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6-18
    2015-06-16 조선비즈 전병근 기자 "제가 2003년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도 지금 한국처럼 전염병이 돌 때였습니다. 당시 베트남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도 해외 홍콩에서 귀국한 감염자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일부 의료진까지 감염됐고 그 중 일부는 사망했습니다. 심지어 그곳에 사스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하러 갔던 세계보건기구(WHO) 파견 의료진 고위 인사까지 숨졌습니다.그때 공교롭게도 저의 친한 친구들이 하노이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고, 저는 그 전에 그곳에 가기로 약속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관련 정보들을 찾아 봤습니다. 저도 의학박사니까요. 결국에는 가도 무방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행히 사스는 그 해 봄이 오고 며칠이 지나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예정대로 한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사스가 베트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메르스가 신속하게 퇴치될 것으로 희망합니다."베스트셀러 ‘꾸뻬씨의 행복 여행’의 저자이면서 정신과 의사인 프랑수아 를로르씨는 방한(訪韓) 배경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는 원래 6월 17일 개막 예정인 서울국제도서전(SIBF)의 연사로 초청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행사 직전 국내에 메르스가 발병하면서 10월 7-11일로 연기됐다. 주최측은 “메르스 감염 확산에 따른 천재지변의 영향으로 부득이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를로르씨는 방한 전 조선비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도서전의 연기와는 상관없이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면서 “독자와의 만남과 강연 같은 예정된 행사를 계획대로 치를 것”이라고 했다.그는 ‘꾸뻬씨의 행복 여행’을 필두로 일련의 시리즈 소설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특히 독일과 국내에서 호응이 컸다. 정신과 의사인 꾸뻬씨(원문에서는 ‘헥터’)를 주인공으로 한 인생탐구적인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그에게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물어봤다. 그는 무겁고 진지한 주제에 대해서도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재주를 타고난 것 같았다. 자신은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볼테르의 글쓰기에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꾸뻬씨의 행복 여행(원제 ‘Hector's Voyage or the Search for Happiness’)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성공을 거뒀지요. 그 후에도 꾸뻬씨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을 써오셨는데요. 가장 아끼는 책은 무엇인가요?작가로서, 적어도 저로서는, 책은 약간 자식 비슷합니다. 돌이켜보면, 각 작품들의 장점과 약점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하나같이 애정이 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꾸뻬씨의 행복 여행’을 아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가장 처음으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이고, 그 책이 성공을 거둔 데다, 제 인생을 바꿔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쓴 ‘추억 속의 상인(La petite marchande de souvenir)’도 좋아합니다. 전통적인 소설인데, 전염병 한가운데에서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꾸뻬씨의 행복 여행은 지금까지 얼마나 팔렸지요?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그 질문에 답하려니 약간 당혹스럽군요. 제 월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요. 미국에서는 무방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터부지요. 그래도 답을 해보죠 뭐. 전 세계에 걸친 독자들 덕분에, 특히 한국과 독일에서 많이 팔렸는데, 지난 10년 사이에 약 200만 부 팔렸습니다.-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개봉됐는데요. 원작자로서 어떻게 보셨나요?작가 입장에서, 로저먼드 파이크와 사이먼 페그(꾸뻬 역), 그리고 다른 많은 대단한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화면에 출연한 것을 보는 일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그 영화는 감독 자신의 작품이기 때문에, 다른 독자와 마찬가지로 제 이야기를 자기 식대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감독이 피터 첼섬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흡족했습니다. 그는 ‘쉘 위 댄스’와 ‘세렌디피티’ 같은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꾸뻬씨의 행복 여행이 출간된 것은 2002년입니다. 그 뒤로 행복에 대한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그때 이후 제 삶은 싱글에서 가족이 있는 남자이자 아빠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책에서 쓴 행복 교훈 9번 “행복은 당신의 가족이 부족함이 없을 때”와 27번 “행복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싶군요. 그리고 여전히 16번 “행복은 축하하기”의 교훈을 실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악명 높은 18번은 제 노트에서 지울 겁니다.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2008년 경제 위기가 많은 불행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장은,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인데, 최근 몇 년 동안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희망을 박탈당했지요. 그래서 저는 이런 교훈을 하나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은 내일이 어제보다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만일 제가 열렬한 스토아학파 금욕주의자이거나 불교도이거나 기독교인이라면 물질적 번영이 줄어든 것에 대해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에픽테토스(기원전 55~135년,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 철학자) 같은 사람도 자신은 진짜 스토아주의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지요.-지금까지 책을 쓰면서 공부하고 생각한 결과를 종합해서, 현대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을 요약해주시겠습니까?꾸뻬씨의 교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순히 제 생각이 아니라 심리학과 철학에서 뽑아낸 일종의 ‘최선의 교훈’들이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의 인성이나 처한 인생의 단계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몇 가지를 골라야 합니다.-주인공 꾸뻬씨가 정신과의사인 것도 그렇고 당신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제가 답할 질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친구들은 꾸뻬씨가 저를 많이 닮았다고들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첫 여행을 나설 때 꾸뻬씨보다는 지금 제가 훨씬 더 나이가 많아졌기 때문에 인생의 진리에 대한 탐구욕은 그만큼 덜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제가 찾은 (인생의 진리에 대한) 대답이 무엇이든, 지금은 그것들을 (회의하기보다) 지켜나가려고 합니다.-꾸뻬씨는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해 행복찾기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신은 그 일을 할 때 어땠나요?저는 정신과 의사 일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매일마다 접하게 되는 각 환자들마다 특이했어요; 저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았고, 그 분야에서 성장한다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의사나 교사, 간호사, 사람을 상대로 한 서비스 분야 종사자와 같이 ‘봉사하는’ 분야의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탈진(burn-out)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업무에 압도되고 기진맥진하는 상태를 말하지요. 그럴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저는 베트남에서의 정신과 진료 일을 아주 즐겁게 했습니다. 거기서는 시간제로 일했기 때문이지요.-작품 속에서 꾸뻬씨는 본래 기독교인이거나, 최소한 파스칼, 키어케고르 같은 기독교 작가들을 좋아하지만 결국에는 노승려의 가르침과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끌리게 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꾸뻬씨는 세례를 받았고 가톨릭 신앙 속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강한 신자는 아니고 불가지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세상에 대한 다른 관점에 대해서도 열려 있습니다. 니체에 관한 한, 그는 흥미로운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반(反)기독교적인 입장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사회에 죄의식이 없다면 끔찍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꾸뻬씨는 여행 중에 깨닫는 행복의 첫 번째 비결로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남과 비교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요즘은 소셜미디어로 인해 서로 간에 비교가 더 일상화된 듯합니다.우리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려는 충동이 현대 사회에서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유전자에 들어있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 덕분에 우리가 생존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지위를 위해 분투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남과의 비교 충동은 다른 어떤 감정이나 마찬가지로 (그런 점에서 분노와 불안도 마찬가지로 유용하다고 하겠습니다) 그에 따른 결점도 있습니다.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10대들은 소셜네트워크에서 친구들 숫자나 방문한 장소, 기타 활동들에 관한 끊임없는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스트레스를 받기 쉽습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도 어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재미있는 휴가를 즐겼거나 더 부자인 부모를 뒀습니다. 하지만 예전 우리는 지금 웹페이지에서 그런 것처럼 지속적으로 (그런 비교 경쟁에) 노출되지는 않았지요.-꾸뻬씨는 여행 중에 매력적인 여성들을 여럿 만나고 이런저런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교훈을 얻습니다. 당신 작품에서 여성성(feminity)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남녀 관계를 통해 행복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제가 대단히 좋아하는 중국(아마 한국에도?) 속담으로 이런 게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학교다”. 당연하게도, 이성과의 관계는 우리가 행복해지고 성장하기 위한 아주 큰 원천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꾸뻬씨가 가끔식 겪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사랑에 관해서는 따로 책도 한 권 쓰셨지요. 요즘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사람, 황혼이혼도 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랑과 결혼에 관한 생각은 어떤가요?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 매일매일의 노력과 사소한 몸짓들이 있어야 이 사랑이라는 섬세한 꽃을 가꿀 수가 있지요. 우선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서로 가치나 취향이 같으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맞춰줘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보면 결국 취약한 관계는 지치게 되고 마니까요.-당신은 ‘꾸뻬씨의 사랑 여행’에서 사랑을 호르몬, 뇌반응의 문제로 보는 견해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생명공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정신질환의 치료나 심지어 행복까지 의약 기술의 도움으로 얻으려는 시도들이 있습니다.(과학에 따른) 진보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결과 정신 질환에 대한 더 나은 치료가 나올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의 행복감에 관한 한, 저는 그 효과를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감정 역시 유용한 것이고 보존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불안은 우리가 위험을 피하도록 돕습니다. 또 선망이나 질투는 더 많은 것을 위해 노력하게 합니다. 또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더 효율적이게 합니다. 그밖에도 많습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문턱을 어디로 잡을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어느 수준부터 불안이나 슬픈 기분을 치료받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단지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말입니다.-행복에 관한 당신의 책을 읽다 보면 세계화가 사람들을 불행하게 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세계화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요?저는 세계화가 극심한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고 쉴새 없는 생산성 경쟁에 던져 넣음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덜 행복하게 했다고도 생각합니다.-책 내용 중에는 미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풍자도 자주 나옵니다. 행복에 있어서 유럽과 미국의 차이를 느끼나요?차이가 좀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행복을 아주 가치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헌법에도 ‘행복의 추구’가 적혀있습니다. 또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가 단지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는 쓰려고 들자면 미국보다 프랑스 문화에 대해 풍자할 게 훨씬 더 많습니다. 저는 미국 문화의 많은 부분을 좋아합니다.-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실제로 당신은 아시아로 여행을 많이 했고 지금도 태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시아에 가까워진 계기는?친구들 덕분이었습니다. 첫 방문은 현대 디자인을 팔려는 친구와 홍콩에 간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하노이에서 영화를 찍고 있던 친구들을 방문했다가 그 곳에 매료됐고 더 머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때가 전염병 사스가 발병했을 때였어요. 그 무렵 (입국자가 급감했고) 제가 마지막 방문자나 마찬가지였어요. 베트남 사람들과 외국인 거주자들이 저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더군요.-당신 책에 중요한 인물로 나이 든 수도승이 나옵니다. 혹시 달라이 라마를 상징하는 건가요? 행복을 찾기 위해 그에 대해서나 불교를 공부했습니까?달라이 라마를 상징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특별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나이 많고 지혜로운 티베트 불교 승려에 대해 쓸 경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걸 이해합니다. 저는 불교에 관해 꽤 많이 읽었습니다. 몇몇 불교도 친구들과 대화도 했습니다.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간략히 말하자면, 저는 많은 서양인들이 보는 불교가 아시아 사람들이 자국에서 경험하는 불교와 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불교에 관해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할 게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을 체험할 수는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꾸뻬씨 여행에 나오는 고승과 같은 달라이 라마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들이 태어난 지역을 더 탐구해보라고 조언한 것으로 기억합니다.-당신은 책에서 많은 서양의 고전, 현대 철학자들을 인용합니다. 책은 얼마나 읽나요? 행복의 지침서로 가장 좋아하는 책은?제가 읽은 책이 몇 권인지 세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너무 늙었다는 느낌이 들까봐 말입니다! 하지만 제 몇몇 친구들보다는 적게 읽었습니다. 행복에 관한 한, 저는 안내서를 찾아 읽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유명한 고전, 소설, 시를 읽으면 힘들 때에도 행복해집니다.-‘꾸뻬씨의 시간 여행’에서 행복의 순간을 음악에 비유했더군요. 무슨 뜻인가요?제 생각에 음악을 시간 자체에 비유했던 것 같습니다. 각각의 음은 각각의 초(秒)와 같이 이전 것과 다음 것이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지요. 동시에 이 음은 자각하자마자 사라집니다. 현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은 과거가 돼버렸고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당신의 작품은 거의가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몇 개의 잠언과 관련 일화가 각 장을 구성하는 식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저는 꾸뻬씨의 첫 번째 여행에서 이런 형식에 자연스럽게 끌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에 붙들리게 됐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인생에 관한 약간의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철학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런 장르를 발명한 건 아닙니다. 학창 시절에 볼테르의 ‘캉디드’를 읽으면서 발견한 것입니다.-어느덧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습니다. 예전부터 꿈꿨거나 기대를 했었나요?정말이지 생각 못했습니다. 제가 꾸뻬씨를 쓸 때는 그러고 싶은 충동 때문에 썼습니다. 그 책이 제 친구들과 다른 일부 독자들을 즐겁게 할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그 전에도 프랑스에서 성공을 거둔 책들을 몇 권 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성공한 것은 없었습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크게 성공한 데 대해 놀랐습니다.-작가가 되면서 더 행복해졌다고 느낍니까? 예상치 못했던 불행이 따라온 것은 없나요?제 생각에 저술은 제 인생에서 적시(適時)에 왔습니다. 따라서 저를 지금까지 계속해서 행복하게 해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약점 중 하나는 고독한 활동이라는 점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팀 속에서 일할 때의 느낌을 그리워하게 됩니다.-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매일 반복하는 좋은 습관 같은 것이 있나요?그런 일을 매일 꽤 많이 합니다. 내가 받은 축복을 헤아려보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사랑을 보여주기. 늘 좋은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기. 매일 조금씩 걷기. 친구들과 연락 주고받기. 다음날 글을 쓰려고 할 때는 저녁에 좋은 와인이라도 과음 피하기 등등.-평소에 다른 작가 책도 많이 읽는 편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프랑스 고전들을 반복해서 읽습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새 책도 골라 봅니다. 제가 평생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는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입니다. 최근에 ‘생일을 축하하기 싫었던 노인(The Old Man who did not want to celebrate his birthday)’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직전에 지난 세기 주요 소설인 조지프 로스(Joseph Roth)의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ch)’도 읽었습니다.-당신 글쓰기 스타일은 파울루 코엘료나 알랭 드 보통 같은 작가들과 유사합니다. 이야기 속에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이 작가들이 다 우리나라에서 아주 인기가 높습니다. 이들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나요? 어떻게 생각하세요?저는 알랭 드 보통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의 책 거의 전부를 읽었습니다. 코엘료의 ‘연금술사(The Alchemist)’도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책을 다시 읽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요즘 많은 남성, 특히 블루컬러 계급 남성은 전통적으로 직장과 가정에서 누리던 지위를 잃으면서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남성의 종말’이라는 책까지 나왔습니다. 가부장적 질서는 붕괴하고 있는데 남성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지요.