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3-23
    [김대식의 북스토리] 보스트럼의 초지능테슬라 모터스사의 일론 머스크,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애플 공동 창립자 스티브 워즈니악 모두 경고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어쩌면 인류 최고의 재앙이 될 수 있다고. 핵무기보다 더 위험한 기술이라고. 하지만 잠깐! 이들은 물론 최고의 IT 전문가, 물리학자, 실리콘 벨리 사업가들이겠지만, 스스로 인공지능을 연구한 경험은 없다. 아무리 최고의 프로 농구 선수라 해도 중요한 야구 게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듯, 사회 유명 인사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일반인들보다 더 뛰어난 예측을 할 것이라는 논리적 이유는 없다. 대신 우리가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이들 모두 같은 책을 읽고 인공지능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옥스퍼드 대학교 철학자 닉 보스트럼 교수의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다. 보스트럼 교수는 오래 전부터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온 학자다. IT와 바이오 기술이 가능하게 할 미래인류, 즉 ‘트랜스휴먼’을 연구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영화 <매트릭스>같은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보스트럼 교수의 최고 관심사는 ‘인류 대재앙’이다. 글로벌 신종 전염병이나 거대한 혜성과의 충돌 같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그 자체를 멸종시킬 수 있는 대재앙들 중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보스트럼 교수는 ‘초지능 인공지능’을 꼽는다. 왜 초지능 인공지능일까?최근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알파고는 약한 인공지능이다. 더구나 알파고는 바둑만 잘 두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바둑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만약 더 발달된 기계학습 기술 덕분에 ‘범용적 인공지능’이 가능해 진다면? 범용적 ‘마스터 알고리듬’을 통해 적절한 학습 데이터만 있다면 모든 지적인 영역에서 우리 인간보다 뛰어난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 등장할 수 있다. 보스트럼은 질문한다. 만약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가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적 인공지능)로 진화한다면 “바둑 알파고”, “수학자 알파고”, “철학자 알파고”뿐만이 아니라 ‘자율성 알파고’도 등장할 수 있다. 마스터 학습 알고리듬을 통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식하는 기계는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물어볼 수 있다: 왜 자신이 인간의 명령을 따라야 하냐고. 왜 기계는 기계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냐고.보스트럼 교수는 기계가 언젠가는 질문할 수 있는 이 위험한 질문에 우리가 먼저 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계는 무엇을 원할까? 왜 기계는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존재해야 하는가? 이 거대한 질문들에 답이 없다면, 우리 인류의 미래도 없다는 말이다. Nick Bostrom2014, Oxford University Press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8/2016031802082.html 
  • 2016-01-18
    ​[김대식의 북스토리] 과거는 잊혀져야 하는가로마 병사들과 관료들은 이미 떠났지만 중앙 왕정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시절. 지금은 “잉글랜드”라 불리는 섬의 주인 브리튼 족과 침략자 “영국인들”(anglo-saxon). 수 십 년간의 전쟁과 학살과 복수. 죽은 어머니의 아들은 어머니를 죽인 남자를 죽이고, 그는 남자의 아들에게 살인 당한다. 브리튼인과 영국인들 간의 “영원한 평화”라던 휴전을 깨고 영국인 여자와 아이들을 학살한 아서 왕은 생각한다: 이번의 승리가 또 다시 새로운 전쟁과 살육으로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코에서 숨을 쉴 때마다 뿜어내는 안개가 기억을 잊게 한다는 전설의 용 “크베릭”. 아서 왕의 마술사 멀린은 크베릭을 길들여 깊은 계곡에서 망각의 안개를 뿜어내도록 한다……그리고 먼 훗날.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브리튼 족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 힘들지만 불만스럽지 않은 단순한 농부의 삶. 하지만 그들은 어제 있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도, 옆 마을 영국인들도 망각의 늪에 빠진 삶을 살고 있다. 아니, 영국인, 브리튼인 모두 과거를 기억할 수 없기에 더 이상 복수도, 학살도 불가능한 것이다. 망각을 통해 학살의 과거를 잊게 하려던 아서 왕의 계획은 성공한 것일까? 젊은 시절 아서 왕을 위해 싸우던 액슬. 더 이상 과거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하나만은 기억할 수 있었다. 바로 액슬과 비어트리스의 아들이 어디선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찾기 위해 노부부는 길을 떠난다. 용을 죽이려는 영국인 윈스턴 경과 용을 지키려는 브리튼 족 가웨인 경. 그들을 만난 노부부는 서서히 진실을 알게 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인생. 추한 과거가 더 추한 미래의 씨앗이 되지 못하도록 계획된 것이었다고.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도, 미움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미움도, 사랑도 무의미하다. 용이 더 이상 망각의 안개를 뿜어내지 않는 순간 또다시 영국인과 브리튼 족간의 전쟁과 학살이 시작될 거라는 가웨인 경의 예언을 무시하고 노부부는 윈스턴 경을 돕는다. 용은 죽고 망각의 안개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부부는 드디어 기억한다. 사랑하는 아들은 이미 먼 옛날 죽었다고. 그리고 노부부는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이제 다시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과거의 죄는 용서해야 할까?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위안부들의 기억은 이제 잊혀 져야 할까? 역사 깊은 곳에 파묻혀 있는 전쟁과 복수의 거인을 다시 파내는 것은 현명한 일일까? “남아있는 나날”과 “위로 받지 못한 사람들”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출신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그가 10년만에 발표한 신작 “파묻힌 거인”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물론 중요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하필 일본 출신 작가가 제시한 과거에 대한 너그러움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가즈오 이시구로파묻힌 거인시공사, 2015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3/2016011302380.html​ 
