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8-12
    2015-08-12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학계의 최신 현장 소식을 전하는 ‘지식의 최전선’ 두 번째로 세계수사학사회 학술대회 참관기를 소개한다. 수사학(修辭學)이란 설득의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민주주의 시대, 만인이 연결돼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에 중요성을 더해가는 분야다. 이번 학술 대회는 지난 7월 27일~8월 1일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열렸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김헌 HK연구교수가 참관기와 함께 수사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 IS가 주도하는 불순한 행사?”세계수사학사회 학술대회(Biennial ISHR Conference)는 197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해 올해로 20회째다. 격년제로 열린다. 올해 전체 주제는 “문화를 가로지르는 수사학(Rhetoric across Cultures)”이었다. 40여 개국에서 500여 편의 논문이 제출돼 이 중 300여 편이 엄선돼 프로그램을 채웠다.한국학자들은 2005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제15회 대회부터 참가했다. 이번에는 10명이 참가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연구교수 4명은 별도 분과도 구성했다.“이 학술대회는 IS가 주도하는 불순한 모임인가요?”현지 학술대회 포스터 앞에서 찍은 사진을 한국에 보냈더니, 한 교수가 이렇게 물었다. 행사의 영문 약자인 ISHR의 앞쪽 두 글자를 두고 던진 농담 섞인 질문이었다. 물론 여기서 ‘IS(International Society)’는 그 위험한 ‘IS(Islamic State)’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튀빙겐 학술대회장 앞.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들. 왼쪽부터 안재원, 김헌, 박배형, 서정일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회가 ‘불순한’ 모임으로 오해받을 여지는 여전하다. 약자 중의 ‘HR(the History of Rhetoric)’ 때문이다. 수사학(Rhetoric)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때부터 지금까지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었다. 학문적인 의심과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도 수사학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사람들은 말한다. “수사학은 위험하다. 멋있고 아름답게 말하지만, 그 결과는 심각하다. 그럴듯하고 감미로운 말로 최면을 걸듯 사람들의 지성을 마비시킨다. 마치 동화 속의 피리 부는 마법사가 쥐들을 절벽으로 이끌고 가듯, 어린 아이들을 마을에서 끌어내 낯선 곳으로 이끌어가듯, 듣는 사람들을 홀리게 만드는 언어의 마법, 그것이 수사학이다.”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 중 하나가 수사학이라는 말도 있다. 동의하기 힘든 내용을 반박하기 어려운 말에 담아 청산유수로 흘려 내보내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정치의 조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말이 그럴듯하다고 내용이 참된 것은 아니다. 설득에 성공한 정치가가 항상 훌륭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도 아니다.정치가에 대한 실망은 그가 말로 그려낸 미래가, 때가 되어도 실현되지 않고 속임수였음이 드러날 때, 그를 믿었던 사람들 마음속에 무너지듯 생기는 최악의 감정이다. 수사학이 무지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의 손에 주어질 때 그 위험성은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심과 경계의 눈빛으로 수사학을 바라본다. 수사학이 삶과 학문, 정치와 같은 진지한 영역에서 제거되길 바란다. 수사적인 말은 그저 여흥거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문학이나 영화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용도로만. ‘내 마음은 호수, 그대는 노 저어’와 같은 감미로운 시적 표현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문학적으로 멋을 부리는 표현의 기술쯤으로 수사학의 핵심을 찾으려고 한다.수사학이 언어 유희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공동체의 삶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거부감을 보인다. 치열하게 논쟁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심각한 학문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이런 상황에서, 수사학을 논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의 학자가 모여든 것은 ‘불순한’ 모임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수사학을 학문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무엇에 쓴담? 또 누굴 홀려서 무슨 짓을 하려고?”▲ 중세 학교에서 수사학을 강의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수사학에 대한 경계와 낙인과연 그런가. ‘수사학’은 본래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레토리케(rhētorikē)’를 옮긴 말이다. 그대로 옮긴다면 ‘연설가(rhētor)의 기술(-ikē)’이다. 아닌 게 아니라 수사학은 의회나 법정에서 청중을 설득하는 기술이었다.아테네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험한 곳이었다. 자유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정치 체제. 그곳에서 일반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정이나 의회에 나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상대를 공격했다. 공론의 장에 모여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논쟁하고 타협하면서 공공의 의견을 만들어나갔다.이런 곳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의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연설의 달인, 설득의 명수, 그들의 기술을 수사학이라고 했다. 그것은 잘만 사용하면 유용하고 건전한 것이었다.하지만 자칫 그것을 나쁜 맘을 갖고 악용할 경우에는 도시를 위험한 길로 들어서게 할 수도 있었고, 좋은 맘을 갖더라도 무식하다면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때가 그리스 문화의 황금기요 고전기라 불리는 기원전 5~4세기였다.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런 수사학을 공격했다. 