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6-17
    한강 '채식주의자' 번역한 스미스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게 옮겨… 배수아 소설 2권 영역본 곧 출간" 데버러 스미스는 “번역가의 즐거움은 인지도가 낮은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를 발굴해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에 집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상은 그저 상이고, 작가가 위대한 책을 써서 독자들이 그것을 읽고 음미한다면 작가에게 그보다 더 좋은 보상이 있겠는가."한국 문학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8·영국)가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역해 작가와 함께 올해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스미스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국제도서전을 맞아 열리는 토론회 '한국문학 세계화 어디까지 왔나'에서 주제 발표를 한다. 그녀는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준비한 글을 낭독했다. '채식주의자' 한글판과 영어판을 비교해 일부 오역과 윤문 논란이 있는 것에 대한 입장 표명이었다. 스미스는 "나의 '채식주의자' 번역은 완벽하지 않다"며 "번역이란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완벽성을 추구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나아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웃으며 "다행히 한국어 실력이 나아지고 있다"고 한 뒤 "번역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독서의 즐거움과 작품 이해에 저해가 되진 않았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그녀는 "번역을 하다 보면 원작의 어떤 부분에 충실하기 위해 다른 부분에 불충하는 게 불가피하다"면서 "필요한 경우에만 그런 불충을 허락했지만 원작의 정신에 늘 충실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의 정신에 대한 질문을 받곤 "애틋함과 공포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며 "문체가 절제되어 있지만 무심하거나 냉담하지도 않다는 것에 주의를 집중해 번역했다"고 밝혔다. 한국어 공부 비결에 대해선 "6년 전에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며 "한국어 이외에 내가 구사하는 외국어가 없기 때문에 외국어 습득 능력이 뛰어난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읽은 한국 문학과 사랑에 빠진 뒤 번역을 하고 싶다는 강한 동기와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익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앞으로 배수아 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들'을 영역해 올가을과 내년 초 출간할 예정이다. "배수아 소설은 독특하고 정교하다. 번역가가 도전해서 즐길 만한 작품"이라고 추천했다. 스미스가 설립한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는 한국문학번역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해마다 한국 문학을 한 권씩 내기로 했다. 소설가 황정은과 한유주의 작품을 낼 계획이다. 그녀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며 "번역가는 작가처럼 이야기와 플롯, 인물, 배경을 구상할 필요가 없고 일하는 시간만큼 글을 쓸 수 있지만, 작가는 시간을 들인 만큼 글이 나오지 않는다"며 번역의 즐거움을 예찬했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16/2016061600832.html 
  • 2016-06-15
     정년퇴임하는 독문학자 전영애 15일 서울대서 공개 고별 강의… 동양인 여성 첫 괴테 금메달 수상 "정진하면 인문학에도 길 있어"  "70년대 학부생 시절 친구들 여럿이 감옥에 있었어요. 저는 그들만 한 용기가 없어 책상 앞에라도 앉아 있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전영애(65)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한다. 1996년부터 20년간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11년에는 동양인 여성 최초로 괴테 금메달을 받았다.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가 1910년부터 괴테 연구에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였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작품으로 독일 문학에 첫발을 들였어요. 독일어에 명(命)을 걸게 된 건 파울 첼란의 시를 읽고부터였죠." 첼란은 유대인 혈통의 시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강제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자신과 민족의 고통을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제가 독일에서 첼란을 공부할 때 고국에서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어요. 그의 작품이 엄혹한 시절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전 교수는 1986년 국내 처음으로 첼란의 시에 관한 이론서를 펴냈다.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전영애 독어독문학과 교수는“처음 임용됐을 땐‘하고 싶은 연구 다 하는 순간 바로 물러나야겠다' 생각했는데 정년을 맞고 보니 오히려 그때보다 공부할 게 훨씬 더 많아져 있더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괴테 연구는 독일 통일 이후부터 시작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동독 분단 문학을 한창 연구하던 때 서독과 동독이 통일을 이뤘어요. 이전까지 금서(禁書)였던 동독 책이 한국에 많이 들어왔죠. 그만큼 연구자도 늘다 보니 굳이 제가 아니어도 이 분야를 밝혀 줄 분들이 많겠더라고요. 