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6-22
    다산이 이재의(李載毅)와 사단(四端)에 대해 논쟁했다. 이재의가 논박했는데 논점이 어긋났다. 가만 있을 다산이 아니다. "이달 초 주신 편지에서 사단(四端)에 관한 주장을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과 큰 차이가 없더군요. 노형께서 많은 사람 틈에 앉아 날마다 시끄럽게 지내시다가, 이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대충 보시기 때문에 제 글을 보실 때도 심각하게 종합하여 분석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주신 글의 내용이 제 말과 합치되는데도 결론에서는 마치 이론(異論)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더군요. 또 혹 제 주장은 애초에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주신 글에서는 한층 더 극단적으로 나가기도 했으니, 이는 모두 소란스러운 중에 생긴 일입니다. 지금 크게 바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두 사람이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임해 있고 뒤에는 솔바람이 불어오는 완도의 관음굴(觀音窟)로 함께 들어가 보고 듣는 것을 거두고 티끌 세상을 벗어나, 마음속에서 환한 빛이 나오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저의 당면토장(當面土墻), 즉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듯한 답답함과 노형의 장공편운(長空片雲), 곧 드넓은 하늘에 걸린 조각구름 같은 의심이 모두 탁 트여서 말끔히 풀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비록 1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는다 해도 반드시 한 곳으로 귀결될 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감히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한 까닭입니다." '답이여홍(答李汝弘)'에 나온다. 다산은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다. 글을 읽고 느낀 심정을 당면토장, 즉 흙벽과 마주하고 앉은 느낌이라고 적었다. 편지 속의 속내는 이렇다. 글을 잘 보았다. 논점도 없고, 결국 같은 이야기를 엄청 다른 이야기처럼 했다. 분잡스러운 중에 호승지심(好勝之心)으로 쓴 때문이 아니냐. 아무도 없는 완도의 관음굴로 함께 들어가 끝장 토론을 벌이자. 이런 식으로는 10년간 토론해도 제소리만 하다가 말 것이다. 듣지도 않고 언성부터 높이지만 결국은 같은 소리다. 처음부터 알맹이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다르다는 소리만 들으면 된다. 지금도 사람들은 같은 말을 다른 듯이 사생결단하고 싸운다. 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21/2016062103675.html 
  • 2016-06-15
    강재항(姜在恒·1689~1756)이 쓴 '현조행(玄鳥行)'이란 시의 사연이 흥미롭다. 제비 한 쌍이 새끼 다섯 마리를 길렀다. 문간방 고양이가 틈을 노려 어미 암컷을 잡아먹었다. 짝 잃은 제비가 슬피 울며 넋을 잃고 지내더니 어느새 다른 짝을 구해 새살림을 차렸다.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가 기르던 새끼를 발로 차서 마당에 떨어뜨린 것이다. 죽은 새끼의 주둥이를 벌려보니 입 안에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했다. 그 가시가 배를 찔러 잘 자라던 다섯 마리 새끼가 한꺼번에 죽었던 것이다. 새살림에 방해가 되는 새끼들이 거추장스러워 그랬을까? 아비는 제 새끼들에게 벌레를 물어다 주는 대신 가시를 물어다 먹였다.시인은 이 대목에서 "입 더듬어 먹은 물건 살펴봤더니, 날카로운 가시가 배에 가득해. 내 마음 이 때문에 구슬퍼져서, 한동안 손에 들고 못 놓았다네. 지붕에 불 지르고 우물을 덮었다던, 예부터 전하던 말 헛말 아닐세(探口見食物, 棘刺滿腹藏. 我心爲之惻, 歷時久未放. 塗廩與浚井, 古來傳不妄.)"라며 분개했다. 옛날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瞽叟)도 새장가를 들고 나서 아들에게 곡식 창고를 고치라고 지붕에 올라가게 해놓고 아래서 불을 지르고, 우물을 치게 하고는 이를 덮어 죽이려 했던 일이 있었다.