역한 거지요.그러면 영어에서 mind는 뭘 말하는 걸까요? 다시 한번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의식과 지각, 사고, 판단, 기억을 가능케 하는 일련의 인지적 능력’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대체로 두뇌에서 나오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서양에서 말하는 mind는 심장이나 가슴보다 머리 쪽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물론 서양에서도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이 머리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두뇌를 필요 없는 장기로 생각해, 파라오의 시체를 방부 처리할 때 머리에서 두뇌를 깨끗하게 제거했다지요.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의 영혼은 두뇌가 아닌 심장에 있다고 믿었다고 전해져 옵니다.하지만 근대 철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데카르트 시절만 해도 우리의 사고 작용은 두뇌의 어느 부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과학적인 해부학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겠지요. 이 책 ‘마음의 미래’에서 논의되는 이야기도 대부분 우리의 두뇌에 관한 것입니다.최근 들어 두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국내외 뇌과학 서적이나 그에 따른 응용서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모두가 관련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입니다. 이 책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1990년대~2000년대 사이에는 자기공명영상(MRI)을 비롯해 두뇌를 스캔하는 각종 장비가 개발되면서 신경과학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지난 15년 동안 두뇌와 관련해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의 양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지식보다 훨씬 많다. 그 결과 과거에는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인간의 정신세계가 지금은 신경과학의 주된 연구 분야로 떠올랐다.”혹자는 지금의 상황을 두고 과학적 탐구의 마지막 블랙박스로 남아있던 ‘두뇌’가 드디어 열리기 시작했다는 말도 합니다.(뇌과학 혁명에 대해서는 예전에 이런 기획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28/2011032802425.htm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29/2011032902533.htm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4/01/2011040100039.html이 책은 ‘끈 이론’과 ‘평행우주론’의 창시자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가 쓴 책입니다. 예전에 칼 세이건이 맡았던 것과 같은 대중을 위한 과학지식의 안내자로서 내놓은 교양과학서입니다.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및 관련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과 연구 성과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서 소개했습니다.저자는 여러 학자들의 견해들을 검토한 후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두뇌를 거대한 주식회사에 비유합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인간 두뇌에는 거대한 관료체계와 일련의 지휘계통이 존재하며, 방대한 정보들이 수많은 사무실 사이에서 수시로 교환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는 최종 결정권자인 CEO의 지시에 따라 처리된다. CEO는 주식회사 안에서 유통되는 복잡다단한 정보를 모두 알 필요는 없다.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보만 알고 있으면 된다... 이성적 사고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비상시에는 가동이 적절치 않다. 이 때는 하위부서에서 상황을 빠리 판단해 CEO나 중간임원의 결재 없이 결정을 내리는 게 상책이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비단 평소 뇌과학에 대한 취미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이 책을 눈여겨 봐야 할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날 이 분야야말로 가장 중요한 지식의 프론티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지금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나 앞으로 더 많이 나올 저작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기본 과정으로 이 책은 맞춤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 여러 권 몫을 합니다.그만큼 책이 포괄하는 범위는 넓습니다. 의식과 자아에서 시작해, 기억과 망각, 꿈과 무의식, 인공두뇌와 외계인의 접촉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전방위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모두가 공상과학으로 분류됐을 법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과학적 실험과 연구를 거쳤거나 근거를 두고 하는 말들입니다. 격세지감입니다. 저자는 확인된 사실과 추론, 가설을 분명히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이 또한 믿을 만한 저자의 미덕입니다.저자는 본문 중에서 데이비드 이글먼 박사의 말을 인용해 말합니다. “뇌는 자연이 창조한 경이로운 걸작이다. 그리고 두뇌분석 기술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면서 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는 정말로 운 좋은 사람들이다. 