그래서 독일어 시 자체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더니 결국 원류(源流)인 괴테에 이르게 되더군요." 2009년 최민숙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와 괴테의 자서전 '시와 사랑'을 공역(共譯)했고, 같은 해 국내 최초로 '괴테 시 전집'을 번역해 펴냈다. 전 교수는 퇴임 이후에도 괴테 연구에 매진한다. 올해는 영어판을 중역(重譯)하거나 기존 한글 번역본을 참고하지 않고 '파우스트' 원전을 새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파우스트는 음악이 있는 운문(韻文)이에요. 기존 번역들은 대개 리듬을 죽이고 산문(散文)으로 번역했죠. 독일 시를 전공한 만큼 원어의 시적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어요." 책 14권 분량에 달하는 괴테 전집도 번역한다. "중국에서는 괴테 전집을 국가 주도로 번역하고 있어요. 그만큼 방대하고 어려운 작업이라 개인이 괴테 전집을 모두 번역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죠. 하지만 저는 그간 책 5권 분량에 달하는 가장 어려운 부분을 다 우리말로 옮겨 뒀으니 단독 번역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것 같아요." 전 교수는 15일 서울대에서 '나의 책들, 나의 길들'을 주제로 공개 고별 강연을 한다. 부임 이래 20년간 해온 강좌 '독일 명작의 이해'를 총정리하는 자리다.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등 독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이 수업은 서울대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꼽혀 왔다. "함께한 학생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마지막 격려의 말을 남기고 싶어요. 한때는 저 역시 제가 택한 전공에 미래가 없다 생각해 전과나 학사 편입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묵묵히 최선을 다해 걷다 보니 어느새 제 발 아래 길이 생겨나 있더군요. 놓여 있어야만 길이 아닙니다. 발을 딛는 곳은 어디든 길이 될 수 있다는 것, 제가 평생 독문학자로 살며 얻은 깨달음입니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10/2016061000785.html​ 
  • 2016-05-13
    [북디자이너 정병규씨의 '부초']  단색톤에 글자만 강조한 '부초'… 관행 무너뜨리는 파격 즐겨독립출판사 '정병규 에디션' 설립 칠십 평생을 압축하면 '딴짓하기', 다른 은퇴자와 달리 에너지 싱싱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삼국지', 황석영의 '장길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저자도 출판사도 다르지만 이들 스테디셀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표지가 모두 정병규(70)씨의 손길을 거쳤다. 북 디자이너 정병규씨가 ‘치양지(致良知)―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를 들고 서 있다. 양명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치양지를 책 표지에 멋진 타이포그래피로 구현했다. /남강호 기자 '한국 최초의 북 디자이너'로 불리는 그가 최근 출판사 '정병규 에디션'을 차리고 첫 책을 펴냈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의 '치양지(致良知)-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참고문헌과 각주, 찾아보기를 포함해 726쪽에 이르는 묵직한 학술서다. 2006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되고 2011년 대만에 소개된 뒤 국내에 '역수입'됐다. 3000여 종에 이르는 책을 손수 디자인한 정씨가 정작 자기 이름을 내건 출판사로는 '지각(遲刻) 데뷔작'을 낸 셈이다. 그는 "'단군 이래 최악의 출판 불황'이라는데 본격적인 학술서를 초판 700부 찍었으니 세태에 역주행하는 셈"이라면서도 "말로만 엄살 떨 게 아니라 책 한 권이라도 정성껏 만드는 일이야말로 불황을 이기는 길이라 믿는다"고 했다. 고희(古稀)의 '출판쟁이'가 제시한 불황 타개책은 '정공법'이었다. 그는 1975년 '소설문예'에 입사하며 출판계에 들어섰다.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이 당시 주간이었다. 신구문화사·민음사·홍성사 등을 거쳐 1979년 디자인 회사인 '여러가지문제연구소'를 차리고 독립했다. 정씨가 대표였고, 소설가이자 번역가 이윤기(1947~2010)씨가 'CEO 역할'을 맡았다. 그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 언론인·출판인들이 밤새워 술을 마시던 사랑방 역할을 했지만, 1년 만에 당시 300만원을 날리고 결국 문을 닫았다" 고 했다. 책 디자인은 경영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1977년 한수산의 '부초(浮草)'는 정씨의 첫 히트작이 됐다. 단색 톤에 제목만 강조한 정병규씨의 대표작 ‘부초’ 디자인. 유랑 서커스단의 늙은 곡예사 윤재와 한물간 단장 준표, 소녀 곡예사 지혜, 난쟁이 광대 칠용 등의 굴곡진 삶이 담긴 소설이다. 단색 톤에 '부초'라는 두 글자만 강조한 이 책의 표지는 글과 그림을 병치하는 데 머물렀던 이전의 제작 관행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10권을 이어 붙이면 유유히 산맥이 이어지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냈던 '장길산'부터 액자나 창문 같은 사각형을 강조했던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총서'까지 그의 책 표지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정씨는 "책 표지는 '술 한잔 걸치고 기분 좋게 해주는 일'이라는 인식을 깨고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접착식 테이프를 활용해 굵고 거친 느낌을 강조한 활자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는 "모든 책에는 고유한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도 북 디자이너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3년부터 왼쪽 눈의 시력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인터뷰 도중에도 간간이 두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정씨는 "오른쪽과 왼쪽 눈의 시력 차이가 워낙 커서 원근감 조절에 애를 먹는다"면서 "책 보는 일이 힘들어진 게 가장 슬프다"고 했다. 칠십 평생을 딱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하자 '딴짓하기'라고 답했다. "학교 다닐 적에는 교지와 교내 신문 편집이 학과 공부보다 좋았고, 출판계에 들어온 뒤에도 디자인이 좋았다"고 했다. 정씨는 "민간 기업이나 공직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은퇴한 친구들과 달리 삶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사는 걸 보면 '딴짓' 덕을 톡톡히 본 셈"이라고 말했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10/2016051001047.html​ 
