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5-16
    ​▲ 등단 20주년을 맞아 방한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창래 /알에이치코리아 제공“20년 전 첫 소설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미국 사회에서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낯선 아웃사이더의 목소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시아계든 파키스탄계든 아프리카계든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영어로 작품을 발표하고 미국 작가로 활약한다.지금 떠오르는 젊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도 이제는 점점 더 (외부의 목소리가 아닌) 그냥 미국 작가로 수용되는 추세에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기쁘게 생각한다. 내가 데뷔할 때와 달리, 지금 작가들에겐 좀 더 많은 것이 허용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지 않나 생각된다.”“한국에 오는 것이 점점 좋아지는 게 사실이다. 점점 이곳이 편해진다. 물론 한국말을 좀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웃음) 엊그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 일찍 잠에서 깼다. 새벽 5시쯤 숙소 밖으로 나와 주변에 먹을 게 있는지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 한 순댓국집을 발견했다.택시 기사와 배달원 같은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서로 대화도 나누고 있었다. 마치 어떤 사람 집에 초대받아 간 것처럼 편했다. 나는 물론 말이 서툴러서 함께 어울리지는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다. 그런 경험 자체가 굉장히 좋았다. 한국은 내게 여전히 특별한 곳이다. 마치 제대로 알지 못했던 먼 친척을 조금씩 알아나가는 과정 아닌가 싶다.”"우리 삶의 순간순간들은 절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은유(metaphor)이며 아날로그적이다. 결코 수량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학이 존재한다. 우리가 자기 존재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문학이다. 그 역할에 대해 특히 젊은 세대가 꼭 알았으면 한다."마이크 앞의 작가는 눈가의 주름만 제외하면 여전히 미소년이었다. 하지만 이마 위로는 흰 머리카락이 제법 많아 보였다. 벌써 등단 20년을 맞은 재미교포 소설가 이창래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50). 그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1995년 발표한 처녀작 '영원한 이방인'(원제 Native Speaker, 알에이치코리아)의 재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그는 서울 태생이다. 하지만 세 살 때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태평양을 건너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영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월가 애널리스트로 일했던 그가 1995년 발표한 첫 소설은 미국 문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펜·헤밍웨이상과 반스앤드노블 신인 작가상, 아메리칸 북어워드, QPB 뉴비전 문학상, 오리건 북어워드 같은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다시피했다.그 뒤에 출간한 ‘척하는 삶’(A Gesture Life) ‘가족’(Aloft) ‘생존자’(The Surrendered) ‘만조의 바다 위에서’(On Such a Full Sea) 등 내놓는 작품마다 잇따라 찬사를 받았다. 한국에 이름이 알려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작년에 낸 소설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올해 전미비평가협회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있다.요즘은 해마다 노벨상 발표 시즌이 되면 외신과 영국 도박 사이트에서 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은 농담거리일 뿐”이라며 웃어 넘겼다. 그로서는 “돈이나 유행을 좇지 않고 진지한 문학을 하는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이날 간담회는 문학 평론가 박철화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첫 책이 출간된 지 20년 만에 다시 나왔다. 그 때와 지금, 작품에 대한 느낌에 변화가 있나?사실 내가 쓴 작품을 그 뒤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런 자리에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잠깐 들춰볼 때가 있다. 그렇게 읽어 보면서 느낀 것은, 처음 작품을 쓸 때 다룬 주제들이 지금의 내 관심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 ‘영원한 이방인’은 미국 사회에서 외부인 취급을 받던 아시아계의 소외감,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다. 그와 동시에 언어가 가진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이민자의 이야기이자 언어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주제는 갓 등단한 작가가 쓸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 작가란 늘 자신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자신에게 맞는 문학적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지 늘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처녀작으로 적합한 소재를 다뤘다고 평가한다. 지금 읽어봐도 만족스럽다. 특히 당시 유행만 좇기보다, 지금 다시 읽어도 계속해서 마음에 울림을 주는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미국에서 한국계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2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 소설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나를 보는 시선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낯선 아웃사이더의 목소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시아계든 파키스탄계든 아프리카계든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영어로 작품을 발표하고 미국 작가로 활약한다.지금 떠오르는 젊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도 이제는 점점 더 (외부의 목소리가 아닌) 그냥 미국 작가로 수용되는 추세에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기쁘게 생각한다. 내가 데뷔할 때와 달리, 지금 작가들에겐 좀 더 많은 것이 허용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지 않나 생각된다.-소설의 영어 원제는 ‘Native Speaker(원어민)’인데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원어민과 이방인은 정반대의 뜻인데, 이런 해석에 대해 작가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영어 원제는 사실 굉장히 아이러니한 뜻을 담고 있다. ‘Native Speaker’는 사실 전통적인 표준 영어(correct English)를 구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미국에는 굉장히 다양한 민족들이 산다. 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영어를 쓴다는 뜻이다.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르다. 사투리라는 게 있긴 하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회다. 한국어 제목인 ‘영원한 이방인’은 영어 원제와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느끼는 소외감과 거리감, 그 감성적인 측면을 강조한 제목이다. 우리가 외부인이 되어 스스로에게 느끼는 소외감을 강조한 제목이다.​​-과거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자라면서 늘 주변과 다르다고 인식했고, 주변 상황을 민감하게 의식하며 자랐다고 했다. 나이가 들고 미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이런 소외감은 좀 덜한가?내가 어릴 때 느꼈던 주변 환경과의 '온도 (temperature) 차이'는 지금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전과 달라진 건 내가 이걸 점점 더 편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그런 소외감에 대해 더 감정적으로 반응했고, 갑갑하게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지혜로워진다고 해야 할까.(웃음) 점점 더 신경을 덜 쓰게 되는 면이 있다. 내 인생에 나타난 하나의 현상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현실은 어떤가?‘영원한 이방인’ 속에 나오는 주인공인 한국계 미국인 정치인은 굉장히 특별한 경우다. 아시아인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고 많은 게 바뀌었다. 물론 동양계 미국인이 미국 사회의 주류에 완벽하게 적응했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한국적’이란 말이 미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요리나 영화, 한류 등을 통해 전파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한국이라고 하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라 일일이 설명해줘야 했다. 그러나 이젠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 정도의 존재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과거 인터뷰 등에서 나이가 들수록 모국인 한국을 더 찾게 된다고 했는데?한국에 오는 것이 점점 좋아지는 게 사실이다. 점점 이곳이 편해진다. 물론 한국말을 좀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웃음) 엊그제는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일찍 잠이 깼다. 새벽 5시쯤 숙소 밖으로 나와 주변에 먹을 게 있는지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 한 순댓국집에 들어갔다.택시 기사와 배달원 같은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마치 어떤 사람 집에 초대받아 간 것처럼 편하게 서로 대화도 나누고 있었다. 나는 물론 말이 서툴러서 함께 어울리지는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지만, 이런 것은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다. 그런 경험 자체가 굉장히 좋았다. 한국은 내게 여전히 특별한 곳이다. 마치 제대로 알지 못했던 먼 친척을 조금씩 알아나가는 과정 아닌가 싶다.​-지금까지 작품을 보면 한국이나 한국인이라는 소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해결하지 못한 과제나 업보로도 보인다. 그런데 가장 최근 작품인 ‘만조의 바다 위에서’를 보면 한국적인 소재가 딱 한 번 등장한다. 그것도 먹다가 배탈이 나는 음식으로 등장한다. 한국이라는 소재를 극복했다는 뜻인가?작가는 늘 지금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글을 쓴다. 그 동안 서너 권의 책을 쓰면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바뀌었다. 초기 작품들이 개인적인 고민을 다뤘다면 가장 최근 작품인 ‘생존자들’과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이전보다 좀 더 넓은 세계관을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영향력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써보려 했다. 흰머리가 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쏟게 된 것도 같다.(웃음) 말씀하신 ‘한국적인 요소’라는 것은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지 다루게 될 것 같다. 한국인이라는 것은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 그 길을 따라가는 작가는 아니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새로운 형식으로 말하는 데에 늘 관심을 가지고 글로 쓰려고 노력한다. -20년이라면 긴 시간이다. 처음 글을 쓸 때와 지금, 앞으로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작년 대전에서 열린 세계 인문학 포럼 때 기조강연을 하면서 “인간은 아날로그적 존재”라고 선언했다. ‘아름다운 혼돈’을 옹호한다는 표현도 했다. 디지털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이며, 아날로그적 존재로서 글쓰기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생각을 듣고 싶다.당시 포럼에서는 “우리 시대 문학의 역할을 알자”고 강조하고자 했다. 문학은 우리가 아날로그적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삶, 우리의 인생은 은유(metaphor)이며 따라서 아날로그적이다. 우리가 사는 삶은 절대로 디지털화할 수 없고 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인생은 완전히 디지털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로는 완전히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다. 문학은 우리가 삶의 순간이나 의미, 혹은 모든 감정들을 다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우리는 수 세기에 걸쳐서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 삶 속의 느낌을 최대한 그 실체에 가깝게 표현해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탐구해 왔다. 디지털화된 세상은 우리 삶을 이진법으로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요소들이 수로 환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하지만 그런 삶에는 '망각'의 위험이 있다. 우리 삶의 순간이란 절대로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 존재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문학이다.나도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는 디지털이나 수로 담을 수 없는 신비와 수수께끼가 많다. 그래서 문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 기술로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게 많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영원한 이방인’을 쓸 때 어떤 독자를 염두에 뒀나?특정한 독자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 책을 쓸 당시에는 뉴욕에서 먼 오리건 주의 유진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 책을 누가 읽을지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뉴욕과 미국에서의 삶, 사람들에 대해 쓰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에서 나온 책이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열정을 담았다. 특정한 독자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당시 내가 느꼈던 섬세하고 치밀한, 사람에 관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매우 개인적으로 쓴 글이었다. 내면의 생각을 써 내려간 것이다. -한국에서 ‘생존자’란 제목으로 나온 소설의 원제는 ‘The Surrendered(투항자들)’다. 의미가 거의 반대에 가까운데?한국어판 제목에 내가 관여하거나 결정하진 않았다. 번역이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예술이고, 그 번역서의 한글 제목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아마 번역가가 생각할 때 그 작품 속의 어떤 중요한 것, 전달됐으면 하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여러 나라 출신 작가들을 미국 작가로 수용하는 점이 미국 사회의 장점이라고 했다. 요즘 미국 문학계의 흐름은 어떤가?내가 미국 사회에 대해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점은 문학계에 새로운 목소리가 끊임없이 받아들여진다는 거다. 다음에 우리가 주목하게 될 목소리가 어디에서 올지, 그게 뉴욕일지, 샌프란시스코일지, 남부 이민자 사회일지, 아프리카에서 온 여성 작가일지 알 수 없다.그런 점에서 미국 문학은 토양이 굉장히 풍부한 땅이다. 다양한 사람과 관점이 문학을 바꿔간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좋은 점이다. 이런 것은 현재 전 세계로 확산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다. 작년에도 영국 도박 사이트 상위권에 이름이 올랐다. 어떻게 생각하나?도박 사이트에 이름이 오른 것은 나도 들어서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건 우스개로 받아넘긴다.(웃음)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내가 좀 더 좋은 이유로 문학을 한다는 걸 독자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돈이나 유행을 좇는 게 아닌, 진지한 문학을 탐구하는 작가로서 기억되고 싶다. -평소에 다른 작가들 작품을 많이 읽는 편인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나 책이 있다면?어린 시절부터 다독(多讀)을 해서 나로서는 여러 의미를 가진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결정적인 영향을 준 어느 특정 작가나 작품을 지칭하긴 어렵다.나는 주로 독특하고 독창적인 작가들을 즐겨 읽는다. 간결하고 단순한 문체의 헤밍웨이 같은 사람도 있고, 복잡한 느낌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사람도 있었다. 시인을 포함해 여러 우아하고 위대한 작가들이 내게 영향을 줬다. 특별히 언어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보이는 작가에게 마음이 기우는 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어떤 건가?나는 다음 작품에 대해서는 되도록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징크스가 있다.(웃음) 지금 쓰는 작품은 동시대 이야기다.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어떻게 보면 모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 사업가의 행적을 따라 아시아 전체를 돌아보게 되는데, 한국적인 요소도 약간 들어가 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다루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어떻게 세계 문화에서 부각되고 있는지를 다룬다. ​◆ 이창래 작가는1965년 서울 생. 세 살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예일대학교 영문과에서 학사 학위를, 오리건 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분석가로 1년 동안 일하기도 했다.1995년 졸업작품으로 쓴 ‘영원한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1996년 펜·헤밍웨이상과 반스앤드노블 신인 작가상, 아메리칸 북어워드, QPB 뉴비전 문학상, 오리건 북어워드 등 6개 문학상을 받았다.이후 일본인 군의관의 시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척하는 삶’을 발표해 아니스펠트-울프상, 아시아-아메리카 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뉴요커지(誌)의 ‘미국 내 40세 미만 최고 작가 20명’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2000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주목받은 젊은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중산층 가족의 균열을 다룬 ‘가족’,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생존자’, 가상의 미래 사회에서 사는 잠수부 소녀의 모험을 그린 ‘만조의 바다 위에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설을 펴냈다. 