뇌는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것 중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말에 다시 한번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는 않은 책 ‘사피엔스(Sapiens)’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류가 자연 선택의 법칙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적 설계의 길로 분기해 나오기 시작한 지점에 바로 인간의 특출난 뇌와 독특한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치오 카쿠를 비롯한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의 시각이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의 말로 맺음을 대신할까 합니다.“유전학적 계산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7만~10만 년 전 지구에는 겨우 수백, 수천 명의 인간만이 살았다. 이 소수의 인류가 전 세계를 탐험하면서 다른 동물을 압도하고 지구 전체를 장악한 것이다. 여러 차례의 멸종위기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 해도, 의식이 있는 생명체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식’은 그 자체만으로 매우 값진 존재이다. 아마도 이것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고 희귀한 존재일 것이다.”사방에서 무성하게 들려오던 뇌과학의 온갖 풍문과 진상을 이번 독서를 통해 한번 갈무리하는 기회로 삼아 보시기 바랍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미치오 가쿠 지음 | 박병철 옮김|김영사|580쪽|2만4000원 
  • 2015-04-14
    ​“아이스크림은 원래는 폭죽을 만드는 데 쓰이던 화학반응을 응용하는 과정에서 발명됐고, 그것을 과일시럽에 응용하여 레모네이드, 아구아 프레스카, 소다수가 만들어졌다. 아이스크림 맛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인간들이 짓는 미소의 진화론적 기원과 놀라울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문 중에서)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기억하시는지요? 작년 여름 북클럽에서 함께 읽은 책입니다. 서 교수는 행복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오해를 차례로 격파한 후에 이런 결론을 내렸지요.“행복이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그러고 보면 우리의 일상 중에서 먹는 것만큼 ‘큰 일’도 없습니다. 가족끼리든 친인척끼리든, 아니면 친구지간이든, 회사 내에서든 다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는 회식은 대단히 중요한 일에 속합니다. 중요한 대소사 자체가 대개는 관련된 사람들이 다같이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 형식을 취하곤 합니다.군대를 갔다 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보급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특별히 어떤 근거나 권위가 있는 말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 그만큼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겠습니다만, 사실 ‘먹는다는 것’만 해도 쓰이는 맥락에 따라서는 의미가 꽤 달라집니다. 우선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차원의 먹기가 있겠습니다. 흔히 우리가 ‘끼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옛날 ‘보릿고개’를 연례 행사처럼 넘어야 하던 시절에는 하루 삼시 세 끼를 떼우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아침에 사람을 만나서 인사를 하면서 묻는 말이 “아침 드셨습니까?”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마 젊은 세대는 무슨 말이냐며 어리둥절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저는 3남 3녀 중 다섯 째로 자랐습니다만, 어머니가 아침마다 부뚜막에 도시락을 산처럼 쌓아 놓고는 등교하는 저희 형제자매에게 순서대로 건네주곤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만 해도 ‘큰 일’임에 틀림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급식 빵과 우유를 싼 값에 나눠주곤 했지요.다행히 이제는 먹는다는 것이 이처럼 끼니를 떼우는 차원은 넘어선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아직도 가난한 가정 학생들의 경우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학교에서 급식을 해줘야 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또 요즘도 서울역 앞이나 공원에서는 노숙자들을 상대로 무료급식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이런 것은 일반적이라기보다는 예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요즘은 오히려 그냥 먹는 것보다 ‘어떻게  잘 먹느냐’가 더 중시되는 것을 봅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다이어트를 위해 소식을 하거나 아예 굶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입맛이 없어서 건너뛰었다는 말들도 심심찮게 합니다. 옛날 같으면 입밖에 냈다가 어른한테 불호령이 떨어졌을 법한 ‘배부른’ 말이지요.요즘 TV를 켜기만 하면 나오는 ‘먹방’ 얘기는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신문이나 잡지, 다른 매체에도 먹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맛기행이나 맛집 탐방 같은 연재물도 예전엔 신문의 인기 코너였지요. 지금도 음식과 요리, 식당 이야기는 모든 매체들의 인기 콘텐츠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들도 이제는 다들 한 끼를 먹더라도 맛집을 찾아가고, 이왕이면 식도락을 즐기려고 합니다.