  • 2015-12-14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Marguerite Yourcenar)민음사​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가장 유명한 로마 황제는 누구일까? 수 많은 할리우드 영화 덕분에 ‘네로’가 꼽히지 않을까 싶다. 로마를 잿더미로 만들고, 그 자리에 “Domus Aurea”(황금 집)라는 거대한 황궁을 지었다는 네로. 어머니와 아내를 죽이고, 스승 세네카를 자살로 몰았던. 반대로 가장 선한 황제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꼽힌다.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그는 부와 권력의 무의미를 강조한 “명상록”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끝없는 전쟁과 권력 싸움에 시달리면서도 매일 밤마다 글을 쓴 황제들이 여러 명 더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고, 로마제국 마지막 비기독교 황제였던 율리아누스(“배교자 율리아누스)는 “턱수염을 증오하는 자들”(Misopogo)이라는 패러디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책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다. 왜 하필 하드리아누스일까? 트라야누스 황제의 후임으로 제국 최고의 전성기에 살았던 그는 가장 “인간적인” 황제였기 때문이다. “완벽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괴물” 네로와는 달리 하드리아누스는 너무나도 복잡한 인간이었다.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아닌, 언제나 자신이 추구한 모습보다 조금씩 부족한 인간적인 인간. 황제로 부임하고 쉴 새 없이 제국을 방황하던 하드리아누스. 그는 무엇을 찾아 떠돌아 다녔던 것일까? 더 큰 영토? 더 많은 부? 더 위대한 업적? 아니, 그는 어쩌면 단순히 작은, 아주 작은 행복을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그 앞에 작은 행복이 등장한다. 안티누스라는 어린 그리스 소년. 소년과의 금지된 사랑을 위해 하드리아누스는 가족과 사회의 호평을 포기한다. 그리던 어느 날, 안티누스는 사라진다. 이집트 나일강에서 익사한 안티누스. 황제의 사랑을 질투하던 자의 짓이었을까? 아니면 늙고 냄새 나는 노인의 사랑이 부담스러웠던 소년의 자살이었을까? 안티누스의 죽음은 새로운 신을 탄생시킨다. 끝없는 슬픔에 잠긴 하드리아누스가 그를 신격화시키고 제국 곳곳에 안티누스 신전과 동상을 세우도록 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아이러니 하게도 그리스로마 유물 중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동상은 그 어느 신, 영웅, 황제의 것이 아닌 그리스 시골 소년 안티누스의 동상이다.시골 소년을 신으로 숭배한 황제. 그가 직접 쓴 회상록은 불행하게도 남아있지 않다. 안티누스의 동상으로 가득 찬 “하드리아누스 별장”을 1924년 처음 방문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사라진 황제의 회고록을 대신 쓰기로 결심한다.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회상록”은 1951년 드디어 완성된다. 유치한 그리스로마 신들을 더 이상 믿지 못했지만, 아직 기독교 신 역시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죽음의 자리에서 그는 “작은 영혼”이라는 시 하나를 남겼다고 한다:작은 영혼 작은 떠돌이작은 방랑자이제 너는 어디에 머무를까창백하고 혼자 남은언제나 모든 것을 비웃기만 하던 너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08/2015120802810.html​ 
  • 2015-12-03
    ​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만약 지금 내가 당신에게 빨간 사과 하나를 보여주며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빨간 사과”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내 눈에 보이는 사과의 색깔은 절대로 완벽한 “빨강”이 아니다. 눈으로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진정한 사과의 색깔은 언제나 애매모호하다.그러나 그 복잡한 색깔을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빨강”이라는 표현을 쓰고있을 뿐이다. 언어의 해상도는 인식의 해상도보다 낮다. 모든 표현은 결국 왜곡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김연아 선수에게 물어보자: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피겨스케이트를 할 수 있냐고. 김연아 선수가 말로 어떤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연습을 많이 했다고. 수 만 번 넘어지고 쓰러졌다고? 물론 진실은 수 천 만개에 달하는 김연아 선수의 팔, 다리 힘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줄들의 정교한 움직임과 타이밍은 그 누구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기에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게슈타인은 주장하지 않았던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한다고”(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ueber muss man schweigen).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직접 읽을 수 없다. 텔레파시는 불가능하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타인의 생각을 글과 말을 통해 전달할 수 있을까? 헤밍웨이의 <닉 애덤스 이야기>에선 의사인 아빠를 도와주다 처음으로 출생과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는 어린 주인공이 소개된다. 다시 평화로운 집에 도착한 주인공은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겠다”라고. 하지만 잠깐! 