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1-2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두예(杜預)는 비석 두 개에 자신의 공훈을 적어 새겼다. 하나는 한수(漢水) 속에 가라앉히고 다른 하나는 만산(萬山)의 위에 세웠다. 그러고는 말했다. "후세에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짝이 언덕이 될 수도 있다."백거이(白居易)가 자신의 시고(詩稿)를 모아 정리한 후 불상에 복장(腹藏)으로 넣게 했다. 여산의 동림사(東林寺)와 동도(東都)의 성선사(聖善寺), 그리고 소주의 남선원(南禪院)에 각각 보냈다. 책마다 기문을 따로 적었다. 어느 하나가 망실돼도 다른 것은 남을 테니 일종의 보험을 들어둔 셈이었다.사조제(謝肇淛)가 덧붙였다. "사람이 이름을 좋아함이 참 심하다. 두 사람의 공적과 문장이라면 어찌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하겠는가? 그런데도 오히려 스스로를 내세우기를 이처럼 한단 말인가?" 호명자표(好名自標)는 그러니까 명예를 좋아해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봐 제 이름을 직접 드러내려 애쓴다는 말이다. '문해피사(文海披沙)'에 나온다.청나라 옹방강(翁方綱)도 백거이의 일을 본떠 자신의 '복초재집(復初齋集)'을 항주 영은사(靈隱寺)에 보관케 하고, 다시 한 부를 추사 김정희 편에 초상화와 함께 해남 대둔사(大芚寺·지금의 대흥사)로 보내 보관케 했다. 설령 중국에서 천재지변을 만나 책이 다 사라져도 조선의 남쪽 끝에는 남아 있을 것이란 희망을 담았다.추사는 그 책을 대둔사로 보내면서 해동의 영은사란 뜻으로 '소영은(小靈隱)'이란 세 글자를 편액으로 써서 함께 선물했다. 다산이 그 소식을 듣고 아름답게 여겨 양근(楊根) 소설산(小雪山)에 남은 태고(太古) 보우(普愚)가 머물던 절터에 암자를 세워 그 책을 옮겨 와 중노릇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자 초의(艸衣)를 꼬드겼을 정도다.위 세 사람은 세상이 기릴만한 큰 자취를 남겼으니 없는 것을 만들어 표방한 것은 아니다. 도처에 나붙기 시작한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현수막을 보니 저마다 제 이름을 걸고 나밖에 없다고 자랑이 한창이다.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가려낼까? 그게 문제다.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26/2016012603721.html  ​
  • 2016-01-2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박지원의 '답응지서(答應之書)'에 "네 쇠뿔이 아니고야 내 집이 어찌 무너지랴(非汝牛角, 焉壞我屋)"란 속담을 소개하고 "이는 남을 탓하는 말(此咎人之辭也)"이라고 풀이했다. 정약용도 속담 모음인 '백언시(百諺詩)'에서 "네 쇠뿔이 아니고야 내 담이 어찌 무너지랴(匪爾牛角, 我墻何覆)"를 인용했다. 그 아래 달린 풀이 글은 이렇다. "네가 비록 네 잘못이 아니라 해도 네가 아니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란 말이다(言爾雖曰非我有咎, 非爾無此患也)" 예전에 자주 쓰던 표현임을 알겠다.말짱하던 담장이 허물어졌다. 이게 웬일인가? 놀라 나가보니 마침 옆집 소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간다. 그는 옆집을 찾아가 따진다. "네 소가 들이받아 내 담이 무너졌다. 당장 고쳐 놓아라." "그럴 리가?" "그렇지 않고야 멀쩡한 내 담이 왜 무너지나?" "증거는?" "무너진 담이 증거다." "소가 어떻게?" "그건 네 소한테 물어라. 근처엔 네 소밖에 없었다."묵은 담이 제풀에 무너졌고 소는 그때 근처에 있었을 뿐인데 소 주인이 옴팡 뒤집어쓰게 되었다. 우각괴장(牛角壞墻), 소뿔에 담장이 무너졌다는 속담은 이래서 나온 말이다. 소뿔이 아무리 세다 해도 담장을 어찌 허무는가? 그래도 상황 논리로 뒤집어씌워 우기면 달아날 방법이 없다. 세상에 꼼짝도 못하고 뒤집어쓰는 잘못이 이런 종류다.16세 대만 소녀는 오락 프로에서 제 나라 국기를 흔들었다. 그럼 그녀가 대만 국기 말고 무엇을 흔들어야겠는가? 문제가 안 될 일에 한 늙은 가수가 억지 시비를 걸어 큰 문제가 되었다. 중국 시장이 막힐까 겁난 소속사 대표는 제 입으로 이런 것이 문제 될지 생각도 못했다고 해놓고 자신이 교육을 잘못 시킨 탓이라며 소녀 등을 떠밀어 사과를 시켰다. 그것이 또 대만 총통 선거의 마지막 판세를 뒤흔들었다.소는 담장 밑을 지나갔고 그때 마침 담장이 무너졌다. 그렇다고 무너진 담장을 세워내라고 윽박지를 일인가? 잘못 가르쳐서 미안하다고 할 일인가? 수척해진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니 어른으로 창피하다. 말이 무섭고 사람이 무섭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9/2016011904066.html​