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적응하거나 자신의 가치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곳을 찾아가든가 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아시아 국가에서 만난 한 미국인 이민자가 제게 한 말이 떠오른군요. “나는 페미니즘에서 탈출한 사람이야!”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 모델은 남성들에게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따라서 일부 남성은 어느 정도 그것에서 풀려난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예전에 비해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서 출판사들이 걱정합니다. ‘책의 쇠퇴’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작가로서 견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정말이지 저로서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읽기를 강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걸음마 시절의 아이들이 책을 뒤적이는 것을 볼 때면 언제나 행복감을 느낍니다.-한국에서 행복에 대한 관심은 요즘 웰빙과 힐링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과도한 경향도 보입니다.강박이나 집착이 오히려 행복에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승이 말한 것처럼, 교훈 7번 “실수는 행복이 목적(aim)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행복은 종종 어떤 활동이나 목표(goal) 달성의 부산물로 옵니다.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행복의 추구가 아닌 추구의 행복(the happiness of pursuit, not the pursuit of happiness)’이라고 했듯이 말입니다.저는 사람들이 가끔씩 멈추고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더 많은 웰빙을 찾으려는 것은 너무 집착하거나 자기중심적이지 되지 않는 한에서는 긍정적입니다.-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제 능력과 한계를 감안하면 제가 지금껏 산 인생이 꽤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할 수 있다면, 고대의 항해사나 탐험가, 혹은 겉보기에는 조용한 삶을 사는 비밀 스파이가 되고 싶군요. 아시다시피, 그것은 정신과 진료와 같이 숨은 비밀을 발견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지금 준비 중인 책이 있나요? 어떤 책인가요?꾸뻬씨 여행 시리즈의 ‘프리퀄’(Prequel, 전편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이야기)이 될 것입니다. 꾸뻬씨가 더 젊었던 시절, 아직은 기대로 가득한 의대 레지던트생 때입니다. 이야기 시작 부분에서 꾸뻬씨는 스스로 신앙에 대해 질문합니다. 신이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이 존재할까? 여기서 다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긴급하게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몇몇 친구들과 여행을 떠납니다. 이들은 히말라야까지 갑니다. 그 탐구 모험에서 꾸뻬씨는 환각 체험도 합니다. 이 모험은 1970년대에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원래 서울국제도서전 초청으로 한국에 올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스 유행 때문에 행사가 취소됐습니다. 예전에 베트남을 방문할 때도 사스가 발생했을 때라고 들었습니다만.한국에서 지금 메르스처럼, 당시 베트남에서 사스가 발병한 것도 해외에서 귀국한 감염자에게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홍콩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귀국 당시 열이 나고 기침을 했습니다. 그는 하노이에 있는 프랑스계 베트남 병원에 입원됐습니다. 중국에서는 아무도 사스가 돌고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며칠이 지나서야 감염자에 대한 격리 조치가 취해졌습니다.최근 한국과 약간 비슷합니다. 그러는 동안 일부 간호사와 의사들이 감염됐고 그 중 일부는 사망했습니다. 심지어 그곳에 사스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그곳에 갔던 WHO 파견 의료진 고위 인사까지 숨지기도 했습니다.그때 공교롭게도 제 친한 친구들이 하노이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고, 저는 그 전에 그들을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였습니다. 지금처럼 저는 관련 정보를 짚어봤습니다. 저도 의학박사니까요. 갈수 있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노이에서 저는 병원을 지원하는 일에 관여하는 프랑스 교민들을 알게 됐습니다.직원과 환자들은 바이러스와 함께 격리 수용돼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지요. 평소 식품을 공급해오던 업자들 중 일부는 그곳에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 호텔들(당시엔 거의 텅 비어있었지요)이 자원해서 식사를 배달했습니다. 전염병에 감염된 병원으로서는 그렇게 좋은 음식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다행히 사스는 봄이 오고 며칠이 지나 사라졌습니다. 저는 한국을 위해 사스가 베트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메르스도 신속하게 퇴치될 것으로 희망합니다. 비록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합니다.◆꾸뻬씨의 행복 여행에 나오는 교훈 23가지1.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2.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3.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4.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5.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6.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7.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8.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9.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10.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11.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12.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13.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14.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15.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16.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17.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18.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19.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20.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21.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22.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23.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16/2015061600797.html​
  • 2015-06-13
    ​“옛글을 읽고 옛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요, 취미다. 그런 점에서 호고벽(好古癖)에 빠진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만하다… 새로우면서 현재에도 큰 의미를 던져주는 글과 삶은 없을까 늘 찾아다닌다. 그런 생각으로 옛글을 읽다가 선비들 특유의 모습과 흥미로운 사유의 자취를 찾게 되면 메모하고 또 글을 썼다. 한 편 한 편 축적해 놓고 보니 조선시대 선비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던 모습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낡은 거죽을 벗겨내고 다가가 살펴보면 오히려 더 진지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품은 생각과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이 땅에 살았던 선비들의 인생과 글은 수백 년이란 시간을 초월하여 여전히 신선한 감동을 던지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진정 우리가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이 무얼까 생각하고 나아가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폭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시선을 좀 더 확대해야 한다. 넓어진 그 눈으로 18세기 조선을 다시 들여다보면, 전문 여행가와 원예가를 통해 당대 사회의 생활과 사람들의 취미가 더 잘 보인다. 책장수와 춤꾼을 통해서는 지식사회와 시장의 소란스런 일상이 우리 눈앞에 환하게 드러난다.역사가 정치나 제도와 같은 공식적이고 중요한 것만 다룬다면 인간의 진실한 삶과 문화는 어디서 찾을까? 거시적 이해로부터 일상의 삶과 인간의 문화로 시각을 넓혀야 한다.” /‘벽광나치오’“원문에서는 200자 원고지 여섯 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학의 텍스트를 이토록 두툼한 책으로 길게 펼쳐냈으되, 책의 제목처럼 궁극의 시학을 찾아냈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처음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꾸었던 꿈은 이를 통해 동아시아 지성인의 미학과 그 궁극적 담론인 인생의 품격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었다.과연 내가 그것을 이루었을까? 시원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목표했던 문제들을 조금씩 건드리기는 했으나 충분하지 못한 느낌이다. 그래도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첫걸음은 당당히 떼지 않았을까 자부해본다.” /‘궁극의 시학’“담배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내게 문화사적인 면에서 꼭 한번은 제대로 탐구해보고 싶은 유혹이었다. 문화를, 취향을, 문물의 전파와 정착을, 사회상을, 담배를 빼놓고는 실감나게 말하기 어렵다. 자칫 의도치 않은 엉뚱한 논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못내 걱정하면서도 담배의 문화사를 파고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담바고 문화사’6월 초여름 한가로운 일요일 낮 2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난 안대회 교수는 인사를 하다가 밭은기침을 했다. “아, 메르스가 아니니 안심하세요. 3월부터 얕은 기침이 나기 시작했는데 요즘 일이 많아서 무리해선지 안 떨어지고 계속 이러네요.”그는 예의 상대의 불편을 먼저 신경 썼다. 만날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그랬다.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심지어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먼저 낮추고 배려하는 기색이 그대로 느껴졌다.그런 모습을 보며, 제대로 된 학문은 수신(修身)과 이어지는 것이라는 옛말을 다시 한번 수긍하곤 했다.‘한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종횡하는 고전 읽기와 탁월한 분석을 통해 풀어내는 그의 글솜씨는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조선 후기 한문학이 온축해온 감성과 사유의 세계를 대중적인 필치로 풀어냄으로써 역사 속 우리 선조의 삶과 지향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바꿔 생생하게 보여준다.’그의 주저 ‘궁극의 시학’ 맨 앞 장에 나오는 저자 소개문이다. 누구의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장이 아니다. 진작부터 그런 학문과 인품의 내력에 대해 한번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다. 마침 얼마 전 그의 새 책 ‘담바고 문화사’가 출간됐다. 기다렸다는 듯 연락해서 날을 잡았다. 그날이었다.-한문 공부는 언제부터 하셨습니까?한문에 대한 관심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그때 고전 교육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충실한 편이었어요. 개인적으로도 한자 쓰는 걸 좋아하고 고전 외는 것도 좋아하고 그랬지요.-혹시 집안 내력이 있었나요?그건 아니고, 시골 촌놈이다 보니 그런 거죠.(웃음) 제 고향이 충남 청양, 광천이라는 곳인데, 거기서 시골 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전통적인 생활을 하게 된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집안이 가학(家學)의 전통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시골이라도 어릴 때 한문 공부보다는 소나 몰고 할 수도 있잖아요?아버님이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한문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은 대학 들어와서였어요. 1학년 때부터 중국어, 한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독학으로도 하고 서당에도 좀 다녔습니다. 본격적으로는 2학년 때부터였습니다.-국문과에 입학했는데 처음부터 한문 쪽으로 뜻을 굳힌 겁니까?처음부터 그쪽은 아니었고. 가만 보면 제가 근원을 찾아 올라가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그때 대학 1, 2학년 때 가장 심취한 것 중 하나가 중국 고전이었어요. 논어, 맹자부터 시작해서 사기를 좋아했고, 그다음 그리스 로마, 유럽 비극, 이런 것도 좋아했어요. 고전 번역된 것들 많이 읽고 그랬지요. 그때 유럽 철학을 공부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고.국문과에 간 것은, 인문학 중에서 사학과를 갈까 철학과를 갈까 고민하던 중에 문학이 그래도 좀 더 무난해 보였어요.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사학이나 철학을 전공해도 좋겠다고 그런 정도로 생각했지요. 국문과를 다니면서도 사학과, 철학과, 영문과, 중문과 같은 다른 과 강의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성적은 안 좋았어요. 아무래도 전공 과 학생보다는 잘 나오기가 어려웠죠. 그래도 무시하고 공부했어요.-학문에 뜻을 두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지요?2학년 때쯤이었어요. 공부에 매력을 느꼈고, 한문 공부도 하니까 잘 되더군요. 그래서 계속 집중해서 했습니다. 3, 4학년 되면서 이걸 해야겠다 싶었고, 학자가 되려면 책을 좀 게걸스럽게 읽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영문학 책도 읽고, 불문학 책도 읽고, 그리스로마도 읽고 인도 것도 읽고, 중국 것, 이슬람 것 눈에 띄는 대로 다 읽었어요.물론 한문 공부는 기본으로 했구요. 하루 4시간 이상은 반드시 한문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번역된 것 말고 한문 책. 그때 학부 때 폭넓게 읽은 것들이 지금 저로서는 큰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80년대 초에 입학하셨는데 한창 정치적으로 소란스러웠을 때 아니었나요?그렇죠. 아마 제일 시끄러웠을 때지요.-시국 문제로 고민하지는 않았습니까?왜 아니겠어요. 연세대도 당시 학생운동의 중심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게 굉장히 고민이 되고, 데모에도 많이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시국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돌파구 비슷한 것으로 기본이 되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취직 같은 것 신경 안 쓰고 공부하는 쪽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갔어요.-외롭지는 않았습니까?굉장히 외로웠죠. 학과 내에서도 조금 외톨이 비슷하게 지냈어요. 같은 학부 학생들하고 친하기보다는 학교 밖의 다른 선생님들하고 친했죠. 그때 제가 1년 동안 배운 분이 도올 김용옥 선생님입니다. 당시에 같이 수학하던 무리를 ‘도올 사단’이라고 했는데, 거기 가서 공부했지요.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각주에 공부 모임 참석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이 나온다) 당시에 일본 철학자 책, 한의학의 고전이라는 ‘황제내경’도 읽고 그랬어요.-그때 동학(同學)은 누구였지요?주로 고대 철학과 중심이었지요. 그 외에 연세대, 서울대, 서강대, 여러 대학에서 왔어요. 대부분 공부하는 분들이었으니까 거기서 새로운 지적 자극도 많이 받았어요. 도올 선생이 그 후에도 물론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가장 왕성하게 지적 열기에 차있었던 시기가 그때 아니었나 싶어요. 굉장한 자극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비교적 일찍 공부에 뜻을 두신 셈인데, 그 뒤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까?왜요. 많았지요. 제일 힘들었던 때는 석사 후 박사 과정 들어갈 때였어요. 결혼도 해야 하고 그랬는데 그때 경제적으로 너무너무 곤란했어요. 집안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형제가 넷인데 제가 장남이었어요. 월급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그래도 인문학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매우 많은 편인데, 당시에는 정부 측 인문학 지원이 일절 없었어요. 박사 학위 받기 전에 생계가 힘드니까 ‘내가 왜 이걸 했나. 나도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생각까지 들더군요.그 다음 힘들었던 때가 박사 학위 받고 10년 동안 강사 생활을 할 때였어요. 요즘은 그때보다 교수 되기가 더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그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30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에는 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저는 잘 안 됐어요. 처음 영남대 교수로 간 게 마흔두 살이었으니까, 상당히 늦은 편이었지요.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안 된 분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 나름은 열심히 했고 인정도 받았음에도 교수 임용이 잘 안 됐어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었는데, 그때 굉장히 갈등했지요. 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싶었지요. (그때 안 교수의 임용 불발에 반발해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들이 집단 자퇴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영남대에 가서는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나요?거기서 3년 동안 서울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명지대에서 오라고 해서 갔고, 그러다 2년 반 만에 성균관대 제의를 받아서 오게 됐지요. 한번 전임이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이런저런 제의가 들어와서 지금 성대에 안착하게 됐습니다.-학문에 대해 그렇게 심각한 회의가 일었을 때는 어떻게 견뎌냈나요?다른 게 할 게 없더라구요. (웃음) 사실 제가 20-30대를 주변에 한눈팔지 않고 보냈습니다. 한눈을 팔았다고 한다면 기껏해야 다른 분야 책 읽고 지식 쌓고 한 정도였어요. 조금은 무책임하게도 그 어려운 중에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별로 안 했어요. 사실 당시엔 할 것도 많지는 않았지만, 강사 생활한 것 외에는 경제생활이라고는 한 게 별로 없었어요.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제가 하던 공부가 다른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서였어요. 공부를 해 나가면서 든 생각이, 지금껏 학계에서 많은 선배분이 공부를 해왔고 연구 성과를 냈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기반이 잘 안 닦인 상태에서 허술하게 돼 있고, 이 중요한 것들을 왜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 건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그러니 외면을 할 수가 없겠더군요. 공부하면서 계속해서 새로 발굴되고 발견되는 부분들에 대한 매력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이건 내가 아니면 잘할 수 없겠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많이 나오니까, 결국엔 내가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든 거지요.-잘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 구체적으로 뭐지요?예를 들자면, 제가 초창기에 낸 저작 중에 명종 때 윤춘년(尹春年, 1514-1567)이라는 사람에 관한 것이 있어요. 가끔 정난정 사극 할 때도 나오는데, 그 사람이 당시 이조판서도 하면서 책을 낸 것이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더 많이 가 있어요. 그게 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한 편도 나와 있지 않았어요. 이렇게 지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출판역사에서도 중요한 것들이 안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야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썼지요. 그때 연구가 그분에 대한 이해의 새로운 계기가 됐어요.그 뒤에는 소품문(小品文)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전에 학계에서 한두 번 연구가 되긴 했어요. 하지만 대체로 “별 게 있느냐, 이런 건 우리 문학사의 한 현상으로 간주하기 어렵다”고들 봤어요. 하지만 제가 계속 자료를 발굴해서 논문을 쓰고 언론에도 소개되고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소품문이라는 것이 조선 후기 문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냈지요. 물론 저 혼자서 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역할이 컸다고 자부합니다.그런 것들이 작다면 작겠지만, 문학사를 바라보고 우리 한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이런 발굴 작업을 한 결과, 저 혼자만의 작업으로 그치지 않고 후속 작업들이 다른 분들에 의해 나오기도 하고, 학계나 문화계 일반에서도 반응해주고 하니까, 공부하는 재미랄까 의의랄까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러다 보니 후회하거나 멈추거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이전 선행 학자들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조선 후기 문학 쪽을 보면 그전까지는 대개 작가론 차원에 머물거나 연암 박지원을 비롯한 유명 인사 중심으로 연구하곤 했어요. 또 그 시기에 유명했던 리얼리즘 논쟁이 있지요. 