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4-15
    조선 시대에는 천하에 해먹기 어려운 일로 '금강산 중노릇'을 꼽았다. 시도 때도 없이 기생을 끼고 절집에 들어와 술판을 벌이는가 하면, 승려를 가마꾼으로 앞세워 험한 산속까지 유람했다. 폭포에서는 승려가 나체로 폭포 물길을 타고 내려와 연못에 떨어지는 쇼까지 했다. 그들은 도대체 한 발짝도 걸으려 들지 않았다. 술 마시고 놀기 바빴다. 접대가 조금만 부실하면 매질까지 했다.홍백창(洪百昌·1702~?)이 '유산보인(遊山譜引)'에서 산을 유람할 때 경계해야 할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 관원과 동행하지 말라. 공연히 관의 음식이나 물품에 기대게 되고, 관장이 욕심 사납게 높은 곳까지 말 타고 오를 때 덩달아 따라가다 보면 유람의 흥취가 사라지고 만다. 둘째, 동반자가 많으면 안 된다. 마음이 다르고 체력도 같지 않아 혼자 마음대로 가고 쉬는 것만 못하다. 셋째, 바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일정에 너무 욕심을 내면 거쳐 간 지명만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적어 와 다른 사람에게 뽐내는 꼴이 된다. 시일을 한정하지 말고, 멀고 가까움도 따지지 말며, 마음으로 감상하고 흥취를 얻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 승려를 재촉하거나 나무라면 안 된다. 승려들은 산속의 주인인데 그들을 소와 말처럼 부리고, 작은 허물에도 매질까지 해대니 우선 점잖지 못하다. 또 그들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일부러 아름다운 경관을 감춰두고 보여주지 않으면 결국 내 손해다. 다섯째, 힘을 헤아려 일정을 가늠하고 나서 움직여라. 힘을 3분해서 1분은 가는 데 쓰고 2분은 돌아오는 데 쓴다. 가는 데 힘을 다 쓰면 돌아올 때 반드시 큰 근심이 생긴다. 근력을 헤아려 노정을 따져가며 가고 머묾을 정해야 한다.박제가는 묘향산 유람을 마친 후 쓴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 끝에 이렇게 적었다. "대저 속된 자는 선방(禪房)에서 기생을 끼고서 물소리 옆에다 풍악을 펴니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며 과일을 놓는 격이다." 누가 산속에서 풍악 잡히고 논 기분이 어떻더냐고 묻자 "내 귀에는 다만 물소리와 승려가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립디다"라고 대답했다. 어이 산행뿐이랴. 세상 사는 마음가짐도 다를 게 없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05/2016040503529.html​
  • 2016-03-31
    명말(明末) 장대(張岱·1597~1680)의 '민노자차(閔老子茶)'는 벗인 주묵농(周墨農)이 차의 달인 민문수(閔汶水)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간 이야기다. 민문수는 출타 중이었다. 집 지키던 노파는 자꾸 딴청을 하며 손님의 기미를 살핀다. 주인은 한참 뒤에야 "어째 여태 안 가셨소?" 하며 나타난다. 손님이 제풀에 지쳐 돌아가기를 기다렸던 것. 장대는 "내가 집주인의 차를 오래 사모해왔소. 맛보지 않고는 결단코 안 갈 셈이오." 무뚝뚝한 주인은 그제야 손님을 다실로 이끈다.전설적인 최고급 다기 십여 개가 놓인 방에 안내되어 끓여온 차 맛을 본 장대가 "무슨 차입니까?" 하자, 낭원차(閬苑茶)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상하군요. 낭원차의 제법이긴 한데 맛이 다릅니다." 민문수가 씩 웃고 말한다. "그럼 무슨 차 같소?" "혹시 나개차(羅芥茶)?" 그 말에 민문수의 표정이 싹 바뀐다. 장대가 다시 묻는다. "물은 어떤 물이오?" "혜천(惠泉) 것이올시다." "그런가요? 물이 조금 퍼진 느낌인걸?" "숨길 수가 없군요. 혜천 물이 맞긴 맞소만 한밤중 새 물이 솟을 때 길은 것이 아니라서."민문수가 혀를 내두르며 나가 새 차를 끓여 장대에게 따랐다. "마셔 보시오." "향이 강하고 맛이 혼후하니 봄에 딴 차로군요. 앞서 것은 가을에 딴 것이고요." 민문수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나이 칠십에 손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우리 친구 합시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맛 알기가 참 어렵다. 