  • 2016-01-06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만나는 사람마다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 새해다. 한때 '부자 되세요'가 새해 덕담일 때도 있었다. 복은 많이 받아 좋고 돈은 많이 벌어야 신나지만 너무 욕심 사납다 싶어 연하장에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쓴 것이 몇 해쯤 된다.엮은이를 알 수 없는 '속복수전서(續福壽全書)'의 첫 장은 제목이 석복(惜福)이다. 복을 다 누리려 들지 말고 아끼라는 뜻이다. 여러 예를 들었는데 광릉부원군 이극배(李克培)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온다. 그는 자제들을 경계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물은 성대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어 있다. 너희는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러고는 두 손자 이름을 수겸(守謙)과 수공(守恭)으로 지어주었다. 석복의 처방으로 겸손과 공손함을 제시했다. 다시 말했다. "처세 방법은 이 두 글자를 넘는 법이 없다." 자만을 멀리해 겸공(謙恭)으로 석복하라고 이른 것이다.홍언필(洪彦弼)은 가법이 몹시 엄했다. 아들 홍섬(洪暹)은 벼슬이 판서에 올랐어도 겉옷까지 제대로 차려입지 않고는 감히 들어가 문안을 여쭙지 못했다. 홍언필이 몸이 안 좋을 때는 아들에게 손님을 접대케 했는데, 그가 검소한 복장에 말과 태도가 겸손했으므로 처음 보는 사람은 그가 한 나라의 판서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판서는 평소에 초헌(�軒)을 타지 않았는데 하루는 어쩌다 타고 나갔다가 그 길로 부친을 찾아뵈었다. 그때 마침 홍언필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아들이 타고 온 초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즉시 사람을 불러 그 초헌을 대문 위에 매달아 두게 했다. 오랜 뒤에 그 초헌을 내려서 보내주며 말했다. "아비가 가마를 타는데 자식이 초헌을 타니, 그러고도 네가 편안하더냐?"소동파가 말했다. "입과 배의 욕망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매양 절약하고 검소함을 더함이 또한 복을 아끼고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다(口腹之欲, 何窮之有? 每加節儉, 亦是惜福延壽之道)." 이제는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를 '새해 복 많이 아끼세요'로 바꿔 말하고 싶다. 부족함보다 넘치는 것이 더 문제다. 채우지 말고 비우고, 움켜쥐는 대신 내려놓는 것이 어떤가.조선비즈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05/2016010503876.html​
  • 2015-12-3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명나라 도륭(屠隆)의 '명료자유(冥寥子游)'는 관리로 있으면서 세상살이 눈치 보기에 지친 명료자가 상상 속 유람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는 익정지담(匿情之談)과 부전지례(不典之禮)의 허울뿐인 인간에 대한 환멸과 혐오를 토로하며 글을 시작한다.익정지담은 정을 숨긴, 즉 속내를 감추고 겉꾸며 하는 대화다. 그 설명은 이렇다. "주인과 손님이 큰절로 인사하고 날씨와 안부를 묻는 외에는 한마디도 더하지 않는다. 이제껏 잠깐의 인연이 없던 사람과도 한번 보고는 악수하고 걸핏하면 진심을 일컫다가 손을 흔들고 헤어지자 원수처럼 흘겨본다. 면전에서 성대한 덕을 칭송할 때는 백이(伯夷)가 따로 없더니 발꿈치를 돌리기도 전에 등지는 말을 하자 흉악한 도적인 도척(盜蹠)과 한가지다."부전지례, 즉 전아(典雅)하지 못한 예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손님과 얘기할 때 신분과 관계없이 친한 친구 사이라도 종일 고개 숙여 머리를 조아린다. 