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11-10
    미하일 불가코프 (Mikhail Bulgakov)거장과 마르가리타 민음사​ ​국내 항공사의 광고카피를 살짝 이용해 한번 물어보자. “러시아, 어디까지 알고 있니?” 러시아는 우리에게 어떤 나라일까? 우선 라스푸틴, 스탈린, 푸틴 정도가 생각날 것이다. 러시아 문학을 사랑한다면 반대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리키의 얼굴이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두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러시아는 우리에게 언제나 조금은 어둡고, 진지하다는 점이다. 유머 감각이 없는 러시아.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를 나라의 슬로건으로 선택한 영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쿨 하지 않다. 독일에서 군사 기술을, 네덜란드에서 선박 기술을, 그리고 영국에서 수학을 공부한 황제 표트르 1세(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 1682-1725)는 러시아를 서유럽화 하려고 평생 노력했다. 새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고대 그리스 로마식 건물로 가득 채우고, 남성들의 긴 수염과 여성들의 치마를 강제로 짧게 자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어떻게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러시아 같이 거대한 나라를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표트르의 죽음은 러시아인들에게 영원한 숙제를 하나 남긴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로지르는 러시아; 서유럽이 되고 싶지만 서유럽이 될 수 없는 러시아; 서유럽의 계몽주의와 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자존심이 강한 러시아. 하지만 러시아가 진정으로 “쿨” 했던 시기도 있었다. 아니, 러시아가 이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더 선진이고 앞서 나갔던 시절이 한번 있었다. 1917년 니콜라스 2세가 물러나고 스탈린의 독재가 시작될 때까지 단 10년동안 러시아에선 진정한 “문화혁명”이 일어난다.말레비치(Malevich), 타틀린(Tatlin), 엘 리시츠키(El Lissitzky)는 현대예술과 디자인의 기반을 구축하고, 아이젠스타인(Sergei Eisenstein)과 프로타차노브(Yakov Protazanov)는 그 누구보다 시각적으로 세련된 영화들을 만들어낸다. 문학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야코브스키(Vladimir Mayakovsky)의 아방가르드 시, 다닐 카름스(Daniil Kharms)의 부조리주의적 드라마, 안드레이 플라토노브(Andrei Platonov)의 존재주의. 그리고 물론 미하일 불가코프를 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문학 역사상 가장 재미있고 웃긴 책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문학이 웃길 수 있다고? 물론 그렇다. 이반 곤챠로브(Ivan Goncharov)의 “오블로모프”(Oblomov”)만 기억하면 되지 않을까? 스탈린의 독재 아래 완성되었지만, 1960년대에야 드디어 소개된 ‘거장과 마르가리타’. 1930년도 모스크바에 갑자기 나타난 사탄과 2000년전 예수그리스도를 심판했다는 폰티우스 필라투스를 동시에 등장시킨 이 책의 유머, 휴머니즘, 그리고 세련됨은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27/2015102702602.html​​
  • 2015-10-20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출구 없는 방” (No Exit, Huis Clos)Vintage  2015.10.17 04:00​ 한 남자가 죽고 지옥에 '떨어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온 몸이 불에 타고, 흉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에게 고문당하고, 사람들의 비명과 붉은 빛 피가 강물처럼 흘러 넘치는…지옥이라면 당연히 단테의 '신곡'이나 할리우드 영화 장면을 연상시키는 뭐 그런 장소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남자가 도착한 곳은 의외로 호텔 방이었다. 고문도, 괴물도 없는, 그냥 평범한 호텔 방. 아니 완전히 평범하지는 않다. 창문도 없고, 방 문을 다시 열지도 못하니 말이다. 더구나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역시 지옥에 떨어진 두 명의 여인들. 남자, 여자,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자. 이제 이 세 명은 앞으로 영원히, 탈출도, 구원도, 희망도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치유하고, 또 다시 사랑하고, 질투하고, 배려해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1944년 소개한 연극 '출구 없는 방'(Huis clos)의 내용이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그의 '추의 역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사르트르의 지옥(문이 닫혀 있고 항상 전등이 켜진 호텔방에서, 전에 한 번도 서로 만난 적 없는 세 사람이 영원히 같이 지내야 한다)에서 우리는 타자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그들의 비난만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결국, 등장인물 중 하나는 이렇게 외친다. ‘열어, 열라고. 제발, 무슨 벌이든 다 받을게. 발을 죄는 벌이든, 족집게로 꼬집는 벌이든, 끓는 납에 넣든, 부젓가락으로 쑤시든, 교수형을 하든, 백 번 태우고 잡아 찢든 다 좋으니 제대로 고통을 받고 싶어’. 그러나 모두 소용없다 (중략) 지옥이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 지옥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penhauer)가 했을 만한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우리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타인과 외로움을 동시에 두려워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 더 이상 자유로운 자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고 혼자가 되는 순간, 나의 자아는 외롭다. 함께는 괴롭지만, 혼자는 외로운 게 인간의 조건이기에, 쇼펜하우어는 '함께 혼자' 살기를 추천한다. 외롭지 않을 정도로 함께 가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결국 나 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 2015-10-06