미국 오리건 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와 뉴욕시립대 헌터칼리지 창작과정 학과장을 지냈고, 2002년부터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4년 연세대학교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이창래의 소설​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이창래 지음|정영목 옮김|알에이치코리아|516쪽|1만4800원1995년 발표한 이창래의 첫 장편소설.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교육받고, 백인인 미국 여자와 결혼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계 미국인 헨리 파크가 주인공이다. 그가 시장 출마를 앞둔 한국계 정치인 존 강의 뒷조사 임무를 수행하면서 느끼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렸다. 헨리 파크의 부모처럼 그야말로 '먹고 살기 바쁜' 뉴욕의 한인 1세대, 현재의 '성공 신화'로 불리는 뉴욕 시의원 존 강 등 다양한 한인 이민자의 삶이 작품 속에서 펼쳐진다. ​척하는 삶(A Gesture Life)이창래 지음|정영목 옮김|알에이치코리아|492쪽|1만4800원1999년 발표한 이창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작가가 일본군 위안부 참상에 충격을 받아 집필한 작품이다. 한국계 일본인이었지만 세계 2차 대전에 일본군 군의관으로 참전하고, 그 뒤 미국으로 이민한 남성 프랭클린 하타의 삶을 다뤘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관점에서 한국인 위안부의 실태를 고발해 주목받았다. 아니스필드-볼프 문학상을 비롯한 미국 문단의 4개 주요 문학상을 받았다. ​가족(Aloft)이창래 지음|정영목 옮김|알에이치코리아|480쪽|1만4800원이창래가 2004년 발표한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평생을 살아온 50대 남자 제리 배틀과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의 적당히 부유한 집안 자제가 누릴 만한 것들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아온 주인공이 은퇴 후 가족 구성원의 여러 문제점을 마주하게 되며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타임지(誌)가 '당신이 놓쳤을 수 있는 훌륭한 책 6권'으로 뽑았다. ​생존자(The Surrendered)이창래 지음|나중길 옮김|알에이치코리아|661쪽|1만5800원이창래가 2010년 발표한 네 번째 장편소설. 6.25 당시 한 산골에 세워진 고아원,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뒤인 1986년 미국을 배경으로 전쟁으로 뒤얽힌 세 남녀의 비극을 그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쟁 고아 준, 미군 병사 헥터, 선교사의 아내 실비의 교감과 상처를 조명한다. 전쟁 한가운데에서 자란 주인공의 상처투성이 내면을 다루며 그 참상을 고발한 작품으로 2011년 데이턴 문예 평화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만조의 바다 위에서(On Such a Full Sea)이창래 지음|나동하 옮김|알에이치코리아|528쪽|1만4800원계급이 엄격하게 구분돼 있는 가상의 미래 세계에서 살아가는 17세 중국계 잠수부 소녀 판의 모험을 다룬 소설이다. 미래가 배경이지만, 첨단 기기나 기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작품의 배경을 바꾸는 '낯설게 하기' 기법으로 현대 사회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 나간다. 책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 제4막 제3장에 나오는 브루터스의 대사 일부에서 따왔다. 2015년 전미 비평가 협회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있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15/2015051503059.html​
  • 2015-05-13
    2015-05-11 08:30 전병근 조선비즈 기자  2012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상에 첫 선을 보였을 때, 그것이 지구를 뒤덮는 히트 상품이 될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엉뚱하고도 기발한 뮤직비디오는 1년여 만에 유튜브 조회 수 23억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럭비공 같은’ 시장의 예측불가 반응은 그 다음에도 이어졌다. 이번에 싸이 팀은 후속작 ‘젠틀맨’을 내놓으면서 대대적인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치밀하게 짰다. 하지만 결과는 예전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유튜브 조회 수도 8억 건에 그쳤다.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 ‘대박’ 사례도 제과업계로서는 뜻밖의 날벼락 같은 ‘사건’이었다. 처음에 회사는 별다른 마케팅 활동을 펴지도 않았다. 하지만 트위터, 블로그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4개월 만에 월 매출 110억원이라는 업계 초유의 기록을 달성했다. 어찌 된 일일까?이제 상품 출시에 맞춰 광고만 쏟아내면 되던 시대는 갔다. 물건의 포장에만 신경 쓰고, 브랜드 관리만 잘 하면 되던 마케팅 시대도 저물고 있다. 경쟁사의 상품에 대항해 비교 우위만 차지하면 되던 시절도 갔다. 이른바 상품 자체의 사용가치가 중요해지는 ‘절대 가치(absolute value)’의 시대다. 마케터들도 대응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신간 ‘절대 가치’(청림출판)는 이와 같은 온라인 시대, 소비자 행동과 마케팅 전략의 패러다임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이 예측 불가능의 시장의 반응에 마케터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자인 이타마르 시몬슨(Itamar Simonson)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이런 책을 내게 된 이유는?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소비자와 마케터들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소비자와 마케터들에게 정확히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연구돼 있지 않았다. 이 책은 오늘날 널리 확산된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들이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평가하는 방식마저 바꿔 놓았음을 보여준다.-변화의 핵심은 무엇인가?오늘날 많은 소비자들은 이제 상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을 가늠할 때, 다른 소비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말과 평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 마케터들이 주로 관리 집행했던 광고나 포장, 여타 수동적 정보들에 의존할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다는 뜻이다.그 대신 그들은 자신들이 관심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품질에 관한 정보들을 빠르고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러한 변화가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었고, 마케터들의 영향력은 얼마나 떨어뜨렸지를 다양한 범주에 걸쳐 설명했다.-전통적인 마케팅 상식의 다섯 가지 오류를 지적했다. 간략히 설명한다면?전통적인 마케팅 상식이란,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을 할 때 따른다고 여겨져온, 마케팅업계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을 말한다. 오늘날 현실은 이것과 딴판인데도 여전히 많은 마케터들이 이걸 진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많은(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상품의 범주에서 이런 통념은 점점 적실성이 떨어지고 있다.①브랜드많은 마케터들은 회사의 브랜드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소비자들이 상품의 품질을 가늠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이 없을 때는 브랜드를 품질 측정의 방법 중 하나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용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올린 리뷰가 많다. 그럴 경우 회사의 브랜드는 척도의 효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②충성도마케터들은 회사 브랜드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호텔을 고른다고 생각해 보자. 10년 전만 해도 소비자들은 자신이 묵을 호텔을 정할 때 이전 경험에 크게 의존했을 것이다. 예전에 사용해보고 좋았으면 다시 선택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외면한다. 그 결과 한 가지 브랜드에 충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케터들은 지금도 소비자의 충성도를 중시한다.하지만 오늘날에는 인터넷 공간에 수없이 많은 다양한 리뷰들이 올라가 있다. 이것들을 언제 어디서든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상품/서비스 회사와 자신들의 관계를 ‘열린 결혼’으로 본다. 구매할 때마다 매번 처음부터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③정보 과잉많은 마케터들은 오늘날 너무나 많은 정보와 선택지들 때문에 소비자들이 압도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런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이 나와 있다. 이 책에서는 많은 소비자들이 다양한 정보 검색 도구들을 사용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선택적으로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④포지셔닝이전처럼 소비자들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주요 정보원으로 기업 마케터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때에는 마케터들이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자사 상품의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가 있었다. 즉,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로 만들 수 있었다. 가령, ‘안전’ 하면 볼보 자동차가 떠오르는 식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정보원이 달라졌다. 그런 등식화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⑤비합리성많은 영업관리자들과 관련 연구자들은 소비자의 선택이 공급자가 제안하는 맥락과 프레이밍(인식틀)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겉보기에는 별 관련이 없는 요인 때문에 A에 대한 선택을 B로 바꾸는 경우 소비자가 ‘비합리성’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지금도 맞는 말이다.하지만 연구소에서 통제된 실험을 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 그런 ‘불합리한 선택’ 효과를 입증할 수 있지만, 오늘날 쇼핑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마케터들은 소비자의 눈과 귀를 그런 식으로 완전히 장악할 수가 없다. -당신이 말하는 ‘절대 가치’란 무슨 뜻인가?‘절대 가치’란 각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선입견 없는 진짜 가치를 말한다.-그게 왜 중요한가?소비자들이 제품을 평가하고 구매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기본 방식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마케터들의 역할과 전략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이제 소비자들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의 새로운 원천을 갖게 되면서 진짜 가치를 보다 쉽게 알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이런 상품의 절대 가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품질 대신 브랜드나 가격, 원산지와 같은 대용물에 의존할 수박에 없었다. 그러니까 ‘상대적인 평가’에 훨씬 더 많이 의존했다.예를 들어, 카메라를 산다고 했을 때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의 성능이 실제로 얼마나 좋은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대신에 어떤 카메라가 다른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은 할 수 있었다. 두 제품 다 사실은 절대적 기준에서 보자면 그렇게 좋지는 않은 물건인데도 말이다.이처럼 상대적 가치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마케터들이 가끔씩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비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다. 즉, 마케터들은 자사 상품을 타사 제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들이 다른 소비자들과 전문가들의 정보와 체험에 의존하면서 사정은 급변하고 있다.-이전의 핵심 마케팅 수단인 ‘마켓 포지셔닝’이나 설득의 효과가 줄고 있다고 했다. 왜 그런가?소비자들이 각 상품의 절대 가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된 결과, 마케터들이 바라는 대로 소비자들이 상품을 인식하게 하는 포지셔닝 전략의 영향을 점점 덜 받게 됐다.가령, 휴대전화 회사가 자사 상품을 ‘페이스북폰’으로 포지셔닝하고 싶어한다고 치자. 하지만 소비자들은 다른 사용자들과 전문가들이 폰을 소개하는 방식에 기초해서 (마케터의 포지셔닝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다. 전문가들의 경우 마케터들의 의도대로 특정 사양이나 특징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은 아주 낮다.-절대가치를 설명하면서 ‘인지 구두쇠(cognitive miser)’ ‘타협 효과(compromise effect)’ ‘카우치 트랙킹(couch tracking)’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각각 무슨 뜻이며, 서로 어떻게 연결되나?소비자 의사 결정에 있어서 서로 연결되는 세 가지 개념이다.‘인지 구두쇠’는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필요 이상으로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아 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람들은 구매를 결정할 때 되도록이면 적은 양의 정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접근이 가장 쉬운 정보만 택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전(prior) 지식이나 그 순간에 우연히 접하게 된 지식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상품을 고르기 위한 정보를 찾을 때에도 곧바로 결론을 원하고 지름길을 바란다. 과거에는 인지적 지름길이 상품의 브랜드 같은 것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온라인 공간의 ‘별 다섯개짜리 리뷰’ 같은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타협 효과’는 수년 전에 내가 입증한 것인데, 소비자들에게 서로 다른 가격과 품질 수준에 따라 세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선택지를 제시하면 종종(항상은 아니지만) 중간 정도의 것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연구 결과를 두고 ‘소비자들은 비합리적’이라는 증거로 사용돼 왔다. 왜냐 하면 ‘합리적’ 소비자들이라면 상품의 절대(실질) 가치에 따라 평가를 내려야지, 어떤 자의적인 선택지항의 중간 정도에 맞추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타협 효과’가 줄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소비자들의 ‘상대적(비교적) 가치 사고’가 ‘절대적 가치 사고’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 중 하나다.‘카우치 트랙킹’: 요즘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품질 높은 정보를 너무나 손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꼭 어떤 것이 필요해서 구매해야 할 상황이 닥쳐서만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하는 게 아니다. 그 대신 마치 거실 소파에 앉아 모든 스포츠 경기의 전적을 챙기는 매니아처럼, 온갖 상품에 대한 정보와 궤적을 실시간으로 챙겨볼 수도 있다.-브랜드 파워가 줄었다고 할 수 있을까? 소비자들은 여전히 애플, 뉴욕타임스, 스타워즈, 펭귄북스 같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보인다.그렇다. 특히 애플과 삼성 같은 몇몇 브랜드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브랜드들조차 출시된 상품의 품질이 볼품없을 경우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상품에 대한 나쁜 소식이 삽시간에 퍼지도록 돼있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브랜드는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상품에 관한 더 나은 정보 원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품질의 신호’로서 브랜드가 갖는 중요성은 약해진다. 다만, 브랜드는 이제 소비자들 사이에서 ‘소통 지위(communicating status)’와 같은 다른 기능을 하고 있다.-상품의 절대가치를 따져서 구매한다기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소비하는 ‘과시 소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앞에서 말했듯이 브랜드는 다른 중요한 기능을 계속해서 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와 다른 많은 지역(미국 포함)에서 소비자들은 분명히 어떤 특정 브랜드들을 선호하는 성향을 보인다. 왜냐 하면 이 브랜드들이야말로 구매자로 하여금 뭔가 선별된, ‘쿨’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품질에 대한 정보 원천으로서 브랜드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쇠퇴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요즘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비이성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점점 합리적이 되고 있나? 합리성보다 오히려 감성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두 가지 개념을 따져봐야 한다. 첫째, 나를 비롯한 소비자의사결정 전문가들은 과거 ‘비합리성’을 이야기할 때, ‘보기에는 무관한 요인 때문에 선택을 바꾸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부터가 연구 경력 상당 기간을 소비자들의 ‘비합리성’을 입증하는 데 쏟았다. 그 결과 소비자들의 선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음을 보여줬다.하지만 이때 말하는 ‘비합리성’은 소비자들이 마케터들에 의해 통제되는 정보에만 의존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소비자들은 마케터들이 제시하는 상품 묘사나 비교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품질을 평가하는 데 더 능하다. 내 말은 소비자 개인이 더 합리적이거나 똑똑해졌다는 게 아니다. 그 대신 할용할 수 있는 고급 정보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더 잘 내릴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질문의 둘째 부분은 상품 구매를 결정할 때 감성에 의존하는 정도와 관련된다. 감성은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전히 많은( 하지만 전부는 아닌) 상품 범주에서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소비자나 전문가들 리뷰에 의존하면서 이 부분도 어느 정도 바뀌고 있다.온라인 공간의 많은 리뷰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은 대체로 이전보다 더 구체적이고 보다 사실 관련적이며 품질과 상품의 사용 체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그 결과 소비자들은 이제 마케터들의 과장 과대 광고에 덜 휘둘릴 수 있게 됐다. 물론 감성적 호소력은 여전히 강력할 수 있다. 