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감정을 아는 것이 철학의 전부다"

동서양 철학, 기독교, 불교의 통섭학자 전헌 "자기 감정을 아는 것이 철학의 전부다"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동서양 철학과 기독교, 불교의 종교의 통섭학자 전헌”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건 오류,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전해”

“후대 경제학자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잘못 해석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통섭의 철학자 전헌 교수. 그는 헬조선을 외치며 자조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세상이 다 좋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궁리해도 살 기운이 없다'고 설파한다.

▲ 동서양을 아우르는 통섭의 철학자 전헌 교수. 그는 헬조선을 외치며 자조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세상이 다 좋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궁리해도 살 기운이 없다'고 설파한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죽든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좋은 세상에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성이 찹니다. 그것만큼 자명한 진리가 없습니다. 학문은 사람이 다 좋다는 것과 사람 사는 세상이 다 좋다는 것을 다짐하는 공부입니다...이 얘기가 5천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도 공자도 맹자도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늘 하던 얘기니까요.


그리고 나도 소중하고 남도 소중하니까 호문호찰(好問好察)잘하세요. 정이 호문호찰입니다. ‘왜 슬프지?’ ‘왜 화가 나지?’, 물으시고 기쁠 때는 무엇이 기쁜 건지 즐거울 때는 무엇이 즐거운 건지 살피세요. 나를 언짢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상대방도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지?’하고 질문하세요.


‘내가 왜 화났지? 내가 모르는 게 뭘까?’라고 물어야 감정의 자기 인식이에요… 우리가 역지사지라고 하는데, 자리를 바꿔 생각하는 건 어려워요. 그 사람의 자리가 어디인지조차 알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되겠어요. 자리를 바꾸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게 돼요. 능동이 아니라 수동태가 돼요… 감정의 자기 인식이어야만 세상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다 좋은 세상임을 확인할 수 있어요"-재미 철학자 전헌의 첫 책 ‘다 좋은 세상(어떤 책)' 중에서.


74세 재미 철학자 전헌 선생이 국내에 첫 책을 냈다. 제목은 ‘다 좋은 세상'이다. 시집 판형에 163페이지의 작은 책이다. 쉬운 입말로 풀어썼고 제목도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한마디로 ‘괴물' 같은 ‘통섭’의 책이다. 그 안에 서양 철학과 불교와 유교와 퇴계학, 신학이 종횡무진 한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공자와 맹자, 퇴계와 스피노자, 예수의 가르침을 예로 들어 ‘세상은 완전하고 다 좋으며, 삶은 그것을 공부하며 배우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성경과 플라톤의 대화록 같이 읽으면 진리 폭넓게 드러나


앎과 믿음, 시간과 인식, 주관과 객관, 이성과 감정, 도덕과 선의지 등 엄청난 철학적 명제와 철학자들이 등장하지만, 지식에 압사당할 염려는 없다. 그 문장이 엄숙하지 않고, 동자승을 대하는 자애로운 스승의 말투 그대로다.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던 플라톤의 대화록과 공자의 이야기를 엮은 사서, 예수의 사복음서의 공통점을 추리해 내고, 스피노자와 퇴계 이황을 감정 과학의 반열에 두고 동서양을 넘나든다.


드러내기 싫어하지만, 그는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외삼촌이자, 멘토다. 김용 총재가 미국의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할 때, 취임식장에 나가 기도를 해준 사람도 전헌 선생이다. 전헌 선생은 지금도 김용 총재에게 “빈곤은 퇴치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에겐 빈곤이나 IS 테러 조차 ‘다 좋은 세상'의 일부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와 프린스턴신학대학교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매코믹 신학대학원 신학부 교수, 뉴욕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해석학의 거장 폴 리쾨르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철 스님 10주기 국제학술대회에서 돈수론에 관한 주제 논문을 발표했다. 2012년 국제 퇴계학회 회장에 취임했고,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노동경제학자 레베카 블랭크와 더불어 빈곤 연구도 진행했다.


전헌 선생은 미국에 거주하며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화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누님인 신학자이자 세계적인 퇴계학 석학인 전옥숙 박사의 영향으로 철학을 시작했다.

