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6-24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춘추시대 진(晉)나라에서 범씨(范氏)가 쫓겨났다. 한 백성이 그 집안의 종을 훔쳐 달아나려 했다. 종이 너무 커서 운반할 수가 없자 그는 종을 깨부숴 옮기려고 망치로 쳤다. 큰 소리가 났다. 그는 남이 이 소리를 듣고 제 것을 빼앗아 갈까 봐 황급히 제 귀를 막았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엄이도종(掩耳盜鐘), 또는 엄이투령(掩耳偸鈴)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여씨춘추' '자지(自知)' 편에 나온다.큰 소리가 나니 엉겁결에 제 귀를 막았다. 제 귀에 안 들리면 남도 못 들을 줄 안 것이다. '여씨춘추'는 글 끝에 "남이 듣는 것을 싫어한 것은 그렇다 쳐도 자기에게 들리는 것조차 싫어한 것은 고약하다"는 평어를 덧붙였다. 자신의 도둑질을 남이 알게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은 알겠으나 사실 자체를 아예 인정치 않으려는 태도는 나쁘다는 지적이다.이규보는 '답전이지논문서(答全履之論文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의 글을 본뜨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시를 익히 읽은 뒤에 본받아야 도달할 수가 있다. 그저 하면 훔쳐 쓰기도 어렵다. 비유컨대 도둑이 먼저 부잣집을 엿보아 대문과 담장 위치를 익숙히 파악한 뒤에 그 집에 들어가 남의 물건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고도 남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지 않으면 주머니를 더듬고 상자를 들추기도 전에 반드시 붙들리고 만다. 이러고서야 재물을 훔칠 수 있겠는가?" 또 '논시중미지약언(論詩中微旨略言)'에서는 글 쓰는 사람이 해서 안 될 아홉 가지 적절치 않은 행동을 구불의체(九不宜體)로 꼽았다. 그중 하나가 옛사람의 뜻을 훔쳐 가져오다가 그나마 제대로 못 해 금세 들통이 나고 마는 '못난 도적이 쉬 붙들리는' 졸도이금(拙盜易擒)이다.하늘 아래 새것이 어디 있는가? 남의 좋은 점을 본받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귀하다. 누구나 공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다만 남의 것을 배워와 온전히 내 것으로 녹이지 못해 훔친 것이 들통나니 내 부족한 공부가 더없이 부끄럽다. 이때 정면 돌파가 아니라 제 귀를 꽉 막고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며 넘어가려는 태도는 피차 민망함만 더할 뿐이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23/2015062304347.html​
  • 2015-06-17
    ​조선일보정민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2015.06.17 03:00​▲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당나라 때 배광정(裵光庭)은 염린지(閻麟之)를 심복으로 여겨 무슨 일이든 그의 판단과 감수를 받고서야 글로 썼다. 당시 사람들이 "염린지의 입에 배광정의 손"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어는 염린지에게서 나왔고 이를 구체화한 것은 배광정이라는 뜻이었다. 둘이 합쳐 하나가 되자 최고의 조합을 이루었다.진(晉)나라 때 태숙(太叔) 광(廣)은 변론에 능했고 지우(摯虞)는 글쓰기가 뛰어났다. 조정에서 공론을 펼칠 때 광이 말솜씨를 뽐내며 주장을 세우면 지우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하지만 물러나와서는 글을 지어 광을 비난했다. 그러면 그 글에 대해 광은 또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틈만 나면 상대를 헐뜯느라 조용할 날이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문해피사(文海披沙)'에 나온다.김육(金堉·1580~1658)이 만년에 사치하여 생일이 아닌데도 큰 잔치를 벌였다. 사돈인 신익성(申翊聖·1588~1644)이 잔치가 파하기를 기다려 기와 술통에 보리술을 채우고 버들고리에 삶은 개를 담아 종을 시켜 보냈다. 김육이 내당에 들어가 자녀를 다 모아놓고 며느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것은 네 아비가 보낸 것이다. 