그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내 말은 보다 ‘합리적인’ 정보원들이 소비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런 광고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거라는 얘기다.예를 들어, 1990년대에 자동차를 구매할 때를 생각해 보라. 몇몇 자동차 전문 잡지들 외에 소비자들을 둘러싼 정보 환경은 마케터들에 의해 지배당했다. 마케터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감성적 호소력을 소비자들에게 불어넣을 수 있었다.지금도 여전히 감성은 차를 구입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구매를 최종 결정하기 전에 수십가지 리뷰를 먼저 살펴볼 경우에는 그런 감성이 위력을 발휘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소비자들이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똑똑해지고 있다지만, 온라인 공간에는 부정확하거나 오도된 정보도 많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지지하는 정보만 택하는 경향도 있다.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인터넷의 정보가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용자는 자신이 즐겨 찾는 것만 보거나 혹은 어떤 범위에만 제한된 정보원을 고집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소비 행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리뷰 사이트만 해도 정보를 조작하려는 시도들이 있는 경우도 있다.하지만 그런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불가피한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즉, 큰 흐름을 봤을 때 앞으로 사용자와 전문가들의 리뷰가 품질에 관한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할 거라는 사실,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어떤 리뷰 사이트가 허위나 오도하는 정보를 실어 신뢰를 잃게 될 경우에도, 어느 선을 넘어갈 지경이 되면 그에 대한 행동을 취할 강한 동기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다른 신뢰할 만한 사이트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이다.앞으로 점점 전문가나, 친구, 아는 사람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말한 소비자들의 이동은 순간적이고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완벽한 정보를 향한 완만한 이동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확연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임에는 틀림없다.◆이타마르 시몬슨(Itamar Simonson)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 마케팅과 행동의사결정 이론 분야의 권위자이자 행동경제학 이론을 마케팅에 접목한 선구자. 약 30년 동안 행동의사결정과 소비자 선택을 비롯한 마케팅을 주제로 논문과 칼럼을 써왔다. 그가 발견한 ‘타협 효과’ 이론은 소비자 선택 이론 분야에서 주목 받았다. 신간 ‘절대 가치’는 입소문 마케팅 전문가인 엠마뉴엘 로젠과 함께 저술했다.    ​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11/20150511006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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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6 전병근 조선비즈 기자 “나는 우리가 직면한 주요 쟁점이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기술 발전을 감안하면, 인간이 자신을 어떤 우월한 종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려 들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처럼 바꾸려고 할 것이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다.인간은 그전까지 전통적으로 ‘신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돼온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은 아마도 조만간 생명체를 자의에 따라 설계하고 만드는가 하면, 자기 마음 속에서 직접 가상의 현실을 옮겨다니고, 수명을 극적으로 늘리며,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몸과 정신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그동안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성(humanity)만큼은 불변이었다. 하지만 수십년 안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성 자체가 급격한 혁명(radical revolution)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와 정신도 유전 공학과 나노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에 의해 변형될 것이다.이것은 엄청나게 새로운 기회와 더불어 경악할 만한 새로운 위험을 낳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하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는 현실주의자(realist)가 돼야만 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것이 공상과학소설(SF)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면 지금 정부나 시민 개개인이 걱정하는 다른 대부분의 문제들은 하찮게 보일 정도다.”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두고 세계 지성계를 강타한 책이 있다. 지난 2월 영미권에 출간된 ‘사피엔스(Sapiens)’다. 호모 사피엔스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대서사를 지식융합적으로 종횡무진 써내려간 책이다. 단번에 26개국어로 번역되면서 국제적인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국내에는 김영사가 올 하반기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저자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히브루대 역사학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원래 중세사를 전공했다. 어쩌다 이런 인류 역사를 포괄하는 책을 쓰게 됐나?10대 시절 나는 세상 일이 이해가 안 돼서 고민이 많았다. 왜 세상 일들이 지금 같은 건지, 인생의 목표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부모님과 선생님, 다른 어른들한테 물어봤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 역시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더 의아했던 것은 그들이 그런 걸 몰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돈과 경력, 주택대출금,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인생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완전히 태평이었다. 나는 혼자 다짐했다. 내가 크면 일상적인 세상사에 함몰되지 않고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이 책은 어떤 면에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책을 쓰면서 내가 세운 목표는 역사적 사실이나 명칭, 날짜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역사의 심층적인 메커니즘을 풀어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 현실이 어떻게 지금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숱한 신들(gods)과, 개인주의, 인권 같은 것들을 믿게 됐을까? 어쩌다 지금 같은 민족국가에 살게 됐을까? 어쩌다 자본주의가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 체제가 됐을까?-당신은 책에서 생물학과 역사학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했다. 이런 접근법을 취한 이유는?역사의 큰 질문에 답하려면 생물학도 감안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도 결국 하나의 동물이기 때문에 생물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세계 대전이나 세계 경제 위기를 생물학의 용어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물학은 역사의 기초에 해당한다.-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먼저 요약한다면?인간은 힘을 얻는 데는 극도로 우수하다. 하지만 그 힘을 행복으로 바꾸는 능력은 힘을 얻는 능력보다 훨씬 못하다. 오늘날 우리는 선조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그다지 더 행복하지는 않다.-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었나?호모 사피엔스 한 명을 침팬지 한 마리와 맞붙이면 침팬지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 10대 10으로 대결시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000대 1000으로 맞붙으면 사피엔스가 쉽게 이길 것이다. 인간이 가진 진정한 이점은 대규모 집단을 이뤄서도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미나 꿀벌도 대규모로 협력하지만 이들은 아주 경직돼 있다. 침팬지와 늑대는 개미보다는 훨씬 탄력적으로 협력하지만 서로 친밀한 소규모 그룹 내에서만 그럴 수 있다.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수많은 (혈족 아닌) 이방인들이 무리를 이뤄서도, 극도록 탄력적인 방법으로 협력을 할 수 있다. 월가나 톈안먼 광장에 침팬지 10만 마리가 있으면 난장판이 되고 말지만, 사피엔스 10만 명은 주식 거래망을 운영하고, 정치 집회나 스포츠 대회를 연다. 이것이 바로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반면 침팬지는 동물원과 실험실에 갖힌 이유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사피엔스는 이방인과도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었나? ‘집단 협력 본능’이 인간의 유전자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상상력 덕분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령 신이나 민족(국가), 돈, 인권 같은 것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수백만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수백만 명이 동일한 상상의 이야기를 믿으면 동일한 규칙을 따를 수가 있게 된다. 침팬지의 경우에는 설득을 통해 지금 내게 바나나를 주면, 죽고 난 후에 돌려받을 수 있고, 그런 선행 덕분에 너는 침팬지 천국에 가서 바나나 무더기를 받게 될 거라고 믿게 할 수가 없다. 오직 사피엔스만 그런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또 믿을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비결이다. -인간이 그런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에 종교도 포함시켰는데?종교는 허구에 기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거나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중요했으며 세계 정복의 열쇠였다. 내가 말하는 종교는 꼭 ‘신에 대한 믿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초인간적인 법칙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사회 규범이나 가치 체계라면 종교라고 할 수 있다.이슬람교와 기독교, 힌두교 같은 일부 종교들은 이런 초인간적인 법률이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불교나 공산주의, 나치즘 같은 다른 종교는 그런 법률이 자연적인 법칙이라고 믿는다. 어떤 류의 법을 믿든 모든지간에 종교는 동일한 기능을 한다. 인간의 규범과 가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국가와 기업 같은 인간 사회의 제도에 안정을 준다. 어떤 류의 것이든 종교가 없으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현대에 와서는 신적인 법을 믿는 종교들은 점점 퇴조하는 반면, 자연법칙을 믿는 종교들은 힘을 얻어가고 있다. 후자는 앞으로 더욱 더 힘을 얻을 것이다. 특히 실리콘밸리는 오늘날 새로운 기술-종교들(techno-religions)이 자라는 온상이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의 도움을 기반으로 한 지구 상의 낙원을 약속한다.-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수천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상에 번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다른 큰 동물들을 멸종에 이르게 했다. 가령 4만5000년 전 사피엔스가 호주에 상륙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대형 동물 90% 이상이 멸종됐다. 또 1만5000년 전 사피엔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했을 때도 이 지역 대형 생물의 70% 이상이 멸절했다. 사피엔스가 맨처음 밀을 경작하기 전에 이미 지구상의 대형 포유류 절반 가까이가 멸종됐다.오늘날 지구상의 대형 동물 90% 이상은 사피엔스이거나 우리가 길들이고 노예화한 농장 동물들이다. 이 동물들은 종종 공장 같은 시설에서 대량 생산되고, 신체도 산업적인 필요에 맞춰 주형된다. 이들은 평생을 거대한 생산 라인의 톱니바퀴로 살아간다. 이들의 수명과 삶의 질은 기업의 이윤과 손실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동물들 중에서 단연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농업 혁명이 인간 불행의 씨앗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가?흔히 농업 혁명이야말로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었다고 말한다. 그 덕분에 인류의 집단적 힘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를 보면, 평균적인 개인의 삶은 그로 인해 사실상 더 힘들어졌음을 보여준다.그 전까지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수렵과 채집에 적응해서 살아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가젤라를 좇고, 사과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오르고, 버섯을 찾아 숲속에서 냄새를 맡고 다니는 데 적응했다.반면, 농부의 삶은 오랜 시간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강에서 물을 길어 나르고 뙤약볕 아래에서 추수하는 것이 주를 이루게 됐다. 이런 삶의 방식은 인간의 등과 무릎, 관절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까지도 마비시키는 측면이 있다.식습관만 해도 수렵채집 시절 인간은 잡식성이었다. 수십 종의 과일, 견과류, 채소, 버섯, 포유류, 생선, 새, 파충류, 곤충, 벌레 같은 것을 먹는 데 익숙했다. 반면 농부는 쌀이나 밀 같은 단일 식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그로 인한 영양 부족 외에도, 농부들은 질병 감염에도 훨씬 더 많이 노출됐다. 대부분의 질병은 동물들이 가축화한 후부터 인간에게 감염되기 시작했다. 농업은 또한 사회 서열화와 착취, 가부장제의 길을 열었다. 심지어 오늘날 사회에서도 고대 수렵채집자들보다 일은 더 열심히 하지만 만족도는 더 낮은 삶을 사는 사람이 허다하다. -인류 역사의 경로를 결정지은 세 가지 중요한 계기로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 과학 혁명을 꼽았다. 이 중에서도 과학 혁명을 가장 중시했는데?왜냐하면 과학 혁명은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생물학 자체와 우주의 생명 경로 자체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이래 40억 년 동안 자연선택의 법칙이 지배했다. 바이러스건 공룡이건 자연 법칙에 따라서만 진화해왔다.하지만 이제 과학은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을 지적 설계(intellectual design)로 대체하려고 한다. 유전 공학과 나노 기술, 인공지능의 도움에 힘입어 이제 과학자들은 사이보그(유기체와 비유기체를 결합한 존재)를 개발하거나 완전히 비유기적인 존재를 고안해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과학 혁명은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게임의 시작이다.-과학 혁명의 위대함은 ‘무지(Ignorance)의 혁명’에 있다고 봤다. 무슨 뜻인가?대부분의 전통 문화에서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해 이미 해답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이슬람교도들은 쿠란에 답이 있다고 믿었다. 반면, 근대인은 많은 질문들에 대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에 대한 답은 어떤 고대 경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찰과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도 성직자들과 달리 과학자들은 많은 중요한 질문에 대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과학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역사의 주요 엔진이라고 했는데?세 가지는 서로서로를 떠받쳤다. 먼저, 과학과 자본주의는 제국의 확장을 위한 도구와 자금을 지원했다. 만약 근대 영국에 증기 기관과 증권 거래소가 없었다면 인도를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반대로, 제국과 과학은 자본주의의 등장에 필수적이었다. 자본주의는 부단한 경제 성장 위에 기초하고 있다.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확장과 과학의 발견 덕분이었다. 제국은 새로운 시장과 원자재를 공급했고, 과학은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와 재료와 생산물을 제공했다. 지난 200년 동안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원자 물리학부터 생명공학, 컴퓨터 과학에 이르는 일련의 과학적 발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마지막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과학에 필요한 자금을 대고 지원했다. 과학은 아주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다. 정부와 민간 기업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과학은 결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전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과학을 위해 필요한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제공했고, 그 반대 급부로 과학이 발견하고 발명한 것으로 무엇을 할지를 결정했다.-우리는 자본주의를 싫어할 수 있지만 그것 없이 살 수는 없다고 썼는데?자본주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우리는 어떤 현실적인 대안도 알지 못한다. 가장 최근의 진지한 대안이었던 공산주의는 스스로 완전히 파산했기 때문에 다시 시도할 배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주된 도전이라면 현실적인 대안의 공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뭔가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필요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지금 자본주의는 정말이지 큰 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나는 우리가 21세기에 직면하게 될 가장 주된 경제 문제가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를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알고리듬은 점점 더 많은 인지적 영역에서 인간을 따라잡고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의식에 관한 한, 유사한 어떤 것도 개발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 보이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의식까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능만 있으면 된다.