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7-29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독서보'를 읽는데 글 속의 '잠시광경(暫時光景)'이란 말이 나를 툭 건드린다. 잠시광경이라, 이 말 때문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 세상만사가 다 잠시광경에 지나지 않는다. 변치 않을 것 같았던 사랑도 용서할 수 없는 미움도 눈앞을 스쳐 가면 잠시광경일 뿐이다.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한 연암 박지원의 친필 서간첩은 안의와 면천 현감 시절에 집으로 보낸 편지들을 묶은 것이다. 읽을 때마다 그가 붙든 잠시광경 너머로 그가 보인다. 그중 한 대목은 이렇다. "집을 수리할 때 벽 사이에 새로 '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진다(고숙체락·苽熟蒂落)'는 네 글자를 크게 써 붙여놓았더니, 감사(監司)와 다른 수령들이 모두 비록 벽 사이에 써 붙이기는 했지만 꼭지 빠진 자리는 없는 것 같으니 무엇을 말한 것이냐고들 하여 집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었다. 누가 이것을 써 놓을 줄 알았겠느냐? 초엿새 아침의 일이다." 과만(瓜滿), 즉 임기가 꽉 차 떠날 때가 되었음을 네 글자로 암시하자 이를 보고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활짝 웃던 광경을 이렇게 멈춰 세웠다."지난번 보내온 나빙(羅聘·청나라 화가·1733~1799)의 대나무 그림 족자는 솜씨가 기이하더구나. 온종일 강물 소리가 울부짖어서 마치 몸이 배 가운데 앉은 것처럼 흔들흔들하였다. 대개 고요하고 적막하기 짝이 없어 강물 소리가 그렇게 들렸던 게지. 문을 닫아걸고 숨을 죽이며 이 두루마리를 때때로 펼쳐 감상하지 않았더라면 무엇으로 이 마음을 위로했겠느냐? 날마다 열 몇 번씩은 말았다 폈다 하니 작문의 요령을 익히는 데 크게 유익함이 있다."무료한 장마철이었던 모양이다. 박제가에게서 어렵게 빌려온 나빙의 대나무 그림을 펼쳐놓고 닫힌 방 안에서 불어난 강물 소리를 듣던 답답한 마음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이걸 보다가 작문의 요령을 익혔다니 이 선문답도 풀어야 할 숙제다.잠시 머물다 간 광경이 기억이 된다. 잠시의 광경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득실이 갈린다. 미움과 증오를 털어내고 미쁜 기억만 담기에도 삶은 늘 벅차다. 인생이 잠시광경의 사이를 스치며 지나간다는 생각을 했다.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28/2015072803634.html​   
  • 2015-07-22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주자(朱子)의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란 말을 사랑한다. 하루의 절반은 고요히 앉아 내면을 기르고 나머지 반은 책을 읽는 데 쓴다. 그에게도 이것은 꿈이었을 것이다.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리고 회의는 끝도 없다. 한 사람을 겨우 보내자 다른 사람이 찾아온다. 이런 나날 속에 내면은 황량하고 피폐해져서 꿈조차 어지럽다.명나라 탕빈윤(湯賓尹)의 '독서보(讀書譜)'를 읽다가 원황(袁黃·1533~1606)이 쓴 '정좌공부(靜坐工夫)'란 항목에 절로 눈길이 가서 멎는다."정좌(靜坐)를 하려면 먼저 식심(息心), 즉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 일상 속에서 그때그때 연습해서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내고 버리기 힘든 것을 버린다. 한 가지를 참아내니 딱 그만큼의 수용(受用)이 생겨나고, 한 가지를 덜어내자 그것만큼 편하고 즐거워진다. 오래 익혀서 정좌공부가 점차 익숙해지면 저절로 접촉하는 곳마다 유익함이 있다. 하루 중에 틈이 나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한두 시간 정좌한다. 이를 두고 기식(氣息)을 조화롭게 해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말한다."정좌라 해서 그저 맹탕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으면 마음이 깨어난다. 잠잠하던 생각이 성성하게 살아난다. 적막 속에 각성이 찾아든다. 둘 사이의 긴장이 팽팽하다. 정좌는 사람을 자칫 몽롱하고 멍한 상태로 빠지게 만든다. 그때마다 점검이 필요하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각성[惺]이 고요[寂]와 함께하고 고요가 각성과 따로 놀지 않아야 한다. 