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은 오케스트라 지휘 같아… 넓게 전체 그림 보는 독서 필요"

서울대 경영대 자문교수 도서선정 결산 토론
요즘 독서법, 장수촌서 장수비법 찾는 격
단편 사례를 만병통치약으로 오해 쉬워
지식 쪼개진 전문화 시대… 길잡이 중요
접근성·가독성 등 여러 기준 종합해 선정

"경영이란 게 종합 예술입니다. 제품 개발부터 조직·회계·마케팅까지 아우르는 활동입니다. 그런데도 전문화 과정에서 지식은 쪼개지고, 기업 현장에서는 그때그때 통하는 책 읽기가 만연해 있어요.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일수록 길을 안내해주는 나침반의 필요성이 절실합니다."

서울대 경영대 교수 자문단은 이번 기획에 대한 '참여의 변'을 이렇게 요약했다. 조선비즈가 경영경제 분야의 추천 도서 선정 프로젝트에 돌입한 것은 작년초. 그 후 자문단과의 협의와 토론은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최고의 책'을 골라내기 위한 과정은 각오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후보 도서 DB를 모으고 1차 선별하는 과정에서만 수개월이 걸렸다. 여기에 국내 주요 기업·기관의 최고경영자 101명의 설문조사 결과까지 더해지면서 도서 선정의 방정식은 산통(産痛)을 거듭했다.

선정 기준을 마련하고 별도의 추천 목록까지 제시한 서울대 경영대 교수팀의 갑론을박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오프라인 미팅만 10여 차례, 온라인을 통한 논의는 수시로 이어졌다. 결국 최초 기획에서 최종 도서 선정까지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긴 작업을 끝낸 지난달 26일 조선비즈와 교수들은 서울대 경영대에서 결산 좌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는 박기완·배종훈·유병준·황인이 교수가 참석했다.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의견을 보내왔다. 종합 발췌해 소개한다.

◇책도 패스트푸드 시대

조선비즈(이하 비즈)=기획에 참여할 때의 취지와 배경을 얘기한다면.

배종훈=지금의 독서 경향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별다른 숙고 없이 따라서들 책을 읽는다. 유행한다고 해서 다 좋은 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 걸음 물러서서 넓게 멀리 보는 전문가의 안목도 필요하다.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박기완=스탠퍼드대나 하버드대가 무료 강좌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세상이다. 정보는'패스트 푸드'처럼 넘쳐난다. 경영 현장에서는 'A가 한 것처럼 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공식이 난무한다. 하지만 책은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전문가라도 자기 전공이 아닌 경우 판단이 쉽지 않다. 지식이 분절돼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길잡이가 중요한 세상이 됐다.

비즈=요즘 읽기와 출판 경향에 대해 비판적이란 얘긴데.

=욕망의 시대다. 부자와 1등이 되려고만 한다. 경영학이 성공의 비결을 알려주는 무슨 주술인 줄 안다. 소설가 김훈이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얘기한 것처럼 경영학도 밥벌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문명이 2000년 이상 쌓아온 사람살이에 관한 인문학적 지혜를 무시하고 어떤 비책을 찾는데 몰두한다.

황인이=경영 현장의 독서법은 장수촌에서 장수 비법을 찾는 것에 비할 만하다. 장수촌에 가서 사는 모습을 보고 장수 비법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통계학적으로 문제가 많은 추론이다. 어떤 점은 장수에 기여하지만, 다른 점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유행하는 많은 경영서들이 그저 단편 사례를 끌어와 성공의 비법인 양 설명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동조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여기에다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작용한다. 사실 적지 않은 책들이 현대 경영의 시초인 프레드릭 테일러의 각주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곧바로 테일러를 읽는 게 낫지 않나.

◇'좋은 책'에서 '최고의 책' 골라내기

비즈=도서 선정 과정이 난산이었다. 특히 힘들었던 점은.

=국내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기준에서 출발하다 보니, 절판됐거나 번역되지 않은 해외 도서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양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1인 1책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한 저자의 다른 책이 빠진 경우도 있었다.