▲ 전헌 선생은 미국에 거주하며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화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누님인 신학자이자 세계적인 퇴계학 석학인 전옥숙 박사의 영향으로 철학을 시작했다.

 

전헌 선생이 한국의 대학교(성균관 대학교, 국민 대학교,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20대에서 60대까지 나이를 초월한 청강생들이 넘쳐 났다고 한다. 예수를, 소크라테스를, 석가를, 공자를 따르던 제자들처럼, 학생들은 전헌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 ‘복음을 들은 듯, 기뻐 살 것 같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왜 아니겠는가. ‘지옥 같이 느껴지는 세상이 알고 보면 다 좋은 세상’이라는데.


현재 미국 뉴저지에서 ‘안주인'과 함께 살며 국민대학교에서 화상 강의를 진행하는 전헌 선생과 몇 차례의 이메일과 함께 기나긴 전화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온화한 음성과 겸손한 태도에, 시종일관 ‘성자'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철학은 무엇인가요?


“철학은 아는 것 또한 모르는 것에 관한 일입니다. 공자의 ‘논어'에도 있듯이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의 기본입니다. ‘알 수 없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은 울타리를 친 빈말입니다. 말에서 바람을 빼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드러날 뿐이죠.”


-서울대학교 철학과,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 프린스턴신학대학교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매코믹 신학대학원 13년간 신학부 교수를 역임하셨습니다. 신학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치는 학문입니까?


“신학은 사람들이 왜 신이라고 말하며 살고 죽는지, 배우며 알아가는 학문입니다.”


전헌 선생의 첫 책 ‘다 좋은 세상' 철학자의 정교한 낙관론을 읽고 나면 살만한 힘을 얻는다.

▲ 전헌 선생의 첫 책 ‘다 좋은 세상' 철학자의 정교한 낙관론을 읽고 나면 살만한 힘을 얻는다.

 

-목회자나 신부가 되지 않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마냥 배우며 살다 보니 어느새 어린 양같이 살고 있더군요.”


-성철 스님의 제자인 박성배 전 뉴욕주립대학교 교수와 국제 체용학회를 결성해 불교 공부를 했고 성철 스님 10주기 국제학술대회에서 주제 논문 발표를 하셨습니다. 원효의 사상을 영어로 옮기는 일의 책임도 지셨는데요. 불교에서 얻은 가장 큰 삶의 깨달음은 무엇인가요?


“박성배 교수는 한국 불교학의 큰 산인데, 미국에 와서 저의 주선으로 신학을 공부했어요. 불교에서 얻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열반은 있는 그대로 ‘사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삶도 사실이 아닌가 의심해서 부질없어지겠지요. 저는 다른 종교의 친구들이 많아요. 그들이 다 저에게 배움을 줍니다. 유대교 친구들에게 유대교를 이슬람 친구들에게 이슬람을 배워요. ”


-철학에서 신학으로 그리고 유학에서 불교학으로 그 넘나드는 앎의 추구에 부딪힘은 없었나요?


“마냥 잘못 알거나 모르는 것에 부딪힐 때마다 더욱 궁금해서 되묻고 배우다 보니, 소문보다 사실은 언제나 새롭게 배울 것이 끝도 없이 많았습니다. 부딪히니까 뜨겁지요. 열정이 따로 없더군요.”


-18세부터 철학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 누님이 외국에서 공부하다 1959년에 한국에 들어오셨어요. 그해에 조카가(세계은행 김용 총재) 태어나고 누님은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으셨지요. 저는 1960년에 고교를 졸업하고 처음엔 공학도가 되려고 했는데, 누님의 서가에 있는 철학책들을 보면서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어머니이자 누님이신 전옥숙 박사(신학자이자 퇴계학의 세계적 석학)의 영향을 받아 철학 공부를 시작하셨군요.


“표면적인 이유는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미 어린 시절 철학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여덟 살 때였어요. 1950년 9.18 서울 수복 때 어머니와 맏형이 음식을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셨어요. 그해 겨울, 1.4 후퇴 때 다시 서울을 떠나야 했는데, 저는 엄마와 형의 생사를 모른 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어른들 앞에서 안 가겠다고 버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돌아가셨다는 직감은 드는데… 그렇다면 엄마와 형은 어디 갔을까? 아! 이미 나와 함께 있구나… 그런 결론을 내리니까 맘 편히 떠날 수가 있겠더라고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와 함께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시간과 존재에 대한 질문이 철학의 시발점이었군요.