의식은 없어도 지능이 뛰어난 자율주행차나 의사봇이 인간 운전수와 의사보다 일을 더 잘 하면 지구상의 수백만 운전자와 의사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의 ‘쓸모’는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무용해질 수십억 명의 인간을 어떻게 할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런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경제 모델도 갖고 있지 않다.-당신은 신화가 인류 역사에서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사회 질서를 위해서는 ‘고상한 거짓말(noble lie)’이 불가피하다는 뜻인가?어떤 류의 신화나 그 비슷한 것이 없으면 사회 붕괴나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별 혼돈 없이 신화적인 믿음이 포기될 수도 있다. 그 전에 수세기 동안 많은 사상가들은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범죄와 폭력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은 세속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큰 혼란이 없다. 오히려 신을 두려워하는 중동 지역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질서가 있다. 하지만 어떤 류의 관습적인 믿음 없이는 대규모 인간 사회가 작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화폐나 국가, 기업 같은 것에 대한 어떤 상상의 이야기들이 없다면 복잡한 인간 사회는 작동할 수가 없다.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도구일 뿐이다. 그게 우리 목표이거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들이 허구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우리는 현실에 대한 접점을 잃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업을 위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전면전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은 미친 짓이다. 기업, 돈, 국가, 민족은 우리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에게 봉사하게 하기 위해 만든 발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발 하라리 교수 /Ilya Malnikov-오늘날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신화는 뭔가?아마 자본주의의 성장 신화일 것이다. 경제 성장이 최상의 선이라는 생각,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 다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순전히 신화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당신은 종교가 과거 인류의 진보에 크게 기여했다고 썼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묶고 단결시키지는 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종교의 미래는 어떨 것이라고 보나?오늘날 종교적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중동 지역이 아니라 실리콘밸리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들은 단순한 기기나 알고리듬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테크노-종교들(techno-religions)이다. 이들은 옛 종교들이 했던 모든 약속들, 행복, 정의, 번영, 영원한 삶 같은 것들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도움으로 사후에 그런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여기 지상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가령 죽음만 해도 인류 역사를 통틀어 내내 형이상학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왔다. 우리가 죽는 것은 신이 그렇게 정했거나 우주 혹은 대자연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죽음을 기술적인 문제로 재정의하게 됐다. 전통적으로 죽음은 성직자와 신학자의 전문 분야였다면 이제 그 문제는 엔지니어들이 넘겨 받고 있다. 2년 전 구글은 캘리오(Calio)라는 이름의 자회사를 세웠는데, 이 회사의 목표는 죽음의 문제를 푸는 것이다.-스티븐 호킹은 “완전한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인류 종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AI 위협론에 관한 견해는?인류를 가장 놀라게 만들 발명이 ‘의식없는 지능(non-conscious intelligence)’이라는 데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의식은 없어도 지능은 고도로 높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말한다. 수백만 년 역사 속에서 고등 지능은 발달된 의식과 나란히 갔다. 오직 의식 있는 존재들만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는 업무, 가령 사냥이나 체스 게임이나 질병 진단이나 논문 쓰기 같은 일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지능은 점차 의식과 분리되고(decoupling) 있다. 우리는 인간보다 체스도 더 잘 두고 질병 진단도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의식없는 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둘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인가? 지능인가 의식인가?두 가지가 함께 나란히 진행되던 과거에는 이런 질문은 철학자들이나 한가롭게 고민할 문제였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 이 문제는 급박한 정치적 경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지능은 필수적인 반면, 의식은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 그런 관점에서는 우리 인간은 조만간 쓸모없고 무기력한 존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인간도 기술의 힘으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거칠게 말하면, 나는 우리가 직면한 주요 쟁점이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기술 발전을 감안하면, 인간이 자신을 어떤 우월한 종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려 들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처럼 바꾸려고 할 것이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다. 인간은 그전까지 전통적으로 ‘신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돼온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은 아마도 조만간 생명체를 자의에 따라 설계하고 만드는가 하면, 자기 마음 속에서 직접 가상의 현실을 옮겨다니고, 수명을 극적으로 늘리며,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몸과 정신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그동안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성(humanity)만큼은 불변이었다. 하지만 수십년 안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성 자체가 급격한 혁명(radical revolution)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와 정신도 유전 공학과 나노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에 의해 변형될 것이다.이것은 엄청나게 새로운 기회와 더불어 경악할 만한 새로운 위험을 낳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하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는 현실주의자(realist)가 돼야만 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것이 공상과학소설(SF)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면 지금 정부나 시민 개개인이 걱정하는 다른 대부분의 문제들은 하찮게 보일 정도다.-이제는 죽음을 기술적인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당신은 인류가 궁극적으로 불멸에 이를 수 있다고 믿나?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인간을 불멸로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바로 그 지식이 동시에 인간을 불필요한 잉여의(redundant) 존재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불멸을 추구함으로써, 인류는 자기 자신의 멸종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만약에 닥칠 비극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장 오랜 조언이야말로 가장 좋은 조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우리의 심신까지 바꾸는 능력을 포함한 유례없는 힘을 갖게 된 현실 앞에서,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알 수 있나? 나는 신체의 감각에서 시작하고 싶다. 지난 2세기에 걸쳐 인간은 점점 신체와 유리된 존재(disembodied being)가 돼왔다. 이 과정은 지난 20년 사이 정보 혁명의 결과로 점점 더 속도가 빨라졌다.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정보의 가상 세계에 연결돼 있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직접적인 감각 세계에서는 절연된 채로 지낸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침묵의 가치,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의 가치, 지금 여기에서 실제로 느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가치를 배우는 데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역사는 그 자체에 어떤 목표나 방향이 없다고 했는데?역사에 어떤 명확한 방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의 무작위적인 흐름에 의해 이리저리 밀려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정치인들은 미래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20세기만 해도 상당 기간 정당들은 인류의 미래에 관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비전이 있었다. 공산주의, 파시스트, 자유주의 같은 비전들이 서로 경쟁했다. 오늘날은 어떤 정당도 이렇다 할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앞서가는 리더이거나, 비전을 제시하는 선견지명의 사람(visionary)이 아니라 행정가로 전락했다. 거의 모든 정치적 논쟁들은 전략적 딜레마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단기적 전술적 불일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들이다.오히려 오늘날 인류의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유일한 집단은 기업가들인 것 같다. 가령 구글이나 애플을 경영하는 사람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옛 세계를 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고 하는, 마치 과거 레닌이나 마오 같은 혁명가는 누구인가?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 창업자)과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다. 내 말은 이들의 비전이 레닌이나 마오의 것처럼 가혹하거나 살인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단지 전 세상의 판을 다시 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들의 과감함과, 아주 처음부터 새로운 인간 사회를 건설하려는 구상의 크기로 둘을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로서는 미래에 관한 결정을 소수 엘리트 기업인과 엔지니어들 손에 맡겨두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당신은 현대 역사가들이 인류가 더 행복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우리의 힘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우리 삶도 과거에 비해 분명히 더 안락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만큼 선조들보다 훨씬 더 행복한가? 그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었던 것에 비하면 아마 지금 우리는 낙원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한 가지 설명은,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에 의존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기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대치는 조건에 곧바로 적응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좋아지면 기대는 다시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조건이 극적으로 좋아진다고 해도 우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불만족스런 상태가 될 수 있다.두 번째 설명은, 우리의 기대와 행복감은 우리 신체 내부의 생화학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생화학적 체계는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우리의 생존과 재생산의 확률을 높히기 위한 진화에 의해서만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원리는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든, 영원히 불만족스런 상태로 남게 해서 그것을 더 추구하게 할 뿐이다.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쾌락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기본적인 반응은 만족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추구하게 돼 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든지간에 상관없이, 만족이 아니라 갈망을 키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세상을 정복하는 데는 그토록 성공적이었지만 그 힘을 행복으로 바꾸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던 원인이다.-이런 상황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우리가 누구이고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가끔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거나 과거 실수에서 배우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우리 각자는 특정 규범과 가치의 체계, 특정한 경제 정치 질서에 의해 지배받는, 특정한 세계 속으로 태어난다. 그 결과,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접한 주변의 현실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아는 세계가 역사적으로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그것들이 우리의 기술,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는 방식까지 조건지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드물다.그러다 보니 과거에 덜미를 잡혀 우리 눈은 오직 하나의 가능한 미래로만 향하게 된다. 심지어 태어나는 순간부터 과거의 손아귀에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이런 손아귀를 느슨하게 하고 우리 머리를 좀 더 자유롭게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가능한 미래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역사를 모르면 역사의 우연적인 것들을 우리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민족주의, 개인주의, 인권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가 최근에 생겨난 것들이다. 우리 DNA에는 아무런 (천부의) 권리도 새겨져 있지 않다.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런 모든 인간적인 창조물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역사가 그토록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역사를 알려는 것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 유발 하라리 교수 /Rami Zarneger◆유발 하라리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 현재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히브루대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세 전쟁사로 학위 논문을 받은 후 세계 역사 연구로 확대. 그의 세계사 강의가 유튜브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책으로 낸 ‘사피엔스’가 맨처음 이스라엘에서 출간되고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 후, 세계 30개국어 가까이 번역되면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5/2015050502054.html​ 
  • 2015-05-02