  • 2016-05-03
     신동흔 기자'미움받을 용기2' 낸 공동 저자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위계적 조직문화에 지친 사람들에 인기 끌며 前作 100만부 돌파2편에선 사랑·대인 관계 강조 "인생主語, 나에서 우리로 바꿔야"지난해 '미움받을 용기'는 좋든 싫든 하나의 '현상'이 됐다. 이름도 낯선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의 '설사 미움을 받더라도 자기의 행복이 우선'이란 평범한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미친 파장은 강력했다. 올 초까지 교보문고에서 51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출간 1년여 만인 지난 1월 말 100만부를 돌파했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남의 인정(認定)을 갈구하는 자기 계발의 시대에 '인정 욕구를 포기하라'는 일본인 공동 저자 기시미 이치로(岸見一郞·60)와 고가 후미타케(古賀史健·43)의 주장에 대중의 마음이 흔들렸다는 해석이 많다.전작(前作)에서 자기만족에 중점을 둔 것과 달리 최근 출간된 신작 '미움받을 용기2'(인플루엔셜)는 반대로 '타인과 관계 맺기'를 강조하고 있다. 1편에서 철학자의 가르침을 받았던 청년은 3년 뒤 교사가 되어 돌아와 철학자와 논쟁을 벌인다. 국내 출간을 기념해 지난달 28일 한국을 찾은 저자들은 이번 책 주제를 '사랑'과 '홀로서기'(自立)라고 말했다. 1권을 쓸 때와는 마음이 달라진 걸까. 공격적으로 물었다. ―개인의 자립이 핵심이라면서 2편에서는 사랑과 대인 관계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모순 아닌가."모순되는 주장이 아니다. 타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자기 중심성에서 탈피해 자립할 수 있다. 행복은 대인 관계에 들어가야 느낄 수 있다. 남을 도울 때 느끼는 '공헌감'을 통해 우리는 자기의 가치를 확인하고 용기를 갖게 된다."―그러면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인가."타인에게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아예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성숙한 관계는 인생의 주어를 '나'에서 '우리'로 바꿔가는 것이다."―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해지면 결국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아니다. 마라톤을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완주'나 '빨리 달리기'가 목적이었다가 어느 순간 '이 사람을 이기자'로 바뀌지 않나. 그것은 성숙한 관계가 아니다."―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 예를 들어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나."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다. 성공이 인생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책에서 철학자는 교사가 되어 돌아온 청년에게 '교실에서 상(賞)과 벌(罰)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데."칭찬을 통해 행동을 이끌어내면 '인정 욕구'만 커지고, 자꾸 칭찬받으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자립했다고 할 수 없다. 자기 가치를 남들이 인정해줘야 하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요즘 소위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도 결국 인정 욕구 때문일까."사람들은 SNS에서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키워 간다. 하지만 실제 현실의 자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만들어진다. 그 차이 때문에 오히려 고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심지어 교사와 학생이 동등하다는 주장까지 한다."힘과 지위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미숙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상사나 교사들은 기존의 권위를 잃을까 봐 직원이나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과정에서 창조적 마인드가 사라지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다. 경험과 지식이 많아도 '사람으로선 대등하다'는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2편을 보고서 기존 주장의 동어 반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물론 전혀 동떨어진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1편이 지도(地圖)였다면, 2편은 '나침반'이다. 1편에서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이고, 남의 인정 욕구를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면, 2편에선 대인 관계에 들어가 실제 행복해지는 법을 다뤘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유독 한국과 일본·대만 같은 나라에서 당신들의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가부장제의 전통이 강한 유교권 국가 젊은이들은 서열과 나이, 평판, 남의 이목(耳目) 등 여전히 남아있는 수직적 조직문화에서의 대인 관계를 힘들어 하는 것 같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03/2016050300841.html​ 
  • 2016-04-14