“여덟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엄마가 어디 안 가고 내 곁에 같이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지켜줬지요.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철학적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철학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어땠습니까?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왜 군대에 가서 그 아까운 생명을 버리냐며, 패잔국이라고 꼭 나쁜 게 아니라고 설득해서 독약을 받게 됩니다. 숨넘어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세상에 있는 것치고 파리 한 마리도, 병균 한 덩어리도 좋지 않은 게 없다고 하죠. 잘 모르니까 저것 때문에 큰일 난다고 하는 거지, 배우면 좋음을 알 거라고요.


‘파이돈'이라는 책에 소크라테스가 죽는 장면이 나와요. 한 친구가 말을 많이 하면, 독약을 여러 번 마셔도 잘 죽지 않아 힘들 거라고 걱정하니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야 죽어도 좋은 데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살아야만 좋고, 죽으면 나쁘다고 생각하는 너희가 걱정이라고요.


제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를 때도, 저는 자꾸 기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흔 평생을 사시다 이제 어디로 가시는지는 모르지만, 있는 건 우주밖에 없는 건데, 그 우주가 밑도 끝도 없이 영원 무한하다면 어딘가 계시겠지 싶었지요. 제 감정이 슬픈 가운데 기뻤어요. 그렇게 깨달아갔습니다



조카인 세계은행 김용 총재와 전헌 선생. 전헌 선생은 김용 총재가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에 취임할 때 취임식장에 나가 그를 축복하는 명예로운 대표 기도를 했다.

▲ 조카인 세계은행 김용 총재와 전헌 선생. 전헌 선생은 김용 총재가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에 취임할 때 취임식장에 나가 그를 축복하는 명예로운 대표 기도를 했다.

 

-선생이 주장하시는 ‘다 좋은 세상'은 칸트와 데카르트 등 이성철학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칸트의 비판 철학이 21세기까지 군림하는 이유는 그 철학이 옳기 때문이 아니에요. 나쁜 게 따로 있다는 사람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도록 우리가 내버려두고 있기 때문이죠. 칸트는 인간은 진리를 모른다, 라고 단정합니다. 인간이 진리를 경험으로 알지 못해도 사는 이유는 인간이 선악을 가르는 기준인 양심의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무분별한 사람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없애야 할 나쁜 것으로 규정합니다. 거기서부터 ‘좋다' ‘나쁘다'의 답 없는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니까 선생의 생각에 칸트와 니체, 데카르트의 가장 큰 오류를 뭐라고 보십니까?


“악이 있다는 오류입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과거의 홀로코스트나 현재의 IS 테러 같은 상황도 ‘있어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분명한 ‘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것이 ‘필요악’이라는 개념인가요? 아니면 방법론적인 태도로서의 선택인가요?


“홀로코스트나 IS 테러는 사실입니다. 악은 사실이 아닙니다. 따라서 아무리 끔찍하고 기가 막혀도 사실은 묻고 파헤치고 배워서 알아야 합니다. 악이 사실이 아닌 줄 알고도 없는 악을 없애 버리려 들면 끔찍하고 기막힌 일이 또 벌어집니다. 악이 있다는 거품에도 불구하고 뉴스 미디어 덕분에 벨기에 참사의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결국 ‘타인'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다르다' ‘모른다'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 다름과 모름을 이해하려는 과정이 ‘배움' 즉 ‘앎'이라는 주장이십니다. 불교의 ‘천상천하유아독존'과 기독교의 ‘독생자'를 학문적으로 같은 출발선에서 놓고 보는 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예수와 석가모니의 ‘단독자'로서의 생애가 심플한 샘플로 제시됐다는 게 신선했어요.


“요한복음 1장 14절에 ‘독생자'라는 말이 나오죠. 그리스어로 모노게네스(monegenes)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구절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라는 한 인간을 낳았다는 뜻이죠. 하나님이 낳아주신 하나뿐인 인간, 각자가 소중하다는 얘기를 그렇게 한 겁니다. ‘독생자'라는 말을 ‘외아들’이나 ‘나밖에 없다'라고 풀이하는 건 해석이죠. ‘천상천하유아독존'도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나'라는 말이에요.