진지한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위험한 장난이라고 비난했다. 수사학을 가르치며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소피스트들을 비판하며 공격했고, 대중 선동을 일삼는 정치연설가들에 대해서 극도의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말하는 사람에겐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리고 이기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도덕성. 무지와 부도덕성이 만날 때, 수사학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플라톤은 외친다. “말하는 자여, 그대가 말하는 것에 대한 진리를 알고 있는가? 진리를 알면서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진실을 호도하며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참된 인식과 도덕성,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출 때만 수사학은 비로소 사람들의 영혼을 참된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수사학은 사람들을 거짓과 파멸의 길로 몰고 갈 것이라 했다. 문제는 그런 이상적인 수사학은 이 땅에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왼쪽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와 이소크라테스의 변론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보다는 긍정적으로 수사학을 바라봤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몸이 아니라 영혼으로 살아가는 존재며, 영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성,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말(logos)의 사용이다. 말을 잘해야 인간 노릇도 제대로 한다는 입장이었다.그는 부당한 폭력에 맞서 몸으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말로써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훨씬 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말을 잘 해야 하며,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사학은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철학적으로 정제된 수사학을 체계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은 플라톤의 수사학 비판에 대한 철학적 반발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플라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이소크라테스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기도 했다. 이소크라테스는 누구인가? 그는 소크라테스만큼이나 영향력이 있었고 당대에는 플라톤보다 더 유명한 지식인이며 교육자였다. 기원전 4세기 초반에 플라톤보다도 먼저 학교를 세우고 ‘철학’을 가르쳤다.철학은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옮긴 말이다. ‘지혜(sophia)를 사랑하기(philo-)’라는 뜻이다. 철학을 정의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놓고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는 서로 대립했다. 플라톤은 감각적이고 변화무쌍한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짜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데아(Idea)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지식(epistēmē)이 참된 지혜며, 그것을 사모하고 열렬히 추구하는 노력이 바로 철학이라고 했다.그러나 이소크라테스는 이데아 같은 것은 없으며, 그런 걸 추구하는 것은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일갈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이 추구하는 지혜란 무엇인가? 이소크라테스는 한결 인간적이었다. 인간은 부족한 존재다.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을까? 그것이 그의 의문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만의 의견(doxa)을 가질 뿐이지 않은가? 따라서 지혜란 진리를 깨닫는 능력이 아니라, 상황에 잘 맞는 시의적절한 의견을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런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이 아닐까? 이소크라테스는 그런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를 ‘수사적 인간(rhētorikos)’이라 불렀다. 플라톤이 이소크라테스와 대립했던 것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소크라테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통합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수사학 최초의 이론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사학에 대한 까칠한 비판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서구 지성사 내내 수사학에 대한 비판의 칼을 갈았던 플라톤의 후예들은 끊이지 않았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수사학을 정당화하며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 또한 열렬하다. 그 열렬함이 세계수사학사회(ISHR)로 구현된 것이다.◆세계수사학회의 중심 튀빙겐이번 개최지인 튀빙겐은 세계수사학사회 학회가 열리기에 적합한 도시다. 1477년에 설립된 튀빙겐 대학은 1496년부터 수사학과 시학을 담당하는 학과장을 선임했고 일반수사학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내년이면 세미나 탄생 520주년을 맞는다. 1967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사학과’가 독립된 단일 학과로 세워지기도 했다. ▲ 튀빙겐 네카르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 휠더린의 성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들의 사연이 알알이 박혀 있다.