우리 문학을 볼 때에도 (주로 외국 문예이론을 끌어와) 그게 사회적인 효용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졌는데, 저는 그런 쪽을 한 적은 있지만, 그보다는 작품의 당대 실상에 맞춰 접근하자는 입장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문학 연구 방법 자체를 상당한 정도로 바꿨다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그걸 저 혼자만 한 것은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몇 분 든다면 정민 선생이나 강명관 선생을 비롯해 우리 세대가 함께한 거지요. 그런 점에서 문학 연구를 문화 전체에 대한 시각으로 봤고, 요즘 개념으로는 일상사 연구의 시각으로 본 셈이지요. 지금 문학 연구에서도 그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그전까지는 우리 문학을 지나치게 역사적 가치랄까 문학사적 가치로만 봤다면, 저를 비롯한 학자들이 지금 시대 사람이 읽어도 감동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부분을, 다양한 저술을 통해 드러내는 활동을 많이 했지요. 정민 선생과 ‘태학산문선’을 같이 기획해서 시리즈로 낸 것이라든지, 제 책 ‘선비답게 산다는 것’을 비롯해 독자들 사이에 스테디셀러가 된 몇몇 저작들을 낸 것이 그런 차원이었다고 하겠습니다.-대중적으로 화제가 된 책 중에 ‘18세기의 맛’이 있지요? 18세기학회 회장으로 있을 때 낸 것으로 압니다만 어떤 학회인가요?18세기학회는 두 그룹으로 돼 있어요. 유럽 쪽은 18세기 불문학이 중심이 돼서 영문학자도 있고. 다른 한쪽은 국학자들 중심으로 돼 있지요. 그 둘이 함께 18세기를 연구하는 모임입니다. 구성원이라고 해봐야 수십 명밖에 안 됩니다. 학회지도 벅차서 안 내는데, 학술 논문을 쓰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재밌게 같이 공부해 보자는 거지요. ‘18세기의 맛’이 그 결실이었습니다. 18세기를 안의 밖의 시각에서 교차시켜 보려 한 것인데 서로 큰 도움이 됐다는 게 중론입니다.-정민 선생이나 이종묵 선생 같은 분들이 다 18세기학회 소속이지요? 이 분들과는 언제부터 교분이 있었나요?정민 교수(한양대)나 이종묵 교수(서울대)나 80년대 후반 석사 시절부터 서로 소문을 듣고 알았습니다. 서울대 누구, 한양대 누구, 고려대 누구가 열심히 한다는 식으로 안 거지요. 논문도 서로 교환하고 학회에서 서로 어울리고 하면서 의기투합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서로 거의 30년 지기로 지냅니다.-세 분이 동년배인가요?그렇습니다. 학계를 보면 특히 한문학 쪽에 저희 연배를 전후로 3-4년 사이 분들이 대학 교수로 많이 있습니다. 부산대 강명관 교수, 고려대 정우봉 교수, 성균관대 진재교 교수라든지 여러 분 있습니다.이 분들이 서로서로 자극을 주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쪽에서 뭔가 연구를 해서 내면, 또 저쪽에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는 식으로. 그게 또 다른 학과 쪽으로도 전이되고, 그런 점에서 학문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한 성과가 있지 않나 싶군요. 학계 내부뿐만 아니라 출판을 통해 다른 많은 분들도 공감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의미도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특히 정민 선생과는 연구하시는 분야나 내신 책들이 유사하거나 겹치는 부분도 있고 상호보완적인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저는 18세기 시와 비평으로 들어갔고, 정민 교수는 17세기 초반 산문론으로 들어갔고 그런 차이가 있지만 결국 18세기 쪽에서 만나게 된 거지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연구 대상이 되는 흥미로운 소재들이 18세기에 많이 있습니다. 서로 많이 겹치거나 관심사가 공유되는 부분들이 있는 거지요. 앞서 말씀드린 몇몇 분들을 보면 18세기, 19세기와 다 연결돼 있지만 18세기 현상에서 파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혹시 정민 선생과는 어떤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은 느끼지 않나요?하하, 감당이 안 되지만 왜 없겠어요. (웃음) 서로 저쪽에서 뭘 해서 내면, 나도 ‘야, 이거 안 되겠다’ 하면서 또 분발하고 그러지요. 그래서 저는 학계에서 상당히 더 많은 공부 그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배마다 말이지요. 지금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서로 좋은 의미에서 자극되고 격려도 받고 하면 좋겠어요.왜 그러냐면, 요즘 드는 생각이 학교에서 논문은 아주 많이 나오는데 거기에 독창성이 적거나 지나치게 전문적일 경우 그걸 보는 사람은 저자하고 몇 명밖에 안 된다고들 합니다. 고생해서 쓰지만, 일반인은 고사하고 연구자도 관심 있는 몇 명만 읽고 마는, 고립된 연구가 참 많아요. 안타깝습니다.우리 연구가 비단 국문학이나 한문학 하는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 하는 사람, 그런 데 관심 있는 사람, 또 그냥 공부하는 일반인도 읽고 감동 받고 하는 것이 좋지요. 우리 독서계에는 외서 번역물이 범람하는 실정이지만 모국의 문화 현상을 다룬 것을 가지고 독자들한테 잘 읽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이런 부분이 18세기뿐만 아니라 17세기, 19세기, 상고 시대로 더 다양하게 넓어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언젠가 서양 고전학 하신 이태수 선생도 인문학이란 모국어로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대화라고 하시더군요.맞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그런 점에서 일반을 위한 책도 많이 내시는 편인데, 다른 분들 이야기로는 대학에서 특히 젊은 교수들의 경우 연구나 다른 업무 부담이 크다고 합니다.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실제로 그렇습니다. 대학 교수 평가에서 연구 업적이 아주 중요한 지표인데 논문이 기준입니다. 하지만 논문 쓰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이 없거나 일정 형식에 맞지 않으면 통과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그래서 제 경우에는 최대한 연구하고 쓰는 시간을 확보하자는 주의로 생활합니다. 최대한 잡스러운 일은 피하는 거지요. 강연은 완전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을 거절합니다. 그래도 교수 생활이 생계는 되니까, 연구실에서 조용히 앉아 있을 때가 잦습니다. 강의나 다른 용무가 없는 날은 집에 칩거하기도 합니다. 연구실에는 전화도 결려오고, 다른 일로 방해받을 수 있으니까요.그렇게 제가 쓸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 놓고 논문도 쓰고 그렇게 나온 것을 가지고 일반 교양서로도 씁니다. 책을 읽고 연구하는 중에도 늘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가 저술 작업도 하지요. 1년에 적어도 한두 권은 내는 식으로. 논문도 연 3-4편 정도 씁니다. 기본적으로 늘 새로운 자료를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쓰면 쓸수록 새로운 주제들이 나옵니다. 늘 머릿속에 다음에 논문으로 쓸 것, 저술할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그걸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애를 씁니다.-일과가 정해져 있나요?보통 7시쯤 일어나서 12시쯤 잠자리에 듭니다. 일어나서 학교 강의 있으면 지하철 타고 가서 연구실을 지키다가 강의하고, 일이나 저녁 약속 있으면 나가고 합니다. 강의 없을 때는 주로 집에서 일어나 공부하고 점심 먹고 산책하고 글을 씁니다.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하고 강의하는 데 쓰는 편입니다.-지금까지 책을 얼마나 내셨지요?일일이 세보질 않아서... 저서와 번역서 합치면 20종 내외가 될 것 같군요.-그 중에 주저랄까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있나요?아무래도 최근에 낸 책들이 과거에 낸 것보다는 기억에도 더 잘 남고 해서인지 애착이 가지요. 꼽으라고 하면 재작년에 낸 ‘궁극의 시학’ 그리고 최근에 낸 ‘담바고 문화사’, 이 두 저작이 기억에 남고 아끼고 싶은 책입니다. ‘궁극의 시학’은 동아시아 문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시학 텍스트인데, 원문이 겨우 1152자밖에 안 됩니다. 조금 긴 시 한 편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 속에 그림이나 시, 도장 같은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가지고 독특한 동양의 미학을 설명합니다.제가 원래 시비평이 전공인데 그 텍스트를 당시 문화사적 시각으로 폭넓게 살펴보고 깊이 있게 분석을 시도한 거지요. 여하튼 한 페이지도 안 되는 텍스트를 가지고 700페이지가 넘는, 호흡이 긴 책을 낸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걸 쓰면서 너무너무 고생을 많이 한 탓도 있고요.-어떤 고생 말이지요?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데다가 텍스트 자체도 읽고 분석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또 그걸 분석하면서 다양한 관련 자료를 읽어야 하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또 하나는 그걸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를 했는데, 아주 동양적인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문학에 관심 있는 교양인도 널리 읽게 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었어요.이런 미학 저서가 일반 사람들한테도 읽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는 데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학술서를 일반인까지 읽게 하려다 보니, 그게 저로서는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지요. 그래도 책이 나온 후에, 물론 관심 있는 분들 말씀이겠지만, 글이 읽을 만하다는 평도 받고 학계에서는 여러 해석에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다는 평도 받고 하니까 보람이 있었습니다.‘담바고 문화사’ 경우 사실 이게 문학 저작이라고는 할 수 없고 일종의 문화사 저작입니다.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뭐 담배를 가지고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전후를 공부하다 보면 늘 마주치는 게 담배였어요. 자료가 그렇게나 많아요.그런데 다들 지나쳐버려요. 사실 역사학자나 경제사학자들이 연구해야 할 주제인데, 담배처럼 평범한 물건에 대한 연구는 드물어요. 40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사와 문화사에서 그렇게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단행 논문조차 10편도 안 됩니다.제가 보기에 답답하기도 해서 10년간 자료를 모아서 낸 거지요. 선행 연구들이 없다 보니 담배의 어떤 부분을 다룰지 고민도 컸습니다. 결국 30-40가지 주제로 썼는데 하나하나가 대부분 처음 주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으로는 두고두고 기억할 저작 아닐까 합니다. 내용이 잘 됐든 못 됐든. 그처럼 다양하게 담배의 여러 면을 살펴본 저작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중국이나 일본에 번역해서 내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자부해요. 제가 출판사에다 책 표지에다 영어로도 쓰라고 했어요. 이건 미국에다 소개해도 학문적인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이지요. (실제로 책 표지 한글 제목 밑에 ‘The Cultural History of Tobacco Korea 1609-1910’이라고 적혀 있다)물론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집필할 때부터 외국에 번역해도 자신있다는, 오만인지 주제넘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으로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착도 많이 갑니다.-출간 후 반응은 어땠나요?‘담바고 문화사’도 기대 이상으로 인터넷신문까지 포함한 언론에서도 크게 많이들 다뤄줬어요. 아마 제가 낸 책 중에 가장 많이 환영받은 것 아닌가 싶은데, 독자들 반응은 제 생각보다는 덜했어요. 그 이유가 아마도 지금 사람들이 담배에 대해 가진 생각 때문 아닌가 싶어요. 요즘 같은 때 담배라는 걸 굳이 책으로 읽어야 하나, 차(茶)도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지요.하지만 제가 담배를 다루려고 한 시각은 담배라는 것이 우리 문화, 경제, 사회에 아주 중요한 소품이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관련돼왔는지 문화사적으로 조명한 거지요. 저도 담배는 안 피웁니다. 예전에 좀 피다가 끊었지요.그래도 책을 읽어본 분들은 아주 재미있다, 이게 역사다 이런 말씀들을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어떤 생각이 드느냐면, 우리 독서계에서 인문 저작을 읽는 시야가 생각보다는 폭이 그리 넓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스마트폰이 나온 후로 책 읽는 독자들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인구도 줄고 읽는 시야도 더 좁아진 것 아닌가 싶은 거지요. 아무튼, 제 판단으로는 독자가 많고 적고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낸 어떤 책보다 교양과 전문성을 함께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책을 내시면 반응에 마음을 졸이시나요?예전엔 쓸 때 어느 정도 가늠이 됐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잘 안 잡힙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50을 넘어가니까, 지금 주 독서층인 30-40대와는 좀 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대나 반응에 대한 조바심 같은 것은 여전히 있다고 봐야지요. 그래도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고 내 생각에 의의가 있다고 하면 나는 한다.-책은 계획을 세워 놓고 내시나요?그렇진 않습니다. 조절할 정도는 아니고. 그렇게 많이 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적어도 5년에서 10년 정도 미리 고민합니다. ‘궁극의 시학’만 해도 첫 번째 책 ‘윤춘년(尹春年)과 시화문학’(2001)을 낼 때부터 생각이 있었던 것이고 구체화한 것은 한 5년 정도 걸렸지요. 담바고 문화사는 자료 수집까지 생각하면 10년 정도 걸렸어요. 번역서 ‘연경, 담배의 모든 것’(2008)을 낼 때 이건 저작으로까지 가자고 생각했고, 또 몇 년 고민하면서 한 6년 걸렸지요.이런 책을 쓸 때는 자료도 상당히 많고 검색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계속 찾고 사서 모으기도 하고 그러지요. 그러다 보니 저만 가진 자료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모아서 어떤 주제로 할 것인가 늘 메모를 해놓고 정리를 해뒀다가 저술에 들어가고 하지요. 실제 집필은 1년 정도, 교정에 반년 정도 걸리는 편입니다.-현재 작업 중인 책도 있습니까?올해 내야 하는 걸로는 아동 한시가 있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나이 정도 되는 옛날 아이들이 쓴 한시 수백 수를 모아서 풀어 쓴 겁니다.-아이들 한시라니 특이하군요.네 이런 책은 처음 내는 겁니다. 원래 제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출판사에서 책 한 권 내자는 걸 거절하다가 아이들 생각해서 계획했는데 결국 10년이 넘었어요. 지금은 아이들도 다 커버렸는데 지금이라도 미래의 손자들 위해서 내자고 해서. (웃음)과거의 아이들은 이랬다는 걸 보여주는 표현력에 관한 건데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책입니다. 아이들 교육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요. 옛날이니까 고리타분했을 거로 생각하시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때 세계도 다른 부분이 있고 똑같은 부분이 있어요. 한자로 썼다 뿐이지. 과거에는 이랬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15년 정도 자료를 모았는데, 흥미로운 게 많아요. 지금 아이들은 아파트나 건물에 갇혀 있는데 과거 아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순수한 면도 있고.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요즘 아이보다 더 심하게 주입 교육을 받은 아이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닥치는 대로 쓰는 아이도 있어요. 그것은 그것대로 중요하지요.또 다른 책으로는, 성균관대로 간 후로 방학이고 학기 중이고 상관없이 계속해서 일주일에 하루씩 박사 과정을 중심으로 한문 자료를 같이 읽어오는데 함께 한 부분은 번역서로 내는 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번역이 안 된 좋은 자료를 가지고 합니다. 정말 학문적으로 엄정한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제 개인 공부이기도 하지만 후배 학자를 기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텍스트를 정확하면서 빨리 읽는 훈련들을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지요.그렇게 해서 곧 나올 책이 ‘주영편(晝永編)’이 있습니다. 정동유(鄭東愈, 1744~1808)라는 18-19세기 대단히 중요한 실학자의 책인데, 제일 유명한 것이 ‘훈민정음론’입니다. 조선 후기 훈민정음 학문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인데 그게 이 책 안에 다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의 이본(異本)이 한 8종 됩니다. 그 전체를 교감(校勘, 같은 책의 여러 이본을 비교해 차이 나는 것을 바로잡는 것)해서 완전한 정본을 만들고그걸 기준으로 번역한 겁니다. 그동안 딱 한 번 번역된 게 있는데 오류가 너무 많아 믿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지요.우리 주요 한문 저작 중에 그런 게 많습니다. 그전에 낸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도 정말 중요한 텍스트인데도 원본 교감이 제대로 안 돼 있었어요.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십여 종의 필사본을 다 모아서 원본 텍스트로 냈지요. 저희 같은 학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연구실에 앉아서 교양서만 내서 될 일은 아니고, 학문적으로 엄격한 믿을 만한 정본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걸 토대로 또 다른 저술이 나오고 외국으로 번역될 때도 올바르게 될 수 있지요.제가 그다음으로 학생들과 같이해서 거의 완성 단계에 있는 것이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입니다.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쪽 공부를 많이 안 한 사람도 제목은 알잖아요. 이중환 선생이 쓴 우리나라 전체 인문지리에 관한 책인데, 이본이 한 300종 됩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지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교감 작업이 딱 한 번 있었어요. 최남선 선생이 조선광문회를 통해 한 게 전부였어요.택리지를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간행한 사람은 일본인입니다. 1870년 개항 이듬해인가에 일본인이 일어로 번역해서 냈습니다. 이유는? 조선을 침략하려면 조선 지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지요. 여기에 소중한 정보가 많았으니까요. 그다음에는 중국에서 일본 택리지 보고 중국어로 냈습니다. 그다음 또 일본인이 조선고서간행회에서 냈습니다. 그다음에 나온 것이 조선광문회 최남선 선생이었습니다. 그 후에 일본에서 또 대여섯 종이 번역됐습니다.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이본만 10종 돼요. 제가 하나 가져왔는데, 이건 1809년 경기도 지방에 있는 분이 그때 이 귀한 책을 보고 너무 감격해서 자기가 베낀다는 내용의 필사기가 나와요. 종이질도 굉장히 좋습니다. 여하튼 이런 게 매우 많은데 이런 작업을 누가 하겠습니까.외국 선진국들이 공학, 의학, 경제학만 발달한 게 아닙니다. 다 이런 기초 작업을 이미 오래전에 해놨고 지금도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기초 작업이 지금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가장 많이 읽히는 저자, 예컨대 ‘열하일기’만 해도 이본들은 많은데 텍스트 작업이 안 돼 있어요. 우리가 읽고 있는 열하일기가 잘못 읽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물론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요. ‘북학의’만 해도 이본이 10종이 넘었어요. 혼자서는 하기 어렵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지요. 목민심서? 정본 작업이 돼 있을 것 같지만, 그 동안 안 돼있다가 최근에야 되었습니다. 그 중요하다는 퇴계집도 아직 안 되어 있습니다. 이본의 양이 많은 것은 집체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하겠습니까. 남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습니까.담배 문화사? 전 세계에서 담배 문화에 관한 한 조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런데도 동아시아 담배 이야기할 때 조선은 빠집니다. 볼 책이 없으니까요. 제대로 된 논문이 다섯 편도 안 됩니다.-조선의 담배 문화가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좀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인류 역사에서 기호식품으로 담배만큼 아주 빠르게 전역으로 퍼진 것도 없습니다. 커피? 지금도 안 먹는 지역이 있습니다. 담배만큼 특이한 기호품도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게 아니라 연기를 들이마시는 겁니다. 개항의 시대에 신대륙에서 나와서 전 세계로 퍼진 것들이 많았지만, 담배만큼 파급력이 강한 것이 없었지요.조선 경제에 미친 영향도 엄청났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비중이 큰데 조선 시대에는 주식(主食) 빼고 담배만큼 경제 비중이 큰 작물이 없었습니다. 당시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도 20%는 됐을 겁니다. 그게 무려 4세기 동안 계속됐습니다. 문화사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요.조선 시대 흡연율이 최소 40%는 된다고 봅니다. 남녀노소 불문했습니다. 아이들도 7-8세만 돼도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 후기에 사람들이 거리에 다니면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10명 중 2-3명꼴로 나옵니다. 그 중 40%는 담뱃대를 들고 있습니다. 당시를 이해할 때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연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던 거지요.-처음부터 오랫동안 18세기에 천착해 왔습니다. 왜 18세기 조선입니까?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시기였습니다. 여러 가지가 맞아서 가능했지요. 첫째, 당시가 국제적으로 안정돼 있었습니다. 우리는 밖이 불안정하면 곧바로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렇지요. 18세기는 그런 점에서 혜택받은 시기였습니다.17세기만 해도 임진왜란 때 참혹한 피해를 보았고 곧바로 여진족에게 패했습니다. 그 후 제대로 안정이 확보된 게 18세기였습니다. 북으로부터도 일본으로부터도, 심지어 서양 세력으로부터도 침략이 없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안정되니 사람들이 그 안정을 구가하면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다음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됐습니다. 