각성 없는 고요를 완공(頑空)이라 하고 고요를 벗어난 각성은 광혜(狂慧)라 한다. 대응법을 말하자면 이렇다. 마음이 산란할 때는 고요함으로 다스리고, 몽롱하고 멍할 때는 각성으로 추스른다(惺不離寂, 寂不離惺. 離惺而寂, 是謂頑空, 離寂而惺, 是謂狂慧. 但論對治之法, 散亂時須以寂治之, 昏沉時須以惺治之)."완공은 깨달음 없이 멍한 것을, 광혜는 분별을 잃어 독선에 빠진 상태를 가리킨다. 가만히 그저 앉아 있는 것이 정좌가 아니다. 훈련과 연습이 없으면 마음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원숭이나 미친 말처럼 날뛴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21/2015072104445.html​ ​
  • 2015-07-15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2015.07.15 03:0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1675년 7월, 월출산 자락 영암 구림 땅에 유배된 김수항(金壽恒·1629~ 1689)은 '화도시(和陶詩)' 연작 50수를 지으며 안타까운 시간을 추슬렀다. 처음 공주를 지날 때만 해도 "어이 그릇 육신의 부림을 받아, 괴로이 티끌 그물 걸려들었나. 그래서 세상 이치 통달한 이는, 처세에 이름 없음 높이 보았지(胡爲誤形役, 苦被塵網縈. 所以曠達人, 處世貴無名)" 하며 나락에 떨어진 처지를 한탄했다.겨울 들어 마음이 안정되자 시상도 차분해졌다. '동운(同雲)' 4장을 지었다. 동운은 폭설이 내리기 전 하늘에 자욱하게 낀 먹구름이다. 제4장만 읽어 본다. "회오리바람 세차, 잎은 가지 떠나간다. 뿌리에 감춰 지녀, 내 화창한 봄 피워내리. 잃어도 줄지 않고, 얻은들 늘지 않네. 자리 지켜 행하니, 나를 어이하겠는가?(飄風發發, 有蘀辭柯. 晦之在根, 葆我春和. 喪不爲少, 得不爲多. 素位而行, 其如余何)"매서운 북풍한설에 무성하던 잎이 다 떨어졌다. 이제 내 곁엔 아무도 없다. 빈 가지로 섰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다. 모진 추위의 끝에서 봄은 다시 올 것이다. 그때 봄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 간난의 때를 의연히 견디겠다. 얻고 잃음에 대한 세상의 셈법은 이제 지겹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내 자리에 뿌리박고 서서 내 길을 갈 뿐이다. 눈보라도 고통의 시간도 하나 두렵지 않다. 내가 나 자신 앞에 부끄러운 것만은 참을 수가 없다.제3구는 출전이 있다. 송나라 때 학자 유자휘(劉子翬)가 '자주희축사(字朱熹祝詞)'에서 썼다. "나무는 뿌리에 간직해서 봄에 무성히 피어나고, 사람은 몸에 간직하여 정신이 그 안에서 살찐다(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 마지막 두 구절은 '중용'에서 끌어 썼다. "군자는 제자리를 지켜 행할 뿐 그 바깥은 원하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환난에 처한 군자의 마음가짐을 잘 표현했다. 사람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 그 그릇이 온전히 드러난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14/2015071404138.html​  ​
  • 2015-07-08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월출산 아래 백운동 별서정원은 이담로(李聃老·1627~?)가 처음 조성한 이래 13대를 이어 가꿔온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다산이 제자 초의를 시켜 그린 그림이 남아 있고 다산 본인도 친필로 백운동 12경을 노래해 예찬했다. 김창흡, 김창집 형제의 8경시가 남아 있고 그 밖에 쟁쟁한 문인들이 8경 또는 10경으로 앞다퉈 예찬했던 호남의 대표적 별서다.다행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왔다. 마당을 관통해 흐르는 유상구곡(流觴九曲)은 비원과 포석정 외에 민간 정원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바로 곁에 보조국사 지눌, 대각국사 의천, 원묘국사 요세, 진감국사 혜심 등 고려 4국사의 체취가 남은 백운사 옛터가 덤불 속에 묻혀 있다. 당대에 이름 높던 별서요, 고려 때 향기 짙은 절터다.2014년 봄 강진군에서 이 유서 깊은 별서정원 인근에 대규모 야영장을 조성해 관광지로 개발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놀라 난개발을 막자고 지난 4월 서둘러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을 펴냈다. 