특히 최근에는 맛집을 찾고 미식을 즐기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해서 먹는 요리 문화에도 우리 사회가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삼시 세끼’라는 TV 코너에서 모델 출신의 잘 생긴 연예인 차승원이 갖가지 음식 솜씨를 발휘하는 것을 보면서 ‘요섹남’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남자들 사이에서 요리책이며 요리 수강이 인기라지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자기 집 냉장고까지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요리 이야기를 풀어가더군요.이번에 함께 읽게 된 ‘음식의 언어’는 어찌 보면 그런 음식과 요리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 상에 있으면서,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에 속하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 즐기고 요리를 하는 데에만 그칠 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식견도 넓히고 식탁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눠보자는 거지요.저자가 요리사나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언어학을 빅데이터로 연구한 인문학 교수라는 점부터 특이합니다. 본문을 읽어 보면 저자 역시 상당한 미식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만, 어디까지나 책의 내용은 음식을 너머, 그것의 유래와 이름에 얽힌 다양한 숨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재미있는 사실들이 참 많습니다. 케첩이라는 단어가 중국 푸젠성에서 쓰던 발효된 생선 소스에서 기원했다거나, 마카롱과 마카로니가 다같이 달콤한 가루반죽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셔벗과 소르베, 시럽이라는 단어가 동일한 아랍어 단어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나, 중국집의 포춘 쿠키가 사실은 서양 식사의 필수 코스인 디저트를 흉내낸 것이고 기원은 일본 식당이라는 것도 저로서는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칠면조가 어쩌다 지중해 동부 무슬림 국가명인 터키라 불리게 됐는지, 서양에서는 건배를 할 때 왜 ‘토스트’라고 외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알아 두면 어느 회식 자리에 가더라도 화제로 풀어놓기 좋을 것 같습니다. 페루의 세비체, 영국의 피시앤드칩스, 일본의 덴푸라 요리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무엇보다 저로서는 앞으로 어느 비싼 고급 식당에 가더라도 메뉴판에 적힌 길고 난해한 프랑스 코스명 앞에서 주눅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각 장별로 독립된 이야기가 에피소드처럼 이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각 장에 대한 흥미 여부나 호불호가 엇갈릴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독자에 따라서는 어떤 장은 이미 아는 내용의 것일 수도 있고 이걸 알아 뭣하나 싶은 내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장들은 적당히 건너뛰거나, 읽고 싶은 것부터 내키는 대로 골라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자도 그런 독서법을 권합니다.제 경우는 7장 ‘섹시와 스시, 마약과 정크푸드’와 12장 ‘크래커, 더 맛있는 소리’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다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은 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주로 서양 요리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나마 요즘은 웬만한 서양 음식들도 국내에 꽤 들어와 있거나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에 나가서 현지 음식을 접할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더욱이 지금은 서양 요리라고 알려져 있는 것들도 정작 기원을 찾아들어가 보면 아시아나 아랍, 남미 같은 이방의 것이거나, 아예 지역 간에 상호 교차 진화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어렵잖게 알 수가 있습니다.저자도 각 장마다 시작과 끝 부분에 붙인 말들을 통해 음식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양면성을 강조합니다. 비단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화 전반에 걸쳐 해당되는 통찰이라고 하겠습니다. 가령 이런 대목들입니다.“여러 민족이 문화적 보물이기나 한 것처럼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요리들의 유래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우리 모두가 이민자라는 사실이다. 어떤 문화도 고립된 섬이 아니며, 문화와 민족과 종교 사이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경계에서 어떤 훌륭한 특성이 창조된다.”“혁신은 언제나 작은 틈새에서 발생한다. 근사한 음식도 예외가 아니어서, 문화의 교차점에서 각 문화가 서로 이웃에게 빌려온 것을 수정하고 더 훌륭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쳐 창조된다. 음식의 언어는 이런 장소들 ‘사이’를, 고대에 일어난 문명의 충돌과 현대의 문화 충돌을 들여다 보는 창문이며, 인간의 인지, 사회, 진화를 알게 해주는 은밀한 힌트다.”맛 속에 숨겨진 그 은밀한 힌트들을 혀끝과 함께 머리로 하나둘씩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댄 주래프스키 지음|김병화 옮김|어크로스|407쪽|1만7000원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 2015-03-31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 지음|유영훈 옮김|레디셋고|219쪽|1만5000원10년 전쯤 남미에서 주재원으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각국으로 출장을 다니다 보면 수도의 기본 구도가 비슷한 것을 봅니다. 