인구도 늘고 산업 생산력도 있고 도시도 발달했습니다. 빈부 격차도 일어났지만, 소비를 즐길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 많은 정변이 일어나긴 했지만, 영조가 나름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해 안정을 이뤘습니다. 그 결과 조선 후기에 와서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력을 보이게 됩니다. 개인의 욕망이 표출되고 이것을 기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17세기와 19세기에도 기록은 있지만 18세기만큼 다양하게 풍부하지는 않았습니다. 19세기만 해도 1801년 정조가 사망한 후부터 이듬해 신유사옥을 비롯해 사상 탄압이 일어났습니다. 단순히 천주교 신자만 죽인 게 아니라 이단적 사상은 다 문제가 됐습니다. 그 압박감 때문에 18세기 이후에는 글을 봐도 그렇게 다양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습니다.17세기에도 이민족 침략을 받다 보니 안으로 오소독스한 성리학 일변도가 되면서 이단 사상에 대한 탄압이 있었습니다. 윤휴 같은 사람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은 게 그때였습니다. 18세기 와서 온갖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성적인 문제, 음식 문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공격, 인간의 욕망 같은 다양한 것들이 분출됐지요. ‘열하일기’만 해도 19세기 같으면 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게 다양한 만큼 연구할 것도 많은 거지요.-그 무렵에 외부 문물도 많이 유입됐지요?청으로부터도 그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와 책들이 들어왔지요. 직접 만나서 교류하는 것도 훨씬 자유로웠습니다. 일본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양쪽으로 굉장히 자유롭게 1대 1로도 만나고 서적으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정보를 활용하는 힘도 18세기가 가장 컸습니다.-지금도 사극이나 영화를 비롯해 우리 역사라고 하면 조선에 관심이 높습니다. 조선은 어떤 나라였나요?(크게 숨을 내쉰 후) 단정 짓기가 굉장히 힘들지요. 조선의 전기와 후기만 해도 아주 많이 다릅니다. 이런 나라라고 정의하는 순간 그 말은 바로 오류가 될 겁니다. 500년이나 유지된 나라라는 게 한마디로 정의내려질 수 있을까 싶군요. 굳이 조선 후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면 답답한 부분들이 많지요. 요소요소에서 성장할 수 있었는데 못했습니다.예컨대 임진왜란 전후한 시기라든가, 18세기 경우도 영정조 때 당시 중국이나 일본과 공식 외교 통로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대해 서양과도 통할 수 있었는데 그걸 막았어요. 우리 배가 중국과 일본을 넘어 밖으로 가본 적이 없지요. 표류 말고는. 왜 그렇게 닫아 놨는지.우리 지식인들이 그렇게 폐쇄적인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박제가나 홍대용 같은 사람이 계속 개방하자고 했지만 결국 실천에 못 옮겼습니다. 또 하나가 교육이나 인간관계에서 너무 폐쇄적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분도 있겠지만, 주변 중국이나 일본보다 사농공상이 너무 강하게 단절돼 있어서 신분 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사회가 발전하려면 공인과 상인의 활동 범위가 넓어져야 하는데 신분으로 누르고 막아놓으니 좀 더 건강하고 역동적인 사회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게 19세기에 주체적으로 외세에 대처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외침을 받았을 때 이렇게 허망하게 망한 나라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은 거지요.-그 조선의 주역이 선비였지요? 최근에 선비를 우리 문화의 브랜드로 하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이라는 책도 내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선비도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문제는 선비가 책임져야 합니다. 국왕이 있기는 하지만 국왕조차 선비 중 1인이었지요. 선비가 500년 나라를 이어간 대단한 인텔리 계층이고 문화의 담당자로서 장점도 많지만, 망할 때 그렇게 허망하게 망한 것을 보면 한계도 분명합니다.그것이 가진 취약성은 뭘까. 가문을 유지하고 사회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는 장점이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나라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선생님은 전통 사대부와는 다른 ‘벽광나치오(癖狂懶痴傲,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가 된 사람들)’ 같은 비주류에 주목했지요?제 책 ‘선비답게 산다는 것’이나 ‘벽광나치오’에서 소개한 인물들은 전통적인 선비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인생을 바치는 사람이었습니다. 18세기에 선비들 가운데 그런 좀 현대적인 사람이 많았습니다.-선생님은 인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웃음) 인간의 모든 문제를 주제로 삼아 연구하는 학문일 텐데요. 예컨대 기술에 대해 연구를 한다고 해도 기술 자체나 새로운 작동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역사적인 관점 인간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한다면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주제든지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과 인간다운 삶과의 관계에서 연구한다고 하면 인문학적 접근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핵심 학문은 문사철이 중심이 되겠지만.-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나 학습 열기가 높은 것 같습니다. 인문학자로서 어떻게 보시는지요?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경영이나 그런 쪽 관심의 어떤 파생이 아닌가, 경영이나 기술이나 생산성, 취직 이런 문제와 관련지어 수단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인문학 발전으로 이어지는지는 회의적입니다. 인문학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높이고 살리는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이번 정부에서도 인문학을 활성화한다고 했는데 그게 전부 인문학의 대중화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인문학 연구를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전파하는 데 경도돼 있습니다. 실제로 인문학이 어떻게 연구되는지에 대한 관심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 대중화의 손쉬운 방법으로 강연 행사로 가고 있습니다. 인문학 강연조차도 인문학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가서 하느냐. 의문입니다. 대부분 강연을 잘하는 사람 위주입니다.최근 교육부총리의 발언은 단적인 예입니다. 5월 초쯤인가, 인문학 졸업생들 취직이 안 되니까 인문학과 학생 줄이고 공대를 더 늘인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말 한마디가, 정부에서 인문학 쪽에 수천억 원 뿌린 것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인문학 열기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학교에서 인문학을 하는 것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인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모른다는 말씀 같군요.요즘 인문학 독서만 하면 뭐가 나올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나올까, 저는 의구심이 듭니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경시랄까 소중함에 대해 둔감한 것 같다는 거지요. 모든 것을 경제 가치, 기술적 가치에만 두니까 학과도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우리 속담에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있지요. 굽은 나무가 당장에는 효용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는 거지요. 인문학적 가치는 세월호 사건 같은 것이 터지면 알게 되거나, 인류애가 전체적으로 위기가 닥쳐야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연구를 위한 읽기 이외에 다른 독서는 어떻게 하시는지요?조금 게걸스럽게 읽는 편인데 요즘 바빠서 덜해졌습니다. 제가 요즘 늘 옆에 두고 보는 책은 사전입니다. 장승욱의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라고. 흔히 잘 안 쓰이는 우리말을 모아놓은 책인데 정말 괜찮은 책입니다. 글을 쓰다가 우리말을 살려 쓸 수 있는 것이 뭐 있는지 찾아보곤 합니다.그다음 서양 책으로는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이 있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경제와 역사와 문화를 한 책에서 다 넣은 것인데 최근 완역이 나왔습니다. 문화를 경제사적 관점에서 다룬 정말 좋은 책이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읽습니다.소설도 들쑥날쑥 읽곤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최근 것 빼고 거의 다 읽었습니다. 밀란 쿤데라 소설도 거의 다 읽었는데 작년에 나온 ‘무의미의 축제’는 읽고 좀 실망했습니다.-좋아하는 저자는 누구입니까? 옛날 사람과 요즘 사람을 뽑는다면?조선 시대로는 역시 이덕무, 박제가, 그리고 다산입니다. 그중에서도 굳이 꼽자면 이덕무가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정보량이 많고 상당히 감성적인 글이 많아서 좋아합니다. 다산 글은 굉장히 명료합니다. 그 시대에도 현대 학자의 글 같습니다. 어떤 일을 분석할 때 다산처럼 하면 요즘 논문을 쓰는 데도 좋지 않나 싶습니다.요즘 저자로는 김연수 작가 책을 즐겨 봤는데 최근 것은 못 봤습니다. 최승호 시인 시도 많이 읽었습니다. 또 한문학을 하지만 시조집도 가끔 읽고 합니다. 한문학적인 것의 최종 기착지가 시조나 소설 아닌가 싶어요.가령 춘항전은 이미 여러 번 읽었지만, 한 시간이면 죽 읽는데, 우리말다운 우리말을 어떻게 구사하면 좋은지 알게 해줍니다. 요즘 현대 작가나 서양서 번역들 보면 문체 자체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춘향전은 구수한 옛날 문체가 있어서 가끔 읽어보면 균형 감각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죽기 전에 꼭 써야지 하는 책이 있습니까?현재로서는, 벌써 10년 전부터 다짐해온 게 있는데 박제가 평전을 꼭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이유는요? 좋아하는 학자는 이덕무라고 하셨는데.박제가는 선이 굵고 직선적입니다. 이덕무는 평온하달까, 그런 부분이 있지만, 박제가는 굉장히 역동적인 면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제가 박제가의 ‘북학의’도 번역하고, 산문집도 냈지요. 박제가가 지성사에서 차지하는 큰 부분을, 자료를 모아서 평전을 쓰고 싶습니다. 그건 정년퇴임 한 후에 하고 싶어요.그전에는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같은 그 주변의 문인 그룹인 ‘백탑시파(白塔詩派, 조선 후기 지금 탑골공원 원각사 10층 석탑 주변에 모여 살던 문인들이 결성한 모임)’의 지성사적 위치나 활동, 문학 사상 이런 것을 조명한 단행본을 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할 텐데 가능하면 정년 이전에 쓰려고 합니다.그전에 소품문(小品文, 일상의 소회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 관련 논문을 그동안 10여 편 썼는데 묶고 보완해서 단행본을 내려고 합니다. 또 내년 봄쯤에는 18세기 도시와 도시 문화에 관련된 논문 15편을 많이 보완해서 단행본으로 낼 계획도 있습니다.-백탑시파 하니까 ‘백탑파 시리즈’를 소설로 계속 써내고 있는 김탁환 작가가 생각나는군요. 그분도 얼마 전 강연에서 백탑파 인물들에 심취해 있다고 하시더군요.저와 페친(페이스북 친구)인데, 그분이 그 책 쓸 적에도 제 글 많이 참조하고, 봐준 적도 있습니다. 그분이 그 소설 쓸 적에는 학계에서 연구된 최신 정보를 잘 활용해서 썼기 때문에 세련됐고 정보량이 풍부하고 정확합니다.백탑시파는 지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학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 아날학파니 프랑크푸르트학파니 이야기하는데 우리 과거 지식인 그룹 중에도 그런 학자들이 있었다는 부분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학자들의 세계를 여러 차원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저서를 써보려고 요즘 계속 자료도 모으고 있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공부가 많이 됩니다.-페북도 많이 하시나요?처음에는 출판사 권유로 시작해 봤는데 조금씩 하다가 어느 순간 접었습니다. 그전에는 신문에 연재하는 ‘가슴으로 읽는 한시’도 올렸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도 내 자랑으로 받아들일까 봐 올리지 않습니다.-글을 쓰는 읽는 문화를 아끼는 사람들로서는 소셜 공간을 어떻게 가꿔 나갈 것인가가 숙제인 것 같습니다.우리 사회에 책 읽는 사람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잖아요.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어요. 최근에 방송 뉴스를 보니까, 어떤 조사에서 청소년의 장래희망 순위를 내놨어요. 앞으로 되고 싶어하는 직업으로 의사, 변호사 같은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이고, 소방관과 경찰관 선호도가 미국에서 유독 높은 점이 우리와 달랐어요. 뉴스 초점은 그것이었는데, 그래픽의 위쪽을 보니까 미국 선호 1위에 작가라고 돼 있는 거예요.순간 제 눈을 의심했어요. 작가가 상위권에 오른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조사의 신뢰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사실이라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선진성과 미래 전망은 저 부분이 보여주겠다 싶었어요. 거기서 말하는 작가는 소설가 차원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저술을 말하는 건데, 저술이라는 작업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조망력과 창조적 기획력, 완결성이란 게 대단한 거거든요.일반 논문과는 또 다르게 저술이 갖는 의미지요. 우리 사회도 저술이 더 활성화되고 글을 쓰고 즐길 수 있는 공부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인문학을 일부러 활성화하고 할 필요도 없어요.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다면 그게 진짜 인문학이지요.공학자가 단행본 저서로 공학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그게 인문학이지 뭐겠습니까. 천체과학자인 칼 세이건이 훌륭한 교양서를 쓰지 않았습니까. 인문학이라고 해서 인문학자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대학에서 인문학 하는 학자들은 자기 전공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문제와 연계시켜 생각할 여유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다시 말하지만, 지식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인간다운 가치에 대해 희망을 품게 하는 것, 그게 인문학입니다.◆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남대와 명지대 교수를 지냈다. 한문학에 대한 해박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토대로 학술서와 교양서 저술 양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왔다. 조선후기 한문학의 깊고 넓은 세계를 대중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저서로 ‘선비답게 산다는 것’ ‘조선후기 시화사 연구’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고전 산문 산책’ ‘윤춘년과 시화문화’ ‘벽광나치오’ ‘궁극의 시학’ ‘담바고 문화사’ 등이 있다. 역서로 ‘소화시평’ ‘궁핍한 날의 벗’ ‘북학의’ ‘연경, 담배의 모든 것’ 등이 있다. 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12/2015061203433.html​ 
  • 2015-06-06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 나는 잘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내게 맞는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을까? 일과 개인 생활은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까? 배우자나 이성 친구, 가족 간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대학을 마치고 사회로 나오면 이런 고민들이 머리를 짓누른다. 강의실에서 배운 적도, 시험으로 풀어본 적도 없는 문제들. 이제 와서는 쉽게 물어볼 데도 가르쳐주는 곳도 없는 물음들이다.이런 삶 속의 크고 작은 질문들을 놓고 함께 공부하고 배우는 학교가 있다. ‘스쿨 오브 라이프(The School of Life)’. 말 그대로 ‘인생 학교’다. 국내에도 베스트셀러 저자로 이름 높은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 세웠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곳이다.사실, 이 학교가 홈페이지에 내건 지향점이나 프로그램의 면면을 보면 보통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그동안 발산해온 지적 감성의 연장이자 확대판이라 할 수 있다.2008년 영국 런던에서 그와 몇몇이 의기투합해 처음 문을 연 이 학교가 지금은 세계 도처에 분교까지 열면서 가지를 뻗고 있다. 올 가을에는 서울에도 상륙할 예정이다.런던에 있는 1호 학교로 찾아가 봤다. 시내에서도 도심 지역에 해당하는 블룸스버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은 예전부터 저명한 작가와 석학이 근거지로 삼은 인문과 예술 교양의 동네로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저 유명한 ‘블룸즈버리 그룹’이 여기서 나왔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인 1907년부터 1930년 사이 이 동네에 살던 예술평론가 아서 클라이브 벨의 집에 작가와 예술가, 철학자들이 모여 대화를 즐긴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와 올더스 헉슬리, 시인 T S 엘리어트 같은 당대의 지성들이 발을 들였다.지금도 이곳은 교육, 예술, 의학 분야의 허브로 손꼽힌다. 바로 인근에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런던대학, 런던예술대학, 가디언, 구글 같은 지식 관련 기관과 단체, 기업들이 즐비하다.당초 이 학교를 취재하기 위해 그곳까지 간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일로 런던에 들렀다가 보통에게 이메일로 접촉했다. 인생 학교의 창립자이자 회장(Chairman)인 그는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해외 출장 중”이라며 모겐 리멜(Morgwn Rimel) 교장(director)을 소개해줬다. 그녀와 이메일로 약속을 잡은 후 학교로 찾아갔다. 인생 학교는 그 동네에 많은 중고책방 중 한 곳 같았다. 작고, 초라할 정도로 소박했다. 하지만 노란 서체의 간판이 홈페이지에서 보던 것과 똑같아 금방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교장’의 이름을 대니 안쪽에서 누가 나왔다.첫 인상이 영화 ‘노팅힐’의 배우 줄리아 로버츠를 연상시키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의 미녀였다. 직위는 제일 높은 교장인데 차림새나 말씨, 행동거지가 말단 직원처럼 상냥했다. 나는 처음 입학 상담을 하러 간 학부모처럼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한국 독자들은 이 학교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설명을 부탁한다.쉽게 말해 어른들을 위한 학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본적인 목적은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사람들의 문화적 소양을 키워주는 것이다.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자문하고 답하는 데 도움을 준다.이곳에서 다양한 삶과 일의 문제에 대해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탐구하면서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을 기를 수 있다. 각자 삶에서나 직업에서나 성공을 돕는 것이 목표다. 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문학과 철학, 심리학, 역사, 시각 예술 같은 것에서 끌어와서 소개한다.인생 학교 소개 동영상-한국에서는 ‘인생 학교’ 시리즈 책이 번역 소개되면서 얼마간 알려졌다.지금까지 인생 학교 How 시리즈가 12권까지 출간됐다. 우리 수업 내용과 아주 유사하다. 일종의 보조교재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Life Lesson’ 6권을 냈고 또 다른 6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일반 독자들 반응도 좋다. 그런 책 같은 것을 기획하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다.책의 주제를 잡고 포맷을 구상하고 저자를 섭외한다. 어떤 어조로 갈 것인지 표지는 어떻게 꾸밀 건지 논의해서 정한다. 출판사 섭외도 내 일이다. ‘인생학교 How’ 12권과 ‘Life Lesson’ 6권은 맥밀란 출판사와 같이 냈다.-설립 과정을 듣고 싶다.처음 문을 연 것은 2008년이다. 작가인 알랭 드 보통과 작가이자 큐레이터인 소피 하워스가 주도해서, 예술, 교육, 문화 분야의 몇몇 지인들과 함께 시작했다.​▲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제공-알랭 드 보통은 스위스 태생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곳에 학교를 세웠나?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서 자라고 살았다. (그리고 그는 캠브리지대학을 졸업했다.) 보통의 기본적인 구상은 아카데미의 세계, 상아탑의 지혜를 도심의 거리로 불러내자는 것이었다. 인문학, 예술의 지혜들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좋은 삶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다.-당신은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학교가 문을 열고 난 지 9개월때 쯤 합류했다. 온라인으로 지원해서 함께 일하게 됐다. 당시 나는 호주 시드니 국제 단편영화제 일을 맡아서 하던 중이었다. 인생 학교 브랜드로 벌이는 다양한 사업들에 끌려 이리로 옮겼다. 전임 디렉터였던 하워스가 그만둔 후 내가 후임으로 6년째 일하고 있다.-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다가?좀 많은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영국이 6번째 나라다. 원래는 미국인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나서 자랐다. 대학을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로 갔다. 거기서 영어와 문화학을 공부했다.철학, 문예 비평, 영화 같은 것을 함께 공부하는 학제적인 학위 과정이었다. 학술적인 것과 문화적인 응용을 결합한 것이었다. 지금 이 학교의 일과 아주 잘 맞는다.