있는 그대로 들으면 되지, 해석이 끼어들면 안 돼요. ‘유아독존’과 ‘독생자', 우리 모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고, 독생자이기 때문에 서로를 슬프게도 기쁘게도 해요.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에요.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사이를 배우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배운다'라는 말은 하나밖에 없는 다른 것이 좋은 것을 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예수가 ‘여러분, 제게 와서 배우세요.'합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각각의 사물이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용하는 한, 완전성은 그 사물의 본질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해석학에 대해서 크게 비판하셨습니다.


“오늘날은 해석학이 지배하는 시대죠. 예수가 살았던 시대는 바리새인이 해석학자였어요. 신이 말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의미와 가치를 자의적으로 부여하죠. 해석학은 음식으로 치면 과한 조미료예요. 인생은, 진리는, 굳이 의미를 첨가해야만 괜찮아지는 게 아니에요. 원래 괜찮은 거예요. 공자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배우면 다 좋은 세상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때때로 해석학자들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해석이 사실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해석은 해석한 장본인의 것이라는 생각에, 부르는 게 값이에요. 복덕방인 거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제까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경전처럼 읽혔는데, ‘도덕감정론'과 함께 완전히 새롭게 읽기를 제안하셨어요. 그렇다면 기존의 경제 해석학자들이 ‘국부론'을 잘못 읽었다는 말인데요.


“국부론의 영어 원제가 ‘the wealth of nations’에요. 나라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지요. 애덤 스미스 ‘국부론’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 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자유 시장 경제는 전쟁 정신이 아니었어요.


알고 보면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도덕철학자였어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보다 ‘도덕감정론(1759년)'을 먼저 썼고, 그래서 ‘국부론'도 ‘도덕감정론'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해요. 사회적 본능인 ‘도덕감정’은 타인에게 동감을 얻으려는 노력,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에요. 시장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동감과 연대였어요.


그런데 후대 경제학자들이 스미스가 말한 사람 사이 분업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 좋은 ‘감정'을 간과하고 이익 추구의 탐심만을 강조한 거예요. ‘the wealth of nations’, 다 잘 사는 세상의 핵심은 ‘감정의 진실'이에요. 스미스는 평생 혼자 살면서 ‘도덕 감정론'을 수정하고 완성했어요. 그래서 죽기 전에 자기 묘비에 ‘국부론'의 저자라고 쓰지 말고, ‘도덕 감정론'의 저자 잠들다, 라고 써달라고 했지요.”


-인간의 본질은 감정이다, 감정의 본질이 학문의 핵심이다, 라고 하셨어요. 이성 철학이 지배했던 학계에는 굉장한 도전입니다.


“공자는 ‘중용'에서 감정이 존재와 우주의 알맹이라고 해요. 퇴계는 인간의 감정이 이해하고 보살피는 학문과 인간의 감정을 억누르고 몰아가는 학문을 엄밀하게 분간해서 전자를 이발이기수, 후자를 이발이이승이라고 천명했어요. 동양의 유학자 퇴계의 수제자가 100년 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사람이 스피노자예요. 싫어, 좋아, 미워, 화나... 퇴계는 칠정, 일곱 가지 감정을 말했고, 스피노자는 마흔 여덟 가지 감정을 열거해요. 끝도 없이 변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게 학문이에요.


그렇다며 이성은 뭔가? 이성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거예요. 이성을 다루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감정은 이성이 아니라는 한 마디인데, 칸트가 바로 그 말을 한 철학자예요.”



뉴저지의 집에서 서울과의 화상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전헌 선생.

▲ 뉴저지의 집에서 서울과의 화상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전헌 선생.

 

-감정이 이성이 아니라고 했을 때 문제점이 뭐지요?