튀빙겐 대학의 수사학과와 수사학연구소는 세계 수사학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며 미래를 전망하고 주도한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 이번 전체 주제를 “문화를 가로지르는 수사학(Rhetoric across Cultures)”이라고 잡은 것도 그와 같은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이번 학회를 서구 중심의 수사학에서 벗어나 보편 또는 일반 수사학을 지향하기 위해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대회를 주최한 만프레드 크라우스 세계수사학사회 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아랍권과 비잔틴, 아시아, 유럽, 북미 학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학문후속세대와 기성학자들 사이에 도발적인 질문과 원숙한 대답이 오가는 광경에서 수사학의 밝은 미래를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회 내내 전체 주제를 두고 날선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로마에 있는 ‘성서와 샘족어 수사학 연구소’ 소장인 롤랑 메이네(Roland Meynet) 신부는 그리스 로마에서 체계화되고 유럽으로 전승된 서구 전통의 수사학이 전 세계 각 문화권의 수사학을 설명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후원으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 한국 대표(아시아 대표 격) 안재원 교수도 이 점을 지적하면서 세계수사학사회의 미래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려고 했다.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수사학이라는 개념과 이론이 서구적인 기원과 역사를 두고 있는 터에, 모든 문명권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수사학은 어떻게 구상할 수 있을까? 결국 “문화를 가로지르는 수사학”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문명권의 개별 수사학들이 병렬하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일까? 물음은 남는다.이번 대회에서는 서구의 전통적 수사학 이외에도 아직은 소수지만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랍, 인도, 중국의 수사학이 소개됐다. 한국수사학회 회장인 이재원 교수는 신형욱 교수(한국외대 독문학)와 함께 한국 고유의 수사학 전통을 소개했다. 나민구 교수(한국외대 중문학)는 “치유의 언어와 수사학”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수사학의 특징을 ‘치유’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발표를 했다.수사학은 곧 설득의 기술이라고 규정하는 서양인들의 눈에 설득 대신 치유라는 말을 내세워 수사학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한국수사학 분과에 참석한 외국 학자들은 신선한 접근이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후원으로 열린 전체 라운드테이블 회의. 한국 대표로 안재원 교수(앉은 사람 중 맨 왼쪽)가 참석했다.◆“한국 고유의 수사학 더 알고 싶어”한국 분과에 참석한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의 가가린(Michael Gagarin) 명예교수는 이번 대회의 성과를 이렇게 평했다.“아주 다양한 학자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과 일본, 중국을 포함해 여러 지역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의 발표를 듣고 또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서구에서 수사학은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는다. 이것은 권위에 대한 무례함과 적대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발언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에는 군주제 같은 고도의 권위주의적 정치구조와 위압적인 종교적 텍스트가 없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반면 정치적 권위와 조상에 대한 존경심이 훨씬 더 컸던 동양에서는 연설가의 기술로서 ‘수사학’이 서구처럼 뚜렷하지도 높이 평가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나는 동양의 수사학에 대해 충분히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한국 학자들이 계속해서 이 학술대회에 참석했으면 한다.서양인들은 ‘동양 수사학’하면 중국만 떠올리는데, 오늘 발표를 들어보니 한국의 고유한 수사학이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다양한 교류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국제 무대에서 영어 소통은 숙제 문제는 학술 교류가 대개 영어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말을 잘 하는 기술로서의 수사학을 영어로 논해야 하는 한국인과 동양인의 어려움은 작지 않다. 우리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서양학자들과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 몸에 잘 맞지 않는 무장을 한 채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 심정이랄까?독일인 출신으로 나고야의 슈쿄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미히(Alexander Imig) 교수는 영어로 토론하는 한 레토릭(Rhetoric) 개념은 유럽 중심주의가 되며, 여기에 해당하는 ‘수사학(修辭學)’은 한자어 자체의 의미를 잃게 되므로 논의 자체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이처럼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학회에서 소통과 논쟁의 경쟁력을 가지고 서양 중심 학문체계를 비판하고 정말 보편적인 수사학을 구상하거나 비서구 수사학의 위상을 제대로 소개하고 정립하려면 지난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16대 회장이었던 프랑스의 페르노 교수. 한국의 수사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한국학자들의 적극적인 학회 활동을 독려했다.2007년 스트라스부르 대회를 개최했던 프랑스의 로랑 페르노 교수(Laurent Pernot)는 ISHR가 서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위한 제안을 했다.“유럽과 북미가 ISHR의 창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지금도 여전히 회원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ISHR은 다섯 개 대륙의 모든 대표자들에게 열려 있다. 한국은 특별히 ISHR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을 하니, 말하는 기술(또한 쓰는 기술)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두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를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이 ISHR의 임무이다.”수사학의 넓은 뜻은 ‘말을 잘하는 기술’이다. 말 잘하는 기술은 말하는 상황과 조건, 관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정의될 것이다. 그리스의 그것과 종교적 권위가 서슬 퍼랬던 중세의 그것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다른 방식으로 체계화하고 발전되었음에 분명하다.동양, 중국, 한국에서도 각각에 잘 맞는 말의 기술, 언어의 테크닉이 있었다. 