여러 플랫폼과 미디어를 오가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책도 내고 비즈니스 컨설팅, 개인 치료도 하고 하는 일이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아주 흥미롭고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함께 일하게 됐다.-학교가 펼치는 활동이나 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나?정규 수업이 있고, 집중 과정(intensive course), 그 외에 특별 행사, 여행 프로그램도 있다. 책 출판도 하고 동영상 제작도 한다. 수업 내용을 유튜브에도 올린다. 팬시 상품과 필기구, 소품 같은 기획 상품들도 판다. 기업 상대로 컨설팅과 교육 훈련 서비스도 한다. (건물 지하를 개조해 강의실 겸 세미나실로 쓰고 있었다.)​​-수업은 어떤 것을 가르치나?주로 인문학을 기반으로 인생의 큰 질문들(big questions)을 다룬다. 심리학과 철학 분야 사상 대가들로부터 어떤 최선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지 살핀다. 그들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끌어온다.-수업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나?핵심 커리큘럼은 크게 일과 사랑, 자아, 문화, 네 가지 범주로 짜여 있다. 일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법’ ‘직장에서 의사소통 잘 하는 법’ ‘돈 문제에 잘 대처하는 법’ ‘좋은 리더가 되는 법’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법’ 같은 것들이다.사랑의 경우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법’ ‘사랑이 지속되게 하는 법’ ‘연인과 소통하는 법’ ‘관계를 발전시키는 법’ ‘혼자 시간을 잘 보내는 법’ ‘우정을 더 잘 가꾸는 법’ ‘가족 관계를 잘 유지하는 법’ 같은 것들이 있다.자아의 경우 ‘잠재력을 실현하는 법’ ‘창의적이 되는 법’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 ‘자신 있는 삶을 사는 법’ ‘좌절하지 않는 법’ ‘결단력 기르는 법’ ‘대화를 잘 하는 법’ ‘차이를 만드는 법’ ‘죽음을 맞이하는 법’ ‘자연과 교감하는 법’ ‘자신의 부족함을 포용하는 법’ ‘서로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법’ 등이다.문화 분야로는 정치, 철학, 예술, 심리학 분야의 여러 주제를 다룬다. 수업 때마다 어느 정도 목표가 있는 질문을 던지고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의 관점을 나눈다.-수업 내용은 따로 개발하나?우리 내부팀에서도 개발하지만 외부 지원자와 네트워크가 돼있어 협업도 한다. (강사진이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사람만 50명이 넘었다.) 콘텐츠 개발부터 상품, 도서, 상품까지 그렇게 한다.인생 학교가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가장 인기있는 수업은?아무래도 일에 대한 관심이 많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는지, 일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는지를 주제로 한 수업이 가장 인기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냥 월급을 잘 받고 다니는 일 이상의 것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말이 나온 김에,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조언 한 가지를 얘기해줄 수 있나?어차피 완벽한 균형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지금의 자신에게 좀 더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이 처한 인생의 단계에서 자신이 가진 창조적 자산을 쏟아부을 우선순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솔직해지는 것이 중요하다.여러 가지에 분산하지 말고 정말 중요한 것에 시간을 더 할애할 필요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을 기하려는 압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해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다.또 한 가지. 때로는 일에서 벗어나 마음껏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언제나 생산적일 수는 없다. 요즘 사람들 중에는 ‘결정 피로감(decision-fatigue)’에 빠져 기진맥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긴장의 연속에서 벗어나 여가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내는지가 아주 중요하다.​​-사회 저명 인사들을 초청한 행사도 많이 여는 것 같다.다음 주(5월 28일)에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와서 강연한다. 그가 새 책 ‘The Road to Character’를 낸 후 북투어이면서 일종의 저자 강연회다.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다들 기대하고 있다.-오늘 시간표를 보니까 저녁에 ‘도시 탐험(City Adventure)’이라는 수업이 있던데 어떤 내용인가?우리가 생활하는 도시를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는 내용이다. 일종의 어른들을 위한 보이스카웃 프로그램이라고나 할까. 심야에 카약을 타고 템즈강을 오가는 코스도 있다. 런던은 날씨가 변덕이 심한데, 어른들도 놀이 같은 실외 수업을 좋아한다.이런 일상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상상력 치유가 일어나기도 한다. 어른이 되고 나면 불행하게도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방법을 모른다. 즐거워지는 법을 잊게 된다. 노는 법을 회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이 학교가 공익 사업은 아닐 텐데 운영은 어떻게 하나?분명히 영리 기관이다. 후견 기업이나 단체 개인이 따로 따로 없다. 우리가 수익 사업을 많이 하고, 유료 회원제로 수입을 충당한다. 우리가 영리 기관이라고 해서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목적이 있다.우리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 일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뜻이. 그런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일에 가치를 두는 지적인 직장인들을 주 고객층으로 한다.우리 브랜드의 상품을 도소매로 팔기도 하고 책도 기획하고 판매한다. B2B, B2C로 비즈니스 자문, 상담도 한다. 제휴사들과 공동 프로그램도 진행한다.지금까지는 아주 좋다. 우리 일에 분명한 정체성과 브랜드를 갖고 있고 포지셔닝도 뚜렷하다. 콘텐츠나 활동도 풍부하다. 다양한 온오프 플랫폼을 통해 공유한다. 다음 단계로 온라인 학습도 준비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를 활용해 확장하는 것을 모색 중이다.​​-수업료는 얼마나 되나?보통 한 강좌에 45파운드(약 7만7000원)를 받는다. 하루에 집약해서 하는 인텐시브 코스는 160~250파운드, 특별 행사는 30~40파운드를 받는다.수업은 보통 3시간으로 돼 있다. 15~30명 정도가 정원이다. 첫 30분은 다과와 음료를 들면서 서로 친교 시간을 갖는다. 다음 2시간 반은 수업이다. 강의나 대화, 토론으로 이뤄진다. 중간에 짧은 휴식 시간이 있다. 보통 평일은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 저녁에는 6시 반부터 9시 반 사이에 수업이 있다.하루 종일 하는 워크샵 같은 큰 프로그램도 있다. 유명한 지식인이나 학자, 유명 인사가 런던에 오면 자리를 만든다. 그 경우 입장권이 30파운드다. 2000명 정도가 올 때도 있다.-벤치마킹을 하고 있거나 참고하는 사업의 롤모델 같은 게 있나?우리가 하는 일의 각 부분에 대해 다른 곳에서 하는 것들을 참고한다. 딱히 하나의 본보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는 것에 정확히 일치하는 기관이나 단체는 없다. 우리처럼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사업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미국의 99U 같은 온라인 동영상 학습 서비스 제공업체나 런던의 지식 매거진 ‘모노클(Monocle)’, 강연사업인 TED 같은 것 보면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얻는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것처럼 삶의 구체적인 이슈를 놓고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미적인 감각을 갖고 문화 콘텐츠를 활용해서 다뤄나가는 사업은 없는 것 같다.-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셈이네.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고 본다. 현대인에게 학습이 새로운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런 학습 욕구와 뛰어난 디자인과 문화를 함께 결합한 사업이다.​​-염두에 둔 주 고객층은?핵심 목표 고객은 25-45세이다. 대학 졸업 이후 가정이나 일에서 어느 정도 자기 자리를 잡고 난 사람들이다. 대졸 이후 퇴직 이전 연령대가 되겠다. 한창 열심히 일하고 성장을 하는 시기의 사람들이다.-그 이상이나 이하 연령대는?물론 그보다 아래나 더 나이든 세대도 염두에 두고 있다. 15~19세 청소년 프로그램도 개발 중에 있다. 그동안 우리가 쌓은 생각이나 노하우를 10대들에게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연구 중이다. 조기에 감성지능을 길러주는 법 같은 것들이다.그 외에도 계속해서 고령화나 사회 인구 변화에 맞춰 개인적 직업적 자기 개발을 돕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본업을 마치고 난 시기의 사람들, 새로운 경력이나 사업을 찾는 사람들, 이전과는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들, 지역 공동체에 봉사하는 길을 찾는 사람들, 시간과 자원이 많으면서 하루 종일 골프만 치고 소일하는 것이 지겨운 사람들, 그보다 더 유용하게 평생 학습을 희망하는 사람들 등등 수요는 정말 다양하다. 우리가 서비스해야 하는 고객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학교 규모가 빠르게 커진 것 같다. 현재 직원 수는?지금은 상근 직원이 20명이다. 처음에 내가 왔을 때는 나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6년 만에 6배가 넘게 늘었다. 외부 강사 네트워크도 있고 다른 파트너들과도 협력한다. 강사진은 유급 시간제로 일한다.​​-홈페이지를 보니 해외에도 진출해 있는 것 같던데?런던 외에 현재 7개 학교가 문을 열었다. 라이선스 모델의 국제 파트너들이다. 프랑스 파리,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터키 이스탄불,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호주 멜버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이스라엘 텔아비브, 이렇게 나가 있다. 서울도 올 가을쯤, 아마 10월쯤 문을 열 계획이다. 한국의 파트너(방송인 출신 작가 손미나)와 협의 중이다.각지의 학교 규모도 다양하고 나름의 특징이 있다. 가장 큰 곳이 멜버른인데 15명이 교실과 카페, 비즈니스 교육훈련 프로그램까지 운영한다. 놀이 공원까지 만들었다. 베오그라드가 가장 작은데 1-2명이 운영한다. 카페와 이벤트 공간만 있다. 하지만 영향력은 아주 크다. 이스탄불의 경우에는 현지 대학과 제휴해서 교수들이 참여한다. 도시마다 모델이 조금씩 다르다.-미국에는 아직 안 나가 있나?좀 더 분명한 전략을 수립한 후에 들어가려고 모색 중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까지 포괄해야 하기 때문이다. 워낙 커서 제대로 하려면, 그에 맞는 좋은 파트너를 택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아시아에서는 서울이 처음 문을 열게 되는 건가?일본 같은 곳도 알랭 드 보통의 팬들이 많다. 그의 책도 많이 팔린다. 한국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아주 개방적인 것 같다. 문화에도 관심이 많고 실용적이다. 도쿄나 다른 아시아 도시들도 좋지만, 그런 점에서 서울이 특별히 아주 독특한 도시이고, 우리와 잘 맞을 것 같다.​▲ 인생학교에서 팔고 있는 미니 항아리 ‘불완전 단지(Imperfection Pot)’.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moon jar)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형상이 오히려 관용과 겸손의 미덕을 나타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홈페이지 보니까 ‘지식 구역(Knowledge Quarter)’ 사업도 있던데 이건 뭔가?그것은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여러 기관과 기업, 단체가 함께 벌이는 공공 사업이다. 작년 말에 시작했다. 이 지역 킹스크로스 1마일 거리 이내 모여 있는 45개 기관 단체들이 협력해서 21세기를 위한 세계 수준의 지식과 비즈니스 허브를 구축하려는 것이다.연구 기관과 창의적인 사람들, 학생, 지역 공동체가 함께 시설과 특기를 모아 혁신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대영박물관, 대영도서관, 런던대학, 런던예술대학, 구글, 가디언, 고급 의료기관이 있고, 현재 프란시스 크릭 연구소와 구글의 새 영국 본사 건물도 이곳에 짓고 있다. 지식 관련 스타트업 중소업체들까지 아주 많다. 함께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내려는 것이다.-누가 시작한 건가?대영 도서관이 주도 기관이고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다. 우리는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최근에 대영도서관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우리 국립도서관과도 협력을 논의했다고 돼 있더라.한국도 대단한 두뇌 파워를 갖고 있는 나라 아닌가. 지식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엄청난 것 같다. 우리가 기획 상품으로 파는 것 중에 미니 달항아리가 있다. 이게 한국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것 보고 착안한 것이다. 불완전함을 통한 깨달음을 구현한 것이다.-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한국에서도 우리 학교가 문을 열면 많이들 이용해 주시기 바란다. 활동을 함께 즐겨 달라. 한국만의 특별한 인생 학교로 만들어 주셨으면 한다.​​◆인생 학교에서 낸 How 시리즈 중 국내에 번역된 6권에서 발췌​​①일: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성취감을 주는 직업에는 의미와 몰입, 자유가 존재한다. 만일 어떤 일에서 성취감이 느껴진다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어떤 조합이 충족되는 경우이다.하워드 가드너,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이 실시한 유명한 연구에서는 ‘좋은 일’, 즉 ‘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일관되게 직업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흔히 사람들은 천직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운명’ 같은 것. 하지만 천직은 성취감을 주는 직업일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야 할 이유가 되는 명확한 목표나 목적이 들어 있는 직업이다.천직은 결코 흔하지 않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 마리 퀴리의 생애는 ‘천직은 찾는 것이 아니라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답을 선사한다. 그녀는 기적 같은 통찰의 순간을 거쳐 방사능 물질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다. 그 목표는 쉬지 않고 과학 연구를 하는 동안 서서히 그녀의 삶으로 들어왔다.대부분의 천직은 그렇게 나타난다. 간혹 폭발적인 깨달음의 순간으로 천직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확고해진다. 결국 천직이라고 할 만한 직업을 찾고 싶다면 가만히 앉아서 혜성처럼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의미와, 몰입, 자유라는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헌신하면 된다.​②돈: 돈에 관해 걱정을 덜 하는 법돈이 많다는 것은 행동의 제약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쉽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대개 그들의 불행을 자초한다. 욕망과 잘 산다는 것은 아주 불완전한 관계다. 욕망은 쾌락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잘 산다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선에 달려 있다. 욕망을 좇는 모든 기회는 가치 있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노력, 집중, 헌신, 인내, 자기희생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돈을 버는 것은 성공의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하다. 돈과의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볼프강 폰 괴테이다. 그는 돈에 무관심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경험담을 쓴 글들을 보면, 그가 보수를 많이 받는 문제에 대해 얼마나 단호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독립을 원했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법조인에서 정부 고문관으로 직업을 바꿨다.그는 살면서 심각한 어려움에 여러 번 직면했다. 그럼에도 돈과 돈 걱정은 그의 내면을 지배하지 못했다. 그는 놀라운 섬세함으로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글을 썼다. 돈에 관해서는 완전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인생에서 더 크고 더 중요한 것을 탐구하는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③시간: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는 법 디지털 기술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이들에게 거리낌 없는 방종의 욕구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이미 입증되고 있다시피 가장 혜택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놀라운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기술은 또한 개인의 삶과 그 주변 사회의 균형을 깨뜨릴 잠재성 또한 지니고 있다. 이런 이분법적 기술에 생산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디지털의 자유로운 무대와 삶 자체가 던지는 불완전한 문제들을 서로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후자를 대체할 수 없고, 후자에서의 성공 요령을 충분히 가르쳐주지도 못한다.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덕이 있고 사색이 있는 삶이라는 것이, 잘 살아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답이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점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현재와 미래의 기술 상태를 주목해 보건대 우리의 가장 훌륭한 성취와 잠재성이 여전히 정신적 영역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정신적 영역에서의 탁월함은 어떠한 것이든 모두 이성과 덕이라는 두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④섹스: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우리는 정말 섹스 문제만 아니었으면 꽤 즐겁게 살았을지 모른다. 원숭이나 사슴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일곱 살짜리 소년소녀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우리 앞에는 엄중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잘 못해서 주눅이 들거나 치욕감이 빠지는 일, 우리가 대학생일 때 아직 아기였을 법한 어리디어린 누군가의 손목과 발목에 음탕한 시선을 보내는 일, 한때 탱탱하고 탄력 있던 몸이 서서히 늘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 등등.성욕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흥미와 상식을 넓혀가기도 한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더 친해지기 위해 18세기 스웨덴 가구의 섬세한 장식에 매료되거나, 장거리 사이클을 배우고, 한국의 ‘달항아리’ 백자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성욕이란 게 없다면 우리가 할 일은 훨씬 적어질 것이다. 어느 누구도 굳이 보석점을 열거나, 레이스를 짜거나, 은접시에 음식을 담아 내오거나, 열대의 석호가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수상호텔을 지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성욕이 없다면 우리 경제의 상당 부분이 무의미해질 것이다.우리는 왜 성욕 때문에 생기는 이러한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일까? 어쩌면 성욕이 없으면 예술과 음악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욕이 없었다면 슈베르트의 가곡이나 나탈리 머천트의 앨범 ‘오필리아’, 잉마르 배리만 감독의 영화 ‘결혼의 풍경’이나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 같은 작품도 별로 주목을 못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고통에 훨씬 둔감해졌을 테고, 스스로를 비웃는 일에 서툴렀을 것이며, 그래서 인간에 대해 훨씬 잔인해졌을 것이다.​⑤정신: 온전한 정신으로 사는 법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지키고 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첫째, 자기 관찰 능력을 키워 아무리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그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그런 감정조차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조그만 일에 세상이 끝날 것처럼 호들갑 떨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둘째, 자신의 성장을 도와주는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스스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그로써 스스로에게 남들과 관계를 맺고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셋째, ‘유익한 스트레스’를 찾아낸 후 그것으로 정신과 몸의 건강을 지켜나간다면, 우리가 귀 기울이는 이야기와 우리가 믿고 살아가는 신념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넷째, 길 한가운데로 잘 가다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쪽이나 지나치게 엄격한 쪽으로 지나치게 되어 경로를 벗어났다면, 스스로를 바로잡도록 언제든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편집할 수 있어야 한다.​⑥세상: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작은 행동이 중요하다. 수피교는 당신의 모든 행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듯이 하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예수나 붓다의 옷을 개듯이 빨래를 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간디는 이런 작은 행동들을 ‘축복받은 단조로움(blessed monotomy)’이라고 불렀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는 흔들릴 때마다 ‘바가바드기타’에서 종종 확신을 찾으려고 했다.우리는 모든 과정을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작은 과정이라도 그에 합당하게 집중함으로써 그 자체로 인정하게 된다.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있었던 작은 1인 시위가, 버스에서 어느 자리에 누가 앉아야 한다는 규칙에 대한 작은 변화를 요구한 것으로부터 이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인종차별 종식을 요구하는 데까지 서서히 발전해갔듯이, 작은 승리는 우리가 다음 단계로 도전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준다.자신이 얼마나 성과를 이뤘는지 확인할 때마다 당신은 장기적인 포부를 더 높이 책정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단계들을 단지 더 큰 것의 일부로만 봐서는 안 된다. 작은 단계들이 가진 ‘그 나름의 장점들’을 충분히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세상을 바꾸는 것은 절대 끝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일’이라기보다는 ‘정신상태’에 더 가깝다. 있는 상황 그대로에 관심을 갖는 것, 변화에 대한 책임감을 기꺼이 나누는 것, 절망감으로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희망으로 가능하게 하려는 마음.이 일에게 관여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이 간과한 자질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예기치 않은 뜻밖의 상황에서 협력자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장기적인 계획에 집중하면서도 지금 당장 어떻게 작은 행동을 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그들은 동정심이 많고 겸손하다. 그들은 삶을 자신의 통제 밖에 놓인 부당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보지 않고 모험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절대로 이 일이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기뻐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들이 할 수 있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전병근 기자 journey@chosunbiz.com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05/2015060503198.html​