    ▲ 독일 화가 스테판 마트(Stefan Mart)가 그린 돈키호테와 산초/Stefan Mart 공식 홈페이지​“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이다.”(르네 지라르)“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도스토예프스키)세계 유명 작가들이 첫 손에 꼽는 소설 돈키호테. 올해로 이 책 2권이 나온 지 400주년이 됐다. 때마침 세계적인 돈키호테 전문가인 호세 마리아 파즈 가고(José María Paz Gago, 57) 교수가 방한해 고려대와 건국대, 건명원, 한국영상문화학회 등에서 강연했다. 현재 스페인 라코루나 국립대 비교문학 교수인 그는 2004~2014년 세계기호학회 사무총장을 지낸 기호학자이기도 하다.파즈 가고 교수는 지난달 18일 고려대학교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돈키호테에 대해 “특히 지금처럼 유토피아 정신을 상실한 시대에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세계 문학 작품 중에 그림이나 공연, 영상 같은 시각 예술로 가장 많이 옮겨진 것이 돈키호테”라면서 “과거의 작품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작품이며 미래에도 살아남을 작품”이라고 했다. 그와의 인터뷰와 강연을 소개한다. 통역은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이자 세계기호학회 부회장인 김성도 고려대 교수가 맡았다.▲ 호세 마리아 파즈 가고 교수(사진 왼쪽)와 김성도 교수/윤예나 기자-한국은 처음인가? 어떻게 오게 됐나?처음이다. 한국영상문화학회와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초청으로 왔다. 올해가 돈키호테 2권이 나온 지 400년이 되는 해다. 오랫동안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연구해온 학자, 특히 기호학자로서 그 의의를 알리고 의미를 나누기 위해 왔다.-돈키호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어릴 때부터 흠뻑 빠져 살았다. 열세 살쯤 중학생 시절부터 돈키호테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대학에 간 뒤로는 돈키호테를 직접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박사 학위도 돈키호테 연구로 받았다. 돈키호테를 기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내용의 논문을 썼는데 10년이 걸렸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돈키호테는 어떤 책인가?스페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인생에서 한 번쯤 푹 빠져볼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내가 어린 시절엔 그랬다. 돈키호테란 작품이 바로 근대 소설의 효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갈수록 사람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스페인에서도 전보다 열기가 덜하다. 이런 현상은 유럽 전반의 대학 교육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전 교육을 예전보다 경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때문에 고전 읽기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고전 교육의 비중이 줄고 있는 이유는 뭘까?문학 작품 자체를 전보다 덜 읽는다는 얘기다. '스펙터클의 사회'를 쓴 프랑스 사회학자 기 드보르와 페루 출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이런 말을 했다. "현대 사회의 일반 대중이 스펙터클한 볼거리들과 텔레비전, 자극적인 볼거리와 이미지, 영상, 기술 등에 빠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학 작품을 덜 읽게 된다."-지금 우리가 돈키호테를 읽어야 할 이유는 뭔가?내가 생각하는 돈키호테의 장점 중 하나는 '시각성'이다. 돈키호테 원작을 읽는 사람은 줄었다지만, 지금까지 영화로 제작된 것만 해도 300편이 넘는다. 세계 문학 작품 중에 그림이나 공연, 영상 같은 시각 예술로 가장 많이 옮겨진 것이 돈키호테다.그만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수히 많고, 오늘날과 같은 영상 시대에도 잘 맞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돈키호테는 과거의 작품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작품이며 미래에도 살아남을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돈키호테는 어떤 인물인가?신분은 이달고다. 스페인 하급 귀족이다. 제일 빈곤한 귀족층이었다. 또한 독서광에다 이상주의자였다. 유토피아를 꿈꾼 인물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그래도 분명한 건 그가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정의를 가져다 주려 했고 가난하고 억압 받는 사람을 위해 싸우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그는 50세가 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집을 나갔다. 불의와 억압으로 가득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거다.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유토피아 정신을 상실한 시대에 특히 읽어야 할 작품이다. 현재성이 강하다는 이야기다.-돈키호테의 문학적인 성취는 무엇인가?무엇보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나오는 일화들이 워낙 풍부해서 시종 웃으면서 읽어낼 수 있는 근대 소설이다. 줄거리를 이해한 후에 다시 읽어보면 유토피아에 대한 추구, 삶의 보편적인 진실처럼 심오한 메시지까지 드러낸다.읽는 사람에 따라 분수에 맞게 다른 감동을 준다. 마냥 재밋거리로도 읽을 수 있고, 줄거리를 보면서 읽을 수도 있고, 심오한 삶의 진실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얘기가 바로 돈키호테다.돈키호테 작품이 가진 메시지의 보편성은 그것이 가진 유토피아, 이상주의, 근대성, 그리고 현재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 읽어도 그 시대에 맞게 읽어낼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돈키호테가 이후 서양 문학에 끼친 영향은?돈키호테 이전 서사 문학을 보면 한결같다. 영웅호걸이 나오고 늘 승리를 거둔다. 돈키호테에 와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실패를 맛본다. 그것도 실패를 거듭한다. 처음으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실주의적인 인간이 등장한 것이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현실적인 조건, 그 딜레마를 모두 인정한다. 그는 살아있는 인물이고 생동하는 인물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반 영웅적(antihero)이라고도 하겠다. 기존 문학 작품에서 보듯 언제나 승리하는 위대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모든 인간을 보여준다. 손쉽게 승리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조건을 보여준다. 마치 우리들 같다. 늘 실패를 거듭하고 실패를 실험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돈키호테 이후 서양 문학이 처음으로 상상의 세계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키호테 이야기는 결국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제정신'을 찾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세상을 바꾸지 못한 것 아닌가? 그래도 의미가 있나?그렇다. 돈키호테는 원래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끊임없이 좌절하고 실패했다. 처음으로 처절하게 세상에 맞서지만 실패한 주인공이다. 그 점에서 근대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중요한 점은 그렇게 처절히 실패하면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 속에서도 끝까지 꿈을 위해 싸우는 모습 자체에 의미가 있다. ​-꿈에 젖어 사는 돈키호테와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산초다. 그에 대한 생각은?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우리 삶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허구의 인물이 아니란 얘기다. 산초 역시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 인물이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연재됐던 만화가 플릭스의 ‘돈키호테’두 사람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돈키호테는 상상적, 시적인 인물인 반면, 산초는 산문적인 인물이다. 돈키호테가 모든 세상을 변형해서 본다면, 산초는 곁에서 늘 그 과대망상을 교정한다.시각적으로도 두 사람은 기막힌 대비를 이룬다. 서양 문학사 전체에서 이렇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는 거의 없다. 겉모습부터 그렇다. 돈키호테는 빼빼 마르고 키가 크며 산초는 뚱뚱하고 작달막하다. 한 사람은 이상을 향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교정한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돈키호테’햄릿, 베아트리체, 파우스트 등 서양 문학사의 위대한 작가들이 만들어 낸 유명 문학 작품 주인공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다고 해 보자. 이들을 알아보기란 생각보다 어려울 거다. 하지만 돈키호테와 산초가 있다면? 한눈에 알아보고도 남을 것이다.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사람이 콤비를 이루니 인상이 굉장히 오래 간다. 그런데 돈키호테 소설 전체를 보면, 돈키호테와 산초 사이에 서로 변형이 일어난다. 원래 지극히 이상주의적이고 꿈 속에 살던 인물 돈키호테가 점차 현실적인 인물이 되어간다. 반대로 산초는 갈수록 돈키호테화(化)된다. 이렇게나 대조적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서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이 잘 드러난다고 본다.-돈키호테에 대한 평가는 그 동안 어땠나? 변화가 있었나?처음 출간된 17세기에는 작품의 유머러스한 면, 코믹한 면이 높게 평가됐다. 아주 코믹하면서도 세련된 작품이란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18세기까지도 그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일 낭만주의가 번창했다. 그러면서 비로소 돈키호테의 초월성, 근원적인 메시지를 파악하게 됐다. 돈키호테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던 인물이다. 구원의 메시지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 점을 독일 낭만주의가 드디어 '이상주의(idealism)'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슈뢰거를 비롯한 독일 당대의 최고 지성인들이 돈키호테를 주목하게 됐다. 돈키호테가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하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며 집을 나선 건 당연히 이상주의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독일 낭만주의는 돈키호테 속에서 현실에서 벗어나는 초월성의 개념을 처음으로 읽어냈다. 그런 면에서 돈키호테가 전하려고 했던 진정한 메시지의 전달은 19세기에서야 독일 낭만주의에 의해 실현된 거라고 하겠다.-돈키호테는 패러디로도 유명한데?돈키호테 자체가 당대의 중세 기사도 소설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동시에 당대에 횡행했던 부당함, 억압받는 사람들과 정치적 편견까지 다 풍자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풍자의 바닥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책에는 숱한 유머가 가득하지만 돈키호테는 늘 사람을 도우려 한다. 즉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선(善)함'을 가진 인물이며 선을 실천하려는 인물이란 거다.-돈키호테를 패러디한 작품들로는 어떤 게 있나?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는 러시아 그리고리 코진체프(Grigory Kozintsev)가 감독한 영화 돈키호테(1957)가 있다. 줄거리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한데, 약간의 상징적인 장면들을 바꿔 넣어 원작보다 심각한 느낌을 강조했다. 가장 유명한 풍차 전투 장면이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동영상: 그리고리 코진체프 감독의 1957년 영화 돈키호테 중 일부)돈키호테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 중 하나가 러시아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문호들이 세르반테스를 굉장히 흠모했다.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지금도 초등학생들이 돈키호테를 즐겨 읽을 정도로 사랑 받고 있다.-러시아에서 돈키호테 열기가 높다는 건 의외다.물론 스페인을 따라갈 정도는 아니다.(웃음) 차이가 있다면, 러시아는 돈키호테 작품에서 나타난 비극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키호테가 역사에 의해 응징 받고 늘 실패로 끝나고 마는 그런 비극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이상주의나 유토피아주의 같은 긍정적인 면을 주목한다. ‘돈키호테 같다’는 말은 ‘이상주의자’ ‘유토피아주의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올해가 돈키호테 2권 출간 400주년이다. 본래 저자는 1권까지 쓰고 있다가 다른 아류작이 나온 걸 보고 2권을 내게 됐다던데?그렇다. 원래는 1권만​ 쓰려고 했다가 모작이 나오면서 분개해서 쓴 게 2권이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1권에선 중세풍의 구술이나 대화가 많이 나온다. 반면, 2권에서는 1권과 전혀 다른 기법들이 등장한다. 모작이 나왔기 때문에 세르반테스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펼치게 하는 동기를 부여 받았다. 2권 자체가 1권에서는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거다. 2권에 이르러 다양한 근대적 기법들이 나타나는 계기가 됐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젊은 시절 시인이었다. 같은 시인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시는 어떻게 평가하가?세르반테스는 '좋은' 시인이긴 했지만 '탁월한' 시인은 아니었다.(웃음) 희극도 썼지만, 탁월하지는 않다.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은 무엇보다 그의 서사 작품에서 나타났다고 본다.-최근 세르반테스의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걸 외신에서 봤다.하나의 증거나 단서 정도로 보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사실 마드리드에서 약간 정치적으로 다룬 느낌이 든다. 수천 구 이상의 시신이 발견됐던 곳인데, 뼈 몇 조각을 맞춰서 될 수는 있겠지만. 미디어 노이즈를 이용해 세르반테스에 대한 관심을 좀더 끌어내 보려고 한 것 같다. 설령 그게 진짜 세르반테스 시신이라고 하더라도, 진짜 중요한 유산은 유골이 아니라 지적 유산이고 작품 아니겠나.​▲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세르반테스와 동시대 작가로 셰익스피어가 있다. 둘 사이의 교류나 상호 영향은?기가 막힌 우연인데 동시대 인물인 두 사람이 같은 날(1616년 4월23일)에 죽은 걸로 알려져 있다. 내년이면 사망 400주년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있었는지를 놓고 아직도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지금까지 나온 정설은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마드리드 근처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 얘기다. 셰익스피어가 영국 사절단의 일원으로 스페인을 방문했다는 거다. 당대에 이미 명성을 얻은 두 문호가 한 번쯤은 조우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작년 말 런던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하나 발견됐는데, 돈키호테의 내러티브를 각색한 극작품이었다. 제목이 '거만한, 지나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신부들'이란 뜻인데, 세르반테스의 서사 작품을 드라마로 옮긴 것이다.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읽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두 작가가 개인적으로 서로 알았든 몰랐든 더 중요한 사실은 동시대의 두 사람이 서양 문화사의 근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작품 속에서 근대적 인물상을 그려냈다. 세르반테스는 근대 소설의 신기원을 열었고, 셰익스피어는 희곡과 연극의 근대성을 확보했다.-16세기말 사회의 부당함을 풍자하는 소설이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그 문제는 내가 책 두 권은 써야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웃음) 일단은 두 가지다. 내가 쓴 책 가운데 ‘경이로운 기계: 돈키호테에 있어서 테크놀로지와 예술’(2007)이라는 책이 있다. 돈키호테 시대에 나타나는 기술과 미술 작품 등에 대해 쓴 것이다. 그 당시를 보면 태엽으로 감아서 앞으로 가는 말 같은 기계가 많이 나온다. 자동화된 기계가 많이 나타나는 시대다. 기술 발전의 강도 차이는 있겠지만 그만큼 돈키호테가 나타난 시대 역시 변화와 변혁의 시기였다.이 시대에 왜 돈키호테를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돈키호테를 읽으면 사람이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읽고 나면 그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돈키호테가 지닌 보편성과 시각적 요소가 워낙 풍부하다 보니 지금도 새로운 실험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2012년에는 중국에서 돈키호테 영화를 마치 무협지처럼 만들었다. 돈키호테가 기사도 소설을 많이 읽어 미치광이가 된 장면을 오늘날 비디오 게임에 빗대 풍자한다. 새로운 시대에도 적용해서 재해석할 만한 요소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동영상: 중국 영화 돈키호테 트레일러)◆ 건명원 강의 요약​▲ 건명원에서 강연 중인 파즈 가고 교수와 김성도 교수/건명원 제공오늘 말씀드릴 것은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유럽, 서양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학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확신한다. 17세기 초 스페인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나온 작품이지만 세계에 내놓을 만한 문화적 기념비다.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문학사의 보편성과 세계 최초의 근대성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돈키호테는 지금까지 300편 이상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서양 귀스타브 도레를 비롯한 숱한 서양의 일러스트 전문가들이 돈키호테를 한 번씩은 그렸다.세계적인 영화 감독 오스 웰스도 30년 동안 돈키호테를 어떻게 영화화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끝을 맺지 못했다고 한다.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돈키호테처럼 많이 인용되고 시각적인 풍요로움을 가진 작품은 거의 없다.​이 그림은 스페인 화가 마리아노 빌라바가 2005년에 그린 ‘돈키호테의 밤’이라는 작품이다. 굉장히 초월적이면서도 돈키호테가 갖고 있는 노스텔지아가 잘 표현됐다. 돈키호테 자체가 '과거'에 대해 엄청난 향수를 지녔던 사람이다. 사실주의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문학 사조다. 19세기 말까지 서양 대문호들이 주창한 장르다. 저 사실주의가 돈키호테에 다 녹아있다. 돈키호테 이전, 즉 고대나 중세에는 소설이 아니라 환상 세계였다. 거인이나 상상의 동물이 나오고 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비로소 돈키호테에 와서 처음으로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게 된다. 이런 사실주의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에라스무스와 같은 거장이 미친 시대적 영향력 덕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키호테의 근대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바로 ‘메타(Meta) 문학’이라는 점이다. 소설 안에 엄청나게 많은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을 보면 작품 속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등장한다. 그와 마찬가지다. 돈키호테 역시 서술자가 있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인물을 통해 다시 서술하게 만든다. 커다란 이야기 속에서 작은 이야기, 그 이야기 속의 작은 이야기. 액자 구조라 하는 구조가 돈키호테 안에 다 나온다.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적 주인공이다. 그 이전 서사시와 기사도 문학에서처럼 승리하는 인간이 아니다. 철두철미하게 실패하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맞서서 한 번도 좌절하거나 무릎 꿇거나 자기 꿈을 잃지 않았다. 누군가는 세상과 맞서야 한다. 돈키호테가 바로 그 인물이었다.돈키호테는 후대 문학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살만 루시디,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프루스트 같은 사람들이 세르반테스를 거의 신격화했다.플로베르는 “나는 읽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세르반테스를 다 암송했다”고 했다. 말이 안 되긴 하지만.(웃음)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이야말로 인간의 사고에 대한 가장 위대한 표현”이라고 평했다.다른 문학 작품에도 돈키호테를 반영한 주인공이 숱하게 등장한다. 로빈슨 크루소도 전형적인 돈키호테적 인물이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인물이다. 우리 역시 세상에 맞설 때 늘 혼자란 생각이 들지 않나. 조너던 스위프트의 걸리버도 그런 인물이다.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도 마찬가지다. 플로베르는 직접 이 작품을 두고 "나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돈키호테 이야기"라고 고백한 바 있다. 프란츠 카프카도 돈키호테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 중 하나인데, 그가 쓴 극중 주요 인물은 돈키호테의 표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귀스타프 도레의 돈키호테 삽화돈키호테는 어떤 면에서 현실적이고 보편적인가. 그는 50대 초반에 실존적 위기를 겪고 집을 나섰다. 그는 독서광이었다. 당시 나돌던 기사도 소설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보편적 사실에 대한 관찰력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문학, 인간, 독서에 대해 굉장히 세밀하게 관찰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사실에 주목한다. 