위백규(魏伯珪·1727~1798)도 '잡저'에서 말했다. "제비는 암수 중 한쪽이 죽어 새 짝을 얻으면 반드시 가시를 물어다 이전 짝의 새끼에게 먹여 죽인다." 조선시대에 이 같은 생각이 꽤 널리 퍼져 있었다는 뜻이다. 새 아내가 전처소생의 자식을 구박하고 학대하는 일이 워낙 흔하다 보니, 제비의 행동에 이를 투사하여 보았던 셈이다.실제 짝을 잃은 제비는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부부가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 먹여도 새끼를 배불리 먹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시를 먹였다고 생각한 것은 오해다. 새들은 먹이를 통째로 삼키므로 역류 방지를 위해 목구멍에 가시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기관이 있다. 이것을 가시로 오해했다. 제비야 억울하겠지만 사물의 생태를 보며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교훈을 얻고자 한 선인의 그 마음만은 귀하다.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07/2016060703360.html 
  • 2016-06-06
    책꽂이를 정리하는데 해묵은 복사물 하나가 튀어나온다. 오래전 한상봉 선생이 복사해준 자료다. 다산의 간찰과 증언(贈言)을 누군가 베껴 둔 것인데 상태가 희미하고 글씨도 난필이어서 도저히 못 읽고 덮어두었던 것이다. 확대 복사해서 확대경까지 들이대니 안 보이던 글자들이 조금씩 보인다. 여러 날 걸려 하나하나 붓으로 필사했다. 20여 통 모두 짤막한 단간(短簡)이다. 유배지의 적막한 나날 속에 사람 그리운 심사가 애틋하다. 세 통만 소개한다."편지 받고 부인의 병환이 이미 회복된 줄은 알았으나 그래도 몹시 놀라 탄식하였습니다. 제 병증은 전과 같습니다. 제생들이 과거 시험을 함께 보러 가서 거처가 텅 비어 적막하군요. 매일 밤 달빛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만 줄입니다(奉書審有閤憂 雖已平復 驚歎猶深. 弟病狀如昔. 諸生竝作科行 齋居淸寂. 每夜月色 無與共之者 爲可恨也. 不具).""지각(池閣)에 밤이 깊어 산달이 점점 올라오면 텅 빈 섬돌은 마름풀이 떠다니는 듯 너울너울 춤을 추며 옷깃을 당기지요. 홀로 정신을 내달려 복희씨와 신농씨의 세상으로 가곤 합니다. 다만 곁에 더불어 얘기를 나눌 만한 운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傍無韻人] 안타깝습니다(池閣夜深 山月漸高. 空階藻荇 飜舞攬衣. 獨往馳神羲農之世 但恨傍無韻人 與之談論也).""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형께서는 건강이 어떠신지요. 보고 싶습니다. 저는 별일 없이 그럭저럭 지냅니다. 봄 동산의 붉고 푸른 빛깔이 날마다 사랑스럽군요. 이러한 때 한번 들르셔서 노년에 봄을 보내며 드는 이런저런 생각을 달래보는 것이 어떠실는지요. 진작 하인을 시켜 평상을 닦아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혼자 있게 하지 않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이만 줄입니다(花事方暢 未審兄軆益勝 慰仰慰仰. 弟省事姑依 餘無聞. 春園紅綠 日漸可愛 際玆一顧 慰此暮年送春之餘思如何. 早使山丁 掃榻以待 幸勿孤如何. 餘不宣)."풍증으로 팔에 마비가 온 상태로 공부에 몰입하면서도 그는 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20통에 이르는 짧은 편지를 필사하는 사이 다산의 한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내 안에 단단하게 새겨졌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31/2016053103685.html​ 
  • 2016-05-13
    윤원형(尹元衡)은 대비 문정왕후의 오라비였다. 권세가 대단했다. 이조판서로 있을 때 누에고치 수백 근을 바치며 참봉 자리를 청하는 자가 있었다. 낭관(郞官)이 붓을 들고 대기하며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리는데 윤원형은 꾸벅꾸벅 졸고만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낭관이 "누구의 이름을 적으리까?"하고 묻자, 놀라 깬 윤원형이 잠결에 '고치!'라고 대답했다. 앞서 누에고치 바친 자의 이름을 쓰라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졸았다. 못 알아들은 낭관이 나가서 고치(高致)란 이름을 가진 자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먼 지방의 한사(寒士) 중에 이름이 고치인 자가 있었으므로 그에게 참봉 벼슬을 내렸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온다.