  • 2015-05-30
    ▲ 피터 티져리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건축학과 교수 / 1-5디자인랩 제공“한국 학생들은 개개인이 굉장히 스타일리시하다.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그것 때문에 미국에서 온 학생들은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다. 일부는 거기에 적응해서 함께 스타일을 가꿨고, 어떤 학생들은 나중엔 아예 신경 쓰지 않고 다니곤 했다.또, 한국 학생들의 경우 잠재력과 재능은 충분한데도 뭘 하면 좋을지 잘 찾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런저런 걸 시도해 보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주기 전엔 스스로 시도하는 걸 좀 어려워했다. 사실은 학생일 때 모험을 해보고 여러 가지 실수를 다 경험해 봐야 한다.”“한국인은 여러 면에서 놀라운 재능을 갖췄으면서도, 자신을 어떤 한계 안에 가두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남들과 너무 달라지는 건 피하려는 느낌, 오히려 비슷해지고 싶어 하는 느낌이랄까. 옷차림부터 행동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 인상을 준다.반면 중국은 한 명 한 명이 정말 다르다. 인구가 13억이라면 정말 13억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산다. 비슷한 면도 있지만 차이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지리적으로도 참 가깝고 비슷할 것 같은 두 나라 사람들이 이토록 다른 게 흥미롭다.”“나는 한국 학생들이 서로의 차이를 더 드러내고 조명했으면 한다. 그런 ‘차이’야말로 우리의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수업의 목표도 그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좀 더 다른 사람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네 관점과 내 관점은 어떤 면에서 왜 다른지 잘 드러냈으면 좋겠다.”“내가 한국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앞서 말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머릿속 아이디어 차원에 있는 것들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 저력이 한국인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한국과 미국, 두 나라 학생들의 차이, 그리고 한국과 중국 두 나라 국민의 차이를 서양의 눈 밝은 노교수는 이렇게 조목조목 가려냈다. 대가다운 통찰도 빠뜨리지 않았다.“내가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기발한 것(strange thing)’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평범한 것들 속에 가장 깊은 비밀이 담겨 있다(ordinary things contain the deepest mysteries)는 걸 알아야 한다. 일상 속의 잠재력을 끌어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 보라는 얘기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미 있는 것’ 속에서 새로운 것을 끌어내는 작업을 한다.”피터 티져리(Peter Tagiuri, 62) 교수. 저명한 건축가이면서 미국의 디자인 명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강의도 하는 그가 각 나라에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건네는 지혜의 말들이다.​▲ 1-5디자인랩 학생들과 토론하는 피터 티져리 교수 / 1-5디자인랩 제공지난 25일 오전 서울 청담동에 있는 1-5 디자인랩(Design Lab) 스튜디오로 그를 만나러 간 길이었다. 방 안에서는 커다란 슬라이드 화면을 앞에 두고 상호 토론이 치열했다. 다들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제주도 공항 사진 슬라이드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도착할 때엔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히는 갑갑한 마음을, 그리고 출발할 때엔 드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설렘을 가져다주는 장소라는 양면성을 잘 담은 것 같습니다. 좋은 발표였다고 생각합니다.”“좋은 면만 말했는데, 지적할 게 전혀 없다는 말인가요?”“음…. 서울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았다가 지금은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사진이 두 번 나왔는데, 둘 다 비슷한 느낌의 사진이었어요. 차이를 보였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한 남학생이 ‘사진으로 본 나의 삶’을 발표한 직후, 거기에 대한 감평이 쏟아지는 참이었다. 방 안의 참석자는 다양했다. 청소년부터 대학생까지, 연령대도 폭이 컸다. 질문과 답변이 화살처럼 오가는 토론식 수업이었다. 학생들과 나란히 앉은 백발의 티져리 교수도 쉴새 없이 개입해 토론을 거들었다.“지금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동의해요? 아니면 다른 점이 눈에 띄나요? 비평(critic)해 보세요.” 그는 간간이 점잖게, 하지만 분명한 어투로 질문을 던졌다.“일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지 말고 약간의 거리 두기를 연습하세요.”충고의 말을 건넬 때는 안경 너머로 옅은 하늘색의 눈동자에서 날 선 칼처럼 빛이 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큰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올해 처음으로 RISD가 이화여자대학과 함께 시작한 학점교류 시범 수업의 하나다. 세계적인 디자인 명문 RISD가 멀리 서울까지 강의실을 옮겨온 데는 티져리 교수의 역할이 컸다.미국과 영국, 중국을 오가는 건축가이기도 한 그는 20년째 매년 한국을 찾는 자타 공인 ‘친한파’다.그가 한국에 매료된 이유는 뭘까? 학생들까지 이끌고 와 이곳에서 수업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직접 만나서 사연을 들어봤다.​-언제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나?1996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올해로 꼭 20년째 한국을 찾고 있다. 20년 내내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은 꼭 왔다. 두 차례, 세 차례씩 온 적도 있었다. 정식 프로그램을 개설한 건 아니지만 한국에 올 때마다 서울대, 홍익대, 연세대, 포스텍 등 여러 학교 학생 앞에서 강연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재능있는 한국 학생을 만났고, 건축가들과 만나 작업하기도 했다.-올해 처음으로 RISD가 한국 대학과 학점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왜 한국에서 수업을 할 생각을 했나?보다시피 난 건축가다. 세계를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당연히 새로운 장소를 찾아 큰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웃음) 한국 학생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건 1990년대였다. 당시 내 학생 가운데 한국인이 몇 명 있었는데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안타깝게도 당시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별로 좋지 않았다. 대화를 제대로 나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그러다가 RISD 출신의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동생 서을호라는 학생을 만나게 됐다. 1996년 그의 초대로 한국에 왔고, 서도호 부부를 비롯한 서씨 일가와와 인연을 맺었다.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외국인 혼자서는 절대 찾아내기 어려웠을 한국의 숨은 매력을 느끼게 됐다.그 뒤에는 내 아내 글로리아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아내도 한국에 푹 빠져서 함께 정기적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우리 RISD 학생들도 좀 더 문화를 다양하게 접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오던 차였다. 서양 건축에만 주목하지 말고 한국이나 중국 같은 동양의 건축을 보면서 문화적인 다양성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학교 측을 설득한 끝에 올해부터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학점을 상호 인정 받을 수 있는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RISD는 해외 여러 학교와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서양 국가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 로마에서 하는 학점 교류 프로그램도 있고.하지만 나로서는 지금 로마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다고 느꼈다. 동양의 많은 문화가 세계를 주도하는 문화로 떠오르고 있는데, 우리가 하는 건 거기에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동양, 특히 한국에서 학점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에 기회가 닿은 이화여대와 시범 운영을 하게 됐다. -시범 운영해 본 결과는 만족스럽나? 계속 이어갈 계획인지?아무래도 첫 시도여서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RISD 학생 절반, 이화여대 학생 절반으로 한 반을 꾸렸는데, 서로 학제가 달라서 맞추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수업이었다. 내년 9월 학기에도 한국 대학과 학점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 때엔 다른 학교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두 나라 학생들을 비교해 보니 어떤가?우스개로 이야기하자면, 한국 학생들은 개개인이 굉장히 스타일리시하더라.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웃음) 그것 때문에 미국에서 온 RISD 학생들은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다. 일부는 거기에 적응해서 함께 스타일을 가꿨고, 어떤 학생들은 나중엔 아예 신경 쓰지 않고 다니곤 했다.(웃음)성향 차이를 말해보자면, 한국 학생들의 경우 잠재력과 재능은 충분히 있는데도 ‘뭘 하면 좋을지’ 잘 찾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느꼈다. ‘이런저런 걸 시도해 봐’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주기 전엔 스스로 시도하는 걸 좀 어려워했다. 사실은 학생일 때 모험을 해보고, 여러 가지 실수를 다 경험해봐야 한다. 그래서 그런 면을 살려주고자 했다. 학기 말에는 많은 학생이 좀 더 분명한 자기만의 의도를 표현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티져리 교수와 공부하는 RISD학생들과 이화여대 학생들 / 1-5디자인랩 제공RISD 특유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인 ‘비평’도 중요하게 다뤘다. 건축가가 어떤 프로젝트나 작품에 대해 말하면, 다른 학생이 이에 대한 비평을 나누는 수업이다. 이건 예술가로서 작업할 때 꼭 거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평이란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게 아니다. 작품에 집중해서, 어떻게 하면 작가의 관점과 독창성이 더 잘 드러날 수 있을지 서로 생각하고 훈련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학기는 스튜디오에만 온종일 묶여 있지 않았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두 차례만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스튜디오에서 수업했다. 다른 날은 주로 바깥에서 여러 다른 활동을 했다.사실 RISD 학생들은 온종일 스튜디오에서 사는 삶에 더 익숙한 학생들이다. 스튜디오 말고는 아무 데도 안 가는 친구들이니 이번 학기 수업이 아마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다.(웃음) 이번 학기엔 학생들과 함께 중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스튜디오 밖에서 더 풍성한 문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 같이 여행하는 동안 한국 학생들이 보여준 훌륭한 여행자다운 모습이 인상 깊었다. ​▲ 야외 프로젝트 중인 티져리 교수와 학생들/ 피터 티져리 제공-훌륭한 여행자다운 모습이라니?한국 학생들은 특히 서로 다른 문화에서 어떤 점이 변형돼 들어왔는지 알아가 데 관심이 아주 많았다. 서로 비교하면서 많은 걸 얻어냈다. 가령 한국에서도 에클레어(eclair)라는 빵을 팔지 않나? 원래는 프랑스 빵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파는 에클레어 빵을 먹어보면, 그 속을 채운 크림은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유한 맛이 난다. 그게 바로 복제가 아닌 ‘변형’이며, 한국 사회 안에 자리 잡은 하나의 문화로 볼 수 있다. 그런 것처럼 한국 학생들은 중국 문화의 어떤 것들이 한국 문화로 변형돼 들어왔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해석해 냈다. 함께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는데, 같은 상황에서 두 나라 사람이 어떤 식으로 다르게 생각하는지 비교해보곤 했다.-한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어떤 차이를 느끼나?한국인은 여러 면에서 놀라운 재능을 갖췄으면서도, 자신을 어떤 한계 안에 가두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남들과 너무 달라지는 건 피하려는 느낌, 오히려 비슷해지고 싶어 하는 느낌이랄까. 옷차림부터 행동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 인상을 준다.반면 중국은 한 명 한 명이 정말 다르다. 인구가 13억이라면 정말 13억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산다. 비슷한 면모도 있지만, 서로의 차이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지리적으로도 참 가깝고 비슷할 것 같은 두 나라 사람들이 이토록 다른 게 흥미롭다. 내가 특별히 한국에서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 말한 그런 (비슷해지려는) 특성에도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이 이룬 빠른 경제성장을 대단히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2600만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끊임없이 혁신이 일어나고 개발되는 것, 깔끔하고 편리한 지하철 시설만 봐도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이 늘 놀랍다. 머릿속 아이디어 차원에 있는 것들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 저력이 한국인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이 RISD 학생들에게도 좋은 무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일을 이뤄낼 수 있는지 시험할 수 있는 좋은 시험대가 될 거다.-한국 학생들에게 뭘 더 주문하고 싶은가?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재능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그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아까 수업 때 한 친구가 자신의 삶에 대해 발표하면서 ‘평범하다(ordinary)’는 말을 반복해서 강조하더라.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그도 전혀 평범하지 않다. 자신만의 특별함이 있다. 나는 한국 학생들이 서로의 차이를 더 드러내고 조명했으면 한다. 그런 ‘차이’야말로 우리의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조명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내가 하는 수업도 그런 목적을 갖고 있다. ‘차이점’이야말로 찬양할 만한, 그리고 찬양받을 만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어쩐지 그 차이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 소극적이다. 한국 학생들이 좀 더 다른 사람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네 관점과 내 관점은 어떤 면에서 왜 다른지 잘 드러냈으면 좋겠다. ​​▲ 티져리 교수는 지난 20일 과천시민회관에서 열린 위기청소년을 위한 토크콘서트 ‘내일의 아이들’ 연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 1-5디자인랩 제공-이번 학기 중에 소년원 출신 청소년의 갱생 프로그램에도 학생들을 참여시켰다. 직접 토크 콘서트 연사로도 나선 걸로 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RISD 졸업생이 구성원으로 참여해 적극적으로 재능기부(pro bono) 활동을 하고 있는 1-5디자인랩의 제안에 크게 감명 받아서 참여하게 됐다. 사실 해외 명문 대학은 다양한 전공학과에서 각자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이런 식의 재능기부 활동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도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강조하곤 한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이런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1-5디자인랩의 적극적인 활동이 인상 깊었다. 1-5디자인랩은 소년원 출신 위기청소년의 새출발을 위한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몽골 청소년을 위한 무상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재능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점에 감명받아 나도 1-5디자인랩 자문 위원으로 합류해 이런 재능기부 활동이 더 확대되도록 힘을 보태기로 했다.특별히 이번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년원생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는 점이다.미국에도 한국보다 훨씬 큰 규모의 소년원이 있고 소년원생도 많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미국 소년원에는 사회 복귀 의지가 없는 원생이 훨씬 많다. 자포자기하고 소년원을 반복해서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반면에 한국 소년원의 원생들은 죗값을 치른 뒤 사회에 돌아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대단히 강했다. 그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건축가로서 당신이 추구하는 건축은 어떤 것인가?나는 늘 이렇게 강조한다. “모두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거나 세상에 없던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건축가의 일 중에는 모든 것을 새로 창조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있는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 일이다. 일상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숨은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자신만의 독창성이다. 그런 독창성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다. 무심하게 볼 땐 보이지 않던, 숨어 있던 요소를 끌어내고, 그런 요소를 어떤 식으로 연결하느냐가 독창성을 드러낸다.내가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기발한 것(strange thing)’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평범한 것들 속에 가장 깊은 비밀이 담겨 있다(ordinary things contain the deepest mysteries)는 걸 알아야 한다. 일상 속의 잠재력을 끌어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 보라는 얘기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미 있는 것’ 속에서 새로운 것을 끌어내는 작업을 한다.​​-한국에서는 어디에 머물고 있나? 그 집은 어떤가?세종로 쪽의 한옥에 묵고 있다. 시설이 아주 잘 돼 있는 건 아니지만, 현대식 건물과는 다른 한옥다운 특성이 잘 살아 있어서 좋다. 나는 온돌 시설이 된 방바닥을 특히 좋아한다. 한국에 오면 침대 대신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눕곤 한다. 처음엔 물론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바닥에 누워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편하게 느낀다.