중요한 것은 세르반테스가 인간의 현실적인 조건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딜레마를 포착한 작품이다. 그래서 독자 역시 자신의 정체성과 쉽게 동화할 수 있다. 그것이 돈키호테 독법의 큰 매력이다.​​▲ 왼쪽부터 파블로 피카소, 안토니오 밍고테, 옥타비오 옥캄포가 그린 돈키호테돈키호테의 이미지는 그 후에도 다양한 곳에 차용됐다. 피카소가 그린 돈키호테도 있고, 만화 돈키호테도 있다.​​▲ 18세기 중국산 도자기에 그려진 돈키호테의 모습. 중국식 의상을 입고 있다.1750년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에도 돈키호테 이미지가 있다. 18세기 중국인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돈키호테라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문화적인 혼종이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돈키호테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그림도 있다. 왼쪽에 돈키호테 이미지가 나오고, 반대 편에 풍차가 있다. 초현실적으로 다양한 돈키호테 풍경을 그려냈다. 돈키호테를 영화로 만든 것만도 300편이 넘는다. 세르반테스 시대엔 영화란 게 없었다. 그런데도 흥미롭게 돈키호테가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영화 기법과 잘 맞아 떨어지는 서사 방식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마지막으로 돈키호테의 현재성이다. 바로 이 순간, 2015년 봄에도 여전히 돈키호테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돈키호테가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더 많은 영감을 가져다 주길 희망한다.◆ 질의 응답​-돈키호테 작품 속의 여러 장치가 품고 있는 천재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실 소설가 자신은 별 생각 없이 쓴 것을 우리가 확대 해석하는 건 아닌가?그 말이 맞다. 저자는 의도 없이 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렇게 풍부한 게 나왔다. 그게 바로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이다. 아르헨티나의 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돈키호테는 완전히 열린 작품이다. 보르헤스는 돈키호테란 작품이 모든 시대, 작품 속에서 늘 열려 있으며 각자의 독법에 따라 달리 읽히는 풍요로운 작품이라고 했다. 돈키호테는 ‘지구상의 두 사람이 결코 똑같은 독서를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다의적인 작품이다. 한 사람이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영감을 얻을 것이고, 20대, 30대, 40대, 50대에 각각 다시 읽어도 또 다른 영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18세기 중국 도자기에 돈키호테가 들어간 그림을 보여줬는데 그 시대 중국인도 돈키호테를 읽었다는 증거인가?18세기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상업적으로 중국을 지배했다. 당시 중국의 도자기를 엄청나게 수입하면서 자기네가 좋아하는 도식을 넣은 걸 주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도 소설을 읽었다기보다는 상업적인 결과물이다. -돈키호테는 왜 멀쩡한 정신으로는 세상에 나가지 못했을까? 그런 설정의 의도는 뭘까?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치지 않으면 세상은 안 바뀐다.(웃음) 이 건명원이란 학교도 일종의 ‘광기’ 아닐까 생각한다. 천부적인 광기라고 생각한다.-돈키호테가 끊임없이 실패를 겪는다고 했다. 반대로 실패나 좌절을 자초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나?맞다. 사실 사람은 계속 넘어져야 성장한다. 또한 돈키호테는 끊임없이 현실에 충격을 가하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게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호세 마리아 파즈 가고(José María Paz Gago)​스페인 라코루나 국립대 비교문학 교수. 현대 서사학의 거장인 프랑스의 즈네트 교수의 수제자. 돈키호테의 기호학적 연구를 중심으로 문학기호학과 영상기호학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세계기호학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시인이며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은 10여개국 언어로 번역됐다.☞관련기사2014.12.12. [인터뷰] "돈키호테가 정신나간 괴짜라고? 천만에!"윤예나 yena@chosunbiz.com​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1/2015050102198.html​
  • 2015-04-25
    ​▲ 14일 오피니언마이닝워크숍(OMW)에서 강연 중인 김탁환 작가/다음소프트 제공“누가 와서 ‘소설가가 될까요, 영화 감독이 될까요’ 하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토요일, 혼자 식당에 가서 라면을 먹으면서도 ‘아, 나는 행복하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있다. 그걸 못 견디고 친구들한테 전화하고 카톡하고 해서 다 불러 모아 밥 먹는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호랑이도 소설가도 혼자 산다는 게 특징입니다.”“소설가는 혜성이기도 합니다. 핼리 혜성이 1759년 조선시대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달 동안 빛났다고 조선왕조실록에 나옵니다. 한 달 동안 빛나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75년하고 몇 달 동안은 어둠 속에 있었다는 겁니다… 소설가도 그런 것 같아요. 75년하고 몇 개월 동안 소설가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소설을 쓰다가 책을 내고 나면 한 달가량 밖으로 나옵니다. 그 기간에 자기가 낸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소설가의 진면목은 75년 몇 개월의 그 어둠에 있다는 거죠. 골방에, 어둠 속에 틀어박혀 책 쓰고 있는 인간. 그게 소설가의 진면목입니다.”그렇게 ‘골방’에 박혀 한동안 책쓰기에 몰두했던 작가가 모처럼 밝은 무대로 나왔다. ‘오피니언 마이닝 워크숍(www.omw.or.kr)’. 소셜미디어에서 오가는 단어들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과 홍보, 기술 분야의 전문가 모임인 오피니언마이닝워킹그룹이 주최하고 다음소프트가 후원한 행사다. 올해는 10회째를 맞아 지난 14~17일 나흘에 걸쳐 서울 한남동 파트너스하우스에서 열렸다. 주제는 ‘사람, 사람을 바라보다’. 소설가, 심리학자부터 물리학자와 뇌과학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연사로 나섰다.올해 장편 역사추리소설 ‘목격자들’(민음사)을 출간한 김탁환 작가는 행사 첫날 연단에 섰다. 강연 제목은 ‘인간을 아는 세 가지 방법’.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물론 여느 자리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날 2시간 가까이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던 강연 내용과 문답을 소개한다. 인간을 아는 세 가지 방법반갑습니다. 쑥스럽네요.(웃음) 왜 쑥스러운가부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부터 몇 권의 책을 소개해 드릴 건데, 제 책은 사실 필요가 없구요, 다른 책들은 좋은 책이니까 사셨으면 합니다.(웃음)​이 책은 제가 2010년에 쓴 소설 ‘밀림무정’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포수가 호랑이 잡는 이야기입니다. 원고지로 한 2500매 되는 소설인데, 다 쓰고 난 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소설가는 호랑이와 같은 존재라고. 아마 오늘 저한테 틀림없이 “소설가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들 하실 텐데요, 그래서 미리 답을 드리는 겁니다. 소설가는 호랑이와 같은 존재라구요.(웃음)왜 소설가와 호랑이가 비슷할까. 오랫동안 생각해봤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그 생각을 했습니다. 네 가지 정도 비슷하다고.첫 번째는, 호랑이는 혼자 있습니다. 사자는 모여서 작업들을 하는데 말입니다. 영화 하는 친구들을 보면 뼈저리게 느낍니다. 감독 곁엔 늘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거의 100명 가까이 됩니다. 밥 먹을 때도 몇 명씩 같이 다닙니다. 저 친구는 예술가인지 아니면 CEO인지 헷갈릴 정도로 몰려다닙니다.(웃음)하지만 소설가는 혼자죠. 쓰면 쓸수록 혼자라는 걸 뼈저리게 느낍니다. 누가 와서 “소설가가 될까요, 영화 감독이 될까요” 하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토요일, 혼자 식당에 가서 라면 먹으면서도 '아, 나는 행복하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있다. 그걸 못 견디고 친구들한테 전화하고 카톡하고 해서 다 불러 모아 밥 먹는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영화감독이든 뭐든 다른 사람과 같이 작업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니까, 호랑이도 소설가도 혼자 산다는 게 특징입니다.두 번째, 둘 다 방랑자라는 겁니다. 호랑이는 보통 수컷의 경우 반경 300~400킬로미터를 돌아다닙니다. ‘호랑이가 멈추면 그때는 죽을 때’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자기 영역 안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거죠. 소설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작품 마치고 나면 다음 작품, 또 다음, 또 다음 작품으로 계속 돌아다니죠. 그래서 방랑자 기질이라는 게 호랑이에게도 소설가에게도 다 같이 있는 것 같습니다.​세 번째 공통점은 둘 다 추격자라는 겁니다. 호랑이를 보면, 사냥할 때 노루나 멧돼지 같은 먹고 싶은 목표물이 생기면 집요하게 쫓아다닙니다. 그런데 ‘나 호랑이야’ 하고 드러내 놓고 쫓아다니지 않습니다. 꼭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뒤를 계속 밟습니다. 굶어가면서까지, 보통 한 보름까지도 쫓아다니는 호랑이가 있다고 해요.굶으면서도 “나는 저 녀석을 꼭 먹고 말거야” 하면서 계속 그렇게 쫓아다닌다는 거죠. 한번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쫓아다니는 호랑이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게 쫓아다니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들키는 거라고 합니다. 그걸 너무너무 싫어한답니다. 인도 북부 쪽에 가면 숲이 무성한 지역에 호랑이와 인간이 함께 사는 곳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생존 비법 중 하나가 뭐냐고 하면, 그곳 주민들은 탈을 쓰고 다니는데 그걸 얼굴 쪽이 뒤로 향하게 쓰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물가에 앉아있거나 하면, 호랑이가 다가오다가도 그 탈의 눈과 마주치면 ‘에이, 기분나빠, 들켰네’ 하는 식으로 다른 먹잇감 찾으러 간다는 거예요.(웃음) 그러니 최대한 자기 발소리도 숨기고 흔적도 숨기고, 밀림의 제왕이란 것도 숨기고 살금살금 찾아다닌다는 거죠.소설가도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쓰고 싶은 소재가 정해지면 한 달이든, 6개월이든, 몇 년이든 자료를 찾고 취재를 하고, 전문가를 만나고 답사를 가고, 계속해서 그걸 추격합니다. 혼자 추격하다 보면, 그게 멋지기도 하고 굉장히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요.마지막은 '포식자'란 거죠. 호랑이는 먹잇감을 최대한 몰아가서,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왔다 싶으면 점프를 합니다. ‘부웅’ 날아서 앞발로 멧돼지든 노루든 목뼈를 ‘빠악’ 내리칩니다. 한 방에 죽여야 해요. 한 방에 못 죽이면 먹잇감이 달아납니다. 호랑이는 지구력이 없어서 달아나면 다시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전까지 보름을 추격했다고 해도 한 방에 안되면 고생한 게 다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소설가도 항상 그런 걸 꿈꿉니다. 내가 독자들을 ‘한 방에 죽이겠다’고.(웃음) 끝내주는 문장으로 독자들이 책을 여는 순간부터 사로잡도록 만들겠다. 그래야 끝까지 독자를 확 잡을 수 있으니까. 그게 호랑이와 소설가의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5년 동안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1986년 촬영된 핼리 혜성/위키미디어올해 ‘목격자들’이란 소설을 냈는데, 이걸 쓰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소설가는 혜성이다.” 어떻습니까. 좀 있어 보이지 않나요.(웃음) 여기 보시는 사진은 핼리 혜성인데요, 이게 제 소설 속에도 나옵니다. 그냥 ‘멋지게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이 혜성이 1759년에 왔다고 하는데 그때 한 달 동안 빛났다고 조선왕조실록에 나옵니다. 1835년에도 한 달 동안 빛났다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한 달 동안 빛나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75년하고 몇 달 동안은 어둠 속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비티’ 같은 영화를 보면 어둠 속에 혼자 우주에 떨어지면 무섭고 공포스럽잖아요. 소설가도 그런 것 같습니다. 75년하고 몇 개월 동안 소설가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겠죠. 그러다 책을 내고 나면 한 달가량 밖으로 나옵니다. 그 동안 자기가 낸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고는 다시 75년 몇 개월의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웃음)그래서 소설가들은 같은 소설가를 보면 굉장히 애틋합니다. “어우, 책을 냈어? 어둠을 통과하셨군요” 하고.(웃음) 한 달 밖으로 나와서 만나면 독자들은 ‘아, 소설가는 저런 사람인가 보다’ 하시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죠. 소설가의 진면목은 75년 몇 개월의 그 어둠에 있다는 겁니다. 골방에, 어둠 속에 틀어박혀 책 쓰고 있는 인간. 그게 소설가의 진면목입니다.지금처럼 대중 앞에 나서서 떠드는 이런 상황이란 건, 소설가에게 있어선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이란 거죠. 제 경우도 책 내고 한 달 딱 나와 있는데 마침 (이 행사를 기획한) 다음소프트에서 전화를 하셔 갖고(웃음)... 다음 달이면 아마 어둠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겁니다.(웃음) 그래서 저는 소설가가 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다음 소설 쓰고 나면 제 설명이 또 바뀔 것 같아요.(웃음)제가 오늘 말씀 드리려는 건 ‘인간을 아는 세 가지 수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란 소설에 나오는 겁니다.​작가가 오랜 세월 쓴 소설인데, 회상록 형태의 소설로는 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5명의 뛰어난 로마 황제 중 세 번째 황제입니다. 작가는 로마 시대 풍습대로, 당시 상황과 그의 목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무시무시하고 징그러운 작가라고 할 수 있죠. 박경리 선생과 비슷한 레벨의 작가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제가 들려 드리려는 것은 바로 이 작가 유르스나르가 작품 속에서 하드리아누스의 목소리로 하는 얘기입니다.여기서 말하는 인간을 아는 첫 번째 방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연구입니다. 왜냐, 나도 인간이니까. 나를 계속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간이란 게 뭔지 알게 된다는 겁니다. 제가 경상도 사람인데 경상도 말로 하자면, 자기 ‘꼬라지’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아 인간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알게 된다는 얘깁니다.소설 중에도 사(私)소설이란 형식이 있습니다. 소설가의 자기 고백인지 아니면 허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노골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는 형식의 소설입니다. 그런 소설들을 보면 일종의 ‘자기 자신 들여다 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추악함부터 아름다움까지 모두 다 끝까지 들여다보는.저는 글쓰기 강좌 같은 걸 할 때면, 첫 시간에 수강생들한테 “여러분 인생에서 제일 부끄러운 모습이 뭔지 적어 오라”고 시킵니다. 그런데 수강생이 30명쯤 되면 20명 가까이는 안 써옵니다. “내 부끄러운 모습을 왜 당신한테 알려줘야 하나” 이런 거지요. 자기 자신에 대해 쓴다는 건 자신에게 굉장히 정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감추고 싶었던 것들까지 다 넘어와서 써야 하는 거지요. 이런 게 첫 번째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옆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옆 사람이 외계인이나 애완견은 아니지요?(웃음) 옆 사람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는가 하고 따지다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세 번째 방법은 무엇일지는 금방 답이 나오겠지요? 바로 ‘그’는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어떤 인물이 굉장히 궁금하다고 칩시다.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 직접 가서 만나면 됩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게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지요.가령 세종대왕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그분 무덤 앞에 가서 “안녕하세요” 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을 아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라고 이 소설에 나옵니다.크게 보면 이런 틀들은 바뀌지 않는 게 아닌가, 지금도 유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합치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되겠지요.​​▲ 올해 초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손기노카이르칸 지구에서 발견된 선승의 미라/시베리아타임스‘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선승들이 많이 합니다. 이건(사진) 얼마 전 TV 뉴스에 나온 건데요, 200년 만에 발견된 참선하는 모습의 라마 선승입니다. 과학적으로는 미라인데. 사람들은 아직도 이 스님이 참선 중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정말 나는 누구인가 계속 고민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공부 많이 하신 선승들 보면 사명대사나 서산대사 같은 분들은 글로 뭔가를 남겨 놓으셔서 연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승려 중에 아주 뛰어나다고 알려졌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글 한 자 안 쓴 경우도 많아요. 이런 분은 책도 안 봐요. 그 대신 면벽 수도를 하는 거죠. 그렇게 화두를 갖고 파고, 수십 년 수도해서 깨달음을 얻어요.그렇게 하고 나면 널리 알리고 가르쳐 줄 것 같잖아요? 안 가르쳐줍니다.(웃음) 대부분의 뛰어난 선승들은 깨우쳤다고 말만 하고 선문답 정도 하다가 그냥, 사라졌어요. 그런 식으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통해서도 인간이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두 번째, 너는 누구인가. 요즘 서점에 가보면 대표적인 게 인터뷰집입니다. 그 중에서도 '너는 누구인가'를 다룬 게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인터뷰집은 저자가 두 명인 셈이죠. 인터뷰를 하는 '나'와 인터뷰를 당하는 ‘너’가 같이 ‘우리’가 되어 쓴 거죠.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가 모여서 책이 되는 겁니다.​제가 최근에 본 인터뷰집 중에 가장 독특한 것 중 하나가 ‘그의 슬픔과 기쁨’이라는, 정혜윤씨가 쓴 인터뷰집입니다. 책 자체는 쌍용차 해고자 26명을 인터뷰한 겁니다. 이들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 처한 상황까지 인터뷰해서 담은 겁니다. 아주 힘들었겠죠, 스물여섯 명. 하루에 한 사람만 만나도 한 달인데, 보통 한 사람당 서너 번은 만났을 테니까, 실제로는 100~150일 정도를 만났다고 볼 수 있죠.이 책을 보고 굉장히 놀란 게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나면 목차가 어떻게 될까요. 