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면토장(當面土墻)

다산이 이재의(李載毅)와 사단(四端)에 대해 논쟁했다. 이재의가 논박했는데 논점이 어긋났다. 가만 있을 다산이 아니다.

 "이달 초 주신 편지에서 사단(四端)에 관한 주장을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과 큰 차이가 없더군요. 노형께서 많은 사람 틈에 앉아 날마다 시끄럽게 지내시다가, 이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대충 보시기 때문에 제 글을 보실 때도 심각하게 종합하여 분석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주신 글의 내용이 제 말과 합치되는데도 결론에서는 마치 이론(異論)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더군요. 또 혹 제 주장은 애초에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주신 글에서는 한층 더 극단적으로 나가기도 했으니, 이는 모두 소란스러운 중에 생긴 일입니다. 지금 크게 바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두 사람이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임해 있고 뒤에는 솔바람이 불어오는 완도의 관음굴(觀音窟)로 함께 들어가 보고 듣는 것을 거두고 티끌 세상을 벗어나, 마음속에서 환한 빛이 나오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저의 당면토장(當面土墻), 즉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듯한 답답함과 노형의 장공편운(長空片雲), 곧 드넓은 하늘에 걸린 조각구름 같은 의심이 모두 탁 트여서 말끔히 풀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비록 1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는다 해도 반드시 한 곳으로 귀결될 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감히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한 까닭입니다." '답이여홍(答李汝弘)'에 나온다.

 다산은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다. 글을 읽고 느낀 심정을 당면토장, 즉 흙벽과 마주하고 앉은 느낌이라고 적었다. 편지 속의 속내는 이렇다. 글을 잘 보았다. 논점도 없고, 결국 같은 이야기를 엄청 다른 이야기처럼 했다. 분잡스러운 중에 호승지심(好勝之心)으로 쓴 때문이 아니냐. 아무도 없는 완도의 관음굴로 함께 들어가 끝장 토론을 벌이자. 이런 식으로는 10년간 토론해도 제소리만 하다가 말 것이다.

 듣지도 않고 언성부터 높이지만 결국은 같은 소리다. 처음부터 알맹이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다르다는 소리만 들으면 된다. 지금도 사람들은 같은 말을 다른 듯이 사생결단하고 싸운다.

 

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21/2016062103675.html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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