(웃음)-한국 건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대단히 훌륭한 건축가가 많다. 이로재도 아주 훌륭하고, 압구정동이나 강남 쪽에도 소규모 오피스 빌딩 가운데 훌륭하고 재미있는 건물이 많다. 앞으로는 서울에도 청계천처럼 도심 속에 공존하는 자연의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게 될 것 같다. 이런 시설이 지속가능한,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테지만 말이다.특히 한강을 주목한다. 지금이야 양쪽으로 대로가 펼쳐져 있지만 물의 잠재력이란 건 엄청나다. 미래에는 건축이 그 물 위에 구현될 수도 있다. 물의 힘은 공기보다 훨씬 강력해서 더 많은 무게를 더 안전하게 버틸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도시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한국에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건축 스타일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당신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과 그 자체로 독특한 건물 중 어떤 쪽을 좋아하나?독특한 건물이라면 UFO처럼 생긴 걸 말하나? 내가 참여한 팀이 최근 중국 닝보(寧波) 인저우구의 문화활동센터 공모전에서 우승했다. 그런데 공모전에 나온 작품 대부분이 주변 경관과 동떨어진 UFO 같았다. (웃음) 우리 팀 프로젝트만 원래 그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주변과 어울리는 건물이었다.하지만 사실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물 겉모습의 조화가 아니다. 그 건물의 기능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가 중요하다. 겉모습이 한옥처럼 생겼다고 해서, 기왓장을 올렸다고 해서 한옥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나는 건축물을 자연의 연장선으로 본다. 물리적인 세계가 추상적인 것들, 아름다움이나 여러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앉은 이 방에도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지 않나? 이 바람도 건축 일부다. 왜냐하면, 건축가가 이곳에 창문을 만들었고, 그 창문을 열면 자연과 연결돼 바람을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겉모습 차원에서 자연과 어떻게 조화되느냐보다는 기능적인 면에서 얼마나 ‘자연스러운’ 건물을 만드느냐를 중시한다.-건축계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최근 중국에서는 3D프린팅 주택 회사가 등장했다. 이런 급격한 기술 발달과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굉장히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사실 컴퓨터 기술을 통한 건축은 계속해서 시도해 온 일이다. 한국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만 해도 3D 프린팅은 아니지만, 첨단 컴퓨터 기술을 통해 패널을 커팅해 만들어진 건물 아닌가?이런 기술들은 여러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준다. 원래는 벽돌업체에서 일일이 떼어 와야 했던 벽돌이나, 목재, 철근 같은 자재를 이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직접 뽑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건축가로서는 활용할 수 있는 재료의 폭이 넓어질 거다.하지만 그렇더라도 건축업계에서는 이런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기존 것들을 완전히 대체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새로운 자재가 나오면 기존 자재는 다른 관점에서 다시 쓰이고, 또 다른 관점에서 조명이 되면서 다른 방법으로 쓰이곤 한다.따라서 이런 기술 혁명은 대단히 재미있는 현상이고 그만큼 다양성을 확보해 줄 것으로 보지만, 그 자체가 모든 건축 기자재를 대체할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피터 티져리 교수는​▲ 행사장에서 사인하는 피터 티져리 교수 / 피터 티져리 제공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약해 온 건축가. 다트머스대학, 하버드 디자인 스쿨, 로마 아카데미아 디 벨리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 유럽 여러 건축학교의 객원교수를 지냈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 RISD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항저우 CAA 객원교수와 에든버러 대학 외부 심사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1년 런던 ‘Brick Award’ 등 여러 건축상을 받았고, 영국, 중국, 프랑스, 일본, 북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최근엔 도시 계획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윤예나 기자 yena@chosunbiz.com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29/2015052902194.html​
  • 2015-05-23
    ​​▲ 샘 혼 인트리그 에이전시 대표/성형주 기자“상대의 눈썹을 보세요. 내 말이 제대로 먹히는지 알아보고 싶다면.”“요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가장 힘든 싸움 상대는 이메일 체크, 게임, 페이스북 확인, 이런 것들이죠. 그렇게 자기 일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눈썹을 추켜세우고, 몸을 내게 기울이게 했다면 그건 성공이에요.”이런 말을 하는 그녀의 눈썹도 한껏 올라가 있었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의 ‘달인’ 샘 혼(Horn)이다.지난 19일 오후 약속 장소인 서울 중구 신라호텔. 그녀는 어깨까지 찰랑대는 갈색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손에는 새 책을 들고 있었다. 이달 한국에서 나온 그의 신작이다. ‘사람들은 왜 그 한마디에 꽂히는가’(갈매나무). 원제는 ‘Got Your Attention?’이다.“어머, 이 책 들고 사진 찍어도 되나요? 한국판은 오늘 처음 봤어요!”넉넉한 웃음에 시시각각 변하는 풍부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냉철한 비즈니스 협상가’ 이미지일 거라는 기자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호들갑스럽게 몸을 흔들며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원하는 예시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땐 인상을 찌푸리며 허공을 바라봤다. 적절한 말이 떠오르면 3초도 되지 않아 이내 표정을 풀고 생글거렸다. 하지만 말소리는 분명하고 힘이 있었다. “이거 보세요. 여기 이렇게 금붕어가 그려져 있어요. 요즘 사람들의 기억력 지속 시간이 금붕어만 못하다는 걸 강조한 거죠. 우리의 숙제는 그런 사람들의 관심을 60초 안에 나에게 끌어오는 거예요. 우리는 ‘관심 끌기’ 비즈니스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그는 자신의 다른 책도 보여줬다. 베스트셀러 ‘Tongue Fu’(국내에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으로 번역 출간)였다. ‘혀(tongue)’와 중국 무술 ‘쿵후(kung fu)’를 결합해 만든 제목이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제압당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대화법을 말한다. 이 책 뒤에는 ‘설득의 언어, 엘리베이터 스피치’(원제 POP!)로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짧은 시간에 자기 생각을 빠르게 전달하는 기법을 설명한 책이다.이번에 내놓은 신작은 ‘어떻게 하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그는 최근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아리더십 콘퍼런스에 연사로 내한했다. 그를 따로 만나 ‘주목받는 비법, 관계의 마법'에 대해 물어봤다.​-책에서 ‘Intrigue(강한 흥미를 끌다)’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삼았다. 왜 하필 Intrigue인가?인간의 기억력이 금붕어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금붕어의 기억력 지속 시간이 9초인데 인간은 8초에 불과하다. 요즘 쓰이는 말 가운데 ‘infobesity’(정보를 뜻하는 information과 비만을 뜻하는 obesity의 합성어)란 단어가 있다. 사람들이 “더는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don’t wan’t more informations)는 뜻이다.이 시대 사람들은 인터넷만 되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수 초 만에 정확하고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정보가 모두 무료다. 우린 더 이상 ‘정보 비즈니스’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관심끌기(intrigue)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만약 우리가 어떤 것에 관심을 두거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사업을 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치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없고, 사업 허가를 받을 수도 없다. 아무리 멋진 생각도 실행에 옮길 수가 없다는 얘기다.내가 이 책을 쓴 것도 너무나 많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수포로 돌아가는 걸 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치 없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너무나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이 책을 썼다. -이번 책에서는 관심끌기와 함께 ‘관계 맺기’에 주목한 게 특히 눈에 띈다. 소설가 E. M. 포스터(Forster)는 “당신 삶의 목적이 뭐냐”고 묻자 딱 두 단어를 말했다고 한다. “오직 연결(only connect).” 그만큼 관계맺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에게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학교에선 수학, 과학, 역사를 가르치지만 사람들과 진심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한지 가르치지 않는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요즘 온라인 소통도 쌍방향이 아니라 게시글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면이 강하다.온라인 역시 상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이나 웹사이트에 어떤 의견이나 글을 올린다고 하자. 자신의 게시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면, 읽는 사람에게도 관련이 있고 흥미로운 걸 올려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련 없는 일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그런데도 요즘 많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웹사이트에 여러가지 글과 이야기를 올린다. 내용도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다! 처음 쓸 때 누가 그 글을 읽을지, 읽는 사람과 관련되는 건 어떤 부분인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미국의 저널리스트 엘레노어 클리프트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린 모두 사람들 사이에서 의미를 갖기 위한 경주를 하고 있다.(We all in a race to be relevant)”온라인에 게시글을 올리기 전부터 우리 머릿속에는 “누가 이 글을 읽을 것인가"라는 게 분명하게 그려져야 한다. 그런 고려와 배려가 없다면, 글을 써 놓고서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린다"고 해봤자 소용 없다.실제 말할 때든, 온라인에서 공감을 얻는 게시물을 올릴 때든 똑같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야기를 전달할 상대방이 ‘눈썹을 추켜세우도록' 만드는 거다. 아시아 리더십 콘퍼런스부터 한번 보자.국제 콘퍼런스 아닌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각자의 언어를 알든 모르든, 사람들이 얼마나 내 말에 귀 기울이는지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들의 눈썹을 보면 된다!​만약 인상을 찌푸리고 있거나, 눈썹 끝이 아래로 처져 있다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혼란에 빠진 사람은 절대로 긍정적인 대답, “Yes”를 말하지 않는다. 혹은 눈썹이 일자를 그리고 있거나,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 말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아니면 보톡스를 맞은 지 얼마 안됐거나. (웃음)반대로 눈썹을 추켜세우면 어떤가? 그 말은, 상대가 내 말에 관심을 갖고 궁금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에 어떤 말이 이어질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60초 안에 사람들이 ‘눈썹을 추켜세우도록' 만드는 거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요즘 가장 힘들게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는 이런 거다. 이메일 체크, 게임, 페이스북 확인…. 그렇게 자신의 일에만 관심 두는 사람들이 눈썹을 추켜세우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게 만들면 성공이다. 내가 다음에 할 말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다. 그러니 말하고 있는 게 제대로 먹히는지 알아보고 싶으면 눈썹을 보면 된다.(웃음)-단번에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면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세 번 던지라고 했는데.모든 언어는 문학적인 면이 있고, 기승전결이 있다. 학교 다닐 때 토론 해본 적 있나? 보통 패턴이 ‘여차여차해서 결국 이렇게 됐다(whereby, whereby, whereby and therfore)’는 수순을 취한다. 뻔한 대화법이다. 하지만 정말 내가 상대의 관심을 끌고 싶다면 “이거 아세요(did you know)?”라는 질문부터 던지는 게 낫다.예를 들어, 오늘 아침 콘퍼런스에서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연설을 했다. 그가 말한 내용 가운데 인상적인 게 “우리 회사 직원의 49%가 여성입니다"라는 얘기였다. 사람들이 흥미롭다고 할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약간만 바꿔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회사 직원의 49%가 여성이란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우리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모두 여성이란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우리 직원 가운데 50% 이상이 1980년대 이후에 출생했다는 걸 아십니까?”만약 “알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한 번만 하면, 청중의 상당수는 하던 일을 계속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두 번째로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을 들려주며 질문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들 것이다.뒤이어 세 번째에도 놀라운 질문을 던지면 그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끈다는 건 내 생각을 실현할 기회도 더 많아진다는 이야기가 된다.-그 동안 쓴 책을 보면 일관 되게 '질문의 힘'을 강조한다.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이 자동차 안에 거는 고리(hook)를 팔려고 했다. 처음엔 나도 재미 없을 걸로 생각했다. 사진을 보니 정말 그냥, 핸드백 거는 고리였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는 발표 자리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먼저 자기 제품을 발표하는 자리에 실제 크기의 자동차 좌석을 끌어다 놓았다. 그 자동차 좌석에 핸드백을 던져놓고, 운전하는 흉내를 내면서 이렇게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분,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급정거한 경험 있으세요? 그 때마다 여러분의 지갑이나 휴대전화, 화장품, 모든 소지품이 자동차 좌석 밑으로 굴러 떨어지죠? 이걸 줍느라 여기저기 부딪치고, 뒷차는 경적을 울리고…그렇게 고생한 일 없으세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면 어떨까요? 제가 개발한 이 고리는...." 제품에 대한 설명이 채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한 남성이 벌떡 일어났다. "두 개 삽니다! 하나는 아내 몫, 하나는 내 몫으로요." 이 발표는 어떤 점에서 잘 된 걸까? 그는 먼저 실물 크기의 자동차 좌석을 갖고 앞으로 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청중이 눈썹을 ‘추켜세우도록’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또 그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누구나 한 번은 겪어본 경험을 예로 들었다. 즉, 같은 경험으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연결된 것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청중에게 질문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경험 있으세요?” 그 질문을 들은 사람들은 “맞아요!” “아, 더는 그런 일 겪고 싶지 않아요!”하고 대답했다. 단 60초 만에 청중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자신의 주제에 청중이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이것이 바로 질문의 힘이다.​-책 뒷부분에선 ‘듣기에서 창의력이 나온다'고 했다.결국 ‘듣기’란 또 다른 질문의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열중해서 들으면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 말이 그들에게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듣기'가 굉장히 어렵다. 작가이자 연설가인 프란 레보비츠(Fran Lebowitz)가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하기의 반대를 듣기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말할 차례를 기다릴 뿐이다.” 정말 그렇지 않나?(웃음) 이런 태도는 진정한 듣기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듣기에서는 새로운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궁금한 것도 없는 것이다. 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경청하면 새로운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렇기에 듣기가 질문의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아들 앤드류는 20대 초반에 비영리 단체를 만든 적이 있다.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Dreams for Children’이라는 단체다. 그는 하워드대학교의 캠퍼스 센터를 무료로 빌려서 빈곤 가정을 초청해 ‘희망 프로그램'이란 행사를 하려 했다. 앤드류는 그 캠퍼스 책임자와 15분 동안 만나기로 했다. 첫 2분 동안, 앤드류는 열심히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센터 책임자가 자기 이야기를 거의 듣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렇게 공짜로 센터를 빌려달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앤드류는 말을 멈추고 전략을 바꿨다.앤드류는 그 사무실을 둘러봤다. 센터 벽에는 기업인이나 정치인, 교육자 등 이 캠퍼스 센터를 졸업하고 성공한 제자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앤드류는 거꾸로 센터 책임자에게 물었다. “왜 캠퍼스 센터 관리 일을 하고 계신가요?” 책임자는 입을 열었다. “나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이 센터의 지원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그래서 나처럼 이런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지원해주기 위해 다시 캠퍼스 센터로 돌아와서 일하는 겁니다.” 그 말을 끝까지 잘 들은 앤드류는 곧장 “그게 지금 제가 하려는 일이에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 책임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래요, 우리 센터에서 행사 진행하세요!”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웃음)여기에서 중요한 건, 앤드류가 혼자 말하기를 멈추고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했다는 점이다. 청자였던 책임자에게 앤드류가 질문을 던지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런 식의 경청과 질문이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를 낳는다.​​​-책에서 늘 ‘번쩍하고 생각나는 순간’ 기록하라고 했다. 언제부터 해온 습관인가?17년 전 마우이에서 열렸던 작가 콘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드와이트 존스와 함께 해변을 걸었다. 그런데 그가 몇 걸음 걷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곤 작은 공책을 꺼내 들고 뭔가를 황급히 적었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곧바로 다시 멈춰 서서 또 뭔가를 적었다.하도 자주 그런 행동을 반복해서 “아니 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 하고 물어봤다. 그는 “평소에 기발한 생각이 자주 떠오르는데, 막상 칼럼에 쓰려고 보면 잊어버릴 때가 잦아서 그때그때 적어두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나도 깨달았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소리로부터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we make our living from our minds)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만약 이런 마음의 소리에 그때그때 귀 기울이고 제대로 받아 적지 않는다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마우이 작가 콘퍼런스에는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참여했다. 서로 주장하는 바도 모두 달랐다. 그런데 딱 하나, 이견 없이 동의한 게 있다. 바로 “생각나는 순간 바로 적으라(Ink it, When you think it)”는 말이었다. 책에서 ‘번쩍 하는 순간 받아 적으라’고 한 건 우리가 좀 더 세상을 매혹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Intrigued eyes)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면, 평범했던 일상도 정말 아름답게 보인다. 