    동서양 철학, 기독교, 불교의 통섭학자 전헌 "자기 감정을 아는 것이 철학의 전부다"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동서양 철학과 기독교, 불교의 종교의 통섭학자 전헌”“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건 오류,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전해”“후대 경제학자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잘못 해석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통섭의 철학자 전헌 교수. 그는 헬조선을 외치며 자조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세상이 다 좋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궁리해도 살 기운이 없다'고 설파한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죽든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좋은 세상에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성이 찹니다. 그것만큼 자명한 진리가 없습니다. 학문은 사람이 다 좋다는 것과 사람 사는 세상이 다 좋다는 것을 다짐하는 공부입니다...이 얘기가 5천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도 공자도 맹자도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늘 하던 얘기니까요.그리고 나도 소중하고 남도 소중하니까 호문호찰(好問好察)잘하세요. 정이 호문호찰입니다. ‘왜 슬프지?’ ‘왜 화가 나지?’, 물으시고 기쁠 때는 무엇이 기쁜 건지 즐거울 때는 무엇이 즐거운 건지 살피세요. 나를 언짢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상대방도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지?’하고 질문하세요.‘내가 왜 화났지? 내가 모르는 게 뭘까?’라고 물어야 감정의 자기 인식이에요… 우리가 역지사지라고 하는데, 자리를 바꿔 생각하는 건 어려워요. 그 사람의 자리가 어디인지조차 알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되겠어요. 자리를 바꾸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게 돼요. 능동이 아니라 수동태가 돼요… 감정의 자기 인식이어야만 세상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다 좋은 세상임을 확인할 수 있어요"-재미 철학자 전헌의 첫 책 ‘다 좋은 세상(어떤 책)' 중에서.74세 재미 철학자 전헌 선생이 국내에 첫 책을 냈다. 제목은 ‘다 좋은 세상'이다. 시집 판형에 163페이지의 작은 책이다. 쉬운 입말로 풀어썼고 제목도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한마디로 ‘괴물' 같은 ‘통섭’의 책이다. 그 안에 서양 철학과 불교와 유교와 퇴계학, 신학이 종횡무진 한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공자와 맹자, 퇴계와 스피노자, 예수의 가르침을 예로 들어 ‘세상은 완전하고 다 좋으며, 삶은 그것을 공부하며 배우는 것'이라고 설파한다.◆성경과 플라톤의 대화록 같이 읽으면 진리 폭넓게 드러나앎과 믿음, 시간과 인식, 주관과 객관, 이성과 감정, 도덕과 선의지 등 엄청난 철학적 명제와 철학자들이 등장하지만, 지식에 압사당할 염려는 없다. 그 문장이 엄숙하지 않고, 동자승을 대하는 자애로운 스승의 말투 그대로다.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던 플라톤의 대화록과 공자의 이야기를 엮은 사서, 예수의 사복음서의 공통점을 추리해 내고, 스피노자와 퇴계 이황을 감정 과학의 반열에 두고 동서양을 넘나든다.드러내기 싫어하지만, 그는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외삼촌이자, 멘토다. 김용 총재가 미국의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할 때, 취임식장에 나가 기도를 해준 사람도 전헌 선생이다. 전헌 선생은 지금도 김용 총재에게 “빈곤은 퇴치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에겐 빈곤이나 IS 테러 조차 ‘다 좋은 세상'의 일부다.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와 프린스턴신학대학교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매코믹 신학대학원 신학부 교수, 뉴욕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해석학의 거장 폴 리쾨르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철 스님 10주기 국제학술대회에서 돈수론에 관한 주제 논문을 발표했다. 2012년 국제 퇴계학회 회장에 취임했고,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노동경제학자 레베카 블랭크와 더불어 빈곤 연구도 진행했다.▲ 전헌 선생은 미국에 거주하며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화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누님인 신학자이자 세계적인 퇴계학 석학인 전옥숙 박사의 영향으로 철학을 시작했다. 전헌 선생이 한국의 대학교(성균관 대학교, 국민 대학교,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20대에서 60대까지 나이를 초월한 청강생들이 넘쳐 났다고 한다. 예수를, 소크라테스를, 석가를, 공자를 따르던 제자들처럼, 학생들은 전헌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 ‘복음을 들은 듯, 기뻐 살 것 같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왜 아니겠는가. ‘지옥 같이 느껴지는 세상이 알고 보면 다 좋은 세상’이라는데.현재 미국 뉴저지에서 ‘안주인'과 함께 살며 국민대학교에서 화상 강의를 진행하는 전헌 선생과 몇 차례의 이메일과 함께 기나긴 전화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온화한 음성과 겸손한 태도에, 시종일관 ‘성자'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철학은 무엇인가요?“철학은 아는 것 또한 모르는 것에 관한 일입니다. 공자의 ‘논어'에도 있듯이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의 기본입니다. ‘알 수 없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은 울타리를 친 빈말입니다. 말에서 바람을 빼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드러날 뿐이죠.”