치수(淄水)와 민수(澠水)는 지금의 산둥성을 흐르는 물 이름인데 물맛이 달랐다. 두 물을 섞어 두면 보통 사람은 가려내지 못했는데 역아(易牙)는 틀림없이 구분해냈으므로 공자가 이에 대해 말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온다. 순욱(荀勖)은 진(晉) 무제(武帝)의 잔칫상에서 죽순 반찬을 맛보더니 "이것은 고생한 나무를 불 때서 요리한 것이로군"이라고 했다. 조용히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과연 오래된 수레바퀴를 쪼개 땔나무로 썼다는 전갈이었다. '세설신어'에 나온다. 사람 감별도 한 입에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 2016-03-23
    성종 8년(1477) 8월에 간관(諫官) 김언신(金彦辛)이 재상 현석규(玄碩圭)를 탄핵하며 소인 노기(盧杞)와 왕안석(王安石)에게 견주었다. 임금이 펄펄 뛰며 묻자 대신들은 현석규가 소인인 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의금부에서 김언신에게 장(杖) 100대를 친 뒤 섬에 3년간 귀양 보낼 것을 청했다. 임금은 사형에 처해도 시원찮은데 처벌이 너무 가볍다며 화를 냈다.동지중추부사 김뉴(金紐)가 상소했다. "대간은 임금의 눈과 귀입니다. 말이 임금에게 미치면 지존이 자세를 가다듬고, 일이 조정과 관계되면 재상이 대죄합니다. 신분 낮은 간관이 감히 임금 앞에서 간쟁하였으니 말이 맞지 않더라도 옛날 골경지신(骨鯁之臣)의 기풍이 있습니다. 실로 포상하고 장려하여 선비들을 권면해야 할 것인데 도리어 죄를 주시니 신은 대간이 해체될까 걱정합니다."임금은 화를 내며 김언신을 직접 문초했다. 잘못을 알겠느냐고 묻자, 김언신은 죽음은 두렵지 않고 잘못 논한 줄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임금이 더욱 성을 냈다. "내가 그를 썼는데 그를 소인이라 하니 너는 나를 당 덕종(唐德宗)이나 송 신종(宋神宗)과 견주려는 것이냐?" 김언신이 대답했다. "현석규는 노기와 왕안석의 간사함을 겸했는데 그를 쓰셨으니 신은 전하께서 두 군주보다 심하다고 생각합니다."한동안 말이 없던 임금이 하교했다. "죽음을 눈앞에 놓고도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은 신(信)이다. 내가 어찌 간신(諫臣)을 죽인 걸주(桀紂)를 본받겠는가." 즉시 차꼬를 풀어주게 하고 술을 먹여 직무를 보게 했다.골경(骨鯁)은 짐승의 뼈나 생선의 가시다. 억세서 목에 걸리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김뉴의 상소 중 골경지신이란 말은 듣기 거북한 직간(直諫)을 서슴지 않는 신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산은 '제진평세가서정(題陳平世家書頂)'에서 "나라에 골경지신이 없으면 그 나라는 마치 부드럽고 연한 살코기와 같다. 이것이 바로 진(秦) 나라가 육국(六國)을 모두 삼킬 수 있었던 까닭이다"라고 했다. 지금은 대통령이 듣기 싫은 쓴소리에 화를 냈다고 일제히 달려들어 죽이려 드는 세상이다. 조선일보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22/2016032203134.html​ 
  • 2016-03-20
     제나라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桓公)을 모시고 고죽성(孤竹城) 정벌에 나섰다. 봄에 출정해서 겨울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회정 도중 멀고 낯선 길에 군대가 방향을 잃고 헤맸다. 관중이 말했다.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라." 늙은 말이 앞장서자 그를 따라 잃었던 길을 되찾을 수 있었다.다시 산속을 가는데 온 군대가 갈증이 심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물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는 산 남쪽에 살고, 여름에는 산 북쪽에 산다. 개미 흙이 한 치쯤 쌓인 곳에 틀림없이 물이 있다." 그곳을 찾아 땅을 파자 과연 물이 나와 갈증을 식힐 수 있었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편에 나온다.