대개가 똑같이 지리상 발견의 선구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건설되었거나 그 문화를 물려받았기 때문이지요. 도시 중앙에 넓은 광장이 자리잡고 있고, 그 주변으로 대통령궁이나 시청, 성당 같은 주요 공공 건축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른바 콜로니얼 양식입니다.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적잖은 도시들이 저마다 케이블카를 설치해 두고 있다는 겁니다. 이 역시 일찍이 지배층의 필요나 취향에 따라 건설된 것이 그 후에는 다른 도시에도 유행처럼 파급된 것 아닌가 저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 덕분에 높은 산이나 고지대에 올라가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맨먼저 그런 케이블카를 찾아 타고 올라가 전체 지형을 가늠하는 게 절차처럼 되었지요.그 뒤로도 미국이며 유럽으로 여행을 가서도 우선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산이든 탑이든 망루든, 고층 건물이든)을 찾아 올라가 전모부터 파악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습니다. 그게 여행 중의 방향감을 익히고 길을 찾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얼마 전 방한한 ‘바른 마음’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 교수도 인터뷰 도중에 재미있는 말을 하더군요. 자신은 어릴 때부터 나무 위든 지붕 위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는 겁니다. 거기서 보게 되는 광경이 가슴 벅찬 경외감(awe)을 자아내는데, 그 느낌이 무척 좋았다고 했습니다. 경외감이란 예전부터 서양철학사에서, 또 현대에 와서는 심리학에서도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지 대상이 자신을 압도하는 경지의 특별한 느낌을 말합니다. 어떤 대단한 광경이나 경이로운 순간을 접했을 때 입이 절로 벌어지는 전율 같은 것 말입니다.발밑이 아득하도록 높이 올라갔을 때 그 아래로 보이는 세상은 퍽이나 왜소해 보입니다. 내가 평소에 그렇게나 아등바등 발버둥치며 살아야 했던 것들이 그 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하찮게 보이는지요. 고작 그렇고 그런 일들 때문에 내가 그토록 심각하게 얼굴을 붉히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어야 했던가 싶은 부끄러움이 절로 듭니다. 건강한 삶의 원근법을 그제서야 되찾는다고나 할까요.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미경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망원경 같은 책이 있고, 어떤 책은 천체 망원경 같은 것도 있습니다.제가 요즘 한동안 빠져 있었던 책은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라는 영문 서적입니다. 지난 2월 미국에서 먼저 나온 신간입니다. 국내 출판사에서도 한창 번역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우리 말로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출간돼 나오면 틀림없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천체 망원경 같은 책입니다. 마치 높은 나무 위, 혹은 산봉우리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풍경이 장관입니다.이른바 ‘빅 히스토리’ 계열의 책입니다. 빅 히스토리라는 것은 우리가 그전까지 배워온 역사보다 훨씬 더 넓은 차원에서 기술한 역사를 말합니다. 예전에는 문헌 기록의 여부를 기준으로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구분하고, 주로 후자만을 역사에 포함해 왔다면, 빅 히스토리는 문헌 이외의 증거(화석, 유전자 등의 실증적 자료)들까지 포함해 그 이상의 범위까지 이야기를 확대한 것입니다.우주의 기원이라고 얘기되는 빅뱅부터 최신 현대인의 생활 기반인 인터넷 시대까지 망라한 광폭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은 진화생물학적인 접근법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류도 물리학, 생물학,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설명돼야 하는 탐구 대상에 속합니다.그런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이 책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교수가 말한 바로는  7만년 전의 ‘인지 혁명’과 1만2000년 전의 ‘농업 혁명’, 그리고 500년 전의 ‘과학 혁명’입니다.하라리는 특히 과학 혁명에 주목합니다. 이로써 인류는 생물학적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단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문화적 선택 내지는 지적 설계에 의한 진보로 나아가게 됐다고 말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하라리 교수와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대니얼 캐너먼의 대담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spiegel-cover-story-how-silicon-valley-shapes-our-future-a-1021557.html이 단계에서 중요한 바퀴로 등장한 것이 생명공학과 로봇공학입니다.그렇지 않아도 요즘 부쩍 인공지능이며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습니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같은 실리콘밸리의 IT 혁신 기업가들도 저마다 인공지능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든 상태입니다.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런 움직임을 얼마 전 커버스토리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젊은 혁신가들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우려 섞인 제목을 뽑았지요. 