철학자 프레데릭 프랑크의 말처럼, “다시 눈을 떠서 세상을 바라보면 무엇하나 당연하게 보이는 게 없다"는 거다.-책에서 ‘상대의 시간을 적게 뺏으라'고 조언했는데?리처드 브랜슨은 “시간은 새로운 돈(Time is the new money)”이라고 했다. 나는 “시간은 새로운 신뢰(Time is the new trust)”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사람의 집중력이 금붕어만도 못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누구도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오랜 시간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보통 이렇게 생각하며 앉아 있지 않을까?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네 말이나 듣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고. 빨리 끝내.’ 그러니 우리가 처음부터 상대방의 시간을 ‘뺏는다’는 걸 안다고 밝혀야 한다. “저도 당신이 바쁘다는 거 잘 압니다. 그런데 2분만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그런 말이 없으면 사람들은 초조해 한다. ‘이 사람이 도대체 날 얼마나 붙들고 있으려고 이러는 거지?’ 청자가 이런 불안을 느끼면, 당연히 내 이야기에도 집중할 수 없다. “시간이 얼마나 있으세요?” 하고 물은 뒤, 그보다 적은 시간만 내어 달라고 양해를 구하면 대화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내가 지금 짧은 예를 들어 볼 텐데, 혹시 들을 시간 있나? (웃음)내 고객 가운데 마이크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런던 올림픽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면접을 하기 위해 영국으로 가기 전 나를 찾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면접 시간은 얼마나 배정 받았나요?” “한 시간이요.” 난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어머, 당신이 성공하려면 한 시간이나 쓰면 안 될걸요! 한번 면접관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세요!” 그랬더니 다른 대답이 나왔다. “정말 한 시간이나 나한테 내어 줄 시간이 없겠는데요! 이제 올림픽 개최까지 212일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 한 말 그대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그날 내 조언에 따라, 마이크는 면접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게 한 시간을 주셨습니다만, 앞으로 올림픽 개최 때까지 212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얼마나 바쁘실지 알겠습니다. 제 구상을 10분 동안 소개할 테니, 그다음에 질문이 있거나 저와 대화하고 싶다면 제게 연락해 주십시오.” 마이크는 런던 올림픽에서 일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이런 말을 들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은 정말 시간이 촉박해서 함께 일하지 못하겠지만, 당신 일하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다른 기회가 될 때 꼭 함께 일하고 싶으니 계속 연락합시다.”상대의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며 낭비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런 신뢰를 제대로 심어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상대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예시를 강조했는데?‘공감’은 이런 말로 정의할 수 있다. “나 같으면 어떻게 느낄까(How would I feel)?” 나는 상대의 입장을 내 입장으로 바꿔 생각할수록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예시란? 구체적이고 좁은 범위를 말하는 예시다. 이건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이야기다. 유조선 한 척이 하와이 해안에서 1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고를 당했다. 지나가던 여객선이 구조 작전을 벌여 유조선 선원 열한 명을 모두 살렸다. 그런데 기자회견에서 선장이 한 말이 뜻밖이었다. “선원 모두가 구조되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지만, 배에 두고 온 개가 너무나 걱정된다”는 거였다. 그 말이 보도된 뒤 전 세계에서 2500만 달러의 성금이 모였다. 미국 해군은 태평양 함대의 작전 지역까지 변경해 가며 스무닷새 동안 유조선을 수색했다. 마침내 유조선을 발견한 수색기는 갑판을 오가는 갈색과 흰색이 얼룩덜룩한 생물체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바로 선장의 개였다! 결국 개는 구조됐고, 무사히 하와이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게 뭔가? 왜 전 세계 사람들이 한 마리의 개를 구조하겠다고 그렇게 열성적으로 성금을 보냈느냐 하는 것이다. 세계에는 다른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하필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은 ‘개 한 마리’를 위해 열광적인 호응을 보냈다. 이것은 내가 ‘공감 망원경(empathy telescope)’ 이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전 세계 수백만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특정한 상황에 부닥친 어떤 ‘한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사람들한테 보통 조언해주는 건, “당신 이야기를 끌고 갈 ‘그 한 마리의 개’는 어떤 건지 알고 있느냐"하는 거다. 우리가 정말 어떤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집중해주길 바란다면, 범위를 좁혀야 한다. 사람은 수백만 명의 입장을 한꺼번에 헤아릴 수 없다. 오늘 아침에 콘퍼런스에서는 인도의 모디 총리가 연설했다. 정말 훌륭한 분이니 당연히 나한테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다. (웃음) 그런데 만약 내게 조언을 구했더라면 훨씬 더 강력한 연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오해해선 안 된다. 나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오늘 그의 이야기는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한 연설이었다. 만약 그가 ‘한 마리의 개’를 설정했더라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맨손으로 시작해서 성공을 손에 쥔 특정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그 뒤에 인도인, 세계인 이야기로 확장해 나가면 더 강력하지 않았을까?​-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말씀해 주세요'라는 태도로 다가가라고 했다. 너무 계산적인 인상을 주지 않을까?물론 그게 자연스럽게 된다면 가장 이상적일 거다. 그렇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우리가 참석한 이 콘퍼런스만 해도 그렇다. 전 세계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나도 여기에 온 것이 참 기쁘고 영광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로비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봤나? 별로 대화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할 일에 집중하고 있다. 서로 적대적이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 큰 성인도 새로운 사람 앞에선 늘 수줍어하며 두려워한다. 본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손해를 본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계산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반드시 ‘대화의 기술’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음악을 예로 들어보자.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학생도 처음엔 누구나 음계부터 연습한다. 제대로 된 곡을 연주해낼 수 있는 ‘기초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다. 대화의 기술, 관계의 기술도 그와 똑같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으려면 길러야 할 ‘근육’이 있다. 내가 제시한 대화의 기술들은 그런 근육을 기르기 위한 첫 단계다. 이런 것에 익숙해져야 좀 더 쉽게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아주 ‘자연스럽게’ 접근할 때의 예다. 이번 콘퍼런스 참석자 한 사람에게 가서 아마 이렇게들 물어볼 거다. “콘퍼런스 참석하셨나요?” 그럼 대답은? “네.” 그럼 대화 끝이다. (웃음) “오늘 재미있으셨나요?” “아니요.” 또 대화가 끝나버린다! (웃음) 대신 이런 말을 사용해보라는 거다. “오늘 콘퍼런스 어땠는지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기조 연설자는 뭐라고 말했나요? 저는 제대로 듣질 못했는데,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그런 게 대화의 ‘전략’이다. ​-모든 사람에게 서슴없이 다가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아닌가?두 가지 대답을 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이런 거다. 어떻게 됐든 내가 그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됐으니 그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거다. 래리 킹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워낙 뛰어난 인터뷰어로 소문난 사람이니 내가 물어봤다. “게스트로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공부하십니까?” 킹은 “공부 전혀 안 하는데요!”라고 답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어린아이처럼 질문하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미리 계획한 대로 질문을 던지기보다 상대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대화를 이끈다. 내가 상대를 모른다는 건, 그만큼 상대에게 궁금한 게 많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에게 자신을 드러내 이야기할 기회를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늘 그에게 조언을 구한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에 대해서 뭔가 추천해 달라, 알려 달라”고 하면 상대방은 나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그렇다면 우리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흥미를 느낄 만한 주제, 혹은 토론할 만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져 대답을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에서 조용필 같은 가수를 만났다고 치자. “당신 팬이에요!”하고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면 아무 대화도 이뤄지지 않는다. “최근 발표한 신곡에서 이런 부분이 너무나 멋졌어요! 어떤 기법인가요?”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면 대화가 이뤄진다. 나는 군인과 결혼했다. 그래서 군대에서 주최하는 무도회 등에 참석할 기회가 많았는데, 사실 가장 외로운 사람은 장군들이다. 다들 얼어붙어서 누구도 감히 장군들에게는 말을 걸지 못한다! (웃음) 나는 늘 남편과 침묵 속에서 춤춰야 했다. 분위기가 너무나 불편해진다. 나는 그런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먼저 다가가서 질문하고, 대답을 이끌어내곤 한다.-원래부터 외향적인 성격이거나 사람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면 일을 하면서 성격이 바뀐 건가?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것도 있고 일하면서 더욱 사람을 궁금해 하게 된 것도 있다. 어릴 때 내가 자란 곳은 엄청난 시골 마을이었다. 심지어 마을에 있는 사람 수보다 말(馬)의 수가 더 많았다. 전에 한 기자가 나한테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을 얻었느냐?"고 물었는데 내가 “말 타면서 얻었는데요"할 정도였다. (웃음) 어릴 때부터 말 타기가 일상이었다. 말이 껑충 뛰어서 나를 떨어뜨리거나 하면, 앞으론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지 고민해서 알아내곤 했다. 그런 식으로 벌어지는 여러 돌발상황에 대처하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전략적인 사고를 갖게 됐다. 그 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공부할 때 새로운 걸 생각하게 됐다. 어릴 때,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자랄 땐 부유한 사람은 당연히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줄 알았다. 그렇지만 막상 가까이에서 목격한 그들의 삶은 전혀 달랐다. 가장 행복할 것 같던 사람들이 불행했다.당시 근처에 최고의 모델이던 모드 애덤스가 살았다. 그런데 정작 그는 “나는 너무 비쩍 말랐다”면서 자기 몸매를 비하했다. 당시 최고의 테니스 선수였던 지미 코너스는 크리스 에버트를 짝사랑했지만, 감히 고백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허락 받을 자신이 없었던 거다.그 때부터 ‘자신감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우리가 낯선 사람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친구가 되려면 어떤 종류의 자신감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됐다.-그 뒤로 어떤 걸 깨달았나?첫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확신을 지녀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믿음과 신뢰로 상대를 대해야 한다는 거다.17년 전 마우이 콘퍼런스의 일화를 이야기해주겠다. 예비 작가들과 출판사 관계자까지 다양한 출판업계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절호의 기회였지만, 정작 작가들은 의사 결정자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전혀 몰랐다.나는 작가나 출판업계 사람들에게 편하게 이야기하고 다가갔다. 뭐가 달랐을까? 간단하다. 나는 그들에게 바라는 게 없었다. 작가에게 사인을 바란 것도 아니고,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사업적인 이익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거다. 사심없이 다가가면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책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의 주도권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화에 참여하기가 조심스럽다.매우 섬세하고, 외교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런 건 어떨까? 먼저 상사나 윗사람에게 “지금 말씀은 대단히 훌륭하고, 통찰력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동의한 후에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이때 ‘그렇지만(but)’이란 표현을 써선 안 된다. 갈등을 부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등 긍정적인 표현을 써서 의견을 덧붙여라. 그 때에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는 명령형 문장은 좋지 않다.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하고 질문을 던져라. 답을 정해주지 말고, ‘옵션’으로 제시해라. 당신은 제안만 하고, 결정은 상대의 몫으로 넘기라는 얘기다.한 가지 팁이 더 있다. 윗사람이 굉장히 고압적이거나 자신의 생각이 강한 사람이라면, 경쟁심을 자극하는 거다. 경쟁업체나 경쟁자의 예를 들면서 “이 회사는 벌써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벌써 이런 일을 했다고 합니다”라고 귀띔하라.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세요?”하고 묻는 거다. 상사의 행동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상대에게서 관심을 끌어낸 뒤에, 형성된 ‘관계’를 오래 가져가기 위해선 어떤 기술이 더 필요할까?내가 말하는 기술은 두 가지를 모두 잡기 위한 기술이다. 두 가지 대답을 할 수 있겠다. 먼저 우리는 ‘호기심을 끄는(Intrigued)’ 상태를 절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힘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매번 같은 사람만 만나면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이라 해도 긴장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상대방이 내게 궁금증을 가질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오늘 연설에서 마윈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세대는 신문과 텔레비전 세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주는 정보에 의해 영향받는 데에 익숙해진 세대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인터넷 세대다. 그들이 뉴스에 영향을 주며 원하는 음악을 만들고 원하는 환경을 만든다. 주입식으로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상대편에서 내게 관심을 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겐 늘 자신의 힘으로 조종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그의 말처럼 이제 상대에게 ‘주입한’ 관심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시대다. 관계를 오래 가져가려면 상대가 주도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서 강연하는 샘 혼/이태경 기자-인터넷 세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온라인상에서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기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좋겠다.페이스북으로 내 인터뷰 기사를 홍보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나? 보통 사람들은 기사 링크를 걸어 놓고 “자 세상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쓴다. 정말 재미없지 않나? 누가 답글을 달고 싶겠나?만약 내 인터뷰 기사를 페이스북에 올릴 계획이라면 이렇게 해보라. “내 상상과 너무나 달랐던 샘 혼! 저를 깜짝 놀라게 만든 그의 반전 매력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마무리로는 “60초 만에 사람들의 주의를 온전히 내게 끌어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거다. 독자들이 “찬성” “반대” “네" “아니오” 이런 단답형 대답 말고, 진짜 자신의 의견을 말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넓게 보면 답변하는 사람이 좀 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 “나는 당신의 의견을 받으면 그에 따라 행동할 겁니다" “당신의 의견은 내게 대단히 큰 가치를 가질 겁니다”라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사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별로 듣지 않는다. 서로 그렇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끌어낼 수가 없다. 누구의 삶에도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허를 찔러라. “당신의 의견을 듣고 그에 따라 행동하겠다, 조언이 필요하다”고 명확하게 밝히면 된다. 그러면 ‘좋아요’ 이상의 댓글을 달 사람이 늘어난다. 자신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성실하게 답변할 거다.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도 질문자가 정말 자기 의견을 반영했는지 궁금해서 다시 찾는다. 이런 방법을 활용하면 온라인에서 자신이 활동하는 공동체를 키워나갈 수 있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더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 샘 혼​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업체인 인트리그 에이전시(Intrigue Agency) 대표. 미국에서 비즈니스 컨설팅과 강연, 워크숍, 저술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텔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 보잉, 영국항공 등 기업고객 대상 의사소통 전략가로도 일하고 있다.대표 저서로는 1997년 출간된 ‘텅 후’가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2013년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와 올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 밖에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TAKE THE BULLY BY THE HORNS)’ ‘집중력, 마법을 부리다(CONZENTRATE)’ ‘설득의 언어, 엘리베이터 스피치(POP!: STAND OUT IN ANY CROWD)’ 등의 저서를 냈다.◆ 샘 혼이 말하는 ‘꽂히는 한 구절’의 마법​​“순간적으로 청중의 주목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지속시켜야 한다.”꽂히는 한 구절이란 무엇일까? 의미가 공명되면서 따라 하기 쉬운 구절이다. 공명이란 ‘명백한 뜻을 넘어서는 효과와 인상을 남긴다'는 의미다. 한 귀로 들어가 다른 귀로 나가버리지 않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공통 기반을 확립해주는 구절이다. 혼은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감정을 움직이고 싶다면, 기억에 남는 꽂히는 한 구절을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책 속에서 오랫동안 ‘공명하는’ 문장 만들기 방법을 이렇게 소개했다.당신의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이 딱 하나 달라진다면, 그게 무엇이었으면 하는가? 이를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단어로 직소 퍼즐을 맞춘다고 생각하라. 큰 소리로 읽으며 바꿔넣다 보면 제대로 된 리듬이 만들어질 것이다.기억하기 쉬운 이름, 각운이 딱 떨어지는 말을 만드는 게 효과적이다.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벨트 착용 캠페인을 벌이던 미국 정부는 ‘채울까, 벌금 낼까(Click it or ticket)’란 구호로 큰 성과를 올렸다.중요한 내용을 말할 때에는 말과 말 사이에 적절히 간격을 두라. 모두가 주목할 때까지 잠시 멈췄다가 꽂히는 구절을 말하라. 한 음절 한 음절 똑똑히 발음해야 한다. 다시 3초쯤 기다려 사람들이 그 구절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라.윤예나 yena@chosunbiz.com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22/2015052202590.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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