“의심이 많아진다는 거죠. 칸트는 자기 주변의 학자들을 믿지 않았어요. 칸트가 자기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많이 다녔어요. 하지만 주변인들을 믿지 않아서 학회, 학자들과 교류가 없었어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썼잖아요. 그래서 그 책을 좀 많이 인쇄하라고 인쇄소를 찾아갔더니, 칸트 책을 인쇄할 시간도 종이도 없다는 거예요. 웬 젊은 녀석 소설이 불티나게 팔려서 그걸 인쇄하느라 바쁘다는 거죠. 그게 뭔가 했더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어요.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니 자살한다는 얘기예요. 사실, 자살도 사실을 사실로 보지 못해서 벌어진 사실이죠. 어쨌든 괴테가 감정을 다룬 소설 베스트셀러를 쓰고 후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이 되지만, 자신이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보다 잘 팔렸는지를 몰랐지요.


괴테가 망신당한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한 젊은 처녀한테 반해서, 그 어머니를 찾아가 “나 이렇게 유명한 괴테다. 그러니 딸을 달라"고 했다가 “이런 정신 나간 늙은이를 봤나?"하고 호되게 당해요. 인간의 감정에 대한 소설로 재상까지 올랐는데, ‘감정의 진실'을 몰랐던 거죠. 감정의 진실은 사실을 검토해야 해요. 상대도 함께 ‘다 좋은 것'을 찾아야지 자기 좋은 것만 바라는 건 진실이 아니죠.”


-니체는 어떻습니까? 좋다 나쁘다 시달릴 일 없이 초인적 의지의 힘을 내세우지 않습니까?


“칸트보다 괴테보다 더 많이 팔린 책이 니체의 책이에요. 독일 언어로 된 책 중 가장 많이 팔렸죠. 니체는 신학자였어요. 그런데 ‘즐거운 학문'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얘기하면서 인간이 초인이 될 것을 주장하지만, 나중에는 ‘절망하는 바보'로 자기를 노래했어요. 장엄하게 비극을 창조했고 정신병원에서 죽으면서, 비극을 완성했지요. 감정이 거추장스럽고 못 미더운 것으로 속단해 버리면 학문도 표류해요. 천재 영웅도 감정이 못 미더우면 하는 일이 빗나가죠.”


-학생들에겐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함께 책을 읽습니다. 철학,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국부론, 군주론을 같이 읽어요. 함께 읽는 데 학생들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라고 해요. 그건 그때까지 해석을 개입해서 그랬던 거죠. 저는 해석을 하지 않고 읽습니다.”


-믿음을 앎의 차원으로 승화시키셨는데,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때 신경과학자 샘 해리스와 ‘목적이 이끄는 삶’의 릭 워렌 목사가 ‘신’이라는 주제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만.


“샘 해리스는 알아야 믿는다고 하고, 릭 워렌은 믿어야 안다고 합니다. 한 동전의 양면일 따름입니다.”


-국제 퇴계학회 회장은 어떻게 맡으신 건가요?


“성균관 대학교에서 동서비교윤리학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책방을 갔더니, 우연히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가 같이 있더군요. 한 손엔 스피노자를 한 손에 퇴계를 들고 읽었습니다.그것을 통해 퇴계의 학문을 ‘정학'으로 접근해갔습니다. 퇴계는 감정을 핵심으로 삼아 인류를 설명한 학자라는 거죠. 이제까지 그런 논리를 펴는 사람이 없었는데, 제가 처음 주장을 했고 학자들이 인정해준 것 같습니다.


흔히 감정 과학은 객관 과학이 아니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객관은 주관이 쳐다보는 세상입니다. 객관은 해석이나 의미 추구를 일삼습니다. 그것을 제멋대로 객관이라고 합니다. 주관이 바로 보는 것, 그것을 감정이라고 부릅니다. 자기가 본바, 들은바, 느낌을 토로하는 게 감정이에요.”


Union Theological Seminary, NYC 총장(가운데)과 전헌 선생 내외.

▲ Union Theological Seminary, NYC 총장(가운데)과 전헌 선생 내외.


-요즘에는 혜민 스님을 비롯해 불교 지도자들이 마음 훈련 등에 관한 책으로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요는 남 신경 쓰느라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라는 거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 고마운 노력들입니다. 마음의 훈련은 몸 배우는 일인데, 몸 제쳐 놓으면 마음은 아무리 잘나가는 것 같아도 어느새 ‘아편’ 소리를 듣게 됩니다. 몸은 어느 몸이나 사랑 받았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사랑받은 몸이기에,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이 몸의 진실입니다.”


