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판사, 弱者의 편에 섰던 법률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 美대법관 더글라스 평전 출간

미 사상 최장수 대법관 재직… 6·25 전쟁 중 訪韓하기도

"신생국 대한민국의 출발은 나쁘지 않다. 국회도 활기가 넘치며 김병로 대법원장이 이끄는 법원은 희망의 불씨를 품고 있다. 권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한국은 어디서든 강한 생존 본능을 느낄 수 있는 나라다."


6·25전쟁 당시인 1952년 9월 윌리엄 더글라스(1898~1980·작은 사진) 대법관이 한국을 방문한 뒤 이렇게 기록했다. 아시아 6개국 순방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미 대법관 중에서는 첫 방한(訪韓)이었다. 더글라스는 임시 수도 부산에서 이승만 대통령과도 3시간 동안 만났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그(이 전 대통령)는 늙었다. 행정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며 비판적 평가를 내렸다. 반면 한국의 장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었다. 최전방을 시찰한 뒤 "예외 없이 사기가 높았다. 특히 여러 나라 군대로 조직된 유엔군의 협조는 놀라운 수준이었다"고 적었다.

안경환(68)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라이프맵)을 펴냈다. 인권 변호사 조영래(1947~1990) 평전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5·16을 함께 '모의'했던 황용주(1918~2001) 전 문화방송 사장 전기에 이어 그가 쓴 세 번째 인물 평전이다. 더글라스는 1939~1975년 미국 역사상 최장수 대법관을 지냈다. 환경문제와 사생활 등에 대해 개혁적인 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개인의 사생활과 언론·표현의 자유, 평등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윌리엄 더글라스의 개혁적인 사상은 20세기 법 이론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개인의 사생활과 언론·표현의 자유, 평등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윌리엄 더글라스의 개혁적인 사상은 20세기 법 이론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한국 법학자가 미국의 대법관에 대해 전기를 쓴 이유가 궁금해 21일 서울 방배동 안 교수의 자택을 찾았다. 그는 "어느 사회든지 '90%의 법률가는 상위 10%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구조'라고 비판받지만, 나머지 10%의 법률가만이라도 90%의 지친 국민들에게 연민의 눈길을 보낼 때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 소수의 법률가에게 '표본'이 되는 인물이 더글라스라는 얘기다.

더글라스가 예일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인 1934년, 미국 증권거래위(SEC)의 위촉으로 착수한 '기업의 파산과 갱생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비윤리적 행태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는 변호사들이 담합해서 보수를 나눠 갖거나, 피의자가 법정 소환에 불응하기 위해 심리 치료사를 자문위원으로 고용하는 등 불법행위가 만연했다. 더글라스가 20만 건의 사례를 담은 연구 보고서 8권을 의회에 제출한 뒤, 1938년 미국에서는 투자기관의 책무를 강조하는 신탁책임법이 제정됐다.

더글라스는 안 교수가 법학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動力)'이기도 했다. 안 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80년 선경(현재 SK) 기획조정실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사표를 내고 미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주제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더글라스 판사라는 이름이 뚜렷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고 했다. 안 교수는 유학 후 1986년 더글라스의 법 사상을 분석한 논문집 '미국법의 이론적 조명'을 첫 책으로 펴냈다.

더글라스는 대법관 재직 당시 3차례 이혼했고, 비영리재단과의 유착 의혹 등으로 4차례 탄핵당하는 등 논란도 적지 않았다. 안 교수는 "더글라스는 흠투성이 인간에 가까웠지만, 법률가는 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편에 서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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