보통은 나와 A, 나와 B, 나와 C... 이런 식으로 가지 않겠어요? 그게 제일 흔한 인터뷰집 구성 방법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목차가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이렇게 돼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싸운 5년 동안의 기간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26명을 만났는데 이렇게 목차를 구성했다니.너무 신기해서 제가 읽어보니까 이렇게 돼 있는 겁니다. 먼저 인터뷰를 다 한 후에 같은 시간과 장소에 인물을 다시 엮은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26개를 다 펼쳐놓고. 가령 2009년 1월 1일이라고 하면, 그때 한 사람은 공장 옥상에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대문에, 또 다른 한 사람은 밑에서 뭔가 만들고 있었다, 이런 식입니다.더 놀라운 건 26명이 책 출간 후에 뒷풀이를 할 때 저도 거기 가서 들은 이야긴데, 당사자들도 그때는 누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가 그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입니다. 인터뷰를 따로 다 해놓고는 날짜를 일일이 확인해서 장소를 맞춘 거니까.그래서 제가 저자한테 “혼자 한 것 아니지” 하고 캐물어 봤습니다.(웃음) 그런 뒤에 일단은 그냥 믿어주기로 하고, 이걸 왜 이렇게 엮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라는 게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이 계속 죽은 거지요. 저자가 하는 말이, 당시에 20명 이상이 여러가지 이유로 죽었는데, 한 명 한 명 정리를 하고 보니까 그 사람들이 각각 한 명으로 들어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곧 죽을 것 같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작품 속에서 이들을 한데 엮어 놓으면 서로 연결이 돼 있다는 게 나오니까 더 이상은 안 죽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겁니다.아, 그렇게 생각은 할 수야 있겠지만. 막상 그렇게 벌여놓고 작업을 감행한 건 우리 출판사상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걸 읽어보면 소설로도 읽힙니다. 읽으면서 느낀 것이, 아, ‘너’에 대한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면 여기까지도 갈 수 있구나 하는 걸 생각했습니다.​세 번째, 그는 누구인가. 장편 소설가는 항상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여러 사람이 있는데 하필 이 사람을 썼냐”고 말입니다. 가령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이 있는데, 왜 하필 이 사람을 썼냐고. 이럴 때 제가 답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을 쓴다”는 겁니다. 어떤 인물의 삶을 쭉 봤는데, 내가 굳이 쓰지 않아도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가 간다, 그런 경우는 굳이 쓸 필요가 없습니다.그런데 제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이순신 장군? 절대 이해가 안 되죠. 99명의 장수가 다 지는데 혼자만 계속 이겨요. 이해가 안 되잖아요. 이 사람은 신이다, 영웅이다 해버리면 해결이야 되겠지만, 사실은 그분도 한 명의 인간이지 않습니까. 남들은 다 지는데 어떻게 이 사람은 그렇게 이겼을까, 궁금한 거죠.제가 황진이를 소설로 쓴 적이 있습니다. ‘나, 황진이’라는 작품이죠. 황진이는 연애를 공식적으로만 열 번은 넘게 한 걸로 나옵니다. 그러고는 특A급의 시를 씁니다. 그러니 당시 조선시대 사대부가 보면 이 여자가 ‘창녀’처럼 보였겠죠. 기록에도 보면 ‘창기’ 황진이라고 써놨습니다. 이 여자 너무 난잡하게 논다, 사대부는 다 그렇게들 생각한 거지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황진이의 시(詩)도 언급을 안 하려고 하겠죠. 그런데 시를 너무 잘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정말 싫은데 시를 잘 쓰니까 어쩔 수 없다, 이런 거죠.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의 고민이 지금 제 고민과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저런 고민을 하고 있네’ 이러면 글을 쓰기가 어려운 거죠. 내가 어떤 의미 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했고, 그런데 이 사람이 도무지 이해가 잘 안 되는 경우, 그런 때에 그 사람을 공부해서 이야기를 쓰게 되는 거죠.그래서 장편 작가들은 질문을 먼저 찾는 작업을 합니다.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서 쓴다기보다, 어떤 질문을 할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단편은 하룻밤에도 쓸 수 있는데 장편은 최소 3년은 걸리니까요. 내가 이걸 쓰겠다고 결심한 뒤에도 쓰는 데까지. 길게는 10년도 걸리는 거지요. 토지 같은 건 30년이 걸린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잘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갈 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질문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립니다.질문이 곧바로 책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 그런 게 작가들이 고민했던 문제가 곧바로 제목이 된 경우입니다.제가 쓴 작품을 예로 들면,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이 있습니다. 작년에 쓴 책입니다. 그때 어떤 문제가 있었느냐면 삼봉 정도전 선생과 저 사이에 틈이 있었습니다.소설가와 역사 속 인물 사이엔 세 가지 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틈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나는 살아있고 그는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그도 함께 살아 있다면 직접 만나서 물어볼 텐데 그게 안됩니다. 나는 작가인데 그 사람은 정치가이기도 하고.다음은 서로의 시간이 다릅니다. 나는 21세기, 정도전은 14세기 사람입니다. 나는 공화국 시대인데 그 사람은 왕조 시대니까 세계가 다릅니다. 그 다음으로, 나는 서울에 있는데 그 사람은 개성 혹은 나주, 영주에 있었다는 겁니다.소설에서 ‘정도전이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하고 나서는, ‘산책을 나갔는데 왼쪽에 뭐가 보이고 오른쪽엔 뭐가 보이는지’ 그게 분명하게 보여야 묘사가 가능합니다. 소설가로서는 그게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들은 별로 안 궁금하겠지만.(웃음) 왜냐하면 소설가는 인물의 일상 세계를 장악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도전은 당시 개성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휴전선 때문에 제가 직접 현장 답사를 하기도 어렵습니다.그러니 1300년대 정도전, 정몽주 이런 사람들이 개성에 살 때는 아침에 산책을 하면 왼쪽에 뭐가 보이고 오른 쪽엔 뭐가 보였을까, 이런 게 작가로서는 고민인 거죠. 이게 바로 틈입니다.이런 세 가지 틈을 메우면 소설을 쓸 수 있게 됩니다. 그걸 메우고 나면 ‘접신의 순간’이 옵니다.(웃음) 말하자면, 주인공과 작가가 ‘붙습니다’. 제가 학자가 아니어서 공식적으로 그 용어를 선택하지는 못하겠는데, 소설가들은 그냥 ‘접신의 순간’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정도전에 관해 책을 쓰면 사람들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답을 못 합니다. 왜냐하면 붙었으니까.​▲ 정도전의 초상과 소설가 김탁환/조선DB소설을 쓰는 어느 순간에 그냥 ‘붙습니다.’ 그러고 나면 (타이핑하는) 제 손가락에서 정도전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황진이에 대해 쓸 땐 황진이 목소리가 나옵니다. 참 신기하죠. 막 아양 떠는 소리가 나오고.(웃음) 작업실에서 글을 쓸 땐 진짜 소리까지 내면서 씁니다. 그럴 땐 제 뇌가 여자로 세뇌되어 있는 거지요.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쓸 땐 진짜 그렇게 나옵니다. 우스개로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접신됐다가도 잘못하면 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황진이를 쓰면서 굉장히 낭패였던 적이 있습니다. 한 1년쯤 고생해서 딱 붙었어요. 이제 손가락에서 여자 목소리로 막 나오게 됐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갔어요. 그런데 제게 딸이 둘 있는데, “아빠~!” 하면서 뛰어나왔습니다. 다음날 작업실에 갔더니 황진이와는 다시 떨어지고 만 겁니다.(웃음) 그러니까, 전날까지도 서로 잘 붙어 있었는데 딸들이 제가 남자란 사실을 상기시키고 난 후에 딱 깨져버린 겁니다.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들 합니다. 오르한 파묵 같은 작가도 자기 소설 속에 필요한 소도구들을 다 모아서 박물관을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순수박물관. 같은 작가들은 왜 그러는지 다 이해합니다. ‘접신’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바로 이해하지요.그러고 나면 정도전의 눈으로 세상이 보입니다. 정도전의 눈으로 하늘이 보이고 땅이 보이고 동료들이 보이는 겁니다. 이건 단순히 그 사람을 이해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왜 그랬는지 알겠어’ 이런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그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정도전을 쓸 때인 2012년과 2013년에 제가 갖고 있던 문제 의식은 혁신이었습니다.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런 문제를 우리 역사 속에서 제일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이 정도전이고, 성공적으로 국가 시스템을 바꿔놓은 사람도 정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공한 혁명가였던 거지요.하지만 그런 인물에 접신돼 들어가더라도 모든 걸 다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소설가가 주로 선택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를 보는 겁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하루는 언제인가요?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한 인물 전체의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하루를 놓고 그 앞과 뒤를 편집하는 겁니다.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하루는 기록되기도 하고, 기록되지 않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기록이 잘 안 됩니다. 다 지나고 난 후에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하루는 바로 그날이었어’ 이렇게 됩니다. 가령, ‘내가 그날 그 여자를 안 만났다면 내 인생이 피었을 텐데’라는 식이지요.(웃음) 그런 식의 결정적인 하루.하지만 그런 날이 꼭 기록으로 남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 아주 가끔은 그런 걸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있을까요. 이순신 장군. 장군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들을 비교적 자세히 일기로 써놓았습니다.​​​정도전의 경우에는 저는 1392년 4월 4일이 가장 핵심적인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주에서 1392년 4월 4일을 중요하다고 파고 있는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굉장히 행복하고, 또 고독하기도 합니다. 이날은 바로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암살당한 날입니다. 그날부터 급발진돼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집니다.중요한 게 정몽주와 정도전은 어릴 적 10대 말부터 의기투합해서 국가 시스템을 바꾸자 하고 30년 가까이 같이 커온 혁명 동지였습니다. 따라서 정몽주가 죽는다는 것은 정도전에게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러면, 정몽주가 죽을 때 정도전은 뭘 하고 있었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경상도 영주, 자기 집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자기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죽었는데 말입니다.이럴 때 드라마 작가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도전을 개성으로 불러 올립니다. 역사적 현장인 선죽교에 서 있게 합니다. 그래야 극이 되니까요.(웃음)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순간이지만 정작 나는 모를 수도 있다. 그걸 쓰고 싶었습니다.아마 10년 전이라면 저도 정도전을 불러 올렸을 겁니다. 아마 막 난리를 쳤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영주 고향에서 묵묵히 지내는 정도전과 개성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몽주의 ‘틈’을 쓰고 싶었습니다. 날짜 별로 돌아가면서 하루는 개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하루는 영주에서 놀고 있는 정도전을 쓰고. 하루하루가 굉장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여러분도 돌아가시면 시대물이나 역사물을 볼 때 언제를 결정적인 하루로 삼았나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야기를 그냥 따라가지 마시고요. 어떤 날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책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습니다.잔다르크 같은 경우만 해도 영화가 열 몇 편에 소설이 수십 권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바라보는 시점이 다 달라서 그런 겁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는 겁니다. ​제가 지금 이해가 안되는 인물들을 가지고 백탑파 시리즈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쓴 게 담헌 홍대용입니다. 이름은 들어보셨지요? 하지만 뭐하던 사람인지 감은 잘 안 오지요?(웃음)간략히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일단 이 사람이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였습니다. 거문고를 갖고 다니다가 적당한 기회가 오면 척 내려서 연주를 하는 겁니다.(웃음) 지금으로 치면 신중현 선생 정도 될까요? 자기 밴드도 있었습니다. 악단을 조직해서 너댓 명의 악공들과 함께 연주를 했습니다. 남산에서 악회를 계속 열었습니다.이 사람이 악기에 심취하면 어떤 경지까지 가는가 하면, 누가 만든 악기가 맘에 안 들면 자기가 직접 악기를 만듭니다. 신중현 선생도 자신이 울림통을 줄이거나 줄을 늘리는 식으로 악기를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홍대용도 그랬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악기들과 합쳐서 ‘양금’이란 악기를 만듭니다. 그러고는 악공들을 불러 모아서 “이거 내가 만든 악긴데 이렇게 연주하는 거다” 하고 보여줍니다. 심상치 않죠.게다가 이 사람이 천문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집에 사설 천문대가 있어서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했습니다. 또 수학자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여행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박지원이 북경에 제일 먼저 다녀온 것으로 알지만, 아닙니다. 홍대용이 제일 먼저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자랑을 막 하니까, 두 번째로 박제가가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박지원이 간 겁니다. 어떻게 보면 박지원의 ‘열하일기’란 홍대용부터 시작된 그 여행에서 영향을 받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네 번째로 홍대용은 사회사상가였습니다. 아주 놀라운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정승의 자식이든 노비의 자식이든 일단 다 같이 공부를 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제일 잘 하는 애를 위로 올리자고 했습니다. 정승 자식이라도 공부를 못하면 농사를 시키고, 노비 자식이라도 똑똑하면 공부를 시키자고 했습니다.이런 건 1900년 정도나 돼야 갑오개혁 같은 데서 이야기되는 사상인데 벌써 1780년쯤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걸 다 동시에 한 사람이 바로 홍대용입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은 드뭅니다. 음악가이자 천문학자이자 여행가이자 사회사상가. 이런 점이 저는 흥미로운 겁니다.2014년에 제가 가진 문제 의식은, 이번 주가 공교롭게도 일주기인데,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세 가지 문제 의식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생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가장 존귀하다고들 생각하는데 국가에 의해, 이데올로기에 의해 생명이 없어지는 경우입니다. 전쟁이나 돌림병 같은 것에 의해서 말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두 번째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입니다. 죽은 사람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는 생중계로 배가 침몰하는 모습을 함께 봤습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도 내상을 입은 겁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이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세 번째는, 인간이라는 게 계속해서 너무 고통스러우면 안 보게 됩니다.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고통스러워서 안 보게 되니까 외면을 합니다. 그걸 극복하고 어떤 다른 인간으로 자기를 바꾸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세월호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게 된 겁니다. 제가 찾아보니까 1780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봄에 다섯 군데에서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조운선이라는, 세금으로 내던 쌀을 나르던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동법이라고 해서 세금을 쌀로 냈습니다. 쌀을 소 달구지로 옮기면 너무 힘드니까 배로 옮겼습니다. 한 척당 쌀이 천 석씩 들어갔습니다. 한 척이 가라앉으면 쌀 천 석이 사라지고, 열 척이 가라앉으면 만 석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 재정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그 해에 보니까 봄에 다섯 군데에서 배가 빠진 겁니다. 정조 초기인데 정조가 이를 조사하라고 합니다. 그런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사하는지를 찾아보는데 잘 안 나옵니다. 그리고 11년 뒤, 1791년에도 법성창이라는 곳에서 또 배가 빠졌습니다. 왜 빠졌나 조사했는데 이게 재미있습니다. 하나는 과적 때문이었습니다. 천 석을 실어야 하는데 1500석씩 막 실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죽었어야 하는데 선원들이 아무도 안 죽었습니다. 다 살아 나왔습니다. (지금과) 비슷하지 않습니까?그래서 이 조운선 침몰 사례를 다 모아봤습니다. 사실 이제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바로 장편소설을 쓸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십 년 지나면 세월호 관련 장편소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럴 때 장편 작가들은 뒤로 빠져야 합니다. 질문거리를 찾으면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제가 뒤로 쭉 빠져봤는데 1780년대로 갔습니다. 조운선 침몰 과정을 쓰자고 했는데 그 중 밀양에 있는 후조창을 출발해서 영암 앞바다에서 빠진 그 사건을 다루려고 한 겁니다. 그래서 1780년 4월 5일 영암 앞바다 조운선 침몰을 ‘그날의 하루’로 잡고, 그게 어떻게 빠졌는지 조사하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작년 5월입니다. 12월까지 썼습니다.