-서울대학교 철학과,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 프린스턴신학대학교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매코믹 신학대학원 13년간 신학부 교수를 역임하셨습니다. 신학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치는 학문입니까?“신학은 사람들이 왜 신이라고 말하며 살고 죽는지, 배우며 알아가는 학문입니다.”▲ 전헌 선생의 첫 책 ‘다 좋은 세상' 철학자의 정교한 낙관론을 읽고 나면 살만한 힘을 얻는다. -목회자나 신부가 되지 않으신 이유가 있습니까?“마냥 배우며 살다 보니 어느새 어린 양같이 살고 있더군요.”-성철 스님의 제자인 박성배 전 뉴욕주립대학교 교수와 국제 체용학회를 결성해 불교 공부를 했고 성철 스님 10주기 국제학술대회에서 주제 논문 발표를 하셨습니다. 원효의 사상을 영어로 옮기는 일의 책임도 지셨는데요. 불교에서 얻은 가장 큰 삶의 깨달음은 무엇인가요?“박성배 교수는 한국 불교학의 큰 산인데, 미국에 와서 저의 주선으로 신학을 공부했어요. 불교에서 얻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열반은 있는 그대로 ‘사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삶도 사실이 아닌가 의심해서 부질없어지겠지요. 저는 다른 종교의 친구들이 많아요. 그들이 다 저에게 배움을 줍니다. 유대교 친구들에게 유대교를 이슬람 친구들에게 이슬람을 배워요. ”-철학에서 신학으로 그리고 유학에서 불교학으로 그 넘나드는 앎의 추구에 부딪힘은 없었나요?“마냥 잘못 알거나 모르는 것에 부딪힐 때마다 더욱 궁금해서 되묻고 배우다 보니, 소문보다 사실은 언제나 새롭게 배울 것이 끝도 없이 많았습니다. 부딪히니까 뜨겁지요. 열정이 따로 없더군요.”-18세부터 철학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제 누님이 외국에서 공부하다 1959년에 한국에 들어오셨어요. 그해에 조카가(세계은행 김용 총재) 태어나고 누님은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으셨지요. 저는 1960년에 고교를 졸업하고 처음엔 공학도가 되려고 했는데, 누님의 서가에 있는 철학책들을 보면서 마음을 바꿨습니다.”-그러니까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어머니이자 누님이신 전옥숙 박사(신학자이자 퇴계학의 세계적 석학)의 영향을 받아 철학 공부를 시작하셨군요.“표면적인 이유는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미 어린 시절 철학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여덟 살 때였어요. 1950년 9.18 서울 수복 때 어머니와 맏형이 음식을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셨어요. 그해 겨울, 1.4 후퇴 때 다시 서울을 떠나야 했는데, 저는 엄마와 형의 생사를 모른 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어른들 앞에서 안 가겠다고 버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돌아가셨다는 직감은 드는데… 그렇다면 엄마와 형은 어디 갔을까? 아! 이미 나와 함께 있구나… 그런 결론을 내리니까 맘 편히 떠날 수가 있겠더라고요.”-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와 함께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시간과 존재에 대한 질문이 철학의 시발점이었군요.“여덟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엄마가 어디 안 가고 내 곁에 같이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지켜줬지요.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철학적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철학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어땠습니까?“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왜 군대에 가서 그 아까운 생명을 버리냐며, 패잔국이라고 꼭 나쁜 게 아니라고 설득해서 독약을 받게 됩니다. 숨넘어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세상에 있는 것치고 파리 한 마리도, 병균 한 덩어리도 좋지 않은 게 없다고 하죠. 잘 모르니까 저것 때문에 큰일 난다고 하는 거지, 배우면 좋음을 알 거라고요.‘파이돈'이라는 책에 소크라테스가 죽는 장면이 나와요. 한 친구가 말을 많이 하면, 독약을 여러 번 마셔도 잘 죽지 않아 힘들 거라고 걱정하니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야 죽어도 좋은 데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살아야만 좋고, 죽으면 나쁘다고 생각하는 너희가 걱정이라고요.제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를 때도, 저는 자꾸 기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흔 평생을 사시다 이제 어디로 가시는지는 모르지만, 있는 건 우주밖에 없는 건데, 그 우주가 밑도 끝도 없이 영원 무한하다면 어딘가 계시겠지 싶었지요. 제 감정이 슬픈 가운데 기뻤어요. 그렇게 깨달아갔습니다▲ 조카인 세계은행 김용 총재와 전헌 선생. 전헌 선생은 김용 총재가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에 취임할 때 취임식장에 나가 그를 축복하는 명예로운 대표 기도를 했다. -선생이 주장하시는 ‘다 좋은 세상'은 칸트와 데카르트 등 이성철학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칸트의 비판 철학이 21세기까지 군림하는 이유는 그 철학이 옳기 때문이 아니에요. 나쁜 게 따로 있다는 사람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도록 우리가 내버려두고 있기 때문이죠. 칸트는 인간은 진리를 모른다, 라고 단정합니다. 인간이 진리를 경험으로 알지 못해도 사는 이유는 인간이 선악을 가르는 기준인 양심의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무분별한 사람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없애야 할 나쁜 것으로 규정합니다. 거기서부터 ‘좋다' ‘나쁘다'의 답 없는 전쟁이 시작됐습니다.”-그러니까 선생의 생각에 칸트와 니체, 데카르트의 가장 큰 오류를 뭐라고 보십니까?“악이 있다는 오류입니다.”-‘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과거의 홀로코스트나 현재의 IS 테러 같은 상황도 ‘있어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분명한 ‘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것이 ‘필요악’이라는 개념인가요? 