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다 고유한 이미지 찾아내는 게 기쁨"

[북디자이너 정병규씨의 '부초'] 

 

단색톤에 글자만 강조한 '부초'… 관행 무너뜨리는 파격 즐겨

독립출판사 '정병규 에디션' 설립 

칠십 평생을 압축하면 '딴짓하기', 다른 은퇴자와 달리 에너지 싱싱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삼국지', 황석영의 '장길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저자도 출판사도 다르지만 이들 스테디셀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표지가 모두 정병규(70)씨의 손길을 거쳤다.

 


북 디자이너 정병규씨가 ‘치양지(致良知)―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를 들고 서 있다. 양명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치양지를 책 표지에 멋진 타이포그래피로 구현했다. /남강호 기자

 

'한국 최초의 북 디자이너'로 불리는 그가 최근 출판사 '정병규 에디션'을 차리고 첫 책을 펴냈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의 '치양지(致良知)-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참고문헌과 각주, 찾아보기를 포함해 726쪽에 이르는 묵직한 학술서다. 2006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되고 2011년 대만에 소개된 뒤 국내에 '역수입'됐다.

 

3000여 종에 이르는 책을 손수 디자인한 정씨가 정작 자기 이름을 내건 출판사로는 '지각(遲刻) 데뷔작'을 낸 셈이다. 그는 "'단군 이래 최악의 출판 불황'이라는데 본격적인 학술서를 초판 700부 찍었으니 세태에 역주행하는 셈"이라면서도 "말로만 엄살 떨 게 아니라 책 한 권이라도 정성껏 만드는 일이야말로 불황을 이기는 길이라 믿는다"고 했다. 고희(古稀)의 '출판쟁이'가 제시한 불황 타개책은 '정공법'이었다.

 

그는 1975년 '소설문예'에 입사하며 출판계에 들어섰다.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이 당시 주간이었다. 신구문화사·민음사·홍성사 등을 거쳐 1979년 디자인 회사인 '여러가지문제연구소'를 차리고 독립했다. 정씨가 대표였고, 소설가이자 번역가 이윤기(1947~2010)씨가 'CEO 역할'을 맡았다.

 

그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 언론인·출판인들이 밤새워 술을 마시던 사랑방 역할을 했지만, 1년 만에 당시 300만원을 날리고 결국 문을 닫았다" 고 했다.

 

책 디자인은 경영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1977년 한수산의 '부초(浮草)'는 정씨의 첫 히트작이 됐다.

 

단색 톤에 제목만 강조한 정병규씨의 대표작 ‘부초’ 디자인.

단색 톤에 제목만 강조한 정병규씨의 대표작 ‘부초’ 디자인.

 

유랑 서커스단의 늙은 곡예사 윤재와 한물간 단장 준표, 소녀 곡예사 지혜, 난쟁이 광대 칠용 등의 굴곡진 삶이 담긴 소설이다. 단색 톤에 '부초'라는 두 글자만 강조한 이 책의 표지는 글과 그림을 병치하는 데 머물렀던 이전의 제작 관행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10권을 이어 붙이면 유유히 산맥이 이어지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냈던 '장길산'부터 액자나 창문 같은 사각형을 강조했던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총서'까지 그의 책 표지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정씨는 "책 표지는 '술 한잔 걸치고 기분 좋게 해주는 일'이라는 인식을 깨고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접착식 테이프를 활용해 굵고 거친 느낌을 강조한 활자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는 "모든 책에는 고유한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도 북 디자이너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3년부터 왼쪽 눈의 시력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인터뷰 도중에도 간간이 두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정씨는 "오른쪽과 왼쪽 눈의 시력 차이가 워낙 커서 원근감 조절에 애를 먹는다"면서 "책 보는 일이 힘들어진 게 가장 슬프다"고 했다.

 

칠십 평생을 딱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하자 '딴짓하기'라고 답했다. "학교 다닐 적에는 교지와 교내 신문 편집이 학과 공부보다 좋았고, 출판계에 들어온 뒤에도 디자인이 좋았다"고 했다. 정씨는 "민간 기업이나 공직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은퇴한 친구들과 달리 삶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사는 걸 보면 '딴짓' 덕을 톡톡히 본 셈"이라고 말했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10/20160510010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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