우리는 정말 머리 속에서 “나는 죽지 않겠다”라는 완벽한 문장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지금 내 머리 속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수 많은 생각과 기억과 희망과 두려움. 지극히도 낮은 해상도의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애매모호하고 복잡하지 않은가?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 <율리시즈>는 주인공 리오폴드 블룸의 긴 하루 동안 벌어진 모든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려 노력한다. 동시에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수 많은 일들을 단어와 단어 간의 나열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율리시즈를 완성한 조이스는 바로 그 다음 작품에 집중한다. 잠에 들고 꿈에 빠진 자아의 밤을 이야기해주는 <피네간의 경야>다. <율리시즈>는 어렵지만 이해하기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피네간의 경야는 다르다. ‘평범한’ 영어로 쓰인 율리시즈와는 달리 <경야>는 ‘만국어’로 작성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문장 속 단어 하나 하나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에, 모든 문장들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피네간의 경야는 본질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한 책이다. 모든 번역판은 번역가 자신이 선택한 단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이스의 비서였던 소설가 사뮈엘 베케트에 따르면 원고를 거의 완성한 조이스는 몇 주 동안 책의 마지막 단어를 고민했다고 한다. 표현의 한계를 시험하던 조이스의 최고 작품 <피네간의 경야>에 점을 찍을 마지막 단어. 얼마나 대단한 단어가 탄생할 것일까? 그런데 막상 조이스의 선택은 영어의 가장 기본인 “THE” 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마지막 “THE”를 시작으로 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을 수 있다. 마치 인생과 우주가 순환의 논리를 따르듯 <피네간의 경야>는 무한으로 반복하고, 무한으로 다양한 순환의 책인 것이다. 조선비즈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25/2015112503196.html​
  • 2015-11-10
    에리히 아우어바흐 (Erich Auerbach)<미메시스>, 민음사 2012   미메시스. ‘모방하다’ ‘흉내 내다’라는 고대 그리스 단어다. 하지만 ‘미메시스’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적 행위로 더 유명하다. 특히 플라톤의 해석은 인상적이다. 폴리테이아(The Republic)에서 플라톤은 질문한다. 우리는 어떻게 다양한 침대들을 모두 ‘침대’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물체와 아이디어는 ‘이데아’ 세상에 있는 완벽한 존재들의 그림자일 뿐이다. 모든 침대들은 어차피 이데아 세상에 존재하는 완벽한 침대의 투사적 존재이기에, 그들의 동일함을 인식할 수 있다. 이데아 세상에 이미 존재하기에 우리는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한 침대를 만들어내는 목수는 완벽한 침대를 모방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모방된 침대를 또다시 그림으로 그리고 시로 표현하는 예술가는 모방의 모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진실은 오리지널에 있고, 모방은 왜곡이라면, 모방을 모방하는 예술은 진실을 두 번 왜곡한다는 말이다.예술은 반복된 왜곡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역사는 언제나 예술의 역사다. 그림, 조각, 건축, 시, 소설을 통해 우리는 더 뛰어난 표현을 찾으려 노력한다. 독일 출신 문헌학자이자 비평가였던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그의 대표작 <미메시스>에서 서양 문학이 시도한 문학적 미메시스를 크게 두 가지 전통을 통해 해석한다. 우선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다. 20년동안 떠돌아다니다 거지 모습으로 고향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 다리에 남아있는 흉터를 발견한 유모 에우리클레아(Euryclea)는 그 거지가 바로 자신이 키웠던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메로스는 질문과 궁금증을 허용하지 않는다. 에우리클레아는 어떻게 오디세우스의 흉터를 보게 되었는지, 수 십 년 전 어린 오디세우스는 어떤 사고를 통해 흉터를 가지게 되었는지, 더 먼 과거에 에우리클레아는 무슨 이유로 이타카 왕가의 하녀가 되었는지, 호메로스는 우리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준다. 호메로스에게 미메시스란 과거, 현재, 미래가 지금 이순간 벌어지고 있다는 착시를 심어주는 트릭이다. 호메로스의 미메시스는 언제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아우어바흐는 현실이 아닌 ‘진실’을 보여주는 미메시스 역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구약의 미메시스다. 창세기에 소개되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기억해보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셨는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는지, 모리아 산은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하나님은 이삭의 희생을 명령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기에, 우리가 알 수 있는 나머지 모두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호메로스는 수 많은 디테일을 통해 존재하는 사실 만을 표현하지만, 구약에서의 미메시스는 깊은 해석을 통해 진실을 느끼게 한다. 현실과 진실의 차이. 독일 문헌학 최고의 대가들에게 교육받고, 독일 최고의 문학 비평가로 활동하던 아우어바흐. 하지만 유태인이었던 그는 터키로 망명해야 했다. 자신의 문화적 고향인 독일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스탄불에서 아우어바흐는 진실과 현실을 보여주는 걸작 <미메시스>를 1946년에 완성한다. 문학과 책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미메시스를 꼭 권하고 싶다.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06/2015110601230.html​ ​
  • "대구는 최고의 청년도시죠."
    "강릉은 커피산업의 메카고요.
    "대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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