아니면 방법론적인 태도로서의 선택인가요?“홀로코스트나 IS 테러는 사실입니다. 악은 사실이 아닙니다. 따라서 아무리 끔찍하고 기가 막혀도 사실은 묻고 파헤치고 배워서 알아야 합니다. 악이 사실이 아닌 줄 알고도 없는 악을 없애 버리려 들면 끔찍하고 기막힌 일이 또 벌어집니다. 악이 있다는 거품에도 불구하고 뉴스 미디어 덕분에 벨기에 참사의 사실이 알려졌습니다.”-결국 ‘타인'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다르다' ‘모른다'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 다름과 모름을 이해하려는 과정이 ‘배움' 즉 ‘앎'이라는 주장이십니다. 불교의 ‘천상천하유아독존'과 기독교의 ‘독생자'를 학문적으로 같은 출발선에서 놓고 보는 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예수와 석가모니의 ‘단독자'로서의 생애가 심플한 샘플로 제시됐다는 게 신선했어요.“요한복음 1장 14절에 ‘독생자'라는 말이 나오죠. 그리스어로 모노게네스(monegenes)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구절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라는 한 인간을 낳았다는 뜻이죠. 하나님이 낳아주신 하나뿐인 인간, 각자가 소중하다는 얘기를 그렇게 한 겁니다. ‘독생자'라는 말을 ‘외아들’이나 ‘나밖에 없다'라고 풀이하는 건 해석이죠. ‘천상천하유아독존'도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나'라는 말이에요.있는 그대로 들으면 되지, 해석이 끼어들면 안 돼요. ‘유아독존’과 ‘독생자', 우리 모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고, 독생자이기 때문에 서로를 슬프게도 기쁘게도 해요.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에요.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사이를 배우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배운다'라는 말은 하나밖에 없는 다른 것이 좋은 것을 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예수가 ‘여러분, 제게 와서 배우세요.'합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각각의 사물이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용하는 한, 완전성은 그 사물의 본질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해석학에 대해서 크게 비판하셨습니다.“오늘날은 해석학이 지배하는 시대죠. 예수가 살았던 시대는 바리새인이 해석학자였어요. 신이 말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의미와 가치를 자의적으로 부여하죠. 해석학은 음식으로 치면 과한 조미료예요. 인생은, 진리는, 굳이 의미를 첨가해야만 괜찮아지는 게 아니에요. 원래 괜찮은 거예요. 공자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배우면 다 좋은 세상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때때로 해석학자들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해석이 사실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해석은 해석한 장본인의 것이라는 생각에, 부르는 게 값이에요. 복덕방인 거죠.”-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제까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경전처럼 읽혔는데, ‘도덕감정론'과 함께 완전히 새롭게 읽기를 제안하셨어요. 그렇다면 기존의 경제 해석학자들이 ‘국부론'을 잘못 읽었다는 말인데요.“국부론의 영어 원제가 ‘the wealth of nations’에요. 나라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지요. 애덤 스미스 ‘국부론’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 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자유 시장 경제는 전쟁 정신이 아니었어요.알고 보면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도덕철학자였어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보다 ‘도덕감정론(1759년)'을 먼저 썼고, 그래서 ‘국부론'도 ‘도덕감정론'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해요. 사회적 본능인 ‘도덕감정’은 타인에게 동감을 얻으려는 노력,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에요. 시장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동감과 연대였어요.그런데 후대 경제학자들이 스미스가 말한 사람 사이 분업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 좋은 ‘감정'을 간과하고 이익 추구의 탐심만을 강조한 거예요. ‘the wealth of nations’, 다 잘 사는 세상의 핵심은 ‘감정의 진실'이에요. 스미스는 평생 혼자 살면서 ‘도덕 감정론'을 수정하고 완성했어요. 그래서 죽기 전에 자기 묘비에 ‘국부론'의 저자라고 쓰지 말고, ‘도덕 감정론'의 저자 잠들다, 라고 써달라고 했지요.”-인간의 본질은 감정이다, 감정의 본질이 학문의 핵심이다, 라고 하셨어요. 이성 철학이 지배했던 학계에는 굉장한 도전입니다.“공자는 ‘중용'에서 감정이 존재와 우주의 알맹이라고 해요. 퇴계는 인간의 감정이 이해하고 보살피는 학문과 인간의 감정을 억누르고 몰아가는 학문을 엄밀하게 분간해서 전자를 이발이기수, 후자를 이발이이승이라고 천명했어요. 동양의 유학자 퇴계의 수제자가 100년 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사람이 스피노자예요. 싫어, 좋아, 미워, 화나... 퇴계는 칠정, 일곱 가지 감정을 말했고, 스피노자는 마흔 여덟 가지 감정을 열거해요. 끝도 없이 변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게 학문이에요.그렇다며 이성은 뭔가? 이성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거예요. 이성을 다루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감정은 이성이 아니라는 한 마디인데, 칸트가 바로 그 말을 한 철학자예요.”▲ 뉴저지의 집에서 서울과의 화상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전헌 선생. -감정이 이성이 아니라고 했을 때 문제점이 뭐지요?“의심이 많아진다는 거죠. 칸트는 자기 주변의 학자들을 믿지 않았어요. 