옛날 내가 빈천하여 시골에 묻혀 지낼 때는 보리술 한 잔과 삶은 개 다리 하나도 먹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내가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처음부터 부귀했던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이제 이렇게 보내온 음식을 보니 옛 벗이 나를 권면하고 경계하는 뜻이로구나." 그러고 나서 부인과 두 아들과 함께 보내온 보리술과 개고기를 먹고 자리를 파했다. 잘못을 은근히 꾸짖은 신익성의 강직함과 쿨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김육의 도량을 당시에 양미(兩美)로 일컬었다. '송천필담'에 나온다.사람의 능력은 저마다 다르다. 둘이 환상적 조합을 이뤄 부족한 점을 보태 시너지를 내면 함께 아름다운 쌍미(雙美)가 되고, 따로 놀며 비난만 하면 같이 망하는 양상(兩傷)이 된다. 저마다 잘났다고 으르렁대니 될 일도 안 되고, 부족함을 서로 붙들어 뜻을 모으자 안 될 일도 문제없이 해결된다. 되는 나라와 안 되는 집안의 차이가 여기서 엇갈린다.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16/2015061603831.html​
  • 2015-06-10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2015.06.10 03:0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송나라 때 구준(寇準)이 살아가면서 돌이킬 수 없는(불추·不追) 여섯 가지 후회를 '육회명(六悔銘)'에 담아 말했다. "관직에 있을 때 나쁜 짓 하면 실세해서 후회하고, 부자가 검소하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 후회한다. 젊어 부지런히 안 배우면 때 넘겨서 후회하고, 일을 보고 안 배우면 필요할 때 후회한다. 취한 뒤의 미친 말은 술 깬 뒤에 후회하고, 편안할 때 안 쉬다가 병든 뒤에 후회한다(官行私曲失時悔, 富不儉用貧時悔. 學不少勤過時悔, 見事不學用時悔. 醉後狂言醒時悔, 安不將息病時悔)."성호 이익 선생이 여기에 다시 자신의 여섯 가지 후회를 덧붙였다. "행동이 때에 못 미치면 지난 뒤에 후회하고, 이익 앞에서 의를 잊으면 깨달은 뒤 후회한다. 등 뒤에서 남의 단점 말하면 마주해서 후회하고, 애초에 일을 안 살피면 실패한 후 후회한다. 분을 못 참아 몸을 잊으면 어려울 때 후회하고, 농사에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면 추수할 때 후회한다(行不及時後時悔, 見利忘義覺時悔. 背人論短面時悔, 事不始審僨時悔. 因憤忘身難時悔, 農不務勤穡時悔)."사소한 부주의에서 뒤탈이 생기고, 잘나갈 때 생각 없이 행한 잘못이 뜻하지 않은 순간 뼈아프게 내 발목을 낚아챈다. 조금만 대비를 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 작은 방심을 틈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이미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할까?다산은 '매심재기(每心齋記)'에서 그 방법을 이렇게 적었다. "작은 허물은 고치고 나서 잊어버려도 괜찮다. 하지만 큰 허물은 고친 뒤에 하루도 뉘우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주는 것은 똥이 싹을 북돋우는 것과 같다. 똥은 썩고 더러운 것인데 싹을 북돋아 좋은 곡식으로 만든다. 뉘우침은 허물에서 나왔지만 이를 길러 덕성으로 삼는다. 그 이치가 같다(有小過焉, 苟改之, 雖忘之可也. 有大過焉, 雖改之, 不可一日而忘其悔也. 悔之養心, 如糞之壅苗. 糞以腐穢, 而壅之爲嘉穀. 悔由罪過, 而養之爲德性. 其理一也)."똥은 더럽지만 거름으로 새싹을 북돋운다. 뉘우침은 나쁘지만 행실을 닦는 바탕이 된다. 매심(每心)을 합쳐 회(悔)가 된다. 매번 마음을 점검해서 일이 닥친 뒤에 후회가 없도록 해야겠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09/2015060904182.html​
  • 2015-06-03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2015.06.03 03:00​​▲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김정국(金正國·1485~1541)이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세상 사람 중에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거처가 사치스러워 분수에 넘치는 자는 머잖아 화를 당하지 않음이 없다. 작은 집에 거친 옷으로 검소하게 사는 사람이라야 마침내 이름과 지위를 누린다." 그 자리에 있던 종실 이종(李鍾)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내 들으니 큰 집을 옥(屋)이라 하고 작은 집은 사(舍)라 한답니다. 옥(屋)이란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시지(尸至), 즉 송장에 이른다는 뜻이 되고, 사(舍) 자는 쪼개서 읽으면 인길(人吉), 곧 사람이 길하다는 뜻이 되지요. 