​▲ 여지도 중 밀양부/민음사 제공주로 두 군데 답사를 갔습니다. (지도를 가리키며) 이쪽이 밀양이고 여기가 후조창입니다. 밀양이 큰 고을이니까 경상도에서 쌀을 다 거두면 창고에 먼저 모읍니다. 후조창이라는 이 곳에 쌀을 모으면 몇 만 석이 모입니다. 여기에서 마산 앞바다로 내려옵니다. 이게 올라가다 보면 강화도이고, 더 올라가면 광흥창입니다. 광흥창은 쌀을 다 풀어놓는 곳입니다. 그런데 배가 진도를 지나 올라가다가 침몰했습니다.​​▲ 동국지도 중 전라도/민음사, 범우사 제공배를 실을 때에 여러 부조리가 일어납니다. 가장 유명한 부정부패가 ‘화수’입니다. 500석만 쌀을 싣고 500석은 물을 넣습니다. 그렇게 해서 1000석이 되게 만들어서 싣습니다. 그게 ‘속대전’이라고 해서 법령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화수’를 저지르면 무조건 사형이라고 적어 놨습니다.‘고패’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1000석을 실어야 하는데 500석만 싣고 일단 출발을 합니다. 광흥창에 이르면 500석이 부족하게 되니까 혼이 나잖아요. 그러니 중간쯤 가다가 일부러 배를 침몰시킵니다. 고의로 빠뜨리는 거죠. 그렇게 사고가 나서 못 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보니, 이런 죄를 저지르면 사형이라고 법령까지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런 부분 답사를 하고,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요컨데 ‘결정적 하루’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태도’ ‘문제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이 장편 작가의 작업 방식이자 보편적인 작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줄은 모르셨죠?(웃음)제가 요즘 좀 다르게 고민하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께 좀 묻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시리즈 작가’의 어려움입니다. 단행본 작가의 경우에는 어떻게 사느냐 하면, 장편 하나를 쓰고 나면 그 다음 작품 쓰기 전에 앞에 썼던 걸 다 잊어버립니다. 뇌 용량에 한계가 있으니까. 다 털어버리지 않으면, 가령 지금 신사임당을 써야 하는데 황진이가 막 나오고, 인물들이 마구 섞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앞 작품은 빨리 잊습니다.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독자는 어떤 독자냐 하면, 15년 전쯤 쓴 소설을 어젯밤에 감동적으로 읽고 와서는 “이 사람은 왜 이래요?” 하는 분입니다. 사실 저는 기억이 안 납니다.(웃음) 제가 썼다는 사실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저한테 그러시면 안 됩니다.(웃음)​요즘 문제가 생긴 게, 제가 탐정 캐릭터를 하나 만든 게 있습니다. 2003년에 ‘방각본 살인 사건’을 쓴 걸 시작으로 ‘열하광인’ ‘열녀문의 비밀’ ‘목격자들’을 이어서 썼습니다. 그러고 난 후 독자와의 만남을 했습니다. 저는 12년 동안 작품을 띄엄띄엄 써왔는데 1주일 만에 그걸 다 읽은 독자가 저한테 와서는 질문을 하는 겁니다. “2003년에 (탐정 주인공) 김진이 이렇게 말하는데 2015년에 말하는 건 다르다. 왜 그런가?” 제가 확인해보니 진짜 조금 차이가 나는 겁니다. 제가 기억을 못한 거지요.지금 제가 그런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한 2년 후에 책을 또 낼 텐데 열다섯, 스무 권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 전엔 망각하는 게 소설가의 즐거움이었는데, 앞으로는 이걸 다 어떻게 기억하지, 큰일났네,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억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렸습니다.​소설가들 사이에서 기억의 제왕이라 불리는 작가가 마르케스입니다. 이 사람의 자서전이 700쪽 정도 되는데, 이 책은 읽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들이 다른 사람 자서전 읽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이 사람이 이 작품을 어떻게 쓴 걸까, 어떤 작업 방식으로 작품을 썼을까’ 궁금해서입니다. 저도 ‘백년 동안의 고독’을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샀습니다.그런데, 가령 이런 식입니다. 읽기 시작해서 150쪽쯤 됐을 때에야 비로소 마르케스가 태어납니다. 350쪽쯤 가서야 습작을 시작했다고 나옵니다. 500쪽쯤 가서는 어디에 투고했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600쪽에 와서 초고를 고치고 있습니다. 700쪽쯤 와서 그제서야 “나는 이제 소설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첫 작품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웃음) 엄청난 자신감 아닙니까. 700쪽은 내가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만이고, 아마 그 뒤에도 또 700쪽을 쓰려고 했을 겁니다. 이 책 앞 부분을 보면 자기가 얼마나 기억을 잘 하는지 자랑하고 있습니다.삶은 사람이 살았던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써놨지요. 자기는 기억을 잘 한다는 이야기입니다.(웃음)여기서 아이러니가 무엇이냐. 첫 번째 책을 쓰고 마르케스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는 못 썼습니다. 그 뒤를 쓰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게 또한 소설가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갑자기 치매가 걸려서 한번에 가는 수가 있다는 겁니다.그래서 다른 질문들이 나오게 됩니다. 내 삶을 미완성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끝내 완성하지 못할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마르케스의 삶을 보며 하게 됩니다. 이런 질문까지 하게 됐으면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반전이 있습니다.저는 시리즈 작가의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 게 있습니다. 뭐냐 하면 백탑파 시리즈 앞에 정도전 혁명까지 열 권의 책을 냈습니다. 어느날 이 책을 낸 민음사 출판사가 3년 전에 제안을 한 겁니다. “당신이 20년 동안 쓴 소설을 보니 조선만 34권이다. 그걸 다 묶자”고 말입니다. ‘김탁환의 조선’이란 걸로 묶고, 앞으로 20년 동안 20권 이상 더 써서 60권짜리를 낸다고 생각하고 한번 해보자고 제안이 온 겁니다.그래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나. 그런데 책을 여러 종류의 출판사에서 내다보니 정신이 없더군요. 관리도 안되고. 15년, 20년 전 것은 절판도 되고 그 출판사가 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 다 모아서 시리즈로 쭉 낼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시리즈로 내기로 했습니다. ‘소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내기로 한 겁니다. 지금까지 10권이 나왔고, 2034년까지 60권이 목표입니다. 저는 60권으로는 완성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마 그렇게만 내면 독자들이 전화로 “이 인물은 안 다뤘잖아요?” 할 것 같습니다.(웃음) 60권으로 조선왕조를 다 쓸 순 없잖아요.그런데 작가는 반복을 싫어합니다. 60권을 계속해서 하나의 문체로 쓰는 게 아니라 각 인물에 맞춰서 서로 다른 문체로 문제 의식을 갖고 써 나가는 겁니다. 2014년, 2015년, 2016년, 김탁환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의 문제 의식과 과거 문제 의식을 거울처럼 놓고 작품으로 해 나갈 거라는 거지요. 지금 정신을 차리고 하고는 있는데, 10년 동안 30권 정도가 나온다고 하면 독자들이 30권 다 기억하고 막 질문을 하고, “선생님의 30번째 작품은 12번째 작품의 5번째 줄과 비슷하지 않나?” 이런 질문을 할까 봐 무서운 겁니다.(웃음)저로서는 요즘 해마다 2, 3월이 되면 조선왕조실록 신작을 내면서, 또 예전에 쓴 것 개정판을 내면서 앞으로 20년을 살 수밖에 없게 된 이런 삶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감사합니다.​<질의응답>-소설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호기심? 관찰력? 끈기?다 필요한데, 끈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장편 작가니까. 원고지 8500매짜리를 쓰면서 하루에 열 장씩 쓴다고 쳐도 850일입니다. 저로서는 매일 A+로 다 쓰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을 B+로 다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쓰는 것. 정해진 시간에 끈질기게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소설을 계속해서 쓰게 만드는 매력은?여러 가지 매력이 있지만 가장 큰 매력은, 글 쓰기는 자꾸 쓰면 는다는 겁니다. 시인은 (소설가와는) 좀 다른 부류의 인간입니다. 천재도 있고. 음악가도 천재가 있습니다. 15세 이런 때 머릿속에 선율이 막 지나간다거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편 작가는 처음에 쓴 장편이 제일 위대하냐, 그런 것 없습니다. 태평양으로 치면 다 건너가다가 중간에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다른 것 같습니다.장편을 쓴다는 건, 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양적인 부분도 감당해야 합니다. 제 경우를 생각해 보면 27, 28세 때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원고지 100매도 못 썼어요. 그 정도도 왜 이렇게 긴가 하고 허덕댔는데, 4, 5년 지나니까 500매쯤 쓰고, 더 지나니까 1000매, 2000매도 쓰고, 남자 아닌 여자 이야기도 쓰고, 시간도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문제를 쓰게 되더군요. 저는 지금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여러 측면이 있는데, 가령 ‘불멸의 이순신’을 쓰면서 확 늘었습니다. 등장인물이 120명쯤 되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 제가 아침마다 이 친구들 출석을 부르는 겁니다. 한 사람씩 보면서 얘가 누구였고 어떻게 생겼고 성격이 어떻고 뭐 이런 것 있지 않습니까. 앞의 삶은 어땠고 이런 걸 정리하면서 계속 봅니다. 안 그러면 계속 뒤섞이니까요. 제 맘대로 핸들링을 하는 겁니다.소설이란 게 가장 어려운 게 그런 거지요. 영화감독은 배우들을 쭈르륵 세우면 되는데 소설가들은 자기 머릿속으로 120명을 해야 하니까. 처음엔 저 하나도 핸들링이 안 되고, 저 자신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싸움시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차츰차츰 한 명 두 명 여러 명, 이렇게 하다가 100명 넘게 만지다 보니까 계속 느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계속 쓸 수밖에 없는 건, 이게 제가 세상을 살아 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인물의 삶을 추적해서 내 문장으로 옮겨 나가는 것. ‘불멸의 이순신’을 850일 썼는데 이순신을 850번 고민했다는 얘기입니다. 하루 한 번만 고민한다고 쳐도, 자기 자신을 매일매일 850번쯤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한 삶에 대해 300일이면 300일, 500일이면 500일, 계속 고민하는 것. 그렇게 하는 것 중 제일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소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홍대용도 이제 이해가 되는 겁니다. 홍대용이란 인물이 왜 그랬는지 제 나름대로 이해가 되는 거지요.-역사에 매혹된 이유는 무엇이며, 조선시대, 그 중에서도 정조시대에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조선시대를 좋아하는 건 소설가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소설에는 육체가 필요합니다. 어떤 시대를 생각하면 그때의 구체적인 상이 필요한 거지요. 고려나 신라 시대는 그게 많이 부족합니다. 김유신을 쓸 수야 있겠지만 당시 모습에 어떤 육체를 부여해서 쓸 수 있을지 굉장히 어렵습니다. 고려말 정도부터나 가능한 것 같습니다. 여러 자료를 통해 행동들을 만들 수 있으니까. 고려나 신라도 쓰려면 쓸 수야 있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하고, 리얼리티 측면에서 훨씬 불리합니다. 그리고 제 경우 일부러 조선시대만 다룬다기보다는, 보통 소설 속에선 ‘거리 두기’가 필요한데, 50년쯤으로 두면 6.25 전쟁이고, 100년 이상을 두고 들어가면 그 때가 조선시대가 됩니다. 거리 두기를 하는 과정에서 그때 걸린 시대가 조선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영정조 시대를 재미있게 생각하는 건 굉장히 독특한 개성 넘치는 인간들이 집중적으로 나온 시기라서입니다. 인물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제 가슴이 뜁니다. 유득공 이런 사람을 보면, ‘발해고’를 쓴 역사학자로만 아는데, 이 사람 취미가 집비둘기 키우기였습니다. 자기 집에서 비둘기 100마리를 키웠습니다. 유득공 집에 놀러가서 문을 열면 비둘기 똥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하나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으로 치면 ‘집비둘기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내용의 책을 썼습니다.이런 인물들이 한 스무 명 모여서 ‘놀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진짜 재미있게 놉니다. 제가 백탑파 시리즈를 쓰는 것도 ‘이 사람들이랑 나도 좀 더 놀고 싶다’ 싶어서 쓴 겁니다.(웃음) 자본주의 시대,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 놀고 있는 걸 보면 제가 너무 즐거운 겁니다.서양으로 치면 이 때가 백과전서파들이 나오기 시작한 그런 시대로 보면 됩니다. 조선의 백과전서파였던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보는 겁니다. 학자들은 우리 근대의 시작을 영정조대로 보기도 합니다.-선생님 책을 보면 모든 장면을 마치 영화 보듯 잘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아까 말씀하신 개성 풍경 같은 디테일의 틈은 어떻게 메꾸나?저는 눈을 감았을 때 그 장면이 다 머릿속에 떠올라야만 쓸 수 있는 작가입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 독자에게도 떠오르고, 영화 하는 사람들에게도 다 떠오르면, 그때 작품을 사러 오는 겁니다. ​▲ 왼쪽부터 이색, 이숭인, 정도전의 초상/조선DB아까 말씀드린 개성 풍경 이야기의 경우에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400년, 500년 전 장소에 대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개성은 그래도 운이 좋은 게, 우선 고려말 이색, 이숭인, 이런 사람들이 개성의 자기 집 앞을 묘사한 글들이 있습니다. 그런 걸 다 모읍니다. 고려가 망하고서 조선 초기에 어떤 유행이 있었느냐 하면, 망한 나라 수도에 여행가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초기 선비들이 다 개성에 놀러가서 기행문을 썼습니다. 그게 ‘유송도록’이라고, 기행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걸 다 읽었습니다. 진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개성 지도를 펼쳐 놓고 그 장소 하나하나에 이색은 이 장면에서 이렇게 말했고 하는 걸 다 붙여서 장소를 완성시켰습니다.그런데 19세기 한양보다 파리 풍경을 쓰는 게 훨씬 쉽습니다. 전쟁 통에 한양은 폭격을 맞아서 복원이 안됩니다. 반면, 파리는 제가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이란 소설을 쓰면서 가봤는데, 1890년의 벽, 1850년의 거리 이런 식으로 다 남아 있더군요. 그러니까 그쪽이 훨씬 복원이 잘 되는 겁니다.이건 우스개 소리인데, 현장 답사를 갈 때 작가의 마음은 두 가지입니다. 어떤 것이든 온전히 그대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대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차라리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런 경우엔 제 맘대로 쓰면 되니까.가장 애매한 게 ‘증축된’ 경우입니다.(웃음) 가령 1890년의 파리 노틀담 대성당을 보려면, 지금 상태에서 어디까지가 복원된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과거 모습인지를 찾아야 하니까.-장편을 쓰다 보면 처음 쓸 때와 끝에 가서 마음이 바뀌는 경우 어떻게 해결하는지?주인공은 당연히 바뀝니다. 그게 재미있습니다. 처음 설계도대로 절대 되지 않습니다. 최대한 자료 조사를 해서 쓰기 시작할 때는 이 인물과 이 인물이 붙었을 때 얼마나 재미있을지 예측만 하지 붙여보진 않았으니까요. 가령, 제가 생각할 때 C는 조연의 조연급 엑스트라였다고 칩시다. 그런데 얘가 자꾸 자랍니다. 그러면 작가로서는 미치는 거지요. 전체 구조가 흔들리니까.-민음사에서 주로 책을 내는데, 어떤 관계가 있는지?작가와 출판사의 관계는 편집자와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낸 ‘소설 조선왕조실록’ 10권의 책 편집자가 다 한 사람입니다.책을 여러 출판사에서 내면 편집자가 두 세 사람이 되니까. 실수도 많아집니다. 서양의 경우 출판사에 메이저 작가가 있으면 평생 그 사람만 전담하는 편집자가 있어서 함께 갑니다. 20년, 30년. 그러면 서로를 너무 잘 아니까, 작가가 만약 이렇게 쓴다고 자랑하면 편집자는 “그거 15년 전에 쓴 거랑 똑같아, 바꿔” 이렇게 혼냅니다.편집자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주는 첫 독자, 첫 비평가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한테는 출판사가 필요하다기보다 안정된 편집자 한두 명과 시리즈를 계속 할 수밖에 없으니까 파트너십으로 가야하는 측면이 있는 거지요. -작가로서 굉장히 전략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해 안되는 인물한테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을 보면, 마케팅에서 페르소나를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현실에 팔릴 수 있는 걸 만들 수 있는 접근법이다. 그런 건 어떻게 얻었나? 타고났나, 배웠나?음, 제가 전략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트렌드라고나 할까, 제 작품이 드라마가 되고 하니까, 어떻게 그런 걸 읽는지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트렌드를 안 읽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구상하는 건 보통 3년 전입니다. 이번 작품 ‘목격자들’은 오히려 특별한 경우입니다. 보통은 3, 5년 전에 생각하는 건데, 그런 문제들이 인간의 본질적인 의문 같은 걸 건드린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러니까, 인간이 얼마나 절망해야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할까, 이런 게 본질적인 질문인 겁니다. 이 공간에 살고 있는데 얼마나 멀리까지 가볼 수 있나, 이런 질문들. 인간이라면 갖게 되는 기본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저는 장르가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건 멜로, 이런 건 추리, 또 이런 건 판타지로 가는 게 맞겠다거나, 그 형식에 맞춰서 대사를 바꾸는 겁니다. 저는 로버트 드니로 같은 배우를 닮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드니로를 보면 역할에 따라 눈빛부터 달라지고 손 동작이나 버릇도 달라집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작가이고 싶습니다.​◆ 김탁환‘치밀한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작가. 1968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해군사관학교 국어교수, 건양대학교 문학영상정보학부 전임강사,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부교수를 지냈다. 기록에 입각한 고증과 독창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역사 소설을 많이 써 왔다. 주요작으로 ‘나, 황진이’ ‘불멸의 이순신’ ‘노서아가비’ ‘허균 최후의 19일’ ‘압록강’ ‘독도 평전’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방각본 살인사건’ ‘열하광인’ ‘열녀문의 비밀’ ‘목격자들’ 등이 있다. ‘나, 황진이’ ‘불멸의 이순신’ ‘열녀문의 비밀’ 등은 드라마나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그 밖에 문학 비평집 ‘소설 중독’ ‘진정성 너머의 세계’ ‘한국 소설 창작 방법 연구’ 등을 냈다.윤예나 기자 yena@chosunbiz.com​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25/2015042500429.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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