칸트가 자기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많이 다녔어요. 하지만 주변인들을 믿지 않아서 학회, 학자들과 교류가 없었어요.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썼잖아요. 그래서 그 책을 좀 많이 인쇄하라고 인쇄소를 찾아갔더니, 칸트 책을 인쇄할 시간도 종이도 없다는 거예요. 웬 젊은 녀석 소설이 불티나게 팔려서 그걸 인쇄하느라 바쁘다는 거죠. 그게 뭔가 했더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어요.그게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니 자살한다는 얘기예요. 사실, 자살도 사실을 사실로 보지 못해서 벌어진 사실이죠. 어쨌든 괴테가 감정을 다룬 소설 베스트셀러를 쓰고 후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이 되지만, 자신이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보다 잘 팔렸는지를 몰랐지요.괴테가 망신당한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한 젊은 처녀한테 반해서, 그 어머니를 찾아가 “나 이렇게 유명한 괴테다. 그러니 딸을 달라"고 했다가 “이런 정신 나간 늙은이를 봤나?"하고 호되게 당해요. 인간의 감정에 대한 소설로 재상까지 올랐는데, ‘감정의 진실'을 몰랐던 거죠. 감정의 진실은 사실을 검토해야 해요. 상대도 함께 ‘다 좋은 것'을 찾아야지 자기 좋은 것만 바라는 건 진실이 아니죠.”-니체는 어떻습니까? 좋다 나쁘다 시달릴 일 없이 초인적 의지의 힘을 내세우지 않습니까?“칸트보다 괴테보다 더 많이 팔린 책이 니체의 책이에요. 독일 언어로 된 책 중 가장 많이 팔렸죠. 니체는 신학자였어요. 그런데 ‘즐거운 학문'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얘기하면서 인간이 초인이 될 것을 주장하지만, 나중에는 ‘절망하는 바보'로 자기를 노래했어요. 장엄하게 비극을 창조했고 정신병원에서 죽으면서, 비극을 완성했지요. 감정이 거추장스럽고 못 미더운 것으로 속단해 버리면 학문도 표류해요. 천재 영웅도 감정이 못 미더우면 하는 일이 빗나가죠.”-학생들에겐 어떻게 가르치십니까?“함께 책을 읽습니다. 철학,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국부론, 군주론을 같이 읽어요. 함께 읽는 데 학생들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라고 해요. 그건 그때까지 해석을 개입해서 그랬던 거죠. 저는 해석을 하지 않고 읽습니다.”-믿음을 앎의 차원으로 승화시키셨는데,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때 신경과학자 샘 해리스와 ‘목적이 이끄는 삶’의 릭 워렌 목사가 ‘신’이라는 주제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만.“샘 해리스는 알아야 믿는다고 하고, 릭 워렌은 믿어야 안다고 합니다. 한 동전의 양면일 따름입니다.”-국제 퇴계학회 회장은 어떻게 맡으신 건가요?“성균관 대학교에서 동서비교윤리학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책방을 갔더니, 우연히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가 같이 있더군요. 한 손엔 스피노자를 한 손에 퇴계를 들고 읽었습니다.그것을 통해 퇴계의 학문을 ‘정학'으로 접근해갔습니다. 퇴계는 감정을 핵심으로 삼아 인류를 설명한 학자라는 거죠. 이제까지 그런 논리를 펴는 사람이 없었는데, 제가 처음 주장을 했고 학자들이 인정해준 것 같습니다.흔히 감정 과학은 객관 과학이 아니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객관은 주관이 쳐다보는 세상입니다. 객관은 해석이나 의미 추구를 일삼습니다. 그것을 제멋대로 객관이라고 합니다. 주관이 바로 보는 것, 그것을 감정이라고 부릅니다. 자기가 본바, 들은바, 느낌을 토로하는 게 감정이에요.”▲ Union Theological Seminary, NYC 총장(가운데)과 전헌 선생 내외.-요즘에는 혜민 스님을 비롯해 불교 지도자들이 마음 훈련 등에 관한 책으로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요는 남 신경 쓰느라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라는 거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참 고마운 노력들입니다. 마음의 훈련은 몸 배우는 일인데, 몸 제쳐 놓으면 마음은 아무리 잘나가는 것 같아도 어느새 ‘아편’ 소리를 듣게 됩니다. 몸은 어느 몸이나 사랑 받았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사랑받은 몸이기에,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이 몸의 진실입니다.”-어떤 때 기쁘고 어떤 때 슬프십니까?“기쁨과 슬픔이 따로 있지 않아요. 더구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다 고마운 때이고 보니 따로 나누어보지도 않죠. 그냥 기뻐하고 또 슬퍼도 기뻐합니다.”-‘다 좋은 세상'에서 슬픔이 나를 지킨다, 라는 말이 깊게 다가왔습니다. 슬픔은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요. 슬픔에서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슬픔이 다치지 않게 지켜준다는 걸 알면 됩니다. 엄마 믿고 엄마 앞에서 목을 놓아 우는 아이들은 어느새 잠도 잘 자고 놀기도 잘하면서 잘 배우며 자라지요. 반면 슬픔을 통제하면 아이들은 그대로 망가집니다.”-일본의 지도자를 교육하는 감정학교 마쓰시다 정경숙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감정을 돌려놓는다고 해서 굉장히 신기했어요. 그 교육이 지도자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감정은 진실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감정학교 마쓰시다 정경숙은 지도자들의 요양소나 ‘아편’ 이상의 역할을 못 합니다. 다들 학교에서만 감정에 진실하게 생활 훈련을 하다가 학교를 나서면 감정은 뒤로 미루고 활동하니까요.”▲ 세상을 바로 살아갈 만한 철학적 지침을 내려달라는 요청에 ‘사실을 배워 바로 알자'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21세기 첨단 학문은 동식물은 물론 곤충에게 행위 철학을 배우는 일로 정신이 없다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설계자가 좋은 선택을 유도한다는 넛지 이론 등 행동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시겠지요?“토머스 홉스는 행동 방안을 염려하는 행동과학은 철학이 아니라고 했어요. 감정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따르는 것만이 철학이라고 했지요. 