=경영학은 기본적으로 실용 학문이기 때문에, 선정 과정에서도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5년, 10년 후에도 살아남을 책인지 끊임없이 반문해야 했다. 내 전공 분야의 책을 추천했다가 다른 교수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모두가 더 나은 결과를 위한 진통이었다.

유병준=개인적으로는 가독성을 많이 고려했다. 되도록 기업 현장의 분들이 쉽게 접하고, 많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했다. 그래도 상업성에 호도된 책은 배제하려고 했다.

비즈=CEO 설문조사 결과와 자문단 추천 목록에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

=경영 일선에서는 잡스가 언제 경영학을 공부했느냐고 반문한다. 경영 이론을 알아야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겠다. 하지만 애플이라는 성공의 좌항에 잡스가 있다면 우항에 지금 CEO인 팀 쿡이 있다. 쿡은 전통적인 테일러의 경영 기법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다. 그런 점을 두루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축구 경기에서 골 하나만 넣고 영웅 취급을 받는 것과 비슷한 평가를 하게 된다.

조승아=미국의 한 경영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법조인이나 의사는 사법고시나 의사고시를 통과해야 하겠지만 CEO는 경영학석사(MBA)가 없어도 되지 않느냐고. 오늘날 경영학은 의학이나 법학, 공학 같은 학문보다 현장과의 괴리가 큰 게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경영자들은 대개 자신이 중요하게 보는 부분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경영인의 독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전체 그림을 보는 독서여야 한다. 내 경우엔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책을 추천하려고 노력했다.

비즈=기획 제목부터 논란거리였다. 처음에 '경영경제 파워클래식'으로 했다가 '경영경제 추천서'로 낙착됐는데.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출간 후 상당한 시간이 흘러 검증이 된 책만을 추천할지, 비교적 최근에 출간됐지만 영향력 있고 클래식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책까지 포함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고전'이라는 명칭에는 좀 더 엄밀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CEO의 설문 결과까지 반영한 목록을 산출하다 보니 클래식보다는 교양서 혹은 추천서라는 이름이 낫겠다는 판단에 도달했다.

비즈=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도덕감정론'을 두고 어떤 걸 넣고 뺄 것인가 논쟁했던 기억이 난다.

=경영인은 갖가지 상황에 직면해서도 자기 언어로 해석해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철학과 관점을 개발하는 지식이 필요하는 얘기다. 그 점에서 옛날 책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자본론'이 빠진 것은 아직도 아쉽다.

=접근성, 가독성도 고려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명저들도 빠질 수밖에 없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좌담회를 통해 밝혀 둔다.

◇절판·미번역 도서 빠져 아쉬워

비즈=마지막으로 첨언한다면.

=학문도 기업도 세분화하고 있지만 경영은 총제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다. 이번에 내 전공이 아닌 분야의 지식 체계에 대해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목록은 나름대로 오래 공을 들인 공동의 산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경영학의 목적은 기업 가치를 최대화하는 데 있지만 기업 이해 당사자 외에도 사회 참여자들을 두루 보면서 의사결정해야 한다. 이번 추천 도서를 통해 경영인들이 종합적인 관점의 중요성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중소기업이 큰 손해를 본 키코 사태나 최근 동양증권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기업이 의사결정을 할 때 여러 정보에 근거한 종합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매일 바뀌는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세월이 흘러도 가치를 발할 수 있는 책을 읽는 것, 그것을 나는 '인문적 독서'라고 부른다. 그런 관점에서 경영인이 읽으면 좋은 책을 대부분 담지 않았나 자평한다. 이번 도서 목록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작 추천하고 싶은 책인데, 절판됐거나 미번역서여서 빠진 것은 계속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고 보면 아직 남은 책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좋은 책을 더 많이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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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술술 진단이 나온다. 환자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보는 명의처럼, 고민에 빠진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의 나아갈 방향을 척척 짚어내는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그는 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지만,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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