-어떤 때 기쁘고 어떤 때 슬프십니까?


“기쁨과 슬픔이 따로 있지 않아요. 더구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다 고마운 때이고 보니 따로 나누어보지도 않죠. 그냥 기뻐하고 또 슬퍼도 기뻐합니다.”


-‘다 좋은 세상'에서 슬픔이 나를 지킨다, 라는 말이 깊게 다가왔습니다. 슬픔은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요. 슬픔에서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슬픔이 다치지 않게 지켜준다는 걸 알면 됩니다. 엄마 믿고 엄마 앞에서 목을 놓아 우는 아이들은 어느새 잠도 잘 자고 놀기도 잘하면서 잘 배우며 자라지요. 반면 슬픔을 통제하면 아이들은 그대로 망가집니다.”


-일본의 지도자를 교육하는 감정학교 마쓰시다 정경숙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감정을 돌려놓는다고 해서 굉장히 신기했어요. 그 교육이 지도자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감정은 진실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감정학교 마쓰시다 정경숙은 지도자들의 요양소나 ‘아편’ 이상의 역할을 못 합니다. 다들 학교에서만 감정에 진실하게 생활 훈련을 하다가 학교를 나서면 감정은 뒤로 미루고 활동하니까요.”


세상을 바로 살아갈 만한 철학적 지침을 내려달라는 요청에 ‘사실을 배워 바로 알자'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 세상을 바로 살아갈 만한 철학적 지침을 내려달라는 요청에 ‘사실을 배워 바로 알자'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21세기 첨단 학문은 동식물은 물론 곤충에게 행위 철학을 배우는 일로 정신이 없다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설계자가 좋은 선택을 유도한다는 넛지 이론 등 행동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시겠지요?


“토머스 홉스는 행동 방안을 염려하는 행동과학은 철학이 아니라고 했어요. 감정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따르는 것만이 철학이라고 했지요. 행위 철학이라며 감정이 모방과 설계로 조작되리라는 환상은 사실이 아닙니다.”


-얼마 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교수가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 토마 피케티와 다른 접근을 취한다고 해서 논쟁거리가 됐었습니다. 노동경제학자 레베카 블랭크와 빈곤을 연구한 선생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앵거스 디턴은 ‘빈곤과 불평등’ 해소의 열쇠가 소비자 개인에게, 토마 피케티는 제도와 정책에 있다고 말하지만, 역시 한 동전의 양면입니다.”


-선생은 빈곤은 부족한 대로 충분하게 사는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이게 너무나 어렵습니다. 가난을 없애야 하는 문제로 여기기보다, 그 속에서 배우고 사는 일에 흥겨움을 알아야 한다는 말, 정말 어렵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만물은 가난하게 태어납니다. 가난을 타파한다는 말은 참 그럴듯하지만, 목욕물 버린다며 아기 버리는 격입니다. 아무리 부유하다 해도 사람의 실체는 자기 몸입니다. 벌거숭이 몸으로 가난하게 태어나기에 자유롭게 다 좋은 세상을 힘껏 배우며 우주의 풍요로움을 넉넉하게 즐기는 것입니다. 가난을 없앤다며 가진 것에 묶이면 자승자박하는 노예의 몸으로 전락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외삼촌이자 멘토로 알려졌습니다. 조카에게 하는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무엇입니까?


“조카는 59년에 태어났어요. 사람 알아볼 때부터 날 보고 가까이 지냈지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엄마 아빠보다 삼촌에게 물어보곤 했어요. 어느 집안에나 있는 일입니다. 총재로서 하는 일은 공직이지만, 저는 그가 감정에 충실한 사람, 자기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세계은행의 기치가 빈곤타파예요. 굶주린 아이들 먹게 하고, 아픈 사람 치료하고, 다 좋지요. 그런데 저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해요. 빈곤은 타파할 게 아니라고요. 빈곤을 타파하려 들면 관료 부패가 가장 먼저 생겨요. 빈곤을 타파하겠다는 사람들이 세계은행에서 돈을 받아다가 그걸로 사업하고 부자가 되죠. 가난한 사람에게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하지 말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존중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돈을 쓴 티가 나죠.


