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비밀책장] 내가 없는 세상에 혼자 남을 아들을 위해


코맥 매카시 '더 로드'

태초에는 태양이 두 개 있었단다. 동쪽에 하나, 서쪽에 하나. 사람들은 어느 태양을 신으로 섬겨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서쪽 태양을 쏴 없애야 한다는 선지자의 처방이 나왔으나 그 길을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은 혼돈의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고, 사람들은 영웅의 출현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활을 쥐고 나타났으니, 어딘지 어리보기 같은 데다 갓난애까지 등에 업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열렬하게 어리보기를 격려했다. 어서방, 파이팅이여.

그는 서쪽으로 달려갔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사이, 등에 업힌 아기는 소년이 되었다. 그는 소년이 넘어지거나, 힘들다고 투정하거나,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쓸 때마다, 일으키고 격려하고 나무라면서 고사리손을 이끌고 달린다. 소년이 청년이 되자 부자는 나란히 발맞춰 달리게 되고, 그가 늙어 더 달릴 수 없게 되자 아들은 활을 넘겨받아 홀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서쪽 땅끝에 도착해 태양을 쏴버린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신화로 '아비는 자식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신화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만난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신화가 되었다.

대재앙이 일어난 지구. 문명이 파괴되고, 수많은 생명이 멸종되고, 도처에 인육사냥꾼이 날뛰는 황폐한 잿빛 땅을 아버지와 아들이 걷는다. 추위에 떨고 굶주리면서 끝없이 걷는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왜 가는지 아버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뿐.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다.

"그날 밤 소년은 아버지 가까이에서 자며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차갑고 뻣뻣했다. 소년은 앉아서 오랫동안 울다가 일어서서 숲을 헤치고 길로 걸어나갔다. 소년은 돌아와서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더니 차가운 손을 잡고 아버지 이름을 연거푸 불렀다."

'서부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이른바 '종말 후의 이야기'인 이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라 평가되는 소설이자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이며, 자신이 죽고 난 후 세상에 홀로 남을 어린 아들을 위해 썼다는 '아버지의 소설'이기도 하다. 

정유정 소설가

정유정 소설가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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