페르노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한국 수사학은 한국에서 통하는 ‘말 잘하는 기술’의 체계와 역사를 다루는 학문이어야 한다. 그것의 고유한 체계와 구성, 방법과 의미를 잘 정리해서 논의의 마당에 내놓는다면 그것이 세계수사학사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수사학을 기치로 내건 학술대회에 덧씌워진 ‘불순함’의 혐의를 걷어내기 위해서. 수사학의 ‘불순함’은 사실 플라톤이 찍어 놓은 낙인 같은 것이다. 그것은 ‘수사학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사실에서 ‘수사학은 악용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비약한 것은 아닌가? 안재원 교수는 라운드 테이블에서 “이제는 플라톤의 자비를 구하는 방식으로 수사학을 연구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한국 수사학 분과 토론이 끝난 후 가가린 교수와 함께 한 한국학자들. 설득이 중심인 서구 수사학과는 다른 차원의 수사학이 가능하다 시각이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다.◆디지털 시대 말/글의 중요성은 여전 수사학은 말의 기술이다. 인간이 말을 하는 순간, 수사학은 작동한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떻게 내 생각을 잘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할 것인가? 이것이 수사학의 근본 질문이다. 이것이 수사학 연구자만의 물음일 수는 없다. 타인과 더불어 살며 말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고민이다.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페르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정보의 디지털화는 기술적인 혁명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말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말하고 쓰는 것은 기술 자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인류학적인 활동이다. 나는 입을 열어 직접 말을 하지만, 마이크를 이용하기도 하고 영상 녹화를 하기도 한다. 그것 모두가 다 ‘말하기’다.나는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철필로 밀랍 서판 위에 쓰기도 하며, 자판을 두들겨 스크린 위에 쓰기도 한다. 그것 모두가 다 ‘쓰기’다. 분명 코드의 변화는 있다. SNS에서 말하고 쓰는 행위는 간략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소통의 근본적인 과정은 그대로다. 이런 이유에서 수사학도 그대로다.”◆김헌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서울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수사학’을 비교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위대한 연설’ 등이 있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1/2015081101890.html 
  • 2015-08-12
    ​2015-08-07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바야흐로 지식 사회다. 학계도 쉴새없이 연구 성과를 쏟아낸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 중에는 캠퍼스 밖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정보와 지식, 통찰이 많다. 만인 학습의 시대, 앞으로 학계의 최신 현장과 소식들을 전한다. 첫 번째로 지난달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18세기학회 소식을 소개한다. 18세기는 유럽이 팽창하면서 세계화가 시작된 시기다. 한국18세기학회 회원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학회 사상 최대 규모였던 현장의 이모저모를 스케치한 참관기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지난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닷새 동안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18세기학회를 다녀왔다. 국제18세기학회는 계몽주의 시대를 연구하는 국제적인 학회다. 본부는 영국에 있다. 1967년 첫 모임을 가진 이래 4년마다 한 도시를 선정해 대규모 학회를 연다.올해 제14차 회의(ISECS 2015)는 네덜란드 제 2의 도시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대학에서 열렸다. 전체 주제는 ‘시장 개방: 18세기의 무역과 상업’이었다. 학회가 열린 네덜란드와 로테르담이 17~18세기 세계 무역의 중추였다는 사실에 착안한 주제였다.마르크 앙드레 베르니에(Marc-André Bernier) 학회장은 환영사에서도 그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로테르담의 경험이 계몽주의 시대에 세계시민 정신을 확산시켰고, 생산물의 무역이 그에 걸맞은 의식과 사상을 널리 전파하는데 크게 기여한 점을 주목했다.또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의 경계 허물기가 개인과 국가간 경쟁을 촉발했고 저개발국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구현된 면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테르담 성 로렌스 교회에서 열린 리셉션흥미로운 주제 덕분인지 이번 학술 대회에는 학회 사상 최대 규모인 1000명 이상의 학자들이 와서 발표하고 토론을 벌였다. 모두 53개국 학자들이 참가했고, 토론 분과는 230개나 됐다. 발표 제목을 안내한 책자만 해도 100쪽이 넘었다.내가 속한 국제18세기학회 한국 분회 회원들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학회 차원에서 분과를 조직해서 참가했다. 한국18세기학회는 1996년에 창립돼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이번에는 이용철(회장, 한국방송대, 불문학), 이충훈(한양대, 불문학), 이종묵(서울대, 국문학), 유동재(성균관대, 미술사), 이영목(서울대, 불문학), 최영진(중앙대, 정치학), 전종호(서강대, 불문학) 교수 등이 함께 갔다. 개인적으로 참가한 학자까지 포함해 한국 학자들은 모두 10여 명이었다.나는 8년 전 프랑스 몽펠리와 4년 전 오스트리아 그라쯔에서 열린 학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 행사가 차분하면서도 성황을 이룬 분위기라는 인상을 받았다.로테르담은 그 동안 봐온 유럽의 오래된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을 보여줬다. 17세기 세계 무역의 본거지로서 고풍스런 모습을 기대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오래된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깔끔하다 못해 냉정한 인상을 풍기는 현대식 건물로 채워져 있었다. 학회가 열린 에라스무스대학의 건물도 현대식뿐이었다.도시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전후에 도시를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대식 실험’으로 복구한 결과라고 한다. 