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12-16
    ​​정민 한양대 교수 한문학 우우(周羽周羽)라는 주새는 머리가 무겁고 꽁지는 굽어 있다. 냇가에서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이면 무게를 못 이겨 앞으로 고꾸라진다. 다른 놈이 뒤에서 그 꽁지를 물어주어야 물을 마신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하(下)에 나온다. 다음 말이 덧붙어 있다. "사람도 제힘으로 마시기 힘든 사람은 그 깃털을 물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人之所有飮不足者, 不可不索其羽也)."백락(伯樂)은 말 감별에 능했다. 척 보고 천리마를 알아보았다. 미워하는 자가 말에 대해 물으면 천리마 감별법을 가르쳐주었다. 아끼는 자에게는 노둔한 말을 구별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일생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한 천리마 감별법은 알아봤자 써먹을 기회가 거의 없다. 노둔한 말은 날마다 거래되는지라 간단한 요령 몇 가지만 알아도 잠깐 만에 큰돈을 벌 수가 있다. 한비자는 이야기 끝에 다시 이렇게 보탰다. "말은 천하나 쓰임새가 높은 것은 헷갈린다(下言而上用者惑也)." 표현이 천근(淺近)해 보여도 알찬 말이니 새겨들으란 얘기다.다시 이어지는 한 단락. 환혁(桓赫)은 조각을 잘했다. 그가 말했다. "새기고 깎는 방법은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해야 한다. 코가 크면 작게 할 수가 있지만 작게 해놓고 크게 만들 수는 없다. 눈이 작으면 키울 수 있지만, 크게 새긴 것을 작게 고칠 방법은 없다(刻削之道, 莫如大, 目莫如小. 鼻大可小, 小不可大也. 目小可大, 大不可小也)." 일단 나무에 새기고 돌에 깎으면 다시 붙일 방법이 없다. 코는 애초에 조금 크게 해놓고 조금씩 깎아서 알맞게 고친다. 눈은 반대로 작은 듯이 파서 조금씩 키우는 것이 맞다. 코를 납작하게 깎아 시작하면 균형이 깨질 때 수정할 방도가 없다. 눈을 애초에 퉁방울로 새겨 놓으면 줄이려 해도 도리가 없다. 그는 또 설명을 보탠다. "일 처리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고칠 수 있게 해야 일에 실패하는 일이 적다(擧事亦然, 爲其後可復者也, 則事寡敗矣)."단순 명쾌한 것이 시원하다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상황을 내몰면 물 마시려다 머리 박고 고꾸라지는 수가 있다.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15/2015121503980.html​​
  • 2015-12-0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유만주(兪晩柱, 1755-1788)가 '흠영(欽英)' 중 1784년 2월 5일의 일기에서 썼다. "우리는 감인세계(堪忍世界)에 태어났다. 참고 견뎌야 할 일이 열에 여덟아홉이다. 참아 견디며 살다가 참고 견디다 죽으니 평생이 온통 이렇다. 불교에는 출세간(出世間) 즉 세간을 벗어나는 법이 있다. 이는 감인세계를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벗어난다 함은 세계를 이탈하여 별도의 땅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고 일체의 일이 모두 허무함을 깨닫는 것이다.(我輩旣生於堪忍世界, 則堪忍之事, 十恒八九. 生於堪忍, 死於堪忍, 一世盡是也. 西敎有出世間法. 是法指出了堪忍世界之謂也. 所云出者, 非離去世界, 另赴別地. 止是悟得一切等之虛空也.)"감인(堪忍)은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못 견딜 일도 묵묵히 감내(堪耐)하고, 하고 싶은 말도 머금어 삼킨다. 고통스러워도 꾹 참아 견딘다.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참아내고 견뎌내는 연습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건너가는 한세상을 감인세계로 규정했다. 감인세계는 벗어날 수 없는가? 이 못 견딜 세상을 견뎌내는 힘은, 날마다 아등바등 얻으려 다투고 싸우는 그 대상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나온다. 인간의 진정한 낙원은 멀리 지리산 청학동이나 무릉도원이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얘기다.같은 해 3월 21일자 일기에는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누(累)가 없는 것만 함이 없다. 