윤원형의 첩 정난정(鄭蘭貞)은 당시 본처를 독살하고 정실 자리를 차지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병문안 온 정난정이 앓아누운 본처에게 음식을 바쳤는데 그것을 먹자마자 본처가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다가 바로 죽었다는 풍문이었다. 첩이 정실로 들어앉아 행세해도 사람들은 그 위세에 눌려 아무 소리도 못 했다.정난정의 친오라비에 정담(鄭淡)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제 동생이 하는 짓을 보면서 반드시 큰 재앙을 입게 될 줄을 미리 알았다. 그는 여동생을 멀리했다. 왕래를 간청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는 집의 문 안쪽에 일부러 담장을 구불구불하게 쌓아(築墻繞曲) 가마를 타고는 도저히 출입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이 때문에 정난정이 오라비를 찾아가 볼 수도 없었다. 드러내놓고 거절한 것은 아니지만 거부하는 서슬이 사뭇 매서웠다.윤원형이 실각한 뒤 금부도사가 온다는 말에 저를 죽이러 오는 줄 안 정난정은 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다. 윤원형도 엉엉 울며 지내다가 얼마 못 가 죽었다. 하지만 정담은 평소의 처신 때문에 여동생의 죄에 연루되지 않았다. 그는 호를 물재(勿齋)라 했다. 예가 아니면 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집이란 뜻을 담았다. 그는 문장에도 능했고 '주역'에도 밝았다. 하지만 자신을 좀체 드러내는 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어질게 보았다. '공사문견록(公私聞見錄)'에 보인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10/2016051003557.html  
  • 2016-05-03
    두혁(杜赫)이 동주군(東周君)에게 경취(景翠)를 추천하려고 짐짓 이렇게 말했다. "군(君)의 나라는 작습니다. 지닌 보옥을 다 쏟아서 제후를 섬기는 방법은 문제가 있군요. 새 그물을 치는 사람 얘기를 들려드리지요. 새가 없는 곳에 그물을 치면 종일 한 마리도 못 잡고 맙니다. 새가 많은 데에 그물을 펴면 또 새만 놀라게 하고 말지요. 반드시 새가 있는 듯 없는 그 중간에 그물을 펼쳐야 능히 많은 새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군께서 대인(大人)에게 재물을 베푸시면 대인은 군을 우습게 봅니다. 소인에게 베푸신다 해도 소인 중에는 쓸 만한 사람이 없어서 재물만 낭비하고 말지요. 군께서 지금의 궁한 선비 중에 꼭 대인이 될 것 같지는 않은 사람에게 베푸신다면 소망하시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온다.득조지방(得鳥之方), 즉 새를 많이 잡는 방법은 새가 많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중간 지점에 그물을 치는 데 있다. 너무 많은 곳에 그물을 치면 새 떼가 놀라 달아나서 일을 그르친다. 전혀 없는 곳에 그물을 펼쳐도 헛수고만 하고 만다. 대인은 이미 아쉬운 것이 없는데 그에게 재물을 쏟아 부으면 대인은 씩 웃으며 "저 자가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할 것이다. 그렇다고 소인에게 투자해서도 안 된다. 애초에 건질 것이 없어서다. 지금은 궁한 처지에 있지만 손을 내밀면 대인으로 성장할 만한 사람에게 투자하면 그는 크게 감격해서 자신의 능력을 십이분 발휘할 것이다. 이 중간 지점의 공략이 중요하다. 대인은 움츠리고 소인은 분발해서 그물에 걸려드는 새가 늘게 된다.큰일을 하려면 손발이 되어 줄 인재가 필요하다. 거물은 좀체 움직이려 들지 않고 거들먹거리기만 한다. 상전 노릇만 하다가 조금만 소홀해도 비웃으며 떠나간다. 소인배는 쉬 감격해서 깜냥도 모르고 설치다 일을 그르친다. 역량은 있으되 그것을 펼 기회를 만나지 못한 이에게 동기를 부여해줄 때 뜻밖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새 그물은 중간에 쳐라. 하지만 그 중간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가 그 사람인 줄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면 이 또한 하나마나 한 소리다.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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