도시 전체가 마치 실험적 건축물의 전시장 같았다. 18세기학회는 그 이름에 어울리게 18세기 내지 그 이전의 고풍스런 도회지를 개최지로 삼아오던 터여서 이번에는 줄곧 낯선 느낌이 들었다.나는 학회에 참가하면서 티머시 브룩의 ‘베르메르의 모자’(박인균 옮김, 추수밭)를 갖고 갔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예전에 사둔 것인데, 특히 제5장 ‘흡연학교’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다.올해 출간한 내 책 ‘담바고 문화사’를 쓰는 과정에서 읽었는데, 저자가 담배라는 하나의 물건을 통해 동서 문명이 접변하는 현상을 흥미롭게 서술한 것을 읽고 큰 인상을 받았던 책이다. <관련 기사: “인문학,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학회가 열린 로테르담이 이 책의 무대일 뿐만 아니라 전체 주제가 이 책의 주제와도 딱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책 전체를 읽었다. 그림 속 물건을 통해 그 시대 역사를 파악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그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깔려있지 않으면 그냥 스쳐지나가기 쉬운 그림 속 물건들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청화백자, 비버 펠트 모자, 담뱃대 그림, 지도, 저울, 흑인을 통해 동서양이 전지구적으로 연결되어가는 상황을 흥미롭게 포착해내고 있다.베르메르는 한평생 로테르담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델프트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림 속 물건을 통해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는 문화 접변 현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학회의 발표와 주변 도시의 여행은 시대를 거슬러 17세기 역사를 재생시켜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이번 학회에 발표된 논문의 소주제들은 무역과 시장의 개방에 관한 것이 많았다. 사치와 빈곤, 유행, 소비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있었다. 프랑스 학자들이 인삼의 전파에 관해 서로 다른 분과에서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이 눈에 띄었다.조선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인삼이 청나라를 통해 서구에 알려지고 그 때문에 캐나다 퀘벡에서 자생하는 인삼이 대거 생산돼 중국에 수출되는 과정을 분석한 내용도 있었다. 조선과 청나라가 인삼 채취를 두고 갈등하면서 국경에 목책이 설치된 것을 보여주는 지도를 거론하며 논의를 펼치기도 했다.▲ 발표자인 레이노 드니 교수가 인삼 형상의 18세기 자료 그림를 보여주면서 당시 만주족이 국경을 넘어 조선 인삼을 채취하려 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사회를 본 전종호 서강대 교수.18세기는 학문이 세분화되기 이전 계몽주의 시대의 학문이 주축을 이룬 탓인지 박물학과 자연학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강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서구 학계에서 주목하는 물질의 문제에 학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국제18세기학회는 창립 이후 현재까지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는 구도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시아 학회의 비중은 작은 편이다. 그나마 규모를 갖춘 곳이라면 한국과 일본을 들 수 있다.중국과 인도는 아직 이 학회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18세기나 프랑스 계몽주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탓일 것이다. 물론 학자 개인 단위로는 다수가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학회에서 그래왔듯이 어느 시기가 되면 중국과 인도도 학회 단위로 대거 등장하지 않을까 예상한다.한국18세기학회와 일본18세기학회는 2000년대 이후 공동 관심사에 뿌리를 두고 서로 협력해왔다. 그 바탕이 국제학회에서 교류하면서 조성됐다. 이제는 평소에도 상호 방문을 통해 교류하고, 국제학회가 열리면 함께 논문을 발표하는 분과를 만들기도 한다. 이번에는 불문학 전공자들이 주축이 되어 4개 분과를 공동 개설해 논문을 발표했다.그 중에서도 계몽주의 프랑스 철학자들의 생리학과 화학에 관한 분과 토론이 특히 흥미를 끌었다. 이충훈 교수와 테라다 교수가 각각 발효와 생리학의 문제를 다뤘다. 이 발표에 따르면 18세기에 수학과 물리학이 세계를 기계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맞서 생명의 연속성으로 설명하는 논리로 생리학과 화학에 주목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충훈 교수는 그것을 발효의 개념으로 설명했다.국내에서는 다소 관심 밖의 주제이지만, 프랑스 학자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 분과에 참여한다고 예고해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 학자들끼리는 한국의 발효식품 애호로 맞받아치면 될 것이라는 농담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일정 때문에 직접 보지는 못한 채 귀국했다. 나중에 전해듣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궁금하다.▲ 전 지구로 향해 뻗어가는 도시라는 델프트를 이어주는 운하. 17세기 네덜란드의 번영을 증언한다.학회 중간에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번영을 확인할 수 있는 도시를 관람했다. 델프트, 레이든, 헤이그, 암스테르담이다. 모두 기차로 이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운하로 연결된 고풍스럽고 한적한 도시는 지금이라도 어딘가에서 베르메르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돌아보거나 천천히 걸어서 살펴보니 도시 골목들이 잘 보존돼 있었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헤이그와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 본 베르메르의 그림은 17세기 세계사의 현장과 현실 속 고풍스런 도회지를 말없이 연결시켜주었다. 나로서는 베르메르의 그림(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을 통해 모든 것이 그야말로 인드라의 진주처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이번 로테르담 학회에서도 많은 정보와 견문, 지식과 소식을 얻어가지고 왔다. 티모시는 저서의 ‘세계 지도’ 항에서 “물건은 눈을 사로잡지만 정보는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썼다.이번 학회에서 발표된 많은 제목들과 잠깐 스친 풍경 곳곳에 불현듯 마음을 사로잡는 정보들이 숨어 있었다.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들도 속속 떠올랐다. 공부하고 저술하는 방향에서 생각할 거리가 생겼으니 이번 학회 참가도 적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고 해야겠다.◆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한문학의 깊고 넓은 세계를 대중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18세기학회장으로 있을 때 ‘18세기의 맛’을 펴내 호평을 받았다. 저서로 ‘선비답게 산다는 것’ ‘조선후기 시화사 연구’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고전 산문 산책’ ‘윤춘년과 시화문화’ ‘벽광나치오’ ‘궁극의 시학’ ‘담바고 문화사’ 등이 있다. 역서로 ‘소화시평’ ‘궁핍한 날의 벗’ ‘북학의’ ‘연경, 담배의 모든 것’ 등이 있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07/2015080701221.html​