하늘과는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날마다 멀어지고, 땅과는 어찌 그리 친한지 날로 가까워진다. 귀인이 한번 입을 열기라도 하면 우레 같은 소리로 '예예'하고, 손만 한번 들어도 머리가 먼저 땅에 조아려진다."웃는 얼굴로 입속 혀처럼 굴어도 속내는 다 다르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대화는 철저한 계산속에서만 오간다. 이익이 되겠다 싶으면 배알도 없다. 세상 사람이 저 빼놓고 다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그 인간이 정작 남보다 더한 속물이다.그렇다면 어찌할까? "나는 이렇게 들었다. 도를 깨달은 사람은 고요함 속에 지내면서도 버썩 마르지 않고[處靜不枯], 움직임 속에 있어도 시끄럽지가 않다[處動不喧]. 티끌세상에 살면서도 이를 벗어나 얽맴도 풀림도 없다." 고요 속에서 깊어지는 대신 무미건조해지고, 활동이 많다 보니 말까지 많은 인간이 된다면 거기에 무슨 깨달음이 깃들겠는가? 속내를 감춘 대화, 굴종을 강제하는 갑을 관계, 먹고살기 위해 감내해야만 하는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유토피아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저무는 한 해 앞에서 지난 시간이 문득 부끄럽다.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29/2015122903914.html​
  • 2015-12-29
    ​정민 한양대교수·고전문학'독서칠결(讀書七訣)'은 성문준(成文濬·1559~1626)이 신량(申湸)을 위해 써준 글이다. 독서에서 유념해야 할 7가지를 들어 경전 공부에 임하는 자세를 말했다. 서문을 보면 13세 소년은 워낙 재주가 뛰어났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늠하는 저울질의 역량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문선(文選)'을 읽는데 어디서부터 들어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첫째, 한 권당 1~2년씩 집중하여 수백 번씩 줄줄 외울 때까지 읽는다. 다 외운 책은 불에 태워 없애 버릴 각오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옆구리를 찔러도 막힘없이 나온다.둘째, 건너뛰는 법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읽어야 한다. 어렵다고 건너뛰고 막힌다고 멈추면 성취는 없다.셋째, 감정을 이입해서 몰입해야 한다. '논어'를 읽다가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하는 대목과 만나면 자기가 묻는 듯이 하고, 성인의 대답은 오늘 막 스승에게서 처음 듣는 것처럼 하면 절실해서 못 알아들을 것이 없게 된다.넷째, 계통을 갖춰서 번지수를 잘 알고 읽어야 한다. 군대의 대오처럼 정연하게 단락과 구문의 가락을 질서를 갖춰 읽는다. 덮어놓고 읽지 않고 기승전결의 맥락을 두어서 읽는다. 전체 글의 어디쯤에 해당하는지 따져가며 본다.다섯째, 낮에 읽고 밤에 생각하는 방식으로 되새겨 읽는다. 부산한 낮에는 열심히 읽어 외우고, 고요한 밤에는 낮 동안 읽은 글에서 풀리지 않는 부분을 따져서 깨친다.여섯째, 작자의 마음속 생각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옛사람의 정신과 기백을 내 안에 깃들이려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제거해서 조야한 습속을 밑동째 뽑아 버려야 한다.일곱째, 읽는 데 그치지 말고 자기 글로 엮어 보는 연습을 병행하는 것이다. 안으로 구겨 넣기만 하고 밖으로 펼침이 없으면 독서의 마지막 화룡점정은 이뤄지지 않는다.옛사람에게 독서는 소설책 읽듯 한 차례 읽고 치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추려서 새기고 따지고 가려서 꼭꼭 씹어 자기화하는 과정이었다. 성현의 말씀이 내 안에 걸어 들어와 내 삶의 전반을 변화시켰다. 많이 읽는 것만 능사가 아니고 깊이 읽어야 한다.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22/2015122203726.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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