늙은 말은 힘이 부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군대가 길을 잃어 헤맬 때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사실 늙은 말이야 저 살길을 찾아 달려간 것일 뿐이다. 그 길이 살길인 줄을 알았던 관중의 슬기가 아니었다면 전쟁에 이기고도 큰 곤경에 처할 뻔했다. 개미의 습성을 눈여겨보아 군대를 갈증에서 건진 습붕의 지혜도 귀하다.공천 정국을 둘러싼 정치권의 풍경이 한창 소란스럽다. 곁에서 보기에 민망하고 딱하다. TV에 비치는 표정부터 하나같이 살기가 가득하다.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늙은 말은 죄 버리고, 전투력이 있어도 제 편이 아니면 떨군다. 칼자루 쥔 자는 당해 봐라의 서슬로 날이 새파랗고, 당하는 자는 두고 보자의 결기로 눈에 핏발이 섰다. 한쪽에선 제 발로 나와 놓고 합치려 하지 않는다고 다툰다. 편 가르기가 중한지라 최소한의 당론도 원칙도, 심지어 위아래도 없다. 그러면서도 항상 국민의 뜻을 버릇처럼 되뇌는 것은 똑같다.관중의 지혜와 습붕의 슬기가 제환공의 패업을 든든히 뒷받침했다. 그런 경륜은 없이 제 무리의 이익만을 따져 토사구팽(兎死狗烹),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속셈을 구밀복검(口蜜腹劍)의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꾸미려 드니 패업은 어디서 이룬단 말인가? 잃은 길을 찾아줄 늙은 말의 지혜가 아쉽다. 묵직한 경륜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5/2016031503549.html​​ 
  • 2016-02-03
    ​ 해외에서 터무니없는 학술 발표를 듣다가 벌떡 일어나 일갈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막상 영어 때문에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있다 보면 왜 진작 영어 공부를 제대로 안 했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 신라 때 최치원도 그랬던가 보다. 그가 중국에 머물 당시 태위(太尉)에게 자기추천서로 쓴 '재헌계(再獻啓)'의 말미는 이렇다. "삼가 생각건대 저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통역하고 성대(聖代)의 장구(章句)를 배우다 보니, 춤추는 자태는 짧은 소매로 하기가 어렵고, 변론하는 말은 긴 옷자락에 견주지 못합니다(伏以某譯殊方之語言, 學聖代之章句, 舞態則難爲短袖, 辯詞則未比長裾)."자신이 외국인이라 글로 경쟁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만큼은 저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 말이다. 글 속의 '단수(短袖)'와 '장거(長裾)'는 고사가 있다.먼저 단수(短袖)는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의 언급에서 끌어왔다. "속담에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한다'고 하니, 밑천이 넉넉해야 잘하기가 쉽다는 말이다(鄙諺曰:'長袖善舞, 多錢善賈' 此言多資之易爲工也)." 춤 솜씨가 뛰어나도 긴 소매의 맵시 없이는 솜씨가 바래고 만다. 장사 수완이 좋아도 밑천이 두둑해야 큰돈을 번다. 최치원은 자신의 부족한 언어 구사력을 '짧은 소매'로 표현했다.장거(長裾), 즉 긴 옷자락은 한나라 추양(鄒陽)의 고사다. 추양이 옥에 갇혔을 때 오왕(吳王) 유비(劉濞)에게 글을 올렸다. "고루한 내 마음을 꾸몄다면 어느 왕의 문이건 긴 옷자락을 끌고 다닐 수 없었겠습니까?(飾固陋之心, 則何王之門, 不可曳長裾乎)" 아첨하는 말로 통치자의 환심을 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긴 옷자락은 추양의 도도한 변설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최치원은 자신이 추양에 견줄 만큼의 웅변은 없어도 실력만큼은 그만 못지않다고 말한 셈이다. 긴소매가 요긴해도 춤 솜씨 없이는 안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긴 소매의 현란한 말재간만 멋있다 하니 안타까웠던 게다조선일보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2/02/2016020203864.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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