  • 2015-07-23
    ​2015-07-23 윤예나 조선비즈 기자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그가 발에 힘을 주어 페달을 밟을 때마다 자전거가 앞으로 구른다. 자전거 뒷바퀴에 꼬리를 단 것처럼 한글 문장이 길게 이어진다. 벽면을 타고 물결치듯 흐르는 문장들은 모퉁이를 돌아 다른 벽 끝, 선반 위에 놓인 철가방 속으로 차곡차곡 스며든다.이 모든 것은 하얀 벽면 위로 펼쳐지는 빛의 실루엣이다. 그림자 남성은 소설가 김훈, 자전거는 그가 글을 쓸 때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풍륜(風輪) 5호'의 구현이다.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3층에 가면 이것을 볼 수 있다.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기획전의 일부다. 이곳에는 김훈이 산책 중에 주워 서류나 원고 보관함으로 썼다는 중국집 철가방도 함께 전시돼 있다. ▲ 사진 왼쪽은 소설가 김훈이 원고 보관함으로 쓴 철가방, 오른쪽은 그의 자전거 ‘풍륜 5호’/윤예나 기자지난 21일 개막한 이 무료 전시회는 매력적인 이야기, 좋은 문장을 만들려는 작가들의 숨은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근현대 한국 소설 속 우리말과 글의 변화, 소설가와 교정가, 번역가 등의 고뇌를 소개하는 영상도 있고 미디어아트 작품도 있다. 197건 336점의 자료가 관객을 맞는다.지난 22일 이 전시회를 찾아가 한 바퀴 돌아봤다.  ▲ 사진 왼쪽부터 소설가 조정래가 ‘아리랑’ 취재 여행 때 신었던 신발, 고 박완서 작가의 호미/윤예나 기자김훈의 자전거 옆에는 소설가 조정래가 '아리랑'을 쓰기 위한 취재 여행 때 신었던 신발 한 켤레가 놓여있다. 갈색 가죽 신발 겉면에 무수히 난 상처가 취재 여행의 고달픔을 드러낸다. 고(故) 박완서 작가가 손에 쥐었다는 호미도 있다. 그는 글이 막힐 때면 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 잡초를 뽑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 호원숙 “내 어머니 박완서...지금도 여전한”> 전시장 입구부터 한글 문장이 빼곡하다. 소설가가 글을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는 과정들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엿볼 수 있다. 첫 전시관 '소설가의 방' 책상 위에는 젊은 소설가 배상민의 노트북이 놓여 있다. ▲ 소설가 배상민의 글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가의 방’ /윤예나 기자그 바로 곁 화면을 통해 그가 여기저기서 사례를 찾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글이 잘 써지는 장소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발걸음을 옮기면 독특한 우리말 단어가 가득한 방이 있다. '야몽야몽(맛이 있는 듯 조금씩 자꾸 씹는 모양)' '포료옴하다(조금 파랗다)' '울가망하다(근심스럽고 답답해 기분이 나지 않다)' '해닥사그리하다(술이 얼근하게 취해 거나하다)'처럼 소설이 아니었다면 평생을 입에 담아보지 못할 뻔한 단어들이다. ▲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독특한 우리말 단어들/윤예나 기자참신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한 글자짜리 조사 하나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한 작가들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단어나 생각을 온전한 문장으로 만들기 위해 자료를 찾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소설가의 집필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애장품도 여럿 나와 있다. 소설가 김훈은 애용하는 돋보기와 함께 자주 읽는다는 법전을 전시에 내놨다. <관련 기사: 김훈 “나는 왜 쓰는가”> ▲ 소설가 김훈이 자주 읽는다는 법전과 그의 돋보기/윤예나 기자"사전에도 없는 어휘들이 가득 차 있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국가 사법기관이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되느냐를 써놓은 것"이기에 자주 읽는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칼의 노래'를 쓸 당시 참고로 했던 방대한 양의 책과 자료들도 볼 수 있다. ▲ 김훈 작가가 쓴 몽당연필(위)과 방민호 작가가 쓴 휴대전화/윤예나 기자 ▲ 김훈 작가의 육필 원고/윤예나 기자작가의 분신 같은 글쓰기 도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젊은 작가들이야 노트북을 애용하지만, 조정래 작가는 세라믹펜 한 자루에 펜심 580여개를 갈아끼우며 소설 '아리랑'을 썼다. '기계라고는 자전거 밖에 모른다'는 김훈 작가는 몽당연필과 연필깎이를 내놨다.그 바로 곁에는 방민호 작가가 글 쓸때 이용한 휴대전화가 놓여있다. 그는 최근 발간한 소설 '연인, 심청'을 휴대전화로 썼다. 지인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내던 글을 한 권의 소설로 완성한 것이다. 전시회에서는 소설가 뒤에서 묵묵히 글쓰는 사람을 빛나게 하는 '교열자'의 노고도 함께 소개한다. 소설가 김애란은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숱하게 고쳐쓴 파일을 전시에 소개했다. 쉼없이 마우스 커서가 움직이며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수정한다. ▲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은 단행본을 내기 위해 신문 연재분을 일일이 손으로 스크랩해서 교정했다./윤예나 기자교열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했던 과거의 작업도 볼 수 있다. 1990년대 일간지에 연재했던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은 신문에 연재된 것을 일일이 백지에 붙인 뒤 교정하는 작업을 거친 뒤에야 단행본이 됐다.이밖에도 원전 한 권을 두고 다양하게 번역된 문장, 여러 작가가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써낸 황순원의 '소나기'의 뒷이야기들까지 전시장은 갖가지 우리 문장으로 가득하다. 전시장을 모두 돌고 나면 서재 같은 공간에 이른다. 전시에 참여한 소설가들에게 감동을 준 500여권의 소설이 함께 비치돼 있다. 아무나 편한 의자에 앉아 읽을 수 있게 꾸몄다. ▲ 전시회를 돌아본 뒤 500여권의 소설을 읽어볼 수 있는 공간/윤예나 기자한글의 다양한 면모를 실험하는 '잠재문학실험실'의 소설 쓰기 체험, 소설 속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코너 등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즐길거리도 많다. 평일 오전이어서인지 관객은 많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김나연(24)씨는 “김훈 작가의 팬”이라면서 “작가의 취재 자료와 수첩 등을 보면서 작품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쳐 탄생한 건지 엿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이 기획전은 9월 6일까지 계속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는 해설도 곁들인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23/2015072301716.html?main_hot2​ 