누 때문에 세계는 참고 견뎌야만 한다.(人生最樂事, 莫如无累. 累故世界堪忍.)"고 했다. 누(累)란 나를 번거롭게 얽매고 옥죄는 일이다. 내 능력 밖의 일을 이루려 아쉬운 부탁을 하려니 남에게 누가 된다. 자식을 위해 정작 내 삶은 희생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누가 되고 폐만 안겨주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나를 옭아매던 누를 다 털어버리지도 못해 죽음이 어느새 코앞에 와있다. 이 쓸쓸한 자각을 그는 감인세계란 말로 표현했다."사람이 50년을 살면 쌀 2000여섬을 먹어치운다. 백년이라면 그 두 배를 웃돈다"는 옆 사람의 말에 이게 바로 미충(米虫) 즉 쌀벌레가 아니냐고 되뇌던 그의 씁쓸한 독백을 생각한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08/2015120804273.html​ ​
  • 2015-12-02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청나라 때 왕지부(王之鈇)가 호남 지역 산중 농가의 벽 위에 적혀 있었다는 시 네 수를 자신이 엮은 '언행휘찬(言行彙纂)'에 실어놓았다. 주희(朱熹)의 시라고도 하는데 지은이는 분명치 않다.첫째 수. "까치 짖음 기뻐할 일이 못 되고, 까마귀 운다 한들 어이 흉할까. 인간 세상 흉하고 길한 일들은, 새 울음소리 속에 있지 않다네.(鵲噪非爲喜, 鴉鳴豈是凶. 人間凶與吉, 不在鳥聲中.)" 까치가 아침부터 우짖으니 기쁜 소식이 오려나 싶어 설렌다. 까마귀가 깍깍 울면 왠지 불길한 일이 닥칠 것만 같아 불안하다. 새 울음소리 하나에 마음이 그만 이랬다저랬다 한다.둘째 수. "밭 가는 소 저 먹을 풀이 없는데, 창고 쥐는 남아도는 양식이 있네. 온갖 일 분수가 정해있건만, 뜬 인생이 공연히 홀로 바쁘다.(耕牛無宿草, 倉鼠有餘糧. 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 죽어라 일하는 소는 늘 배가 고프고, 빈둥빈둥 노는 창고 속 쥐는 굶을 걱정이 없다. 세상일이 원래 그렇다. 타고난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아등바등 뜬 인생들이 궁리만 바쁘다. 애써도 안 될 일을 꿈꾸느라 발밑의 행복을 놓친 채 한눈만 판다.셋째 수. "물총새는 깃털 귀해 죽음당하고, 거북은 껍데기로 인해 목숨을 잃네. 차라리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편하게 평생 보냄 더 낫겠구나.(翠死因毛貴, 龜亡爲殼靈. 不如無成物, 安樂過平生.)" 물총새는 제 고운 비췻빛 깃털 때문에 사람들이 노리는 표적이 된다. 거북은 등 껍데기로 장식하고 배딱지로 점치려고 사람들이 잡아가 목숨을 잃고 만다. 애초에 아무런 지닌 것이 없었으면 타고난 제 수명을 다 누릴 수 있었을 텐데.넷째 수. "참새는 모이 쪼며 사방 살피고, 제비는 둥지에서 딴마음 없네. 배포 크면 복도 또한 크게 되지만, 기심(機心)이 깊고 보면 재앙도 깊네.(雀啄復四顧, 燕寢無二心. 量大福亦大, 機深禍亦深.)" 참새와 제비가 먹는 데야 얼마나 먹을까? 그래도 살피고 가늠해서 조심조심 건너가니 큰 근심이 없다. 크게 왕창 한탕 해서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좋아 보여도 한순간에 재앙의 기틀을 밟으면 돌이킬 수가 없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01/2015120104229.html​ 
  • 2015-11-2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성품이 각지고 앙칼졌다. 불의를 참지 못했다. 광해의 폐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1621년 월사 이정귀(李廷龜·1564~1635)가 마침 자리가 빈 태학사(太學士) 자리에 유몽인을 추천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유몽인이 즉각 월사에게 편지를 썼다."지난해 기근이 들었을 때 아이들이 떡을 두고 다투길래 가서 살펴보니 콧물이 미끈거립디다. 몽인은 강호에 살면서 한가하여 아무 일이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춘추좌씨전'을 읽고, 올해는 두보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노년의 벗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합니다. 아이들과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일 같은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去歲年饑, 羣兒爭餠, 而歸察之, 鼻液糊矣. 