큰 집에 사는 자가 화를 받고 작은 집에 사는 자가 복을 받는 것이야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사재척언(思齋摭言)'에 나온다.범저(范雎)가 말했다. "욕심을 부려 그칠 줄 모르므로 원하던 것을 잃고, 지닌 뒤에 족함을 모르니 가진 것마저 잃는다(欲而不知止, 失其所欲, 已有而不知足, 失其所已有)." 이런 말도 있다. "대저 뜻 같지 않은 일을 만나면 그보다 더 심한 경우에 비춰 견주어 본다. 그러면 마음이 점차 저절로 시원스럽고 상쾌해진다(凡遇不得意事, 試取其更深者譬之, 心次自然凉爽)." 어떤 이가 제 궁한 처지를 강백년(姜栢年·1603~1681)에게 하소연했다.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추울 때는 길가에서 순찰 도는 나졸을 생각하면 이 몸이 춥질 않다네. 배고플 때는 거리에서 밥 구걸 하는 아이를 떠올리면 내 배가 고프질 않지." '송천필담(松泉筆譚)'에서 들었다.오대(五代)의 상유한(桑維翰)은 자신의 지위를 부러워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내 비록 귀하게 되어 재상의 자리에 올랐네만, 흡사 새 가죽신에 버선을 신은 것과 비슷하다네. 겉보기에 비록 멋있어도 속으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법이지." '문해피사(文海披沙)'에 보인다.부자가 일생의 심력을 다 쏟아 지닌 재물을 자손에게 물려주지만, 그 재물은 마침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마니 안타깝다. 시지인길(尸至人吉)! 큰 집에는 시체가 이르고 작은 집에 살면 사람이 길하다. 부족해야 넉넉하고 분수에 넘치면 제 몸을 망친다.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02/2015060203848.html​
  • 2015-05-27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2015.05.27 03:0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이옥봉(李玉峯)은 여류 시인이다. 이웃 아낙이 소도둑으로 몰려 갇힌 남편의 억울함을 탄원하는 글을 써달라며 그녀를 찾아왔다. 옥봉이 전후 사정을 글로 적고 끝에 시 한 구절을 얹었다. "첩의 몸이 직녀가 결코 아니니, 낭군이 어찌 견우시리오.(妾臣非織女, 郎豈是牽牛)" 자기가 예쁜 직녀가 아닌데 남편이 어떻게 견우가 될 수 있느냐는 얘기다. 견우(牽牛)는 뜻으로 풀면 소를 끌고간다는 의미다. 소도둑을 재치 있게 이렇게 풀이했다. 탄원서를 받아본 태수가 무릎을 치며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남편을 석방했다. '지봉유설'에 나온다.홍휘한(洪徽漢·1723~?)은 얼굴이 너무 시커메서 젊어서부터 친구들이 그를 우적(牛賊), 즉 소도둑이라 놀리곤 했다. 사람들이 우적을 아예 호 부르듯 해서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었다. 참판 홍인호(洪仁浩·1753~1799)가 말했다. "우적이란 호는 우아하지가 않습니다. 이제부터 축은(丑隱)으로 고치심이 어떠실는지요?" 우적이야 간데없는 소도둑인데 축은이라 하자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의미로는 소[丑]를 은닉한 사람이니 소도둑이나 매일반이지만 듣기에 따라 소처럼 우직한 은자란 뜻도 되어 한결 맛이 있다. 사람들이 재담이라 여겨 서로 전파해 만년에 홍휘한은 마침내 축은으로 행세했다. 다산의 '혼돈록(餛飩錄)'에 보인다.연암은 '사소전(士小典)'에서 독특한 뜻매김의 진수를 보여준다. 귀가 먹어 큰 소리로 말하는 귀머거리를 그는 '소곤대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불렀다. 눈이 멀어 실명한 사람은 장님이라 하는 대신 '남의 흠을 보지 않는 이'라고 말했다. 혀가 굳고 목소리가 막혀 말 못하는 사람을 벙어리라 하지 않고 '남 비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또 등이 굽은 곱사등이는 '아첨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평했다. '우부초서(愚夫艸序)'란 글에 나온다.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진다. 복잡한 세상살이에 쌓인 게 많아선지 오가는 말이 앙칼지고 날이 섰다. 온유돈후(溫柔敦厚)의 맛이 전혀 없다. 격한 감정을 실어 분을 푸는 것이 잠깐은 통쾌하겠지만 결국은 긴 근심의 출발이 될 뿐이다.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26/2015052604197.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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