  • 2015-07-23
    ​2015-07-23 박해현 조선일보 기자   ​ 허구가 현실 지배하는 얘기… 포스트 모더니즘의 원천, 인터넷 시대를 내다보기도아르헨티나의 시인·소설가·비평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 ~1986)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고 자랐다. 보르헤스가 유년기를 보낸 집이 있던 구역 이름은 원래 '세라노'였지만 지금은 '카예 데 보르헤스(보르헤스 거리)'로 불린다.보르헤스가 살았던 안초레나 거리에 있는 집은 보르헤스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보르헤스의 집필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그가 탐독했던 스페인어·영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 백과사전이 그의 손때를 간직한 채 서가에 꽂혀 있다. 박물관의 벽은 전부 보르헤스 사진과 초상화로 꾸며졌다.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갈레리아스 파시피코백화점엔 '보르헤스 문화센터'가 들어 있다. 보르헤스의 사진과 그의 주요 작품에 실린 어록을 전시하고 있다. 보르헤스 전시관에서 눈길을 끈 것은 바벨의 도서관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을 상상한 그림 밑을 보르헤스가 애독한 책들이 받치고 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일 것"이라고 한 보르헤스의 말도 적혀 있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르틴 코안을 보르헤스 생가 부근 카페에서 만났다. 코안은 창작을 하면서 대학에서 보르헤스 문학을 강의한다고 했다. 그는 "보르헤스 책에는 문학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 있다"며 "인류의 신화와 종교·철학에 대한 기억을 담으면서 압축된 언어와 서술의 경제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아르헨티나인들은 중학교 때부터 보르헤스 문학을 배운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문화의 상징이다." 코안은 "보르헤스가 인터넷의 가상현실을 일찍이 예견한 작가"라고도 했다. 1940년대에 나온 보르헤스의 단편 중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꼽았다. 그 소설에선 '분산되고 수렴되고 병렬적인 시간들로 구성된, 점차로 커져 가는 시간의 그물망'이란 말이 나온다. 보르헤스가 인터넷의 과학기술을 발명하진 않았지만 그가 상상한 끝없이 갈라지는 정원의 미로(迷路)는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축소판이라는 얘기다. 그의 다른 단편 '알렙'에 나오는 모든 시·공간이 응축된 유리구슬이라든지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리티우스'에서 가상의 백과사전에 기재된 내용이 현실을 조금씩 지배해가는 것도 가상현실이 현실을 압도하는 인터넷 시대를 내다본 것으로 여겨진다.보르헤스는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묘사했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不定數), 아니 아마도 무한수(無限數)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의 신비가 담긴 한 권의 책을 찾아서 인류는 그 도서관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지만 그토록 갈구하는 '절대의 책'을 찾지는 못한다.(사진 왼쪽부터)보르헤스 문화센터에 전시된 바벨의 도서관 모형,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에 설치된 보르헤스 조각,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 도서전에 설치된 보르헤스 작품 코너. /박해현 기자보르헤스가 상상한 우주의 도서관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재현됐다고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블랙홀에 떨어져 헤매는 공간이 수많은 책꽂이로 이뤄진 '바벨의 도서관'을 연상케 했다. 놀란 감독은 원래 보르헤스 소설의 애독자였다. 그는 "예술과 과학, 예술과 수학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연결 고리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작가 보르헤스의 기막힌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의 영화 '인셉션'은 보르헤스 문학의 모티브를 구체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꿈에서 꿈으로 이동하는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끝없이 갈라지는 이야기의 연속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놀란의 영화는 보르헤스의 창의성이 20세기 후반 서양 인문학과 예술에 미친 거대한 영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보르헤스는 1960년대 이후 프랑스 철학과 미국 문학의 포스트 모더니즘에 영감을 불어넣는 '사상의 샘물' 역할을 했다. 놀란의 영화는 오늘날 보르헤스의 창의성을 대중적으로 재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보르헤스는 '인간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에 새 해석을 제시했다. 보르헤스 문학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하늘 아래 새로운 문학은 없다. 모든 책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호 텍스트'다. 작가와 독자는 텍스트를 매개로 해서 하나가 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를 읊는 사람은 누구나 셰익스피어다. 인간은 허구의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허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허구다. 우리는 어둠을 견디기 위해 꿈을 꾼다. 우리는 꿈을 꾸지만 누군가의 꿈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위대한 작가는 후배 작가들의 글 속에서 희미하게 되살아나 영생을 누린다. 작가는 누구나 앞선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기에 독창적인 그 누구도 아니지만, 오히려 아무도 아니기에 죽지 않는 사람이 된다."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냈다. 