행위 철학이라며 감정이 모방과 설계로 조작되리라는 환상은 사실이 아닙니다.”-얼마 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교수가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 토마 피케티와 다른 접근을 취한다고 해서 논쟁거리가 됐었습니다. 노동경제학자 레베카 블랭크와 빈곤을 연구한 선생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앵거스 디턴은 ‘빈곤과 불평등’ 해소의 열쇠가 소비자 개인에게, 토마 피케티는 제도와 정책에 있다고 말하지만, 역시 한 동전의 양면입니다.”-선생은 빈곤은 부족한 대로 충분하게 사는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이게 너무나 어렵습니다. 가난을 없애야 하는 문제로 여기기보다, 그 속에서 배우고 사는 일에 흥겨움을 알아야 한다는 말, 정말 어렵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만물은 가난하게 태어납니다. 가난을 타파한다는 말은 참 그럴듯하지만, 목욕물 버린다며 아기 버리는 격입니다. 아무리 부유하다 해도 사람의 실체는 자기 몸입니다. 벌거숭이 몸으로 가난하게 태어나기에 자유롭게 다 좋은 세상을 힘껏 배우며 우주의 풍요로움을 넉넉하게 즐기는 것입니다. 가난을 없앤다며 가진 것에 묶이면 자승자박하는 노예의 몸으로 전락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외삼촌이자 멘토로 알려졌습니다. 조카에게 하는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무엇입니까?“조카는 59년에 태어났어요. 사람 알아볼 때부터 날 보고 가까이 지냈지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엄마 아빠보다 삼촌에게 물어보곤 했어요. 어느 집안에나 있는 일입니다. 총재로서 하는 일은 공직이지만, 저는 그가 감정에 충실한 사람, 자기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봅니다.세계은행의 기치가 빈곤타파예요. 굶주린 아이들 먹게 하고, 아픈 사람 치료하고, 다 좋지요. 그런데 저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해요. 빈곤은 타파할 게 아니라고요. 빈곤을 타파하려 들면 관료 부패가 가장 먼저 생겨요. 빈곤을 타파하겠다는 사람들이 세계은행에서 돈을 받아다가 그걸로 사업하고 부자가 되죠. 가난한 사람에게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하지 말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존중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돈을 쓴 티가 나죠.빌 게이츠가 김용 총재에게 한국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했답니다. 한국이 너무 잘 살아서 놀라고, 그렇게 잘 사는 데 열심히 사는 걸 보고 또 놀랐다고요. 그런데 머지않아 미국 사람들처럼 한국 사람들도 게을러지지 않겠냐고 해서, 제가 이렇게 말해주라고 했어요. 한국엔 ‘생고생'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국 사람은 고생을 사서라도 한다고요. 그게 뭡니까? 부모가 애 낳고 하는 말이죠. ‘사서 고생한다'. 사서 하는 고생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요. 한국인들이 말이죠(웃음).”▲ 지난 주 김용 총재가 어머니의 모교인 Union Theological Seminary, NYC에서 강연하고 있다. 강연 주제는 ‘자비의 원칙'. 전헌 선생이 앞에 앉아 조카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자랐고 오랫동안 외국에서 한국을 보아오셨습니다. 한류의 에너지가 넘치지만, 정치는 너무나 후진적이고, 수직적인 군대 문화가 지배하고 자살률은 전 세계 최고인 지금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십니까?“우리나라는 언어가 정말 잘 보존되어 있고 발달해 있어요. 신라 시대 처용가도 지금 읽을 수 있죠. 영어는 셰익스피어 이전 것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중국인들은 문자 보존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말은 서로 달라 중국인들끼리도 안 통해요. 일본말은 가지런하지만, 표현력은 깊지 않지요.한류는 감정이 제각각 많은 한국인이 그걸 지지고 볶고 말로 잘 표현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외국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한국 드라마는 잘 먹고 잘 싸워서 좋대요. 자기들은 그 정도 싸우면 헤어질 텐데, 한국인들은 싸우면서도 정이 뚝뚝 묻어난다는 거죠. 먹으면서 싸우고 먹으면서 사랑하고, 그 정이 다 말로 이루어지는 거예요.한국인들은 원래 ‘나처럼' 살기 원하는 민족이에요. 우리는 공자를 공부하고 예수를 공부하지만, ‘공자처럼' ‘예수처럼' 살 필요 없어요. 그렇게 살려고 하면 문제가 생겨요. 우리는 제 각자 ‘알알이’ 모래알처럼 살아야 해요. ‘남처럼’ 비슷하게 살려고 하면, 독재하는 사람만 좋아요. 한국인들이 왜 ‘IT’ 시대에 잘 나가겠어요? 실리콘밸리의 모래알 정신이 한국인들에게 있어서예요. 연구비보다 연구 효과가 높은 곳이 한국이에요. 알알이, 제 각자, 나처럼 살면 아무도 무시를 못 해요.학생들에게 ‘군주론'을 가르치면서, 그랬어요. 나답게 살면 임금을 시켜도 모자람이 없다고. 왕자병, 공주병이라는 말은 그래서 틀린 말도 옳은 말도 아니에요. 나처럼 살기 시작하면 알알이 공주이고 왕자인데, 나는 안 챙기면서 왕자처럼, 공주처럼 따라 살려고 하니 병이 되는 거죠.나는 미국에서 50년 살면서 한국을 보는데, 한국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한국인들은 감정이 역동적인 민족이에요. 남이 하는 걸 자기 것처럼 금방 배워서 따라잡는 걸 잘하죠. 그건 괜찮아요. 하지만 남을 따라 살기 위해 자기를 부정하면 절망이 생겨요. 우리는 실망의 크기가 다른 나라 민족들보다 커요. 감정에 진실한 사람들이니까, 결국 나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 거죠.”-희망도 없고 어른도 없는 세상이라고, 젊은이들이 많이 절망합니다. 희망은 무엇이고 어른은 어떤 존재인가요?“희망은 다 좋은 세상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어른은 다 좋은 세상이 사실임을 말하는 존재입니다. 다 좋은 세상인데 왜 젊은이들이 절망하겠습니까? 아니라고 하니까 절망하는 것이죠(웃음).”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09/2016040900170.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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