빌 게이츠가 김용 총재에게 한국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했답니다. 한국이 너무 잘 살아서 놀라고, 그렇게 잘 사는 데 열심히 사는 걸 보고 또 놀랐다고요. 그런데 머지않아 미국 사람들처럼 한국 사람들도 게을러지지 않겠냐고 해서, 제가 이렇게 말해주라고 했어요. 한국엔 ‘생고생'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국 사람은 고생을 사서라도 한다고요. 그게 뭡니까? 부모가 애 낳고 하는 말이죠. ‘사서 고생한다'. 사서 하는 고생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요. 한국인들이 말이죠(웃음).”


지난 주 김용 총재가 어머니의 모교인 Union Theological Seminary, NYC에서 강연하고 있다. 강연 주제는 ‘자비의 원칙'. 전헌 선생이 앞에 앉아 조카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지난 주 김용 총재가 어머니의 모교인 Union Theological Seminary, NYC에서 강연하고 있다. 강연 주제는 ‘자비의 원칙'. 전헌 선생이 앞에 앉아 조카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자랐고 오랫동안 외국에서 한국을 보아오셨습니다. 한류의 에너지가 넘치지만, 정치는 너무나 후진적이고, 수직적인 군대 문화가 지배하고 자살률은 전 세계 최고인 지금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언어가 정말 잘 보존되어 있고 발달해 있어요. 신라 시대 처용가도 지금 읽을 수 있죠. 영어는 셰익스피어 이전 것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중국인들은 문자 보존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말은 서로 달라 중국인들끼리도 안 통해요. 일본말은 가지런하지만, 표현력은 깊지 않지요.


한류는 감정이 제각각 많은 한국인이 그걸 지지고 볶고 말로 잘 표현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외국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한국 드라마는 잘 먹고 잘 싸워서 좋대요. 자기들은 그 정도 싸우면 헤어질 텐데, 한국인들은 싸우면서도 정이 뚝뚝 묻어난다는 거죠. 먹으면서 싸우고 먹으면서 사랑하고, 그 정이 다 말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한국인들은 원래 ‘나처럼' 살기 원하는 민족이에요. 우리는 공자를 공부하고 예수를 공부하지만, ‘공자처럼' ‘예수처럼' 살 필요 없어요. 그렇게 살려고 하면 문제가 생겨요. 우리는 제 각자 ‘알알이’ 모래알처럼 살아야 해요. ‘남처럼’ 비슷하게 살려고 하면, 독재하는 사람만 좋아요. 한국인들이 왜 ‘IT’ 시대에 잘 나가겠어요? 실리콘밸리의 모래알 정신이 한국인들에게 있어서예요. 연구비보다 연구 효과가 높은 곳이 한국이에요. 알알이, 제 각자, 나처럼 살면 아무도 무시를 못 해요.


학생들에게 ‘군주론'을 가르치면서, 그랬어요. 나답게 살면 임금을 시켜도 모자람이 없다고. 왕자병, 공주병이라는 말은 그래서 틀린 말도 옳은 말도 아니에요. 나처럼 살기 시작하면 알알이 공주이고 왕자인데, 나는 안 챙기면서 왕자처럼, 공주처럼 따라 살려고 하니 병이 되는 거죠.


나는 미국에서 50년 살면서 한국을 보는데, 한국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한국인들은 감정이 역동적인 민족이에요. 남이 하는 걸 자기 것처럼 금방 배워서 따라잡는 걸 잘하죠. 그건 괜찮아요. 하지만 남을 따라 살기 위해 자기를 부정하면 절망이 생겨요. 우리는 실망의 크기가 다른 나라 민족들보다 커요. 감정에 진실한 사람들이니까, 결국 나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 거죠.”


-희망도 없고 어른도 없는 세상이라고, 젊은이들이 많이 절망합니다. 희망은 무엇이고 어른은 어떤 존재인가요?


“희망은 다 좋은 세상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어른은 다 좋은 세상이 사실임을 말하는 존재입니다. 다 좋은 세상인데 왜 젊은이들이 절망하겠습니까? 아니라고 하니까 절망하는 것이죠(웃음).”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09/2016040900170.html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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