보르헤스가 지팡이를 쥔 채 벤치에 앉아 있는 형상을 묘사한 동상이 도서관 정원에 있다. 보르헤스는 도서관장에 임명됐을 때 사실상 시력을 상실해가는 상태였다. 집안 유전병 때문이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시력이 약했는데도 책에 파묻혀 살았다. 아홉 살 땐 영어 동화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신문에 발표한 어학의 신동이었다. 읽을 수 있는 책은 다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장서를 거느린 도서관장이 됐을 때 시력을 잃어가자 그 심경을 시로 남겼다. 그는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아이러니"라며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책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 숱한 책을 음미했고, 구술과 강연으로 집필 활동을 계속해갔다.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물은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 2000년에 문을 연 대형 서점 '엘 아테네오'다. 오페라 극장의 객석과 발코니를 전부 책꽂이로 채웠다. 보르헤스는 살아서 이 아름다운 서점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보르헤스가 상상한 바벨의 도서관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웅장한 서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엔 주민 10만명당 서점이 25곳이나 있다. 세계에서 서점이 가장 많이 밀집한 도시로 꼽힌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 이후 국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정도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책을 사랑하기에 다양한 서점이 성업 중이다. 그 도시는 보르헤스의 고향이자 그가 상상한 책의 낙원이다. 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23/20150723001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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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2 이영완 조선일보 기자  ​러시아 출신 억만장자인 유리 밀너(53·사진)가 외계인을 찾는 연구에 1억달러(1160억원)를 기부했다. 밀너는 20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왕립학회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 프로젝트에 10년간 1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세티(SETI)는 전파망원경으로 외계인이 보낸 신호를 추적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능을 갖춘 생명체라면 규칙적 전파를 발송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프로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SF영화 '콘택트'로도 대중에게 알려졌다.밀너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그린뱅크 우주망원경 등 세계 3군데의 전파망원경으로 외계인의 신호를 추적하는 연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UC버클리의 앤드루 시미언 박사는 "연구비가 부족해 연간 24~36시간만 망원경을 가동할 수 있었는데, 그 시간이 수천 시간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혁명 같은 일"이라고 밝혔다. 세티 프로젝트는 1992년 미 항공우주국(NASA) 지원으로 시작됐지만 이듬해 지원을 중단해 자금난에 시달렸다. 지금은 UC버클리가 주관하는 민간 프로젝트이다.과학계는 환호했다. 밀너는 이날 외계인 추적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한 서한도 발표했는데,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와 SETI연구소의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 등 세계적 학자들이 지지 서명을 했다. 드레이크 박사는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설명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창안한 과학자이다. 호킹 박사는 이날 "무한한 우주에는 반드시 다른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며 "(외계인보다) 더 큰 질문은 없다. 이제 그 답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밀너의 과학 연구 기부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기초물리학, 생명과학, 수학에서 획기적 성과를 낸 과학자를 선정해 시상하는 '과학 혁신상(Breakthrough Prize)'를 제정해 매년 노벨상의 두 배나 되는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그가 잇따라 과학 연구에 거액을 기부한 것은 자신이 모스크바대를 나와 옛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연구소에서 일한 물리학자 출신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란 이름도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간 옛소련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외계인 추적 연구에 대한 관심은 내가 태어나던 1961년부터 시작됐다"고 농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밀너는 소련 붕괴 무렵 과학자에서 투자자로 변신했다. 1990년 미국으로 이주해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 벤처에 집중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일반인도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우주에서 온 전파 신호를 분석하려면 엄청난 컴퓨터 작업이 필요하다. UC 버클리는 1999년부터 일반인이 이 작업에 동참하는 '세티앳홈(SETI@Hom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세티엣홈에서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면 PC가 다른 작업을 하지 않을 때 전파 신호 분석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 밀너는 "어쩌면 일반인들이 전문가보다 먼저 외계인이 보낸 신호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밀너는 이날 100만달러 상금을 내걸고 외계인에게 인류가 어떤 존재인지 알리는 메시지도 공모하겠다고 밝혔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22/2015072200022.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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