서문에 굳이 '없는 것도 새로 만드는 판에 있는 것을 지켜 보존하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느냐'고 썼다. 역사적으로 뜻깊은 공간을 잘 보존해달라는 당부를 간절하게 담았다.책 출간 후 석 달이 못 되어 다시 찾은 백운동 계곡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백운동의 아래위 계곡은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참혹하게 파헤쳐져 더 이상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없게 변했다. 하늘이 안 보여 대낮에도 어둡던 동백숲과 대숲에는 승용차가 교차해 지날 만큼의 너른 길이 났다. 수백년 계곡을 지켜온 바위는 차곡차곡 쌓여 축대가 되었다. 가슴이 찢기는 아픔과 공분을 느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나랏돈 들여 강진군의 의뢰를 받은 조경업자의 포클레인에 비경의 숲이 허망하게 사라졌다.'회남자(淮南子)'에서 말했다. "지금 세상은 나무람을 잘 참고 욕됨을 가벼이 보며 얻기만을 탐하면서 부끄러움은 적다(當今之世, 忍言句而輕辱, 貪得而寡羞)." 누가 욕해도 내게 이익만 생긴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용의가 있다. 돈이 된다는데 그깟 부끄러움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아! 아프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07/2015070703843.html​
  • 2015-07-01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2015.07.01 03:0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영조 즉위년인 1725년 3월 13일 시민당(時敏堂)에서 '논어' 진강(進講)이 있었다. 군신이 번갈아 '계씨(季氏)' 편을 읽고 토론이 이어졌다.'예악유도(禮樂有道)' 장의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천자에게서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에게서 나온다"는 대목을 두고 강관(講官) 신사철(申思喆)이 말했다. "상하의 명분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천자는 천하를 다스림에 예악과 정벌로 운용합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얕잡아 보고 윗사람이 권위를 지키지 못해 제후가 월권해서 천자의 일을 하고 대부가 월권해서 제후 일을 하면 이는 이치를 대단히 거스르는 것이어서 망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서인불의(庶人不議)' 장에서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서인은 논의하지 않는다"고 한 대목을 두고는 이렇게 풀이했다. "윗사람이 치도를 이루면 아랫사람은 자기들끼리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못할 때 항간의 의논이 들끓게 됩니다. 임금이 덕을 닦아 정사를 펼침에 마땅치 않은 것이 없어야만 인심을 복종시킬 수 있으니, 그러지 않으면 위세로 제압하려 하여도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영조가 대답했다. "어찌 덕을 닦지 않고 위세로 그들의 의논을 막을 수 있겠는가?"글이 '삼건(三愆)' 장으로 넘어갔다. "군자를 모심에 세 가지 잘못이 있다. 말씀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조급함이라 한다. 말씀이 이르렀는데 말하지 않는 것을 감춤이라 한다. 안색을 살피지 않고 말하는 것을 눈이 멀었다고 한다(孔子曰 侍於君子有三愆, 言未及之而言, 謂之躁, 言及之而不言, 謂之隱, 未見顔色而言, 謂之瞽)." 시독관(侍讀官) 이기진(李箕鎭)이 아뢰었다. "젊은이가 어른을 모실 때는 이처럼 신중해야 하나 윗사람이 굳이 이것으로 꾸짖으려 한다면 이 또한 너무 속 좁은 행동입니다."안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할 말은 안 하며, 눈치 없이 아무 때나 말하는 것이 아랫사람의 세 가지 허물이다. 이때 덕이 아닌 위세로 입을 막아 꾸짖는 것은 윗사람의 잘못이다. 임금은 그대들의 말대로 하겠다며 이날의 공부를 마쳤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30/2015063003635.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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