이 역시 관심 있는 분은 일독을 권합니다. http://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spiegel-cover-story-how-silicon-valley-shapes-our-future-a-1021557.html조선비즈 북클럽은 이미 지난해 10월 ‘제2의 기계시대’라는 책을 함께 읽은 적이 있습니다. 18세기 증기기관에 의한 산업혁명에 이어 지금 다시 두 번째로, 로봇에 의한 2차 기계혁명을 맞고 있다는 진단이었지요. 이번 선정 도서 ‘로봇 퓨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로봇이 도래했을 때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상상에 의존한 픽션 작가가 아니라, 로봇에 관한 한 미국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카네기멜런대학의 로봇공학 교수가 쓴 책입니다.각 장(章)마다 로봇이 개발된 이후 벌어지는 미래의 상황을 묘사한 후, 거기서 우리가 봉착하게 될 가능성과 문제점을 함께 짚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 나온 이 분야의 책 중에서 가장 최신의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비교적 쉽고 균형 있게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그래 봐야 아직은 먼 훗날에 닥칠 일 아니냐구요.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지금은 거의 모든 일상의 것들을 의존하는 스마트폰만 보더라도 국내에서 상용화된 지는 5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2008년 가을 제가 미국에 가서 처음 킨들과 아이폰,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쓰기 시작하고는 이듬해 귀국했을 때 국내에는 네 가지 다 아예 없거나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습니다.무인(자율주행)자동차만 해도 그렇습니다. 구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이미 구글은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올해 안으로 일반인을 상대로 시험 주행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여러 분야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발전 속도가 이전의 주기로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습니다.국내 데이터 마이닝의 전문가인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지금의 상황을 두고 아예 ‘미래진행형’이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그전까지는 먼 미래의 공상과학 정도로 생각했던 일들이, 얼마 가지 않아 곧바로 현실로 곧 닥치곤 하는 사실을 형용모순의 합성어로 이야기한 거지요. 이미 이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미래는 일상 속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로봇 퓨처’가 국내에 번역돼 나온 것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또 다른 로봇 관련서 한 권도 눈길을 끕니다. 국내 저자가 쓴 ‘로봇 정신’(월간로봇)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로봇에 관심 있는 분은 이 책도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저자인 한재권 박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로봇 공학자이기도 합니다. 현재 세계 로봇 대회 출전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조선비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로봇은 짧게는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우리 삶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아무런 대비도 없이 로봇을 받아들였다가는 사회가 겪을 혼란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계속해서 한 박사는 말합니다.“로봇은 다른 기술과 달리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발전의 방향을 잘 잡아야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 때 처음 잘못 들인 버릇과 생각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는 잘 고쳐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로봇은 지금 막 첫 돌을 지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지금 이 때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잘 잡아야 로봇을 부작용 없이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로봇에 대한 생각은 무엇보다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전적인 물음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을 점점 닮아가는 기계를 보면서, 인간에 대한 가졌던 일말의 신비로움마저 사라져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 신의 형상을 닮았다고 믿어왔던 인간이 신화적 세계관을 잃고 나서도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홀로 설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인간의 놀랄 만한 능력에 대한 경탄 혹은 두려움과 더불어, 인간 자신의 보잘것없음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 저로서도 궁금하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새로운 전인미답의 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숨 고르기를 해야 할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길목에서도 여전히 책은 사색을 위한 우리의 좋은 반려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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