夢寅處江湖, 閑無事. 前年讀左氏, 今年誦杜詩, 此眞臨年者伴也, 以此餞餘生足矣. 如與群兒爭鼻液之餠, 非所願也)."얼마 후 그는 아예 금강산으로 들어가 버려 자신의 말이 그저 해본 소리가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금강산에 들어가 지은 시에 '늙은 과부의 탄식(孀婦歎)'이란 시가 있다. "일흔 살 늙은 과부, 홀로 살며 빈방 지켜. 여사(女史)의 시 익히 읽고, 임사(妊姒) 훈계 잘 안다네. 이웃이 개가 권하며, 신랑 얼굴 잘났다고. 흰머리로 단장하면, 연지분에 부끄럽지(七十老孀婦, 單居守空壺. 慣讀女史詩, 頗知妊姒訓. 傍人勸之嫁, 善男顔如槿.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시 속의 임사는 문왕과 무왕의 어머니이니 덕 높은 부인의 의미다. 다 늙어 개가해 팔자 고쳐보겠다고 연지분을 바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면 그 꼴이 부끄럽지 않겠느냔 얘기다.가토 슈이치의 자서전 '양의 노래'(글항아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정치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정치에서는 참된 뜻이 배반당하고, 이상주의가 이용당하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제의 충성이 오늘의 모반이 되고 만다."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해괴한 일이 많아진다. 흰머리에 연지분을 바르며 출사표를 던지지만 그가 노리는 것이 고작 코 묻은 떡에 지나지 않으니 딱하고 민망하다.조선비즈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24/2015112404159.html​ 
  • 2015-11-18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비 묻은 바람이 지나자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허물어지듯 땅 위로 쏟아진다. 길 위에 노란 카펫이 깔리고 길가에 선 차도 온통 노란 잎에 덮였다. 좀체 속내를 보이지 않던 나무 사이가 휑하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의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김하라씨가 유만주(兪晩柱·1755~1788)의 일기 '흠영(欽英)'을 엮어 옮긴 "일기를 쓰다"(돌베개)를 읽었다. 그중 낙엽에 대해 말한 1785년 9월 19일 일기의 한 대목이다. "안개는 자욱하고 구름은 어두운데 누런 잎이 어지러이 진다. 가랑비에 바람이 빗겨 불자 푸른 못에 잔물결이 인다. 계절의 사물은 쓸쓸해도 생각만은 번화하다(烟沉雲晦, 黃葉亂下. 雨細風斜, 碧沼微瀾. 時物蕭條, 意想繁華)." 눈앞의 풍광은 쓸쓸한데 마음속 생각은 번화하다. 낙엽은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게 한다.이튿날인 9월 20일의 일기에도 낙엽에 대한 사념이 이어진다. "짙은 서리에 잎이 물들어 푸른빛이 자꾸 줄어드는데 여기에도 또한 품격의 차이가 있다. 붉은 잎은 신분 높은 미녀와 비슷하고, 누런 잎은 고승이나 마음이 시원스러운 선비와 같다. 뜻이 몹시 진한 곳과 뜻이 담백한 곳이 있다(葉染深霜, 靑减分數, 亦有品格之別. 紅葉似貴遊美女, 黃葉如高僧曠士. 極意濃處, 却極意淡)." 붉은 단풍잎은 도도한 미녀 같고 누런 잎은 법력 높은 고승이나 뜻 높은 선비 같다. 가을 숲 낙엽의 빛깔에서 농담(濃淡)의 차이를 읽었다. 그의 눈길은 화려한 미녀 쪽이 아닌 광달(曠達)한 선비에게로 향한다. 다시 생각이 이어진다."소림황엽(疎林黃葉)이란 네 글자는 한번 생각만 해도 비록 지극한 처지의 번화한 사람조차 문득 저도 모르게 쓸쓸해져서 맑고 고요하게 만든다. 이 네 글자야말로 번잡함을 틔워주는 신령스러운 부적이 되기에 충분하다(疎林黃葉四字, 一念到令人雖極地繁華者, 忽不覺寥然淸寂. 是四字足爲曠閙之神符與)."소림은 성근 가지만 남은 숲이다. 황엽은 그 아래 떨어진 누런 잎이다. 여린 신록이 짙은 초록을 거쳐 붉고 누런 잎으로 땅에 진다. 번화하던 시절은 전생에 꾼 꿈 같다. 꽃 시절이 좋아도 사람은 안에 소림황엽의 풍경을 지녀야 세속의 번잡함을 걷어낼 수 있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17/2015111704044.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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