    ​​2015-10-03 04:00​​ 1637년, 프랑스 철학자 레네 데카르트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우리는 종종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보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믿곤 한다. 어디 그뿐이랴. 매일 밤 우리는 꿈에서 왕이 되고, 짝사랑하는 여인을 차지하고, 우주의 진리를 이해한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진리도, 사랑도, 권력도 모두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만약 깨어있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믿고 있는 모든 것들 역시 허상이라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내 이름이 '레네 데카르트'라는 사실 조차도 참이 아닌 조작된 환상이라면? 우리가 믿고 있는 수많은 명제 중 절대 진실이란 존재하는가? 데카르트는 중대한 결론을 내린다. 이 세상 그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 그 생각을 하는 '나'라는 존재만큼은 존재해야 한다고.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의 선호도는 시장경제를 가능하게 하고, '나'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나는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우울하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는다. 나! 나! 나! 그런데 현대문명의 핵심에 '나'라는 절대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코타르 증후군'(Cotard delusion) 환자들의 이야기다. 19세기 프랑스 신경과 의사 쥘스 코타르(Jules Cotard, 1840~1889)가 처음 기록한 이 질병에 걸린 환자들은 멀쩡한 팔, 다리, 심장 같은 신체 부위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하고, 간혹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까지 믿는다. 하지만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생각을 하는 존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코타르 망상에 빠진 환자들은 완고하다. 자신은 생각하지만,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인도 출신 영국 기자 아닐 아나타스바미의 책에 소개된 환자들의 스토리는 놀라움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어떻게 멀쩡히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사람이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의 손을 찌른 바늘과 붉은 피를 보면서도 자신은 불멸의 존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나타스바미는 단순히 희귀한 정신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두개골을 열어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뇌'라는 1.5kg 짜리 고깃덩어리뿐이다. 하지만 어딘가, 어떻게 그 뇌는 '나'라는 자아를 가능하게 한다. 아니면, 많은 뇌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자아와 '나'는 뇌의 '착시현상'일 뿐일까? “자아와 나는 착시”라는 주장을 하는 그 무엇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파고들어가면 파고들어갈수록 깊어지기만 하는 '나'라는 미스터리. 아나타스바미의 흥미진진한 책은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읽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를 파헤친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01/2015100100868.html​ 
  • 2015-09-20
    ​2015-09-19 04:00​ 내 배를 날카로운 칼로 자르고 내장과 신장을 손으로 만진다. 톱으로 두개골을 열고 뇌를 파헤친다. 빨간 장미를 빨간 장미로 보게 하고, 나의 기억, 감정, 자아, 나의 모든 것의 본질인 뇌를 도려낸다. 싸구려 할리우드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매일마다 이 세상 모든 수술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의사란 어떤 사람들일까. 평생 안 봐도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봐야 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의사들. 하얀 가운을 입은 지상의 신들. 다 큰 나를 다시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그들. 강하고 냉정하기 짝이 없던 악덕 정치가의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고, 언젠간 상처와 병으로 죽어갈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의사들. 그들은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헨리 마르시(Henry Marsh)는 영국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 중 한 명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대영 제국 데임'(Commander of the British Empire, CBE) 작위를 수여 받았고, 2004년 영국 TV 최고 방송상을 탄 BBC 다큐멘터리 '그들의 손 안에 너의 목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올해 출간한 책 '해를 주지 말아라'(Do no harm)의 첫 문장은 “나는 자주 뇌를 잘라야만 한다. 정말 하기 싫은 짓이다”로 시작한다. 수많은 예능프로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의사들.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겠지만 하찮은 농담과 썰을 풀어놓는 그들에게 나의 생명을 맡기고 싶을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마르시는 다르다. 뇌종양을 도려내기 위해 뇌를 파괴해야 하고, 잘못 건드린 미세혈관 하나가 건장하던 남자를 평생 혼수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는 뇌수술. 마르시는 본인의 실수와 경험에 솔직하다. 그가 자주 하는 강연의 제목이 '나의 가장 큰 실수들'이니 말이다. 환자와 가족에겐 생사가 걸린 일이겠지만, 도려내기 '어려운' 종양일수록 흥미진진해 하는 신경외과 의사들. '뇌'라는 신비의 기계를 마치 고깃덩어리 같이 도려내고 잘라내는 그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 21세기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의술이지만, 의사의 첫 임무는 바로 히포크라테스가 요구하던 “해를 주지 말아라”(primum non nocere)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마르시는 언제든지 무리한 수술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권장한다. 지적인 호기심보다 환자에 대한 배려와 연민. 자신의 죽음 역시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의 연민과 배려에 의존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마르시의 글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을 수 없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밤을 새워 끝까지 읽었던 책이 바로 마르시의 “해를 주지 말아라”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5/2015091502323.html​
  • 2015-09-07
    ​​2015-09-05 04:00​​ 곰곰이 생각해보면 볼수록 화가 난다. 아무리 기억해 보아도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겠다고 단 한번도 동의하거나 허락해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어느 날 그냥 눈을 떠봤더니 지구, 대한민국, 우리 집에 태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동의 없이 태어난 세상에 살아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세상, 대한민국, 가족의 모든 규칙과 조건은 먼저 태어난 사람들을 통해 정해져 있었다. 아직 뇌가 발달되지 않고,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선택하지도 않은, 단순한 우연의 결과인 전통과 규칙을 필연이라 착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한국인, 미국인, 일본인으로 열심히 살기 위해 바둥거릴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conditio humana, 인간의 조건이겠다. 말도 안 되는, 믿고 싶지 않은 조건으로 삶을 시작하는 인간.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질문해왔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종교, 철학, 예술, 과학. 모두 코미디 같은 인간의 조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삶, 우주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 질문이 있으면 구글을 검색하는 것이 21세기의 진리다. 왜? '구글신'은 모든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글에게 물어보자,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대답(th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은 무엇이냐고". 엔터 키를 누르자마자 화면에 답이 뜬다. 답은 바로 “42”라고. 구글신을 믿지 못한다면, 이번엔 애플 '시리(Siri)', 마이크로소프트 '코르타나(Cortana)' 아니면 아마존 '에코(Echo)'에게 물어보자. 도대체 “삶에 의미는 무엇이냐고?”(what’s the meaning of life?). 역시 답은 매번 동일하다. 42가 삶의 의미이며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이란다.영국 방송작가이자 소설가였던 더슬러스 애덤스(1952~2001)의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미국, 유럽 과학기술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 가운데 하나다. 공상과학이자 철학이고 코미디인 책은 우주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파괴된 지구를 탈출한 평범한 주인공이 은하수를 히치하이킹 하며 경험하는 이야기들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스토리가 바로 '42'의 진실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언제나 우리와 같은 질문은 해왔다는 사실을 지구인은 알게 된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끝없는 논쟁과 질문에 진저리가 난 똑똑한 외계인들은 먼 과거에 'Deep Thought'라는 거대한 컴퓨터를 설계해 드디어 답을 얻으려 한다(1989년 세계 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IBM 컴퓨터 'Deep thought'의 이름 역시 이 책에서 나왔다). 750만 년 후 드디어 계산을 끝낸 Deep Thought는 말한다. 답은 '42'라고. 삶의 의미가 42라고?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답이 42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Deep Thought는 설명한다.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한 답은 분명히 42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한 질문 역시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 계산은 너무나도 어렵기에,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대신 '지구'라고 불리는 새로운 컴퓨터를 설계해 주겠다고. 결국 인간을 포함한 모든 지구 생명체의 인생 그 자체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추구하는 계산과정이었던 것이다. 웃으면서 생각하게 되고, 울다가 다시 웃게 되는 애덤스의 책을 미래를 걱정하고 삶의 의미를 질문하는 대한민국 모든 청소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02/2015090201179.html​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